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비가 왔다.
겨울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는 봄을 알리기보다는 밤이 되면서 추위로 변했다.
어둠 속에서 가려졌다.
도시의 네온도, 자동차 소음도, 이곳이 신도시라는 것을 알게 해 주는 곳은 대형할인 매장의 빛
뿐이다.
비와 어둠속에서 마지막 생명인 듯 대형할인 매장은 노란 입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서늘한 빗방울을 혹은 일요일 저녁의 적막함을 피해 사람들은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롤러 브레이드를 타고 다니는 점원들의 빠른 몸놀림만이 매장의 활기를 돋우고 있었다.
한 아이의 시선이 점원의 롤러므레이드에 멈췄다.
아이의 유난한 목소리가 들렸고 엄마는 결국 롤러 브레이드에 타협점을 보았다.
3층 완구매장.
아이는 롤러 브레이드를 손에 쥐자마자 발로 옮겨신었다.
아이의 신발은 엄마의 손으로 전해졌다.
아이가 몇 미터 가지 못하고 흔들거리면 넘어졌다.
엄마는 신발을 신고 가라고 소리쳤지만 대구도 없이 사라졌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롤러브레이드를 탄 꼬마 아이가 카터를 잡고 있다가 미끄러졌다. 아이가 넘어진 곳은 엘리베이터
구석의 검은 비닐 봉지 위였다.
엄마는 아이를 일으키면서 옆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옆에 있던 사람이 이상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제 짐이 아닌데요."
엄마는 곧 고개를 돌려서 주위 사람을 봤지만 검은 비닐 봉지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비닐봉지는 아이가 앉는 바람에 한쪽으로 몰려 부풀어 올라 있었다.
액체인 듯했다.
엄마를 보고 있던 꼬마는 카터로 부풀어 있는 검은 비닐 봉지를 쳤다.
엄마는 아이를 말렸다. 하지만, 아이는 재미있다는 듯 반복적으로 비닐봉지의 부풀어진 부분을
쳤다.
1층에 와서야 엘리베이터는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사람으로 가득찼다.
아이의 엄마는 움직이기 곤란할 만큼 옆 사람과 맞대고 있어야했다.
아이는 카터와 엘리베이터 모서리 틈에서 생겨난 공간에서 약간의 자유를 얻었다.
엄마의 사정권에서 벗어난 아이는 롤러브레이드로 검은 비닐봉지를 눌렀다.
찢어진 틈에서 내부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붉은 액체가 솟구쳐 올랐다.
아이의 얼굴에 액체가 묻었다.
옆에 있던 엄마는 손을 뻗어서 아이얼굴의 붉은 액체를 닦았다.
"피......"
아이 엄마가 던진 말에 아이는 곧 괴성을 질렀다.
에리베이터 안의 사람들은 미친놈처럼 고함을 질러대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비닐봉지에서 나오는 붉은 댁체가 피라는 사실을 느끼때쯤은 이미 바닥은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다. 바닥의 피가 펀펀히 다리위로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문열어!!"
곧 비명소리가 들렸고 사람들은 반대쪽으로 밀기시작했다.
바닥을 메워가는 피에서 벗어나려고 엘리베이터 한쪽으로 밀었고 그때문에 비명소리는 더욱 커져갔다.
그 움직임때문에 피가 튀었고, 옷은 핏빛으로 물들어 갔다.
"진정해요!!"
누군가의 고함소리가 들렸지만, 비명소리에 섞여서 아무런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머리........."
아이의 엄마는 한 마디를 남기고 쓰러졌다.
아이는 비닐봉지를 펴보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채 떨고 있었다.
불행히도 엄마는 비닐봉지 위에 쓰러졌고 틈으로 사람의 팔과 다리가 나왔다.
엄마가 쓰러진 압력 때문에 목이 잘린 머리가 굴러나와 있었다.
붉은 피가 얼굴과 헝클어진 머리에 흠뻑 적셔져 있었다.
