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시인의 에대한 퍼온글입니다 느낌 0
I. 들어가며
1. 박노해를 택한 이유
2. 그의 삶과 시
//작품의 흐름
1. 노동문학의 포문 - 첫 시집 '노동의 새벽'
2. 88년~89년 발표시와산문집'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3. 옥중 시집 '참된 시작'과 구속 후 작품들을 중심으로
III. 나오며
1. 패배를 인정하는 용기있는 시인 혁명가 박노해
2. 참고자료
I. 들 어 가 며
1. 박노해를 택한 이유
" 역시 박노해야!" 그의 시를 아끼고 그의 삶을 아끼는 많은 사람들은 그의
시가 발표될 때마다 감탄을 한다. 이는 우리 노동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공개
해 파문을 일으킨 80년대 초의 시인 박노해, 반국가단체의 우두머리로 밝혀져
정부와의 끈질긴 숨박꼭질을 하던 80년대말의 혁명가 박기평, 구속 후 감옥살
이를 하며 자신의 패배를 뼈 아프게 고백하는 재소자 박노해, 패배를 딛고 다
시 서려는 인간 박노해의 굽이치는 삶에 대한 애정어린 찬사이다.
그러나 박노해는 시를 쓰지 않았다. 박노해는 노래를 부르지도 않았다. 박노
해의 삶은 그 자체가 이미 시이며 그의 말은 시가 되어 버린다. 그는 그만큼
자신의 삶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이야기 해 왔다. 그런 그는 영웅적인 혁명
가도 뛰어난 문학가도 아니다. 그는 힘겨운 시대를 살아가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 나갈 줄 아는 한 노동자일 뿐이었다. 그가 그러하기에 사람들은 박노
해를 아낀다. 나 또한 그런 그를 사랑한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박노해는 역시 시를 사랑하는 시인이라고.
보고서를 준비하며 꾸며진 박노해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박노해를 다시 볼
수 있게 되어 무한한 행복을 느꼈다.
2. 그의 삶과 시
박노해의 삶과 시는 절대 떼어놓을 수 없다. 선택 이유에서도 언급했듯이 박
노해는 시를 통해 자신의 삶을 그대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작
가나 마찬가지이겠지만 그 또한 작품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그의 삶을
미리 쫓지 않으면 안된다. 이에 그의 살아온 길과 작품 활동의 연대기를 정리
해 본다.
박노해(박기평)는 1957년 11월 전남 고흥의 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15세때 상경해 1977년 2월 선린상고 야간부를 졸업하고 2년뒤인 79년 서울 화
양동 감리교회에서 야학을 개설해 노동자를 가르치며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82년 현부인인 김진주와 결혼하고, 같은 해 버스 운전기사로 (주) 안남운수에
취직해 사내에 기사들의 모임인 '영차회'를 만들어 파업을 주동했다가 85년
11월에 해고되었다.
해고 이후 1983년 '시와 경제'(제 2집)에 '시다의 꿈' 등 6편의 시를 '박해
받는 노동자 해방'을 줄인 '박노해'라는 이름으로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
작했다. 84년 첫 시집 '노동의 새벽'(도서출판 풀빛)을 출간해 문단과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1985년부터 서울 노동자 연합(서노련) 구로지역책과 중앙위원을 지낼 때
'시인 박노해'에 대한 경찰의 수배령이 내려 졌다. 서노련 해산 후 87년 8월
부터 '노동자 해방 동맹'을 결성해 중앙위원 겸 편집국장으로 활동했다.
1988년 실천문학사에서 수여하는 '제 1회 노동문학상'을 받았다. 89년 11월
부터 '남한 사회주의 노동자 동맹'(사노맹) 중앙상임위원 및 편집책으로 활동
하며,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산문집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를 비판하는
산문집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노동문학사.1989)를 출간해 또 한번
사회의 시선을 끌었다. 또 같은 해 창간된 월간 '노동해방문학'지에 시와 '노
태우, 당신의 위장된 가면을 벗긴다.'등 정권을 비판하는 글을 기고하다가 정
부의 집중 수배를 받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박노해에 대한 무수한 말들이 나
돌기 시작했는데 그 중 가장 세인들의 관심을 끈 것은 박노해는 실재 인물이
아니며 그가 쓴 시들은 어떤 특정 문예집단의 공동 창작물이라는 소문이었다.
