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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중앙부에 있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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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41,286 ㎢ 인구 745백만명 (2004.7) 정식명칭 스위스 연방 (The Swiss Confederation /Switzerland) 주 스위스 대사관 * 공관장 : 박원화 대사 * 공관 주소 : Ambassade de la Republique de Coree, Kalcheggweg 38, P.O.Box 28, 3006 Bern, Switzerland * 공관 전화/팩스 전화 : (41-31) 356-2444 팩스: (41-31) 356-2450 * E-mail : chcore@hanmail.net 주한 스위스 대사관 * 공관장 : H.E. Christian HAUSWIRTH 대사 * 공관 주소 : 32-10, Songwol-dong, Chongro-gu C.P.O.Box 2900 (100-629), Chongro-gu, Seoul 100-101 * 공관 전화/팩스 전화 : (02) 739-9511/4 팩스 : (02) 737-9392 * E-mail : swissemb@elim.net 취리히무역관 * 무역관장 : 홍순용 * 주소 : Claridenstrasse 36,CH-8002 Zurich, Switzerland * 전화/팩스 전화 : (41-1) 202-1232 / 팩스 : (41-1) 202-4318 * E-mail : ktc@kotra.ch | |
수도는 베른이고, 언어는 독일어·프랑스어·이탈리아어·로망슈어 등이 사용되고 있다. 북쪽으로 독일, 동쪽으로 리히텐슈타인, 오스트리아, 남쪽으로 이탈리아, 서쪽으로 프랑스에 접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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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명 |
스위스 연방 (The Swiss Confederation / Switzerland) |
기 후 |
스위스의 기후는 유럽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어서 서부 대서양, 동부대륙, 북부 극지 및 남부 지중해 등 유럽의 4대 기후의 영향을 골고루 받고 있음. |
면 적 |
41,286 ㎢ |
인 구 |
745백만명 (2004.7) |
수 도 |
베른 (Bern) |
주요민족 |
독일(65%), 프랑스(18%), 이탈리아(10%), 로망스(1%), 기타(6%) |
주요언어 |
독일어, 불어, 이태리어가 사용되며, 각 언어 사용자들은 각 언어의 모국에 속한 사람들임. (독일어 65%, 프랑스어 18%, 이탈리아어 10%, 로만어 1%) |
종 교 |
로마카톨릭(46.1%), 개신교(40%), 기타(5%) |
문맹률 |
1% |
평균 수명 |
남자: 77.51, 여자: 83.27 (2004.7) |
정치체제 |
연방공화제(Federal Republic, 26개 州 - Canton), 스위스식 회의체 / 의원내각제(Bicameral Federation Assembly-Parliamentary System) |
천연 자원 |
수력발전 잠재력, 암염, 목재 등 |
주요 산업 |
정밀기계,화학의약품,시계,광학의료기기 |
1인당 GDP |
US$ 43,000 (2003) |
화폐 |
스위스 프랑 (CHF) |
환율 |
1US$ = 1.22 CHF |
시차 |
GMT+1 (3월말 - 10월말 서머타임 적용시는 2시간) |
국가약호 |
CH |
국제전화코드 |
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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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형
스위스는 국토를 지형에 따라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쥐라산맥 지역, 중앙저지(스위스고원) 지역, 알프스산맥 지역의 3지역으로 나뉜다.
쥐라산맥은 남쪽의 알프스산맥에 비해 해발고도가 낮으며, 주로 중생대의 석회암으로 되어 있는 전형적인 습곡산지이다. 스위스 영내의 쥐라산맥 중 최고점은 1,679m로 비교적 낮은 해발고도이지만, 이 산지는 유럽 교통상의 일대 장해였다.
본래 쥐라산맥 지역은 농업과 임업이 활발한 지역이었는데, 겨울철의 노동력을 이용하여 시작된 시계공업이 지금은 스위스의 대표산업이 되었다.
북쪽의 쥐라와 남쪽의 알프스의 두 산지에 낀 중앙저지는 습곡작용을 그다지 받지 않은 곳이며 주로 제3기층으로 된 해발고도 300~800m의 완만한 구릉성 지역이다. 빙하퇴적물에 막혀서 형성된 레만·뇌샤텔·취리히 등의 대도시가 있고, 인구밀도가 높다.
중앙저지의 남쪽은 스위스 국토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알프스산맥 지역이다. 화강암·편마암 등의 결정질 암석으로 된 알프스산맥은 스위스·독일 국경의 보덴호(湖)로부터 그라우뷘덴주(州)의 슈플뤼겐 고개를 지나 이탈리아의 코모호(湖)에 이르는 구조선(構造線)에 의해 동서로 양분되며, 동(東)알프스에 비하여 서(西)알프스의 해발고도가 전반적으로 높고 산세도 험하다.
알프스는 론강(江) 및 라인강(江) 상류의 동서 방향으로 된 계곡에 의하여 당뒤미디(3,257m)·융프라우(4,158m)·핀스터아르호른(4,274m) 등을 포함한 북(北)알프스와 프랑스·이탈리아 국경에 있는 몽블랑(4,807m)·마터호른(4,478m)·몬테로사산(4,634m) 등을 포함한 남(南)알프스로 양분된다.
알프스는 유럽의 지붕이라고 일컬어지며, 여기서 발원한 라인강은 북해로, 론강은 지중해로, 인강(江)은 도나우강(江)에 유입하여 각각 흑해로 흘러든다. 스위스 국내에서는 라인강 수계의 유역면적이 국토의 68%를 차지하며 론강 수계의 18%가 그 뒤를 잇는다. 이 알프스산맥 지역에는 생고타르·그랑생베르나르·슈플뤼겐 등, 독일 및 이탈이아와 연결되는 고개가 있으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교통로의 역할을 해왔다. 현재는 생플롱·리켄·생고타르 등의 고개에는 터널이 뚫려 있고 철도가 지난다.
2. 기후
스위스의 기후는 국토가 좁은 데 비해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동서로 뻗은 알프스산맥 남쪽의 티치노주(州)는 비교적 온난한 지중해성기후의 영향을 받으나, 북쪽은 기온차가 적은 온난다우의 서안해양성기후와, 기온차가 큰 건조한 대륙성기후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변덕스러운 중간형 기후이다.
이처럼 3개의 기후형을 가진 스위스에서는 날씨 변화가 몹시 심하다. 스위스 북쪽에 저기압이 발생하여 알프스 양쪽에 극단의 기압차가 생기면 푄현상이 일어난다.
푄현상이 일어나면 알프스 북쪽에서는 기온이 급격히 상승하여 봄이나 여름이면 눈이 급속히 녹아버린다.
또 중앙지대에서는 푄이 심한 날이면 두통과 그 밖의 생리적 변조(變調)를 일으키는 사람이 많다. 강수량은 일반적으로 여름에 많으며, 강수량이 가장 많은 달과 가장 적은 달의 비율은 약 2:1이다. 연간강수량은 산지일수록 많은데, 가령 융프라우의 정상에서는 4,000mm 이상, 생고타르고개에서는 약 2,000mm이지만, 도시가 많은 중앙저지에서는 1,000mm 안팎이다.
기온은 알프스의 북쪽과 남쪽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다. 가령 알프스 북쪽의 중앙 저지에 있는 도시에서는 1월 평균기온이 영하인 곳이 많으며, 7월 평균기온도 20℃를 넘는 곳이 없다. 이에 비하여 남쪽의 루가노나 로카르노에서는 1월과 7월의 평균기온이 각각 2℃ 및 22℃ 안팎이다.