엘리베이터 한쪽은 이미 비닐봉지와 아이 그리고 쓰러진 엄마 뿐이었다.
엘리베이터의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머리는 밀치며 고함치는 사람들 쪽으로 굴러갔다.
핏빛으로 채색된 혈색없는 얼굴이 드러났다. 턱이빠진 것처럼 벌어진 커다란 입이 보였다.
마치 목이잘린 머리가 사람들의 다리를 물기 위해서 움직이는 듯했다.
흥분한 사람들은 이리저리 밀쳤다.
두려움의 비명소리와 밀리면서 나는 고통스러운 신음소리가 섞였다.
굴러다니는 머리를 피하기 보다는 밀어붙이는데 정신이 팔려있는 듯했다.
바닥에서 굴러다니는 머리를 피해 온 힘을 다해 밀던 여자가 머리를 밟았다.
곧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피로 가득한 바닥과 뛰고 있는 사람들의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바닥의 요동이 잠시 느껴졌다.
여자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눈을 떴다.
누군가 자기를 보고있는 듯했다.
붉은피로 물든 눈동자였다.
갑자기 눈앞으로 다가왔다.
커다랗게 벌어진 입이 자신의 입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손을 들어 올리고 싶었지만 이미 누군가의 다리가 짓눌르고 있었다.
이미 오랬동안 소리르 질렀기 때문에 허스키한 비명이 잠시 나다가 아무런 소리를 내지 못했다.
단지 입에서 나오는 공기의 진동이 바닥에 고인 피에 희미한 미동을 만들어 낼 뿐이었다.
엘리베이터 내부에는 피 비린내가 가득해져갔고, 사람들의 몸부림은 극에 달했다.
비명소리는 사람의 한계를 넘어 끝었이 커져갔다.
계속..........
제 2 화 -- 형 사 들
사건은 고양서에서 이첩되었다.
연쇄살인 가능성때문에 부근의 경찰서로 행해지는 의례적인 이첩이었다.
"시체사진이 뭐 이래?"
"뭔데 그래?"
"현장사진이야. 야 지독한 놈이네 그려....."
이형사와 오형사가 노란 봉투를 뜯고 나서 사진을 보고 있을 때 봉투에서 비디오테이프 하나가 떨어졌다.
흐린 화면위로 담배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화면을 모고 있는 남자의 얼굴에는 딴 생각으로 가득했다.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남자에게는 아주 멀리서 들리는 조그만 소리였다.
"조형사님.... 조형사님....."
커다란 목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리고 나서야 남자는 자기를 부른다는 사실을 알았다. 수화기를 들었다.
"형사1계 조민석입니다."
"네......"
"내일 감찰실로 오라는 말씀입니까?"
조현사는 형사과장에게 감찰실 호츨을 받았지만 머리속에 멤돌고 있는 것은 하얀침대위에서 길고 힘겨운
호흡을 지속해가는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귓가에는 어머니의 숨소리가 아직 도 환청처럼 남아있었다.
조형사는 환청이 사라지면 어머니가 돌아가실지 모른다는 생각에 잠겨있었다. 이때 스피커음이 조형사의
머리속을 파고들었다.
"청계천 8가에서 긴급사태 발생입니다."
조형사는 반사적으로 책상위에 있는 검은 옷을 들고 뛰어 나갔다. 어디선가 이형사가 나와서 미리 차를
대기 시켜놓고 있었다.
조형사와 오형사가 뒷자석에 오르자 마자 경광등을 켜고 차는 출발하였다.
백밀러를 통해서 오형사는 조형사를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창밖을 보고 있는 조형사의 눈빛에서는 슬픔과 알수 없는 분노가 느껴졌다. 오형사가 입을 연다.
"박 사장 그 놈 나쁜 놈입니다. 그 새끼 먼저 족쳤어야 되는데, 재수 없게 반장님이 걸려들어서...
바쁘시더라도 감찰실 올라가기 전에 준비해 놓은 서류를 보고 가십시요."