그만큼 그는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 비밀의 베일도 안기부의 철저
한 추적 끝에 벗겨져 1991년 3월 박노해는 '반국가단체의 괴수 박기평'으로
알려지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안기부 수사관들에게 연행 . 구속되었다. 구
속 후 미래사에서 선정한 '한국대표시인 100인'에 속해 91년 10월 시선집 '머
리띠를 묶으며'(미래사)가 간행되었다.
1993년 옥중에서 심경의 변화를 겪으며 쓴 시들을 엮은 두번째 시집 '참된
시작'(창작과 비평사)이 간행되었으며, 그 이후 96년 계간 '창작과 비평'봄호
에 5편의 옥중시를 발표했다.
현재 그는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경주교도소에 복역 중이다.
II. 작품의 흐름
1. 노동문학의 포문 - 첫 시집 '노동의 새벽'
사실 박노해의 이 시집 이전부터 노동자의 현실을 지적한 문학활동은 있어
왔다. 70년대 중반 유동우의 수기 '어느 돌멩이의 외침'과 80년대 초반 '우리
들 비록 가진것은 적어도' , '모퉁이의 돌' 등 노동자들의 시, 수필, 르포,
마당극 대본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문학적 완성도를 널리 인정받지
못한 한계를 지녔다. 그러나 '노동의 새벽'에 실린 시들은 그 이전의 민중시
들이 보여 주지 못했던 예술적 강점을 노동자의 눈에 접목시킴으로써 민중 문
학의 새로운 국면을 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럼 대표적인 시들을 골라 분석하며 시집의 전체 흐름을 짚어 본다.
하루 14시간
손발이 퉁퉁 붓도록
유명브렌드 비싼 옷을 만들어도
고급 오디오 조립을 해도
우리 몫은 없어,
우리 손으로 만들고도 엄두도 못내
가리봉 시장으로 몰려와
하청공장에서 막 뽑아낸 싸구려 상품을
눈부시게 구경하며
이번 달엔 큰맘 먹고 물색 원피스나
한 벌 사야겠다고 다짐을 한다
- '가리봉 시장' 중 -
긴 공장의 밤
시린 어깨 위로
피로가 한파처럼 몰려온다
드르륵 득득
미싱을 타고, 꿈결 같은 미싱을 타고
두 알의 타이밍으로 철야를 버티는
시다의 언 손으로
장미빛 꿈을 잘라
이룰 수 없는 헛된 꿈을 싹뚝 잘라
피 흐르는 가죽본을 미싱대에 올린다
끝도 없이 올린다
- '시다의 꿈' 중 -
위에서 인용한 시는 열악한 작업환경과 장시간 노동, 노동소외라는 노동자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거대한 자본의 끝없는 이윤추구와 사회구조안
에서 스스로 단결조차 되지 않은 80년대 초의 노동자들은 애초부터 싸움자체
를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 일하다 보면 언제 손목이
날아갈지도 모르고('손무덤'), 폐가 콜콜거리는 ('어쩔 수 없지') '시커먼 무
우짠지'('졸음')가 되어 버린다. 또 전세값과 공공요금 고지서는 무거워지고
아내의 시장바구니는 날로 가벼워져도('모를 이야기들')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소주를 마시던가('포장마차') 고고장에나 가서 한판 신나게 흔들어
('어디로 갈꺼나') 순간적으로나마 절망적인 현실을 잊으려 들 뿐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이러한 절망의 현실에 슬퍼만 하고 있지 않는다.