식생분포는 해발고도와 함께 변하는 기후조건에 따라 다르다. 즉 스위스의 식생은 기후와 마찬가지로 가지각색이며, 알프스 남부의 티치노주에서 알프스를 넘어 중앙저지에 이르기까지의 식생변화는 지중해 연안에서 북유럽에 이르기까지의 식물경관의 변화를 축소해놓은 느낌을 준다.
활엽수림대의 한계는 해발고도 약 1,000m로 한때는 떡갈나무가 많았으나 현재는 너도밤나무가 우세하며, 그 밖에 느릅나무, 단풍나무 등도 볼 수 있다. 침엽수림대의 한계는 약 2,200m로 전나무와 소나무가 주체이며, 삼림한계의 위쪽은 눈잣나무지대, 또 그 위쪽은 여름에 눈이 없을 때 초지를 이룬다. 또 알프스의 남쪽 가장자리 지대에서는 낙엽성 밤나무와 호랑가시나무 등의 경엽수를 볼 수 있다.
면적 |
41,286 ㎢ (한반도의 1/5, 남한 면적의 1/2 미만) |
국경 |
총 1,852km.오스트리아164km, 프랑스573km, 이탈리아 740km, 리히텐슈타인41km, 독일334km |
해안선 |
없음 (완전 내륙국가로 영해 없음) |
기후 |
스위스의 기후는 유럽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탓으로 서부 대서양, 동부대륙, 북부 극지 및 남부 지중해 등 유럽의 4대 기후의 영향을 골고루 받고 있음 |
천연자원 |
수력발전 잠재력, 암염, 목재 등 |
토지이용 |
산림(30.3%), 농경지(38.3%), 정착지(5.9%), 기타황무지(2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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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는 4개의 언어집단, 즉 독일어(알라만인의 언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로망슈어가 있다.
로망슈어는 라틴어와 이탈리아어가 혼합된 것으로 그라우뷘덴주(州)의 외딴 골짜기에서 로마시대부터 사용되어 왔으며 인구의 1% 정도가 이 언어를 쓴다. 이들 언어는 모두 공용어로 인정되어 있다(레토로망스어는 1938년에 인정됨).
스위스는 다민족 국가이지만 저마다 인접한 대민족과 결부하려는 '분리운동'이 전혀 없다. 독일어는 중앙부와 북부를 주체로 가장 넓은 지역에서 약 64%가 사용한다.
프랑스어는 프랑스와 가까운 서부 지방에서 인구의 약 20%가 사용하고, 이탈리아어는 남동부의 티치노주, 그라우뷘덴주에서 인구의 약 8%가 사용하고 있다. 독일어가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회화체의 스위스독일어는 독일에서 사용되는 독일어와는 다르며, 지방에 따라서도 천차만별이다. 단 문장으로 된 독일어는 스위스 전역 및 독일·오스트리아가 모두 같다.
스위스에 사는 사람들은 각 언어의 모국에 속한 사람들이며, 인종적·민족적으로 스위스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주체를 이루는 것은 켈트인의 한 파인 헬베티아인이며, 이들은 본래 라인강·마인강 유역에서 살다가 BC 400년경 침입하여 중부에 정착하였다.
BC 57년 이들은 J.카이사르에게 정복되어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으나, 455년에는 북부·동부에 게르만의 한 종족인 알라만인이 민족이동에 따라 침입해오고, 서부에는 로마화한 부르군트인이 침입·정착함으로써 로마의 지배는 끝났다.
5∼6세기에는 프랑크왕국의 영토가 되었으며, 나중에는 동(東)프랑크(신성로마제국) 왕국령이 되자 많은 독립영토로 세분화되었다. 원시 3주를 중심으로 스위스 연방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영역이 확대되었으며, 그곳에 살고 있는 독일인, 프랑스인, 이탈리아인 등이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인 구 |
745백만명 (2004.7) |
인구 성장률 |
0.27% (2001) |
출생률 |
9.83명/1000명 (2004) |
출산률 |
1.47/1천명 |
사망률 |
8.44명/1000명 (2004) |
주요민족 |
독일(65%), 프랑스(18%), 이탈리아(10%), 로망스(1%), 기타(6%) |
연령분포 |
0-14세: 16.8% / 15-64세: 67.9% / 65세이상: 15.3% (2004) |
평균 수명 |
남자: 77.51세 여자: 83.27세 (2004.7) |
종 교 |
로마카톨릭(46.1%), 개신교(40%), 기타(5%) |
주요언어 |
독일어, 불어, 이태리어가 사용되며, 각 언어 사용자들은 각 언어의 모국에 속한 사람들임. (독일어 65%, 프랑스어 18%, 이탈리아어 10%, 로만어 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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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대
스위스 땅에 인류가 살기 시작한 것은 후기 구석기시대부터이며, 알프스의 빙하지대에 있는 동굴과 바위에는 그들의 자취가 남아 있다.
신석기시대에는 취리히호(湖), 뇌샤텔호 등의 주변에 정착한 호상(湖上) 생활인이 있었으며, 그 항상(杭上) 가옥 유적이 1853년부터 발견되었다. 이들 취락은 그 후 청동기시대·철기시대까지 계속되며 후기 철기시대의 라텐기(期)는 뇌샤텔 호반의 지명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BC 5세기경 켈트인이 정착하였는데, 가장 강력한 헬베티족(族)은 스위스 서부를 차지하고 라인강 북쪽의 게르만인과 대립하였다.
이 부족명에서 스위스의 옛 이름 헬베티아가 생긴 것이다. 헬베티족은 BC 107년 로마의 집정관 카시우스의 군대를 격파하고, BC 59년에 론강을 따라 갈리아의 평원에 나가려 했으나 카이사르의 군대를 만나 패배한했다.
그 다음부터 급속히 로마화되었으며, 4세기에는 그리스도교가 전해졌다. 5세기의 민족 대이동 때에는 서부에 부르군트족, 동부에 알라만족이 정착하였으며, 부르군트족은 라틴화되고 알라만족은 게르만색이 강하여 언어의 경계가 형성되었다.
2. 중세
게르만인 중에서 프랑크족이 가장 강력한 왕국을 만들었으며, 5세기 말에는 스위스를 병합하였다. 그러나 게르만법에 의한 세습재산 분할제 때문에 국토의 분열과 항쟁이 끊이지 않았으며, 이에 따라 스위스도 분할되었다. 특히 우리 지방은 중유럽과 이탈리아를 잇는 가도에 해당되며 경제적·군사적 요지였기 때문에 남북에서 모두 이를 노렸다.
10세기부터 11세기에 걸쳐 신성로마제국의 일부가 되었으며, 우리 지방을 중심으로 한 구역은 황제직할지가 되었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제후의 세력이 크고 황제의 힘이 약했기 때문에 스위스 지역도 독자성을 지키고 자주정신이 강해졌다.
11세기 말부터 13세기 초까지는 체링가가 지배하였으나 그 후 합스부르크가(家)가 동스위스를 중심으로 세력을 얻어 차츰 압박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대공위시대(1256∼73)에는 자치의 자유를 얻었으나, 합스부르크가의 루돌프 1세가 황제가 되자 이 자치도 위태로워졌다.
3. 독립
1291년 신성로마제국의 루돌프 1세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스위스 지역의 우리·슈비츠의 공동자치체의 수장(首長)은 합스부르크가의 지배하에 들어간 운터발덴 지방의 수장과 만나 8월 1일 상호지지를 약속하는 영구동맹을 체결하였다.