오형사의 말에 조형사는 입가의 미소로 감사를 표했다.
청계 8가 팬말이 보였다. 곧 경광등 소리와 무전기 신호음이 들려왔다. 모여있는 사람들을 넘어서자
곧 폴리스 라인이 보였다.
경찰차와 앰뷸런스가 즐비해 있었다.
시체를 덮은 것 같은 하얀 천이 앰뷸런스 옆에 놓여 있었다. 검시관의 플래쉬가 계속해서 터졌다.
시체에서 흘러나온 붉은 피는 하수도 쪽으로 흘러간 것처럼 붉게 응고되어 있었다.
하얀천은 시체의 몸에서 흘러나ㅗㄴ 피에 물들어 선홍 빛으로 변해있었다.
조형사는 천을 올렸다. 목이 비틀어진 12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눈을 뜨고 조형사를 바라보았다.
머리 쪽에는 아직도 응고 되지 않은 피가 조금씩 흘러나왔다.
소년의 얼굴이 보 이자 뒤쪽에서 준비하고 있던 것처럼 기자들의 플래쉬가 터졌다. 촬영을 놓고 경찰과
기자들의 싸움이 다시 시작되었다.
조형사는 비틀어진 소년의 머리를 돌려 바로 잡았다.
소년은 누워서 낡은 아파트를 쳐다보는 듯했다.
눈빛은 공포에 질려 있었고, 얼굴은 이미 죽음의 기운때문에 경직되었다. 하지만 죽기 전에 느꼈던 공포감
만은 소년의 얼굴에 살아있었다.
조형사는 소년의 눈을 감겼다. 그리고 소년의 눈빛이 이르렀던 곳을 올려다 보았다.
낡은 구식 아파트가 흉물스럽게 서 있었다. 다시 소년의 얼굴로 고개를 돌렸을 때 건물에서 떨어지기 전
소년이 느꼈던 두려움이 조형사의 가슴속에서 살아나는 듯했다.
낡은 소년의 자켓에서 유난히 반짝이는 단추가 눈에 들어왔다. 오른쪽 소매깃에 단추가 떨어져 나간 흔적이
남아있었다. 조형사는 다른 쪽 단추를 힘껏잡아 챘다.
"빨리 말해 새꺄!"
"몰라요......형........" 울먹이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새끼가 뭘 잘했다고 울어 빨리 말해!"
"형........"
"부모도 없는 놈이 저개 니 형인지 어떻게 알아 이 새꺄!"
김형사의 커다란 손이 바람을 가르며 뒤쪽으로 갔다가 소년의 머리를 강타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는 바닥으로 꼬꾸라졌다.
바닥에 있는 아이가 김형사를 똑바로 한번 쳐다보고 일어섰다. 조형사는 아이를 향해 다시 손을 들었다.
아이의 귀에는 커다란 김형사의 손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눈을 감고 다시 자식을 강타한 손을
기다리고 있었다. " 뭘 잘했다고 눈을 똑바로 뜨고 있어. 새꺄!"
기다리고 있던 아이는 김형사의 손이 더디게 오는것을 느끼고 눈을 떴다. 어느 틈엔가 조형사가 달려들어
김형사의 손을 잡고있었다.
"이건 내담당입니다." 두사람 사이에는 잠시동안 긴장감이 흘렀다.
조형사를 노려보던 김형사는 슬그머니 시선을 내렸다. 조형사가 고개를 돌리자 김형사의 시선은 아이에게로
갔다. 아이의 얼굴을 보는 순 간 화가 치민 김형사는 다시 손을 들어 아이를 쳤다.
그때 바로 조형사의 주먹이 날아와 김형사의 얼굴을 강타했다.
옆에 놓였던 쓰레기더미위로 김형사가 쓰러졌다. 김형사의 입안에 피가 가득 고였다. 붉에 물든 침을 뱉으며
일어섰다.