이 땅에 노동자로 태어나서
생각도 못하고 사는 놈은 죽은 송장이여
말도 못하고 사는 놈은 썩은 괴기여
테레비만 좋아라 믿는 놈은 얼빠진 놈
이빨만 까는 놈은 좆도 헛물
실천하는 사람,
동료들 속에서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노동자만이
진실로 인간이제
진짜 노동자이제
- '진짜 노동자' 중 -
이들은 뼈저린 각성으로 자신들의 절망의 이유를 알게 되고 마땅히 찾아야
할 우리것을 위해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노동자('진짜노동자''허깨비')가
되어 노조를 결성하고, '노조를 포기하라고 / 개새끼들, 불순분자라고 / 길길
이 날뛰는'('대결') 자본가에 맞서 숙명적인 대결로 들어간다. 그러나 결국
이 대결은 해고와 짓밟힘, 즉 노동자의 패배로 끝난다.
하얀 꽃송이 촘촘한
백상여 무거워
허청허청 울며 절며
나는 떠나네
어야디이야
- '떠나가는 노래' 중 -
김형은 체불임금 요구하며 농성중에
사장놈 멱살 흔들다 고발되어 잡혀오고
열다섯 난 송군은 노가다 일나간
어머니 마중길에 불량배로 몰려 끌려오고
.... (중 략) .....
민주노조를 몸부림치다
개처럼 끌려온 불순분자 이군은
퉁퉁 부은 다리를 절뚝이며
아버지뻘의 노약한 문노인을 돌봐 주다
야전삽에 찍혀 나가 떨어지고
너무한다며 대들던 제강공장 김형도
개머리판에 작살나 앰블런스에 실려 나간다
잔업 끝난 퇴근길에 팔뚝에 새겨진 문신 하나로 잡혀와
가슴 조이며 기다릴 눈매 선선한 동거하던 약혼녀를 자랑하며
꼭 살아 나가야 한다고 울먹이던 심형은
끝내 차디차게 식어 버리고
일제시대 징용도 이보단 덜했다며
손주같은 군인들에게 얻어맞던 육십고개 송노인도
홧통에 부들부들 뻗어 버리고
아무죄도 없이 전과자라는 이유로 끌려왔다며
고래고래 악쓰던 사십줄 최씨는
끝내 탈영하여 백골봉에 올라
포위한 군인들과 대치하다가
분노의 폭발음으로 터져 날아가 버린다
- '삼청교육대 I' 중 -
그러나 이것은 완전한 패배가 아니다. 비록 비참하게 으깨어졌을망정 그들은
다시 패배를 딛고 이를 악물고 일어서고 만다. 이들은 핏발 선 싸움이 준 뼈
저린 각성으로('허깨비') 또 다시 전열을 추스리며 수 없이 불어난 동지들과
함께 탄탄한 연대위에서 노동자의 전진을 내어 딛는다.('장벽') 그래서 마침
내 고요의 빛나는 바다, 햇살 쏟아지는 파아란 하늘, 이슬 머금은 푸른 대지
같은 사랑으로 하나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변증법적 발전이
다.
그대들이 어쩔 수 없이 비춰 준 것들에
우린 만족하지 않겠다
죽음같은 노동과 삶이,
핏발 선 싸움이 준
이 뼈저린 각성으로
마땅히 찾아야 할 우리 것을
더이상 버려 두지 않겠다
살기 좋은 이 강산은 그대들의 땅
우린 더 이상,
허깨비에 홀리지 않는다
- '허깨비' 중 -
사랑은
슬픔, 가슴 미어지는 비애
사랑은 분노, 철저한 증오
사랑은 통곡, 피투성이의 몸부림
사랑은 갈라섬,
일치를 위한 확연한 갈라섬
.... ( 중 략 ) ....
그리하여 마침내 사랑은
고요의 빛나는 바다
햇살 쏟아지는 파아란 하늘
이슬 머금은 푸른 대지 위에
생명 있는 모든 것들 하나이 되어
춤추며 노래하는 눈부신 새날의
위대한 잉태
- '사 랑' 중 -
이상에서 본 것처럼 이 시집의 짜임새를 살펴보면 개개의 시들이 흩어지면
제각기 독립된 시가 되고, 모아지면 하나의 서사적 장시의 형태를 이루고 있
다. 신세한탄(슬픔) => 각성과 분노 => 싸움의 준비 => 숙명적 대결 => 노동
자의 패배 => 싸움을 통한 각성 => 승리하는 싸움을 향한 준비와 새로운 세상
에 대한 염원이 이 장시의 대략적인 흐름이다.