이'원시 3주(또는 森林諸州)' 연합을 스위스의 기원으로 여겨 8월 1일을 국경일로 하며, 국명은 슈비츠에서 따왔다.
합스부르크가의 압제에 저항한 농민들의 활동은 후에 전설화되어 빌헬름 텔의 이야기가 되었으며, 이를 주제로 한 실러의 희곡으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에 대한 문제는 그 후에도 계속되었으며, 1315년에는 아인지델른의 수도원 보호를 구실로 침입해온 오스트리아군을 격파하여 3주의 결속을 강화하고 특권을 재확인하였다.
또한 이 때 제국 귀족의 기병대를 격파한 스위스 농민의 장창대(長槍隊)는 그 명성을 떨쳤다. 1322년 루체른, 1351년 상업도시인 취리히, 1352년 글라루스·추크, 1353년 베른이 포함되어 8주 동맹이 성립되었다.
그 후 슈바벤과 라인 지방의 도시들과도 연합하여 합스부르크가에 대항한 동맹은 옛 영토를 회복하려는 레오폴트 3세의 군대를 젬파하(루체른주)에서, 알브레히트 3세의 군대를 네펠스(글라루스주)에서 격파하고 독립적 지위를 확보하였다.
1474년부터는 부르고뉴의 샤를 호담공의 침입을 막은 스위스 민병은 프랑스 루이 11세의 용병이 되어 더욱 용맹을 떨쳤다. 그러나 8주 동맹은 본래 국가를 형성할 의도가 없었고 각 주는 저마다의 이익을 지키기에 급급했기 때문에 도시적 성격의 주와 농촌공동체적 주 사이에 대립이 일어나 굳건한 조직을 가질 수 없었다.
그리하여 부르고뉴에 대한 승리도 영예와 전리품 분배를 둘러싼 분쟁의 원인이 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합스부르크의 막시밀리안 1세가 황제가 되어 부국강병을 꾀하고 이탈리아 정책을 추진, 스위스를 압박하기 시작하자 각 주는 단결하여 과세·병역 및 제국법정의 승인을 거부하였다.
막시밀리안은 1499년에 스위스를 공격하여 슈바벤전쟁이 시작되었다. 스위스는 9개월도 안 되어 각지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며, 바젤화약의 결과에 따라 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4. 종교개혁
1481년 졸로투른과 프리부르를 참가시키고, 1501년 바젤과 샤프하우젠을 동맹원으로 만든 스위스는 장크트갈렌의 수도원령에서 해방된 아펜첼의 가입과 함께 13주 동맹이 되었다(1513).
당시는 이탈리아전쟁의 시대로 스위스는 루이 12세의 프랑스에 용병을 보냈으나(동부는 밀라노 쪽에 파병), 나중에는 교황 율리우스 2세 쪽에 접근하여 1512년에는 프랑스군을 북이탈리아에서 몰아내어 현재의 이탈리아 쪽으로 영토를 확장했다.
그러나 프랑수아 1세의 군대에 패배한 후부터는 프랑스가 용병 징모권(徵募權)을 쥐었다. 종교개혁 운동이 일어나자 취리히에서는 츠빙글리가 복음주의에 입각한 설교를 하기 시작했으며(1519), 용병제 배격, 우상폐지, 교회재산 매각에 의한 구빈법 실시 등 급진적 개혁이 이루어졌다.
이 움직임은 샤프하우젠·바젤·베른에도 미쳤으며, 신교의 8개주는 동맹하여 원시 3주를 비롯한 구교 여러 주와 대립하였다.
1528년 베른회의에서 각 주의 신앙의 자유가 일단 인정되었으나 2차례의 카펠전쟁 끝에 신교는 패배하고 츠빙글리도 전사하였다.
이 무렵 독자적인 발전을 해오던 서부의 제네바가 사보이가(家)의 압력에서 벗어나려고 스위스 연맹의 보호를 요청하였으며, 프리부르 및 베른과 조약을 맺었다. 그러나 신교사상이 급속히 퍼졌기 때문에 프리부르와는 단절하였으며, 베른의 원조하에서 1536년에 독립공화국이 되었다.
제네바는 이리하여 신교운동의 중심이 되었으며, 파렐과 칼뱅의 힘으로 개혁이 추진되어 신정정치(神政政治)의 도시가 되었다. 또한 베른은 보 지방을 얻어 강대해졌다.
17세기에도 2차례의 빌메르겐전쟁 등 종교상의 분쟁이 있었으나 파멸적인 종교전쟁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으며, 30년전쟁 때에도 중립을 지켰다. 내부 불화가 있으면 용병공급이 중단되기 때문에 프랑스도 스위스의 중립을 원했다.
때문에 시계(서부)·직물(동부) 등의 공업이 크게 일어났고 포도주와 밀도 수출되었으며, 조세도 가벼워서 각 주는 번영을 누렸다. 그리하여 1648년의 30년전쟁을 종결시킨 베스트팔렌조약에 의해서 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의 스위스 연맹의 독립을 열국(列國)으로부터 인정받았다.
5. 18세기
스위스 17~18세기에는 각 주마다 각종 정치제도가 있고 법률도 달랐으며, 중앙의 의회는 공동관리지의 행정과 외교문제를 다룰 뿐이었다. 평원의 신교 6개주는 산촌의 구교 7개주보다 수는 적었으나 공업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경제적·군사적으로는 우세했다.
신교와 구교는 각각 아르가우와 루체른에 독립된 의회를 가졌다. 경제적·문화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프랑스이다. 낭트칙령의 폐지(1685)로 많은 신교도가 스위스에 유입하였으며, 계몽주의가 보급되어 볼테르 등의 피난처가 되었다.
또 루소, J.네케르, 크라비에르 등의 사상가·재정가도 18세기에 배출되어 프랑스에서 활약하였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절대주의의 영향으로 과두정치가 행해지는 주도 있었으며, 보수적·폐쇄적인 특권 시민계급도 성립하였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나자 자유를 찾아 폭동을 일으키는 지방도 있었으나, 그 반면에는 스위스 병정이 해고되거나 학살당한 일 때문에 혁명에 반감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았다.
프랑스-오스트리아전쟁 중에는 중립을 지켰으나 바젤의 개혁자 페터 오크스와 파리의 망명 스위스인 클럽의 조직자 라 하르프 등이 집정관 정부에 출병을 요구했으며, 나폴레옹은 이를 이용하여 젝스·보 지방에 침입하고 밀라노 침입을 위한 길을 확보하였다.
프랑스군은 다시 베른에 진주하여 13주 연맹을 굴복시켰으며, 아르가우에서 헬베티아 공화국의 성립이 선언되었다(1798).
오크스는 프랑스식 공화국 헌법을 기초하였고, 제1회 입법회의도 열렸으나 1803년까지는 거의 무정부상태였다.
6. 19세기
나폴레옹은 1803년 파리에서 스위스와의 조정법(調停法)을 발표하였으며, 이것이 스위스의 헌장이 되었다. 이 때 새로이 6주를 더하여 19주가 되었으며, '슈비첼란트'라는 정식명칭도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또 각 주의 경계선도 정해지고 주 헌법의 우선도 인정되었으나 프랑스와의 군사협정에서는 병원(兵員)파견의 의무가 생겼다.
그러나 이 조정법도 나폴레옹이 라이프치히에서 패전한 후에는 폐지되었고(1813), 옛 정부가 부활하였으며, 대륙봉쇄령의 영향으로 원료가 들어오지 않아 실업상태였던 동부의 직물업도 다시 활기를 찾았다.
