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삽질하다 / 허문영
오대산 북대 미륵암에 가면 덕행 스님이 계시는데, 매일 밤 별이 쏟아져 내려 절 마당에 수북하다고 하시네.
뜨거운 별이면 질화로에 부삽으로 퍼 담아 찻물 끓이는 군불로 지피시거나, 곰팡이 핀 듯 보드라운 별이면 각삽으로 퍼서 두엄처럼 쌓아두었다가 묵은 밭에다 뿌려도 좋고, 잔별이 너무 많이 깔렸으면 바가지가 큰 오삽으로 가마니에 퍼 담아 헛간에 날라두었다가 조금씩 나눠주시라고 하니, 스님이 눈을 크게 뜨시고 나를 한참 쳐다보시네.
혜성같이 울퉁불퉁한 별은 막삽으로 퍼서 무너진 담장 옆에 모아두었다가 봄이 오면 해우소 돌담으로 쌓아도 좋고, 작은 별똥별 하나 화단 옆에 떨어져 있으면 꽃삽으로 주워다가 새벽 예불할 때 등불처럼 걸어두시면 마음까지 환해진다고, 은하수가 폭설로 쏟아져 내려 온 산에 흰 눈처럼 쌓여 있으면 눈삽으로 쓸어 모아 신도들 기도 길을 내주시자 하니, 하늘엔 별도 많지만 속세엔 삽도 많다 하시네.
- 『별을 삽질하다』(달아실, 2019)
* 허문영 시인
1989년 《시대문학》 등단.
시집 『내가 안고 있는 것은 깊은 새벽에 뜬 별』『고슴도치 사랑』『물속의 거울』『사랑하는 것만큼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왕버들나무 고아원』 『별을 삽질하다』
시선집 <시의 감옥에 갇히다>, 산문집 <문화를 생명으로 읽다> 외 1권.
교양서 <예술 속의 약학>이 있음.
강원도문화상, 춘천예술상 대상 등 수상.
강원대학교 약학대학 명예교수.
2020.9.12. 지병으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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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영 시인의 「별을 삽질하다」는 詩를 읽으면서 얼마나 아름답고 고요한 곳에 미륵암이 있는지를 생각했다.
별을 삽질할 만큼 별똥별이 절 마당에 떨어져 내려 그 별똥별을 크기와 밝기로 나누어 쓰임새를 정해 쓰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이 이 속세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그래도 착하고 선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보통의 사람 같으면 이 별똥별을 온갖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을 할 수 있었겠지만, 적어도 절 마당에 떨어진 별이니 그 별똥별 부처님 마음 벗어난 곳에 쓰지 않고 있다는 것만 보아도 선하고 선한 불심이 깃들어 있다는 생각이다.
세상은 날로 환경이 오염이 되어 미세먼지가 사람이 살아가는 앞길을 망망하게 만들고 있다. 모두가 앞을 잘 보고 살아가라는 경고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 경고를 무시하고 경제개발에만 몰두하니 더 악화될 것은 뻔한 일이다.
별빛은 어둠이 깊어야 밝다. 밝은 빛 앞에서는 별빛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별똥별이 삽으로 쓸어 담을만큼 많이 떨어져 있다는 것만 보아도 아직은 미륵암에 계신 스님들의 불심이 속세의 죄를 씻어내고 있다는 생각까지 든다.
자신의 발등 앞을 비추는 빛으로 쓰지 않고 해우소 돌담과 신도들 기도 길을 비추어 주는 등불로 삼으면 좋겠다니, 그 마음으로 이 세상이 지탱이 된다고 본다. 큰 불심의 의지를 바라본 느낌이다.
- 임영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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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늦게 시편지를 띄웁니다.
먹먹합니다.
지난 토요일 갑작스럽게 허문영 시인이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오늘 시편지는 그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시집 『별을 삽질하다』의 표제시를 읽는 것으로 대신하려고 합니다.
시집 『별을 삽질하다』를 처음 세상에 내놓을 때 허문영 시인께서 처음 제게 했던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박형, 부끄럽지만 육십을 넘기고서 이제야 겨우 시의 눈을 뜬 것 같으이. 이제야 내 얘기를 세상에 부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랬던 선생께서 시를 두고 벗을 두고 훌쩍 하늘로 떠나셨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이면
별이 쏟아져 내리는 밤이면
선생께서 별을 저리 쓸고 계시구나 그리 생각하면 되겠지요.
아직은 뭐라 말할 수 없을 만큼 먹먹할 따름입니다.
선생의 명복을 빕니다.
2020. 9. 15.
달아실출판사
편집장 박제영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