[ 협력자의 딜레마 ]
1.
1979년에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제프 스킬링(Jeff Skilling)은 자타가 인정하는 매우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세계적 컨설팅 회사 맥킨지에서 역사상 최연소 파트너가 되었고 1990년에 엔론으로 자리를 옮겨 2001년에 CEO가 되었습니다.
1985년에 설립된 엔론에서 가장 오랫동안 CEO를 역임한 사람은 케네스 레이(Kenneth Lay)였지만 엔론을 실질적으로 이끈 사람은 스킬링이었습니다. 스킬링은 해마다 최고의 경영대학원에서 배출되는 MBA들을 수백 명씩 새로 뽑은 후 실적이 하위 10퍼센트 이하인 사람들을 해고했습니다.
스킬링은 실적평가위원회를 통해 등수를 매긴 후 하위 성과자들을 내쫓았습니다. 스킬링은 ‘등수 매겨 내쫓기(Rank and Yank)’가 회사를 묶어주는 접착제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조직을 죽이는 독이었습니다.
엔론의 직원들은 화장실에 갈 때 컴퓨터를 끄고 암호를 걸었습니다. 옆자리의 동료가 자신의 정보를 훔쳐 가지 않을까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엔론에서 근무했던 어떤 사람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누군가의 목을 밟아 보수가 두 배 오른다면 나는 아예 그 녀석의 목구멍을 짓밟아 버릴 것이다.”
엔론에 만연했던 이런 살벌한 경쟁과 비윤리적 행위는 결국 불법적인 분식회계로 이어졌고 그 결과 주주들은 수백억 달러를 날렸고 2만 명의 직원들은 직장을 잃었습니다.
2.
프로 스포츠팀의 선수들은 개인 성적뿐만 아니라 팀의 승리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합니다. 자신이 직접 슛을 하는 것이 개인 성적 향상에는 분명히 도움이 되지만 팀의 승리를 위해서는 더 좋은 위치에 있는 동료에게 패스를 해야만 합니다. 자신의 패스로 팀은 승리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팀 내에서 자신의 득점 순위는 내려가게 됩니다.
이는 스포츠팀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매 순간 마주치는 딜레마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소속된 집단이 잘되기를 바라지만 동시에 집단 내에서 자신도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내가 속한 조직은 다른 조직과 경쟁하지만, 동시에 연봉 인상이나 승진 기회를 놓고 조직 내에서 나는 다른 직원과 경쟁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직의 성과가 불평등하게 분배된다고 느낀다면 구성원들은 협력하지 않게 됩니다. 그 결과 연봉의 차이가 매우 심한 조직은 연봉이 비교적 고르게 배분되는 조직보다 성과가 좋게 나오지 않습니다. 메이저리그 소속팀들의 연봉 차이와 팀 성적을 비교한 연구에 따르면 연봉이 가장 고른 팀이 연봉 차이가 가장 심한 팀에 비해 시즌당 평균 여덟 경기를 더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민간 기업에서도 천문학적인 연봉을 주고 평판이 좋은 CEO를 영입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기업 경영에 도움이 된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히려 실제로 나타난 증거는 그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도 미국 기업들은 여전히 유명한 CEO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많은 보수를 지급하고 있습니다.
스타 플레이어에 대한 믿음과 팀워크를 경시하는 이런 현상은 제프 스킬링의 ‘등수 매겨 내쫓기’ 시스템과 맥락이 닿아 있습니다. 스킬링이 운영하는 스포츠팀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스킬링은 득점 기록에 따라 모든 선수의 순위를 매길 것입니다. 그리고 득점을 많이 한 선수에게 가장 많은 보수를 줄 것이고 득점이 적은 하위 10퍼센트에 속한 선수들은 방출할 것입니다.
스킬링은 팀의 분위기를 경쟁적으로 쇄신했기 때문에 팀 순위가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경기장 안에서는 팀 내 득점 1위를 차지하기 위해 선수들 간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집니다. 선수들은 동료가 자기보다 좋은 위치에 있어도 절대 패스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선수는 수비에는 관심이 없고 득점 순위를 높이기 위해 1퍼센트의 확률만 있어도 직접 슛을 쏘려고 할 것입니다. 심지어 나보다 득점 순위가 높은 선수가 내 옆에서 슛을 하려고 한다면 감독 몰래 밀치기까지 할 것입니다. 경쟁이 만연한 조직의 진짜 적은 바로 그들 안에 있는 것입니다.
3.
협력자의 딜레마를 통해 우리는 집단 내부의 경쟁은 협력을 저해하지만 집단 간의 경쟁은 협력을 강화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선수 개개인의 득점을 근거로 ‘등수 매겨 내쫓기’ 방식을 적용하면 그 팀은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하지만 ‘등수 매겨 내쫓기’를 모든 팀에 적용하면 팀 내 선수들의 협동심이 강화됩니다. 프로축구에서 승강제(昇降制)를 실시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성공을 위해 협력이 필요한 집단은 내부의 경쟁을 억제해야 합니다. 다른 집단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조직의 핵심역량은 단결과 협력입니다. 사람들이 함께 힘을 합치면 모든 구성원에게 이익이 되는 공공재를 만들어낼 수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많은 조직이 협력자의 딜레마를 극복하고 조직 내 협력을 강화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지역산업입지연구원 원장 홍진기 드림
첫댓글 좋은글 잘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