1815년에 개최된 빈회의에서 스위스는 영세중립을 인정받고 새로이 발레·뇌샤텔·제네바를 포함하여 22개주가 되었으며, 연방협약이 스위스의 기본법으로 선언되었다.
이에 따라 각 주는 평등해지고 귀족의 특권도 줄었으나 연방의회의 힘은 아직 미약했다. 보수적인 빈 체제에 대항하여 각국에서 자유주의 운동이 일어나자 스위스는 정치망명자의 피난처가 되었지만 스위스 내부에도 보수와 자유 간의 투쟁이 일어났다.
한편 기계의 도입으로 산업이 발달하고 금속공업이 발생하였으며 관광업도 시작되었다. 그 동안 통일정부를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졌으며, 진보적인 7개주와 반대파의 5개주 사이에는 지방전이 일어나기도 했다.
또한 종교문제가 얽혀서 1844년 카톨릭 7개주는 존더분트를 결성, 1847년 내전에 돌입하였으나 여러 자유주가 다수를 차지한 의회가 파병하여 카톨릭 세력을 격파하고 존더분트를 해산시켰다.
1848년 2월혁명의 영향 등으로 새 헌법이 채택되었으며, 그 때까지의 '수개국의 연맹' 형태에서 '연방제의 한 국가'로 바뀌었고 연방정부가 만들어졌다.
프로이센-프랑스전쟁(1870~71) 때에는 중립을 지켰으나, 열강의 재편성과 실업계의 복잡화에 따라 각 주의 서로 다른 법률과 군사제도를 통일해야 할 필요성이 생김에 따라 1874년 연방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헌법개정이 단행되었다.
또 수시로 국민투표를 하는 제도도 만들어졌으나, 국민은 보수적이어서 제안은 번번히 부결되는 일이 많았고 정치는 안정되었다.
7. 20세기
제1차 세계대전 때에도 중립을 지킨 스위스는 전후에 그 입장을 유지한 채로 국제연맹 가입이 승인되었으며, 국제연맹 본부도 제네바에 설치되었다. 그러나 스위스는 연맹의 '군사제재'에는 참가하지 않는다는 점을 에티오피아전쟁 때 표명하였으며, 1938년 국제연맹에서 사실상 탈퇴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의 국제연합에는 처음부터 참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국제적십자사 본부를 비롯하여 많은 국제기관의 중심이 스위스에 있으며, 전시(戰時)에는 교전 각국의 이익대표국이 되었고 전후에는 교전 각국의 국제회의의 무대가 되어 인도적인 역할을 다하고 있다.
1986년 국제연합에 가입하기 위해 국민투표에 부쳤으나 모든 주에서 부결되었다.
스위스는 연방공화국이며 23개의 칸톤(州:엄밀하게는 20개 주와 6개의 半州)으로 이루어져 있다. 연방공화국 헌법(1848년 재정, 1974년 5월 29일 개정)에 따라 각 주는 헌법에 규정된 바 외에는 완전한 주권을 가진다. 다만 연방으로부터의 탈퇴와 각 주 사이의 정치적 동맹은 금지되어 있다.
베른주 북부의 쥐라 지방은 1978년 9월 24일의 국민투표에 따라 베른주에서 분리하여, 쥐라주(23번째)가 되었다. 연방의회는 1995년 선거결과로 급진민주당(FDP) 62석, 사민당(SPS) 59석, 기독민주당(CVP) 50석, 인민당(SVP) 34석 기타 41석으로 이루어졌다.
입법권은 양원제의 연방의회에 있다. 국민의회(하원)는 정원 200명, 임기 4년의 비례대표제로, 직접 무기명투표에 의해 선출된다. 전주(全州) 의회(상원)는 정원 46명이며 각 주에서 2명씩 선출된다.
선출방법은 각 주의 규정에 따라 차이가 있다. 임기도 주에 따라 다른데, 장크트갈렌주는 1년, 오프발덴주, 글라루스주, 그라우뷘덴주는 3년, 그 밖의 주는 4년이다. 연방의회는 내각에 해당하는 연방평의회, 연방법원 판사, 비상사태 때의 국방군사령장관을 선출한다.
선거권은 20세 이상의 남자에게만 있었는데, 1970년 6월 연방하원에서 여성참정권을 헌법 74조의 개정으로 가결하고, 1971년 2월 남자만의 국민투표에서도 이를 가결하였다.
또 의회를 통과한 법률에 대해서는 90일 이내에 국민투표를 요구할 수 있으며, 5만 표 이상의 반대로 법률을 철회·수정할 수 있다.
행정권은 양원에서 선출된 임기 4년의 7명으로 이루어진 연방평의회가 가진다. 7명은 서로 다른 주에서 선출되어 외무, 내무, 경제, 사법·경찰, 군사, 재정·관세, 우편·철도 등 7부의 장이 되는데, 결정은 평의회에서 한다.
평의회 의장은 임기 1년이며 해마다 윤번제로 선출되는 연방대통령이 의장이 된다. 사법행정은 연방법원과 연방보험법원으로 갈라진다.
연방법원은 임기 6년의 판사(의회선출, 재선가능) 26∼28명으로 구성되고 로잔에 있으며, 연방보험법원은 건강보험·사고보험·군(軍)보험에 관한 소송을 취급하고 루체른에 있다.
주에는 독자적인 주법·정부·의회가 있는데, 몇몇 주에서는 란츠게마인데(주민집회)라고 하는 직접민주정치가 행해지며, 참정권을 가진 주민(州民)이 4월 마지막 일요일, 때로는 5월의 첫 일요일에 모여 주법을 표결하거나 주지사·주정부 각료 등을 거수로 선출한다. 주(칸톤) 밑에는 코뮨이 있으며, 그 구조는 주마다 다르다.
또 국민은 코뮨의 여러 결정에 참가할 의무가 있다. 스위스의 정치제도는 코뮨 및 칸톤의 자치를 첫째로 하고 그 위에 연방이 결성되어 있으므로 '밑에서 위로'의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1. 군사
스위스는 중립국이지만 무장중립의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지키기 위한 군대'를 두고 있다. 그러나 극소수의 교관을 제외하고는 상비군이나 직업군인은 없다. 남자는 모두 시민인 동시에 군인이며, 국민개병(國民皆兵:民兵制)제도를 취하고 있다.
20∼50세의 남자는 모두 병역의무가 있으며, 17주간의 기본훈련을 받은 후 현역(20∼32세)·예비역(33∼42세)·후비역(後備役:43∼50세)은 각 기간 중에 일정 기간의 재훈련을 받는다.
평시에는 해마다 약 30만 명이 군사훈련을 받고 있으며, 그 밖의 사람들은 생활에 종사한다. 그러나 군복·무기·탄약을 각자의 집에 상비하고, 언제든지 소집에 응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48시간 이내에 110만 명의 민병을 소집할 수가 있다.
편제별로는 기갑 1개 사단과 보병 2개 사단으로 구성된 야전군 3개 군단, 산악보병 2개 사단으로 구성된 산악군 1개 군단 등의 육군과 공군이 있다. 1960년 10월에 의회는 핵무장법안을 가결하였으나 1962년 4월의 국민투표에서는 이를 부결하였다.
그러나 1963년 5월의 국민투표에서는 핵무장 문제의 결정의 자유를 정부 측에 부여하였으며, 1963년 8월에는 핵실험 금지조약에 조인하였다.
