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하얀 면류관’의 무등산 서석대. 요술나라 임금님의 백설왕관.
우뚝우뚝 사각오각 육각팔각 돌기둥에 옥양목 같은 눈꽃이 눈부시게 피었다. 주저리주저리 다발로 피었다.
훤칠한 이마에 잔뜩 묻은 떡가루. 백색제국의 천년요새. 억만 년 묵은 지구의 흰 가슴뼈.
추사가 거친 갈붓으로 그려낸 수묵화. 로봇 태권브이의 우람한 허벅지.
광주사람들의 스톤헨지. 남도 사람들의 본적지. 조물주의 주사위.
턱 아래 나무숲 목도리는 벚꽃 같고, 이팝나무 꽃 같고, 배꽃 같고…. 무등산
무등산은 언제나 말없이 엎드려 있다. 밋밋한 등허리를 다 드러내놓고 황소처럼 웅크리고 있다.
꼭대기는 하늘-땅-사람(天-地-人)의 3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천왕봉(天王峰)-지왕봉(地王峰)-인왕봉(人王峰)이 그것이다.
천왕봉이 약간 높지만, 멀리서 보면 모두 그만그만하다. 하늘 사람 땅이 하나다.
무등산옛길은 한가하다. 출발도 호젓한 도심 뒷골목에서 한다.
산수동 무등파크맨션 건너편이 그곳이다.
거리는 무등산 높이와 똑같은 11.87km. 1구간 산수동~원효사 7.75km. 2구간 원효사~서석대 4.12km.
1구간은 무등산 자락을 따라 휘돌아가는 길이다. 옆 동네 마실 가는 길이다.
구불구불 아늑하다. 양지쪽은 눈 녹은 물로 질퍽하다. 봄 냄새가 폴폴 난다.
흙 갈색 무등산 발톱이 언뜻언뜻 드러나 있다. 담양사람들이 소를 끌고 다니던 황소걸음 길이 나타난다.
자식들 학자금을 위해 자식 같은 짐승을 광주시장에 내다팔러 가는 길.
주인은 말이 없다. 소도 말없이 뚜벅뚜벅 걷는다. 우보천리(牛步千里).
300m 간격으로 방향표지판이 서 있다. 원효사까지 26개, 서석대까지 딱 40개다.
가끔 옛길에서는 쇠 지팡이가 필요 없습니다.
선조들의 길에 상처 주는 스틱 사용을 자제합시다라는 안내판도 보인다.
달리는 차보다 천천히 걷는 우리가 더 행복합니다 길 위에 길이 있다라는 글 판도 있다.
언어도단(言語道斷) 불립문자(不立文字). 진리는 말속에 있지 않다.
1구간은 몸을 푸는 길이다. 다리 근육을 키우는 코스다. 소나무 편백나무 참나무가 어우러져 있다.
잔솔밭을 지난다. 높고 낮은 무덤들이 눈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다.
잣고개에서 광주의 옛 성(城) 무진고성(武珍古城)을 만난다.
남북 1000m, 동서 500m, 둘레 3500m의 타원형 성곽.
청풍쉼터엔 방랑시인 김삿갓(김병연1807~1863)의 시비도 보인다.
그가 이곳 무등산자락 화순동복에서 죽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삿갓이 태어난 곳은 경기 양주.
2구간은 눈길이다. 햇볕이 잘 들지 않아 3월이나 돼야 녹을까. 곳곳에 너덜겅이 나온다.
눈 사이로 푸른 산죽이 삐죽삐죽 나왔다. 오를 땐 아이젠을 사용하지 않는다.
지팡이도 보류다. 뽀드득! 싸르륵!눈 즈려밟는 재미가 솔솔 하다.
보드득! 곰삭은 홍어 뼈, 잇몸으로 씹는 맛이다.
맨발로 스펀지 공기방울 톡톡 터뜨리는 느낌이다.
발바닥 가운데에 은근히 부풀어오는 물렁한 촉감. 한여름 냉면 사리가 후르륵! 목구멍을 넘어가는 것 같다.
야릇하다. 눈밭을 아이젠 차림으로 걸으면 우두둑! 눈 허리 부러지는 소리가 난다.
뭉툭하다. 토막 난 장끼 우는 소리다. 스르륵! 눈에 스치는 쇳소리. 거슬린다.
해발 850m가 넘으면 눈의 나라이다. 우뚝우뚝 바위들이 이마에 눈 모자를 쓰고 있다.
규봉암(950m) 입석대(1017m) 서석대(1100m).
조물주는 지상 최고의 요리사다. 그 어떤 요리사도 입석대 같은 작품을 못 만든다.
무를 직사각형으로 길쭉길쭉 잘라낸 10~16m 선돌. 오각형 육각형 칠각형 팔각형.
입석대 서석대는 천연기념물 제465호다.
무등(無等)은 불교의 무유등등(無有等等)에서 나왔다.
부처는 이 세상 모든 중생과 처음부터 아예 견줄 수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 모든 생명은 부처다. 우주보다 더 크고 존귀하다. 무등산은 모든 생명을 품는다. 평평하면서 크다.
|트레킹 정보|
■무등산옛길 가는 길
■광천고속버스터미널=1187번 시내버스(번호가 무등산 높이와 같음) 25분 간격. 1000원.
토 일요일엔 1187-1번(산수오거리~원효사) 셔틀버스 운행.
광천터미널~신세계백화점~서구보건소~그린파크~신안사거리~광주역~롯데백화점
~금남로5가역~금남로4가역~법원입구~신수오거리(옛길 1구간 입구)
~산수무등파크전망대~충장사~원효사(옛길 2구간 입구)
■광주공항=1000번 시내버스(무등산관광호텔행) 타고 가다가 신수오거리 하차.
20분 간격 1000원.
광주공항~상무쇼핑~광천터미널~도청~동구청~조대입구~지산사거리~산수오거리~무등산관광호텔
■산수오거리행 시내버스=1, 15, 27, 28, 74, 80, 187, 1000, 1187번
■무등산공원관리사무소=062-368-1187, 062-365-1187
■먹을거리=귀향정(062-522-2743) 한식코스요리, 해물샤부샤부, 생선조림. 북구 풍향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