박노해는 이 시집 발간 당시 버스 운전기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노동운
동에 '투신'한지도 몇해되지 않았다. 따라서 그의 시는 현실의 모습을 생생하
게 담아 내고 나아갈 길을 보여주는데 그치는 서정시 같은 한계를 보일 수 밖
에 없었다. 즉 모순의 극복을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의 모습을 형상화하는데는
시대적 상황(80년대 초반 군부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 노동운동이 아직
대중적으로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기)이 맞지 않았다. 박노해는 버스 노동자로
서 '영차회'활동을 하며 "아, 이것이 바로 사회주의 세상이구나!"라고 느꼈다
한다. 이런 과정을 겪은 그의 시 흐름은 87년 6월항쟁과 노동자대투쟁 이후
보다 더 견고한 과학성으로 무장되어 갔다.
2. 88년~89년 발표시와 산문집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박노해는 84년 '노동의 새벽' 출간 이후 당국의 수배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
러나 그는 숨막히는 수배생활 중에도 조직활동을 해가며 직업적인 혁명가로서
탈바꿈해 갔다. 그리고 민중들의 분노가 폭발했던 87년 6월 항쟁 이후 그는
詩作을 다시 시작했다.
그는 주로 '노동문학'(실천문학사)과 '노동해방문학'(노동문학사)을 통해 신
작시를 발표했다. 노동문학 창간호 발간시 그는 '제1회 노동문학상'을 수상하
며 '허재비','씨받이 타령'등 8편의 시를 발표했다. '노동해방문학'에는 '머
리띠를 묶으며' 등 10여편의 시를 발표했다. 대표적인 시들을 잠시 살펴보자.
비좁은 월셋방에 비키니 옷장 하나
유행 지난 옷 몇벌에 이불담요 한채
아껴쓰던 로숀 한병 카세트 하나
너의 모든것인 적금통장 65만원
죽는날까지 노동하고도 빈 쭉정이로
허망하게 원통하게 뒈져버린 옥아
싸늘한 네 가련한 몸을 부둥켜안고
박살난 행복과 빈 쪽박 꿈을 움켜잡고
어허이야
데헤야
끝없는 슬픔으로
통곡속에 꺼져들어간다
- '허재비' 중 -
머리띠를 질끈 묶으며
적과 아를 확연히 갈라내어 묶으며
전선에 선 동지들을 한 대오로 묶으며
'결사투쟁''일치단결''승리쟁취''노동해방'
살아 펄펄 뛰는 구호들을 정수리에 새기며
결연한 투지로 비장한 맹세로
떨리는 손길로 머리띠를 묶는다
- '머리띠를 묶으며' 중 -
우리는 가장 지적으로 자각된 노동자! 가장 단결이 잘되고 연대하는
노동자! 가장 강건하게 조직된 노동자로서 전세계 노동자와 전민중의
존경을 받는 '위대한 한국 노동자'란 칭호와 함께 전세계
노동자해방투쟁 전선에서 자유와 진보와 평등과 평화의 주역으로
그랑프리를 타는 것이 여러분 _______ 어때요?
_______ 좋__습니다! (합창) 와아.(웃음과 박수)
동지들 잠시 후 회사측과 협상이 시작될 때 우리는 똑똑히 지켜봅시다.
과연 우리의......
- '씨받이 타령' 중 -
이와 같이 그의 시는 '허재비'등 초기의 몇편을 제외하고 '노동의 새벽'시절
과 판이하게 다른 양상을 보였다. 이때쯤 박노해를 찬양하는 이들에게 이러한
시들은 '새로운 단계의 노동시들'이고 비판자들에게는 '아직 형식을 담보하지
못한 이념적 성취가 강한 아지 프로의 시들이다'라는 엇갈린 견해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박노해는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는 아직도 극복해야 할 '시적인 요소'가 남아 있었으며, 일인칭
이 남아 있었고,계급적 직관에만 의존하는 '추상성'과 '감성'이 과학적
사고를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 (중 략) ....