국가성립 |
1291.8.1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帝國으로부터 독립)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에서 독립국가 로 인정. |
수 도 |
베른 (Bern) |
정 체 |
연방공화제(Federal Republic, 26개 州 - Canton), 스위스식 회의체, 스위스연방의 독특한 의원내각제 (Bicameral Federation Assembly-Parliamentary System) |
대통령 |
Joseph Deiss (2004.1.1 취임) |
의 회 |
양원제(칸톤대표회의 46명, 국민회의 200명) |
주요정당 |
사회민주당(SP), 급진민주당(FDP), 기독민주당(CVP), 자유민주당(LPS), 스위스국민당(SVP), 스위스녹색당(GPS), 자유당(FPS) |
참정권 |
보통, 직접선거로 현재 18세 이상 약 450만명의 유권자가 확보되어 있으며 여성참정권은 71년 6월 6일 국민투표로 처음 실시됨 |
법률 |
스위스연방의 법체계는 관습법의 영향을 받은 민법임 |
국제기구가입 |
1815년 비엔나회의에서 영세중립국을 승인받은 이후 전통적으로 실리적인 중립외교정책 고수 |
1. 경제개황
1) 주요 경제지표
구 분 |
2001 |
2002 |
2003 |
GDP(US$ 십억) |
250.2 |
274.7 |
318.5 |
1인당 GDP (US$) |
33.809 |
36.498 |
36.148 |
경제성장률(GDP기준, %) |
0.9 |
0.4 |
1.3 |
물가상승률(%) |
1.00 |
1.60 |
0.60 |
실업률 (%) |
1.9 |
2.7 |
3.1 |
실업자수 (천명) |
67 |
98 |
112 |
연간평균환율(CHF/US$) |
1.68 |
1.48 |
1.35 |
2) 경제현황
가. 경제개황
스위스는 국토가 좁은 데다 산이 많고 농지가 적으며, 이렇다 할 지하자원도 별로 없다. 그러나 국민총생산은 자본주의국가 중에서 상위 그룹에 속하며, 1인당 국민소득은 세계 최고에 속한다.
이러한 높은 생산력은 근면한 국민성과 과학에 뒷받침된 높은 기술수준, 알프스의 관광자원, 금융·무역에서 볼 수 있는 약소국 생활의 지혜, 중립정책에 따른 전시 낭비의 배제 등에 기인한다.
스위스의 무역은 수출의 신장 못지 않게 수입도 증대하기 때문에 무역수지는 적자 경향에 있다. 주요수출품은 기계금속제품·화학제품 등이며, 주요수입품은 농림산물·석유·기계 등으로 원자재와 식량을 수입하고 고도의 완성품을 수출하는 선진국형 무역으로 되어 있다.
무역상대국은 수출입 모두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이다. 스위스는 자유무역주의이기 때문에 관세율이 세계 최저에 속하며, 수입제한도 없고 통화·외환 등의 제한도 없다. 인구당 무역액이 많고 국내생산품의 1/3이 수출되는데 그 대부분이 가공품이다.
무역수지 적자는 관광·수송·해외투자이자 등의 수입으로 메울 수 있고, 또 외자(外資)가 대량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대폭적인 국제수지 흑자가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스위스프랑은 국제적으로 가장 안정된 통화 중의 하나로 되어 있다.
또 이에 따라 스위스는 세계금융·은행업에서 중심지가 되어 외국자본의 가장 안전한 피난처로서 신용을 얻고 있으며, 이들 외자를 대부(貸付)하여 이익을 올리고 있다.
국제결제은행의 본부가 바젤에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국민의 저축률도 높아 국민소득의 15%나 된다. 취업인구의 2/3 이상이 상업·은행업·보험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도 스위스 경제의 특색의 하나이다.
1934년 은행비밀법 제정으로 '눔버른 콘도'라는 비밀계좌제도를 운영해 막대한 수익을 올렸으나 부정자금의 온상으로 악용되자 1991년 익명예금계좌제도의 폐지와 1994년 보다 강력한 돈세탁 규제법안을 마련하였다.
대부분의 스위스인은 알프스 고지에서부터 쥐라산맥 가장자리의 급경사지에 이르는 산지 및 구릉지에 살고 있다. 이는 이 지역이 가장 비옥하고 기후도 온화하기 때문이며, 삼림·목초지·과수원·경지가 전개되고, 저지에는 옥수수·사탕무·담배·포도밭과 채소밭이 많다.
인구의 반 이상이 살고 있으며, 인구밀도도 100인/㎢ 이상인 미텔란트의 농업은 고도로 발전하여 생산성도 높다. 버터와 치즈 등의 낙농제품은 알프스의 목축을 배경으로 매우 활발하며, 특히 치즈는 고급품으로 외국에 다량으로 수출되고 있다.
석탄·석유는 산출되지 않으며, 광물도 암염(岩鹽) 이외는 장크트갈렌과 아르가우 지방에서 철·망간이 약간 산출될 뿐이다. 따라서 스위스의 공업은 중량물 제품이 아니라, 치즈·연유(煉乳) 등의 농산품 이외는 견제품(絹製品), 봉제품, 시계, 기계, 기구, 화학제품, 초콜릿 등의 고가품에 한정된다.
시계공업은 쥐라산맥의 골짜기에 있는 소도시에서 주로 이루어지며 생산규모는 작다. 빈터투어는 기계제조와 직물기계공업의 중심이며, 장크트갈렌은 직물공업의 중심지이다. 북부의 국경에 있는 바젤은 스위스 제일의 공업도시일 뿐만 아니라, 독일·프랑스를 포함한 오버라인 지방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라인 하항(河港)은 확장되었으며, 석탄석유, 철강 등의 중량물은 대부분 라인강을 이용하여 1,300t의 선박으로 바젤에 운반된다.
옛날에는 스위스의 알프스를 넘기가 매우 힘들었으나, 짐차·속달편·보행자 등이 알프스에 있는 여러 고개를 많이 이용했다.
그리하여 생베르나르고개의 숙박소는 연간 7,000~8,000명이 숙박하였다. 철도가 개통되자 고개의 교통은 한때 쇠퇴하였으나, 자동차 시대에 접어들자 다시 생베르나르고개, 생플롱고개, 생고타르고개, 푸르카고개, 슈플뤼겐고개 등을 다시 이용하게 되었다.
알프스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곳에는 터널이 만들어져 있는데, 생고타르터널은 길이 15km, 생플롱터널은 19.8km이며, 고개를 통행할 수 없는 겨울철에는 소형차를 열차에 싣고 알프스를 넘는 사람도 많다.
1931년에 창립된 반관반민의 스위스항공(SA)은 세계 각지에 항로를 확대하고 있으며, 주요 공항은 취리히·제네바·바젤 등에 있다. 1994년 2월 국민투표를 통해 주변국들의 알프스를 관통하는 화물수송을 10년 내 전면금지하고, 도로 신설을 금지하는 내용의 '알프스보호법'이 가결되었다.
알프스의 아름다운 경치에 끌려서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스위스를 찾는다. 대표적인 관광지로는 루체른호(湖)·브리엔츠호·마조르호·루가노호 등의 호수와 루체른·인터라켄·로잔·로카르노·루가노 등의 호반도시를 들 수 있다.
또 하나의 관광 중심은 산악으로 마터호른 산록의 체르마트, 엥가딘의 장크트모리츠, 다보스 등의 휴양지가 유명하다. 관광수입은 무역수지의 적자를 메우고, 경제를 윤택하게 해주므로 교통기관의 정비, 8,000개에 이르는 숙박시설, 400명을 넘는 가이드의 교육, 산막(山幕)의 정비 등에 주력하고 있다.
