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표 노린 세금낭비 대형 사업, ‘새만금 잼버리’뿐이겠나
중앙일보
입력 2023.08.15 00:09
태풍 '카눈'이 전북을 지난 하루 뒤인 11일,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가 열린 부안군 잼버리장 숙영지 곳곳에 물웅덩이가 생겼다. 연합뉴스
“잼버리 명분 투입 SOC 예산 11조” “사실무근” 공방
정치권·지자체의 짬짜미 사업 감시·견제 체계 시급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는 많은 숙제를 던져 놓았다. 방만 운영과 준비 부족 등 ‘무능 행정’의 원인을 규명하는 작업이 필수다. 정치권과 지자체가 지역 표를 얻으려고 앞다퉈 벌이는 대형 사업의 난맥상 역시 이참에 반드시 파헤쳐야 한다. 이번 잼버리에선 정부와 지자체가 새만금 개발을 위한 명분으로 천문학적인 예산을 퍼부었을 뿐 정작 메인 행사는 챙기지 않는 모순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국민의힘 송언석 의원실은 새만금 잼버리와 관련해 투입된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11조원이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잼버리를 이유로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해 준 새만금 신공항 사업이 8000억원가량이고, 건설 중인 새만금~전주 간 고속도로용 1조9200억원, 새만금 신항만용 3조2000억원 등이라는 것이다. 잼버리 야영지를 새로 매립해야 할 부지에 마련하면서 정부가 관광레저용을 농업용지로 바꿔 농지관리기금 2150억원도 쓰도록 해줬다. 하지만 김관영 전북지사는 “수십조원 예산을 당겨 썼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하고 있다.
역대 여러 정부에 걸쳐 개발이 진행됐고 지역 표가 걸려 있으니 진보·보수 정부를 막론하고 새만금 개발에 딴지를 건 경우는 별로 없었다. 전북도 역시 2018년 발간한 잼버리 유치활동 보고서에 “국제공항 건설 및 SOC 구축 등 새만금 내부 개발에 박차를 가할 명분이 필요했다”고 밝힐 정도였다. 하지만 새만금에서의 행사가 실패로 끝나면서 당장 새만금 신공항 백지화 주장이 나온다. 정치권과 지자체가 한 몸이 돼 만든 양양·무안 공항 등 11개 지방공항이 적자에 시달리고, 예천공항은 문을 닫았다. 그런데도 전국에서 9개 이상의 공항 건설이 추진 중이다.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가 정부 도움으로 지역 발전을 꾀하는 것을 무조건 잘못이라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정치권과 지자체가 합작해 예산을 퍼준 뒤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밑 빠진 독’ 사업은 전국에 널려 있다.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엄격히 하고, 지자체장이 바뀔 때마다 새 사업을 추진하는 걸 막을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 무분별한 국가 예산 집행으로 막대한 세금이 낭비되는 것을 막을 견제 시스템이 시급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어제 잼버리 사태와 관련해 “국격과 긍지를 잃었다”면서 대회 유치 당시의 대통령으로서 사과의 뜻을 밝혔다. 사과 표현이 담겼지만 전 정부 책임론을 제기하는 여권에 대한 반응으로 받아들여졌다. 어느 쪽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여야는 누구의 허물이 더 큰지를 두고 다툴 여유가 없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는데도 대책을 안 세우면 국민적 분노에 공멸하게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