" 씨발 "
김형사는 일어서자 마자 조형사에게 돌진했다. 어느틈엔가 모여든 경찰들이 김형사를 잡았다.
김형사는 더 기세를 올렸다.
"경찰대 못나온 놈 서러워서 살겠나. 이것 씨발..... 그래 경찰대 나와서 그렇게 크게 해쳐먹어!
징계중이면 가만있어야 될거 아냐. 씨발 경찰대 나오면 징계도 필요없나 보지......"
조형사가 김형사에게 달려들려고 하자 오형사가 가운데 끼여들어 두 사람을 밀쳐냈다.
"야 씨발 더럽다 더러워."
다음날 아침 일찍 감사가 진행되었다. 조형사는 아무런 생각없이 대답을 했다. 감찰관들의 질문보다는 어제
저녁부터 사라져버린 환청이 계속해서 신경에 쓰였다. 그렇게 자신을 따라 다니던 어머니의 거친 호흡소리가
사라져 버린것이었다. 조형사는 두려웠다. 의미없이 감찰 관들에게 대답을 던지고 나와서 바로 차를 타고
병원으로 달렸다.
며칠전 병원앞에서 증인이라는 이유로 어머니를 보는 것을 경찰에게 저지당했던 상황이 떠올랐다.
어머니 병실을 지켰던 형사들이 보이지 않았다. 문을 열고 병실을 보았다.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없는 방처럼 느껴졌다. 창문에서 하얀 햇빛이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아침에 영안실로 옮겼습니다."
의사의 목소리가 가늘게 귓속으로 들어왔다.
조형사는 어머니의 거친 호흡이 베어 있을 침대시트를 만지고 있었다.
-- 3화 -- 변사체부검
강변도로에 버려진 승용차 안에서 6조각의 사체가 들어 있는 비닐봉지가 발견되었다.
혈액 봉투와 머리, 팔, 다리 6등분된 사체가 드러나면서 곧 이 사건은 고양서 엘리베이터에서 발생했던
사건과 연계 가능성이 확신되었다.
그리고 경찰들은 곧 사건이 끝날 것이라는 걷부른 추측을 하기 시작했다.
승용차 안에서 2개의 지문과 체모가 발견되었고, 곧 그 주인공들까지 추적되었기 때문이다.
조형사가 이 소식을 접했을 때 이미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켜져있는 히터때문에 바닥난 기름, 이 열기 때문에 부패된 사체. 차량에서 발견되 변사체의 부검 정보량은
현저히 감소되었다. 그리고 사체를 6등분할 정도의 철저한 범행이라면, 체모나 지문을 남겼을 리 없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조형사의 추측처럼 차량은 도난 차량이었고, 차량의 주인이었던 용의자는 단순
강간범에 지나지 않았다.
서울경찰청을 중심으로 특별수사 본부가 꾸려졌다.
경찰학교 졸업 성적이 우수했던 조형사가 서장의 추천으로 사건을 담당하게 되었다.
조형사가 사건을 맡자마자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부검을 담당하고 있는 구검시에게 전화가 왔다.
"축하해. 인사하러 와야지?"
"부검 결과는 나왔습니까?"
"오늘 들어오게."
국립과학수사 연구소 현관앞에는 구검시가 담배를 물고 있었다.
조형사의 차가 섰다. 현장에서 부검사진을 찍었던 오형사가 나와서 조형사를 맞이하였다.
조형사는 구검시의 얼굴에서 아이같은 장난기를 느꼈다. 구검시의 입가에는 부검장소에서 하지 못 했던
수많은 말들이 맴돌고 있었다. 가장 조형사를 반겼던 것은 구검시의 입이었다.
인사도 없이 구검시는 조형사를 사체실고 안내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구검시의 걸음에서 비트 있는 리듬감이 느껴졌다.
"미안하네. 어머니 상에 가지도 못하고."
나이가 있었던 오형사는 뒤쪽에서 쳐져있었다.