여름의 알피니스트와 관광객 뿐 만 아니라 동계(冬季) 스포츠를 위해서도 철도에서 분기하는 많은 등산철도와 리프트가 부설되어 있다.
나. 산업구조
스위스는 전형적인 경공업 위주의 서유럽식 혼합경제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시계산업과 같은 정밀기기제조는 세계적으로 뛰어나며 완제품 수출 의존도가 크고 고도의 산업화를 이루고 있다. 스위스는 농지가 적고 지하자원도 많지 않아 정치 및 지리적 이유로 금융·보험업과 관광업 등이 일찍부터 발달했다.
알프스라는 천혜의 자연경관과 유럽의 중앙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으로 관광산업은 스위스의 전통산업이라 할 수 있다. 관광객은 96년 한해 약 1,060만명을 기록하여 세계 15위의 관광객 유치국이다. 관광객 중 대부분이 유럽인들이며 그 중 1/3이 독일인이다.
관광산업은 스위스에서 금속기계, 화학에 이은 세번째의 주요 산업이며 전 인구의 약 1/6이 직간접적으로 관광업에 종사하고 있다.
산업구조 특징
2001년 스위스의 취업인구는 3,974천명으로 이 중 약 2/3이상이 3차 산업(무역, 관광, 은행, 보험 등)에 종사하고 있으며 1차 산업(농업)과 2차 산업(공업)의 취업인구는 각각 4.2%, 26.1%를 점한다. 스위스는 국토가 협소하고 천연자원이 빈곤하여 일찍부터 은행 및 관광 등 서비스 산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스위스는 전형적인 경공업 위주의 서유럽식 혼합경제 산업구조를 이루고 있다. 시계산업과 같은 정밀기기제조가 세계적으로 뛰어나며 완제품 수출의존도가 크고 고도의 산업화를 이루고 있다.
주요 산업부분
° 농업 : 경작지가 전국토의 1/4 미만인 관계로 농업인구는 감소추세에 있다. 농업부분의 생산량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는 가공식품 산업으로 초콜릿, 치즈 및 유아식품 등이 4/5를 점하고 있다. 농산물 소비에서도 치즈와 우유 및 버터 등 가공식품이 최다 비중을 차지하며, 농산물 자금율은 50% 가량이다.
° 제조업 : 과학기술수준이 높아 고부가가치의 기계수출이 세계 3위 수준으로 정밀기계, 금속가공기계, 발전 및 선박용 터어빈, 인쇄기기, 사진재료, 전자제품 및 의료기기 제조 부분이 우수함. 그 외에는 광학기기, 발전설비, 환경보전설비 및 정밀측정기기의 제조도 뛰어나다.
또한, 노동력의 10%를 보유하고 있는 화학산업은 개발비용의 꾸준한 투자로 안정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기계제조업은 세계 최첨단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스위스 실질 순생산의 6.1%를 차지하고 있고 해외수출도 많은 양을 차지한다.
° 시계산업 : 16세기말 종교박해를 피해 프랑스에서 이주해온 위그노(Huguenot) 교도들이 스위스 시계산업을 발전시켰으며, 스위스 시계는 품질의 우수성으로 인해 전세계 고급시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연간 약 1억 개의 시계를 생산하며 총생산 중 95%를 수출하고 있으며 세계시장의 13%를 점유한다. 특히 아시아시장이 세계시장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2001년 시계수출액은 106.5억 프랑(US$ 64.5억 상당)이다.
° 금속가공, 섬유, 의류산업 등은 고용 및 채산성에서 악화추세이다.
° 금융?보험업 : 스위스은행의 신중성과 철저한 고객비밀보장은 많은 예금을 유치하여 전통적으로 금융산업을 발달시킬 수 있었던 요인으로 스위스 국내 총생산액의 9.7%룰 차지하는 중심적 위치에 있다.
1933년 은행비밀 법이 제정되어 [놈머른 콘도]라는 비밀계좌제도의 시행으로 고객에 대한 비밀보장은 매우 엄격하나, 자금이 범죄 또는 테러 등과 관련이 있는 경우 구좌의 동결조치 등이 가능하다.
° 관광업 : 알프스라는 천혜의 자연경관과 유럽의 중앙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으로 관광산업은 전통적으로 강함. 2000년도 관광수입은 227억 프랑(US$ 134.3억 상담)으로 관광산업은 스위스에서 금속, 기계, 화학에 이은 세 번째의 주요 산업이며 전 인구의 10~15%가 직간접적으로 관광에 종사하고 있다.
° 통신부문 : 스위스에는 최근 모바일폰의 급속한 보급으로 인해 일반 전화보다 모바일폰이 더 많다.(2000년 말) ° ° °
다. 수출입 현황
스위스는 세계에서 1인당 무역액이 가장 높은 3대 국가인 벨기에, 스위스, 네덜란드 중 하나이다. 벨기에와 네덜란드가 지리적 호조건과 상업적 노하우를 기반으로 성장한 무역대국이라면 스위스는 철저한 기술 우위로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대외무역 의존도는 60%에 달하고 있으며 에너지 및 공업용원자재를 수입하여 고부가가치 공산품을 수출하는 무역구조를 가지고 있다. 스위스 총생산 중 시계산업의 수출비중이 93%, 의약품 및 화학제품은 85%로서 수출의존도가 가장 크며 은행업도 33%에 달한다.
기계, 시계, 의약품 등이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동안 무역흑자국이었으나 최근 가격경쟁력 약화 등 경제사정의 악화로 적자로 돌아선 상태이다. 유럽의 경제부국으로 그 동안 흑자국이었으나 높은 실업률과 경기 침체로 최근 적자를 보이고 있다.
비EU회원국이나 스위스 수출의 약 70%, 수입의 약 57% 가량을 EU에 의존하고 있으며 교역 상대국은 독일이 22%로 단연 1위를 점하고 있고 프랑스 10%, 이탈리아 9%, 영국이 6% 등을 차지하고 있다.
- 수출입 현황
- |
1999 |
2000 |
2001 |
2002 |
2003 |
수출 |
1,841 |
516 |
432 |
449 |
433 |
수입 |
1,146 |
975 |
850 |
1,001 |
1,442 |
- 주요수출품목 : 정밀기계,화학의약품,시계,광학의료기기 - 주요수입품목 : 자동차,전기전자,의류 등 소비재
3) 경제정책
가. 통화정책 : 물가안정이 유일한 최종목표(목표 인플레이션율 : 0%)
나. 재정정책 스위스연방의 예산책정은 사회보장 및 교육 분야의 지출이 가장 많아 전형적인 선진복지국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국방비는 연방정부가 대부분 부담하고 사법 및 경찰과 보건 등의 분야는 주정부의 부담 비중이 크다.
90년대초부터 공공예산은 높은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데, 그 결과 이자 지급을 위한 지출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이 부문의 부채는 더 늘어날 전망이며, 장기간의 균형 예산을 위한 저축액이 부족해질 전망이며 이를 위해 연방정부는 다양한 경기부양책을 구상하고 있다.
다. 무역정책
스위스는 대외무역 의존도가 높아 개방무역정책을 채택하고 있으며 공산품의 경우 신발, 의류 분야와 국가안보 및 보건,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일부 제품을 제외하고는 세계최고 수준의 수입자유화 정책을 견지하고 있다.
