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 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최성훈
적우
이 시는 김소월이 만 20세 되던 해인 1922년에 발표한 시다. 지금으로 치면 갓 대학생이 됐을 나이에 그는 만남과 이별의 세상 이치를 다 깨달은 사람이나 쓸만한 글을 쓴 것이다.
내용을 들여다 보자. 소월은 당신이 앉아있던 과거의 개여울과 지금 앉아있는 개여울을 대비시킨다. 소월은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 고 약속을 하던 당신을 그리워한다. 스무살에 말이다. 압권은 이 대목이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가면서도 아주 가는 건 아니라고 말하는 당신의 내심을 읽어낸 구절이다. '아주 가는 건 아니라는 말은 결국 당신을 잊지 말라는 부탁 아닌가요' 라며 소월은 노래를 끝맺는다.
이 시는 결코 지금의 시각으로 해석되어서는 안된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20년대. 누군가와 헤어지고 재회를 약속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시절이었을 것이다. 지금이야 지구 어디 가 있더라도 휴대폰 메시지로 사랑한다는 말을 밥 먹듯이 할 수 있지만 그때는 그렇지 못했다.
누군가가 길을 떠난다는 건 긴 단절을 의미했을 것이다. 당신이 소식을 보내오기 전까지 나는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 그저 당신과 나란히 앉았던 개여울에 나가 당신이 남긴 몇 마디의 약속을 반추하는 것 밖에는 ...
소월(본명 김정식)은 1902년 평안북도 구성에서 출생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정신 이상이 되면서 조부의 손에 키워진 소월은 오산학교에 입학하면서 그곳의 교사로 있던 김억의 영향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다. 1916년, 14세의 어린 나이에 조부 친구의 딸인 연상의 홍단실과 결혼한다.
오산학교가 일제에 의해 문을 닫자 배재학당에 편입한 그는 1923년 졸업 이후 일본 도쿄 상과대학에 입학한다. 그러나 입학한지 얼마 안되어 관동대지진이 일어나고다시 귀국길에 오른다. 귀국 이후 김동인 등과 함께 동인으로 활동하며 문학을 했고 1925년 시집 「진달래꽃」을 낸다.
경성에서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자 그는 고향으로 내려가 신문지국, 고리대금업 등을 운영하다 실패하고 술과 아편중독에 빠진다. 폐인처럼 지내던 소월은 1934년(32세) 취중에 다량의 아편을 먹고 사망한다. 이 역시 물론 추론일뿐, 그의 죽음은 지금도 미스테리에 싸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