부검실 문이 열렸고, "딸깍" 소리와 함께 수술대위에 매달린 조명기구에 불이 들어왔다.
그제서야 오형사는 입구에 도착하였다. 오형사가 숨을 고르고 있을때 구검시는 부검대위에 덮여진 천을 걷어 냈다.
머리, 몸통, 팔, 다리, 6개로 조각나있는 사체가 퍼즐처럼 맞춰져 엉성하게 드러났다. 미이 구검시의 칼에
분해되어있는 사체조각은 인간의 몸이라기 보다는 고깃덩어리 같았다.
"다리 두개는 이 몸통에서 떨어져 나온게 아냐."
구검시는 오래 참았던 말을 하는 것처럼 툭하고 말을 뱉었다.
아직 숨을 가르고 뒤쪽에 서있던 오형사가 말을 받았다.
"그럼.... 희생자가 또있단 얘기야?"
"그건 곧 알게 될거고, 우선 재미있는 이야기부터 시작하자구, 범인은 해부학에 지식이 있는 놈이야.
잔뼈 하나 다치지 앉은 상태거든...."
구검시는 사체의 단면을 하나하나 집어가기 시작한다.
구검시는 장난처럼 단면에 힘을 가해 손가락이 사체 피부속으로 들어가세 힘주어 누루곤 하였다.
"정확하게 육등분으로 잘랐어. 의료기구를 사용하는 거 같애. 이 정도면 웬만한 의사들 빰 칠 기술이야."
"사망 원인은?"
"크메르루즈 애들이 비닐봉지를 얼굴에 씌워 죽이잖아. 손으로 누른 흔적도 없고... 동공이 크레 확대된
걸로 봐서 단순 압박사는 아냐.. 목을 조르지 않고 깨끗하게 죽였어."
"질식사란 말이군."
"발목에 타원형의 상처가 있는데.. 어디에 묶여 있었던 거 같네."
구검시가 집은 발목에는 동그란 상처가 있었다. 쇠줄같은 것으로 묶인 상태에서 발버둥 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응고된 피와 벗겨진 피부가 육안으로 확연하게 드러났다. 조형사는 범인이 힘들이지 않고 기술적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토막나 있지만 아주 깨끗하다.' 라는 생각이 조형사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산서 사건 기억나지? 그때 사라졌던 다리가 이곳에서 나타났어. 물론 정교하게 맞추어져 있지..."
조형사는 고양서에서 이첩되었던 사건을 얼핏 읽었던 기억이 났다.
"현장에서 자네가 히터가 틀어져 있었냐고 물었었지?"
생각에 잠긴 조형사는 아무런 말이 없다.
구검시는 혼자 계속 말을 이어갔다.
"고양서의 사체 기억나나... 먼저 발견되긴 했지만 이곳 사체가 더 먼저 살해 된 것 같아. 그래서 승용차에 히터를
틀어 놓은 것 같거든. 보통 온도에 따라서 부패정도가 다르고 썩어 가는 몸에서 생겨나는 벌레가 다르다는 점을 보면,
이틀 정도 먼저 살해 됐다고 확신 할 수 있어."
조형사의 손에는 두 사건의 변사 부검서가 있었다. 구검시의 말들은 허공을 계속해서 맴돌고 있는 듯 했다.
오형사는 구검시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조형사는 부검서속에서 추리가 진행되고 있었다.
'고양서에서 인수한 사체 속에서 제 3자의 다리가 발견되었다. 물론 모두 혈액을 제거한 상 상태의 깨끗한 고깃덩어리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몸통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번 강변도로에서 발견된 사체에 있는 팔과 다리가 사라졌다.
하지만 다리는 고양서에서 사체의 것으로 판명되었다. 사라진 것은 팔뿐이다. 그렇다면 팔과 다리가 사라졌다.
모두 혈액은 깨끗하게 제거되어있었고, 과다 출혈이 있기는 하지만, 소크를 동반한 질식사였다.