스위스는 개도국에 대한 일반특혜관세를 72년 3월에 도입한 후 81년부터 92년 2월 29일까지 10년간 연장하였으며 92년에는 다시 97년 2월까지 5년간 연장한 바 있다.
라. 환경정책
95년 연방의회는 3-4천개의 위험물 폐기처리장소 확보를 위한 SFR 50억 상당의 특별세를 신설하고 화학폐기물에 대한 환경세 부과와 쓰레기 재활용 등의 내용을 담은 환경에 대한 개정법안을 승인하였다.
95년 6월 1일 스위스 연방각의는 유엔기후변화 기본협약에 따라 선진국에 요구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90년 수준으로 동결하기 위해 추진해오던 탄소세의 도입을 포기한 바 있다. 96년 1월 1일부터는 냉장고의 오존층 파괴 물질인 프레온가스의 사용을 금지하였다.
2. 투자환경 및 제도
1) 투자환경
스위스는 고물가, 고인건비지역으로서 일반 제조업 분야의 투자는 경제성 측면에서 실익이 별로 없는 것이 사실이다.
스위스의 첨단기술이나 숙련된 노동력을 이용한 고부가 가치제품을 생산할 목적이라면 스위스가 적격 투자진출대상지역이나, 첨단기술이 필요치 않는 일반 소비재의 경우에는 높은 생산코스트 문제가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높은 생산코스트 문제 해결을 위해 스위스 내에서 제조활동을 하고 있었던 스위스 기업들 조차 저렴한 인건비를 활용하기 위해 생산기반을 동구지역 등으로 이미 이전한 상태이다.
우리나라 기업중 제조업분야에는 시계 및 제약분야가 투자 진출해 있으며, 시계의 경우 스위스산을 최고로 간주하는 소비자들의 구매 심리를 겨냥하여 부품을 국내에서 들여와 스위스에서 국내산 부품과 스위스산 무브먼트를 결합하여 "Made in Switzerland"로 원산지표기후 세계시장에 수출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
2) 기본정책
스위스 정부는 외국의 금융자본 및 산업자본의 대스위스 유치를 위하여 다각적인 노력과 제도적인 뒷받침을 하고 있으며, 민간베이스로 투자유치가 이루어질 경우 연방정부 및 지방자치 정부는 투자유치 성약을 위해 최우선적으로 이를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분야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규제도 없이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에 대해서는 투자주체의 이윤동기 및 자기 책임하에 투자가 이루어지도록 주변 투자여건 및 제도정비에 주력하고 있으며, 연방정부차원에서는 별도의 직접적인 인센티브나 투자유치제도는 두지 않고 있다.
그러나, 연방정부 차원이 아닌 일부 칸톤주정부 차원에서 외국 투자유치를 위한 일정기간 기업소득세 감면 등 인센티브 공여와 공장부지의 저가공급, 금융알선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스위스정부는 지금까지 외국인 투자자들에 대한 장애요인으로 작용하였던 외국인 투자자들의 토지매입 허가제를 '97.10.1일부터 폐지하여 생산, 영업 및 서비스 업무용도로 구입하는 토지는 제한을 두지않고 있다.
3) 외국인 투자규모
스위스에 대한 외국인투자는 스위스의 92년 12월 EEA가입이 무산된 이후 SFR 1억2천3백만 가량이 감소되었으나 94년에 다시 SFR 45억 수준으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98년 8월 발표된 스위스 국립은행 통계월보에 따르면 96년 對스위스 직접투자액은 34억 5,700만 프랑으로 전년비 31.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 은행은 그 대부분이 이익의 재투자분이라고 분석하였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EU로부터의 투자가 11% 감소한 22억 3,600만 프랑이고 이중 독일로부터의 투자는 산도스사의 건설화학부문 및 BASF사로의 농업부문 일부 매각 등으로 대폭 증가한 반면, 95년에 전년비 4배 이상 증가했던 네덜란드로부터의 투자는 94년 수준 이하로 격감하였다.
한편, 제약부문에서 미국의 막스터사의 매수가 있었던 북미의 투자액은 전년비 3배 증가한 11억 2,100만 프랑까지 증가하였다.
스위스의 사회는 자유와 보수(保守)라는 두 요소가 특색이다. 계급적인 차별은 적으나 동업조합(同業組合)과 코뮨(공동체적 지역사회)을 중심으로 단단히 결합되어 있다.
이를 위하여 일찍부터 사회보장이 정비되어 있으며, 1911년에는 상해·질병에 대한 연방사회보험법이 제정되어 국민개보험(國民皆保險)이 실시되었다.
1947년 7월에는 노년·과부 보험이 제정되어 1948년 1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또 1951년에는 실업보험법이 연방법으로(사적·공적 보험도 포함) 정해졌다.
민병으로서 군복무를 위해 이직하는 경우에도 보상을 받는다. 연방헌법은 통일 스위스교회의 설립을 금지하고 신앙과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1994년 프로테스탄트가 44.3%, 카톨릭이 47.9%, 기타(유대교 등)가 7.8%였고 분포지역은 언어의 경우만큼 뚜렷하지는 않다.
국경일로서는 8월 1일의 독립기념일이 있는데, 이 날은 부근의 가장 높은 산에서 화톳불을 피우고 남녀노소가 연방이나 주의 마크가 든 지등(紙燈)을 들고 행렬을 지으며, 기념강연·예배·합창 등을 한다. 3대축제로는 제네바의 사보이공(公)에 대한 승리(1602년)의 축제, 바젤의 카니발, 취리히의 봄을 알리는 길드제(祭)가 있다.
그 밖에 가을의 포도 수확제, 산지의 목장에서 소가 하산해 온 것을 축하하는 축제, 사격동맹제 등이 있다.
- 교육 루소와 페스탈로치를 낳은 스위스의 국민교육 수준은 매우 높지만 교육제도는 나라의 정치기구가 분권연방적인 것처럼 주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1848년 이전에 이미 초등교육제도가 정비되었고, 1874년에는 의무교육제도가 확립되었다.
6, 3, 3이 기본적인 수업연한이지만 주에 따라 다르며, 수업개시 시기와 취학연령에도 차이가 있다. 독일어계 지역의 학교는 프랑스어·이탈리아어, 프랑스어계 지역에서는 독일어·이탈리아어를 가르치는 등 초등학교 때부터 4개의 공용어를 위한 어학교육에는 각별한 노력을 기울인다.
대학으로는 7개의 주립대학(바젤·베른·프리부르·제네바·로잔·뇌샤텔·취리히) 이 외에 연방공과대학(취리히)과 상과대학(장크트갈렌)이 있으며, 학생의 약 1/3이 외국인인 것도 특색이다.
스위스는 유럽 대륙의 중앙에 있기 때문에 외국 문화가 끊임없이 유입되고, 3대문화권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어 다채로운 문화가 형성되었다.
또 스위스는 종교개혁·프랑스혁명·나폴레옹전쟁 등과 같은 동란의 시기에 자유와 양식(良識)의 도피처로서 창조적인 인물들을 숨겨주었으며,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도 이러한 문화적 역할에는 변함이 없었다.
에라스무스는 바젤에 거주하였고 릴케는 스위스 남부에 살았으며, 나치스에 쫓긴 아인슈타인은 연방공과대학에 적을 두었고 T.만도 만년에는 스위스에서 지냈다.
제1회 노벨 평화상수상자 앙리 뒤낭(1828∼1910)은 국제적십자의 창설자이며, 3대에 걸쳐 8명의 수학자를 낸 바젤의 베르누이가(家)의 수학과, L.오일러(1707∼83)의 광학·기계학·항해술은 오늘날 공업국의 기초가 되었다.
인문·사회과학 방면에서는 E.파텔(1714∼67)이 국제법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문화사가이며 미술사가인 J.부르크하르트(1818∼97)는 《이탈리아 문예부흥기의 문화》 《그리스 문화사》 등의 저작으로 유명하다.
또 《푸른 하인리히》의 저자 G.켈러(1819∼90), 《올림포스의 봄》 등의 서사시를 쓴 K.슈피텔러(1845∼1924), 《하이디》(알프스 소녀)로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여류작가 J.슈피리(1827∼1901) 등이 유명하다.
출판업의 역사는 오래 되었으며 바젤의 슈바프는 1464년에 창설되었다. 스위스의 출판은 특히 학술·미술·과학서적에서 뛰어나다.
신문은 118종이 발행되고 있는데, 250만 부로 적은 편이며 주내(州內)에만 배부될 정도의 지방지들이다. 중립을 지키는 민주주의의 나라이니만큼 기사의 공평성과 논설의 정당성에는 정평이 있으며, 특히 취리히의 《노이에 취리히 차이퉁》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신문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방송은 독일어·프랑스어·이탈리아어의 3개 국립방송국이 있고, 레토로망스어 방송도 독일어 방송국에서 하고 있다. 다만 상업방송은 없다.
한국과 스위스는 1962년 3월에 외교관계 수립에 합의하였으며, 양국간 무역증진과 유대강화를 위해 1971년에 ERPI 투자촉진 및 보장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였다. 이어 1975년 항공협정, 1977년 공업소유권협정, 1979년 사증면제협정, 1981년 이중과세방지협정을 체결 하였다.
1990년 정기항공운항에 관한 협정 부속서 개정, 1999년 한·스 무역경제협력협정 가서명 하였다. 1979년에 열린 스위스 기술 세미나 '스위텍 79'는 한국·스위스 양국의 교역증진 및 기술발전에 크게 기여하였고, 1980년의 스위스 기술박람회 '스위스코어 80' 또한 양국간의 경제협력에 큰 계기가 되었다.
1980년 5월 29일에는 제2차 한국·스위스 경제협력위원회의 합동회의가 열려 재정 및 기술협력문제, 기술이전센터의 설치문제, 양국간무역확대 및 제3국 공동진출 문제 등을 협의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1989년 노태우 대통령이 스위스를 방문하였다.
1999년 한덕수 통상교섭본부장이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 참석하기위해 방문 하였고 파스칼 코쉐핀 경제부 장관이 스위스 민,관 경제 사절단과 방한 하였다. 주요 수출품은 귀금속, 디지털 직접회로, 의약품 등이며, 수입품은 귀금속, 승용차 등이다. 현재 교민수는 1,500명이고 체류자는 1,060명이다.
1. 정치 외교 관계
1962.12. |
외교관계수립 (북한은 74. 12 수교) |
1963.3. |
베른에 상주공관 설치 |
1964.6. |
서울에 주한 스위스 상주대사관 설치 |
1971.4. |
투자보장협정 체결 |
1981.4. |
이중과세방지협정 체결 |
1986.4. |
전두환 대통령 방문 |
1986.9. |
Delamuraz 부통령 방한 |
1989.11. |
노태우 대통령 방문 |
1990.7. |
강영훈 국무총리 방문 |
1996.7. |
Koller 부통령 방한 |
1996.12. |
국가 과학기술 대통령문 자문위원회 한영상 위원장 방문 |
1997.3. |
국회 국제경기지원 특별위원회 (김진재) 방문, 스위스 국방참모총장 Arthur LIENER 중장 방한 |
1997.4. |
제 97차 IPU 총회 참석의원단 방한 |
1997.11. |
BLANKART 스위스 경제부 부장관 방한, 이부식 과학기술부 차관 방문 |
1998.10. |
Adolf Ogi 국방 체육부 장관 방한 |
1999.1. |
한덕수 통상교섭본부장 스위스 방문 |
1999.2. |
스위스 민·관 경제사절단 방한, 한·서 무역경제협력협정 가서명 |
2003.5 |
박호군 과기부장관 방문(제4차 한-스위스 과학기술 라운드테이블) |
2003.11 |
Joseph Deiss 경제부장관 공식방한 (스위스 민간 경제인대표단 대동) |
2. 경제관계
▶한국의 대스위스 수출입 통계 (단위 : 천불, ()는 동기증가율 : %)
년도 |
수출 |
수입 |
무역수지 |
1993 |
207,063(-15.0) |
607,636(-9.0) |
-400,573 |
1994 |
225,086(9.0) |
867,938(43.0) |
-642,852 |
1995 |
368,609(64.0) |
1,471,632(70.0) |
-1,103,023 |
1996 |
643,118(74.0) |
2,251,930(53.0) |
-1,608,811 |
1997 |
2,077,974(223.0) |
2,322,765(3.0) |
-244,791 |
1998 |
4,832,429(133.0) |
1,523,073(-34.0) |
3,309,356 |
1999 |
1,840,722(-62.0) |
1,145,658(-25.0) |
695,064 |
2000 |
515,843(-72.0) |
975,474(-14.9) |
-459,631 |
2001 |
431,876(-16.3) |
850,049(-12.9) |
-418,173 |
2002 |
448,641(4.0) |
1,001,207(18.0) |
-552,567 |
2003 |
433,246(-3.0) |
1,442,102(44.0) |
-1,008,856 |
2004.1-07 |
285,553(-6.0) |
762,769(-15.0) |
-477,216 |
3. 투자관계
우리나라의 대스위스 투자는 2002년 12월 기준 총 9건 22,308천달러에 불과한 실정이며, 향후에도 스위스의 높은 생산비용, 까다로운 고용조건등을 고려할 때 대규모의 제조업투자는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나, 높은 인건비가 크게 문제되지 않는 의약, 시계, 금융서비스 등 고부가가치 분야에 대해서는 스위스의 경쟁력을 활용키 위해 외국기업의 대스위스 직접투자진출이 활발한 편이다.
이에 반해 스위스의 주요 다국적 기업들은 이미 한국에 진출해 있는 상태이고 최근에 들어서는 주요 제조업분야의 투자진출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특히, IMF를 계기로 한국정부의 적극적인 외국인 투자유치 정책 및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 등이 스위스기업의 대한국 투자진출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여 한국의 질 높은 생산력과 생산기반을 활용하기 위한 스위스기업의 투자진출확대가 예상되고 있다.
스위스의 대한투자는 2004년 4월기준 총 US$ 988백만에 달하고 있으며, 스위스의 주요 다국적 기업들은 Nestle(식품), Novartis(의약), Clariant(특수화학), ABB(중전기기), M.Dohmen SA(화학), Balsers(자동차 부품)등을 필두로 이미 한국에 진출해 있는 상태이고 최근 들어서는 주요 제조업분야의 투자진출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
구분 |
2000 |
2001 |
2002 |
2003 |
2004(1-8월) |
투자금액 |
25 |
46 |
31 |
21 |
37.4 |
증감율(%) |
-82.1 |
84.0 |
-32.6 |
-32.3 |
- |
자료 : KISC 투자동향 통계 2004.12월 (INVEST KOREA) |
4. 현안사항
스위스는 한국을 경제기술협력 및 교역대상국으로서 서로 상호 신뢰할 수 있는 동반자로서 간주하고 있어 현재 양국간 특별한 현안사항은 없다.
참조:http://country.korcham.net/europe/switzerla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