그것도 아주 조용히 사라져갔다.'
조형사는 누군가 자기의 목에 비닐 봉지를 씌우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아주 친근하게 느껴졌다.
"곧 또 하나의 사체가 나타난다......."
- 제 4 화 - 다가오는 두려움
또 한구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계획된 일처럼 일주일 후에 발견된 한 구의 시체......
"조형사, 자네가 얼마나 이 사건을 맡을 수 있을 것 같나?"
형사과장이 조형사를 호출하고 나서 대뜸 던지 한마디였다.
두 사람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자네가 브리핑을 해야 할거야!"
형사과장의 마지막 말이었다. 지금 브리핑을 한다는 것은 상상력을 동원해서 소설을 쓰는 일과 다를
바가 없었다.
세 구의 시체를 가지고 고민하는 조형사의 머리 속에는 복잡한 상념들이 들락날락 거렸다.
사라지는 시체의 조각들, 그리고 다시 나타나는 시체의 조각들, 시체조각들은 마치 의미라고 갖고 있는
것처럼 이리저리 옮겨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외에 나타나는 단서는 아무 것도 없었다.
싸늘한 침대에 앉아서 천장을 응시하며 조형사는 몇 구의 시체사이에 누워 있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살인 사건, 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검은 상복을 아직까지 입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며 모든
것들이 계획된 느끼을 받았다.
천장을 채우고 있던 사체들 사이로 시끄러운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자네 목을 축일만한 단서가 나타났네."
구검시의 목소리였다.
악동의 흥분을 알리는 듯한 말투가 전화선을 타고 전해졌다.
아무런 단서가 없는 이 사건은 그림이 그려져 있지 않은 퍼즐을 맞추는 것과 같다.
불현듯 구검시가 그 그림을 던져 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국과수 부검실에서 그검시가 던져준 것은 마지막 발견된 사체의 이에서 발견되 인공 치아였다.
인공 치아는 회사별로 구분이 가능하고, 또 회사별로 납품하는 방법과 개인 치아의 모양이 다르기
때문에, 치아를 만든 회사와 병원에만 간다면 사체의 시원이 밝혀질 것이라는 말이었다.
"곧 사체의 신원이 밝혀질 거네" "고의적인가...."
말꼬리를 흐리면서 조형사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것을 구검시가 눈치 빠르게 잡아챘다.
"그 정도로 지능범이라면, 아마 공부 꽤나 했겠는 걸!"
조형사의 머리 속에는 사체의 신원을 범인이 일부러 밝히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장에 그렸던 사체조각들이 자신에게 준 최후의 결론이었다.
"그러면 우리가 조사하는 것들에 대해 잘 알고 있겠네요."
조형사는 섬뜩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범인이 자신을 보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미결로 남게될 것 같은 두려움은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있었다.
하지만 미결이 되지 않을 듯한 분위기로 진행되고 있었다.
차라리 이런 사건은 미결로 일단락되면 좋을 것이다.
정신병자의 장난 정도로 끝나고, 절대 외부로 공개되지 않는다.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다면 없었던 일과 마찬가지이다.
단지 사건에 관여했던 몇 사람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 때까지만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 고깃덩어리는 단순히 의식의 제물로 끝나는 것이다.
제단에서서 일어난 일은 아무도 모르고 끝날 수 있다.
잠깐동안 그냥 제물을 보는 것만으로 모든 일이 끝났으면 하는 생각이 조형사의 머리 속에 들어왔다.
아직도 옷에서 나는 어머니의 향 냄새가 코속을 파고들었다. 향이 계속해서 타오른다.
향불 뒤에서 옷고 있는지 울고 있는 지 분간이 가지 않는 주름으로 뒤덮인 어머니의 영정에 피곤하게
앉아 있는 조형사의 얼굴이 비쳤다.
조형사는 그저 범인이 만들어 놓은 단서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어머니의 죽음을 보고만 있었던 것처럼 이 사건을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타날 용의자 역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