나는 한사람의 탁월한 노동자 시인이기에 앞서 철저한 조직운동가가
될 것을 요청받고 있었다.
- ' 이땅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중 -
결국 작품이 선동화,슬로건화 되어가는 이유는 시인이기에 앞서 조직운동가
로서의 면모가 전면에 두드러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물론 이전 작품에도 가끔 드러나지만 이때 이후로 나온 시들의 경향에는 김
지하와 김수영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것으로 보인다. 특히 시사시에서 김지하
의 영향이 많이 눈에 띄는데 여기저기서 보이는 능청대는 가락과 풍자,해학이
그렇다. 다만 이것이 박노해에 있어서는 노동자적 낙관으로 융합되고 있을 뿐
이다. 이는 박노해가 김지하의 전통을 새로운 역사적 국면에서 휼륭하게 이어
받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김수영으로부터의 영향은 빠른 리듬과 변화의
요소이다. 박노해의 '머리띠를 묶으며'를 살펴보면 머리띠를 묶는 행위를 형
용하는 말이 아주 빠른 속도로 교체되거나 변주되고 있음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시의 경향과 마찬가지로 산문에서도 박노해는 선동성과 공격성을 유
감없이 발휘했다.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에 대한
노동자 계급의 관점에서 쓴 최초의 비판서인 이 책은 공격적이고 논리적인
어투로 일관해서, 얼마동안 언론에 오르내리고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박노해
는 이 시기에 사노맹을 만들고 중앙위원을 맡는 등 가장 활발한 조직활동을
하던 때였다. 그때 사노맹은 혁명에 대한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김우중 회장에 대한 공개제안
김우중 회장! 당신과 내가 최초로 벌인 , 아니 독점부르조아지와 프롤레
타리아트가 벌인 전면적인 사상전쟁도 이제 막을 내립니다.
( 중 략 )
따라서 당신과 나의 주장 중에 어느것이 옳은지에 대하여 분명한 판가름
이 나야 합니다. 그 근본적인 판가름이야 10년후의 역사가 증명하겠지만,.....
- '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중 -
그러나 사노맹은 10년후를 낙관하는 '승리의 관점'과 관계없이 안기부와의
'전쟁'을 치룰 수 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중앙위원인 박노해는 본명이 박기
평이라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지면서 얼마 안 가 91년초 끝내 구속 수감되었다.
3. 옥중 시집 '참된 시작'과 구속 후 작품들을 중심으로
박노해는 91년 구속 후 안기부 지하밀실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으며 자살을
시도한다.그는 또 재판에서 사형을 구형받는다. 때마침 사회주의 종주국이라
고 불리던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었다. 그들이 그렇게 외치던 사회주의, 그
체제의 모델 중 하나가 여지없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10년안에 이땅에 사회
주의 국가를 건설하겠노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던 사회주의 혁명가 박노해는
이러한 현실적 변화 속에서 무엇을 생각했으며 무엇을 느꼈을까? 박노해는 이
런 자신의 상황과 사회적 여건의 변화 속에서 점점 더 교조화 되어가는 자신
을 느꼈던 모양이다. 또 박노해는 '지친 육신'으로 추락했다. 그가 감옥에 갇
히고 썼던 시들에서 그의 그러한 인간적 고뇌들이 절절하게 나타나고 있다.
교조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전형적인 교조주의자에 다름 아니었던 나,
스탈린주의를 비난하면서도 실상 그 손바닥 안을 기고 있었던 나,
노동자 계급의 분노와 과학을 구분 못한 나,
혁명적 열정과 지성을 구분 못한 나,
세계와 혁명과 현실과 시와 삶과 사람자체에 대하여 겨우 절반도
깨우치지 못했으면서도 전부를 아는 것처럼 착각했던 나,
부끄럽고 죄많은 나 자칭 사회주의 혁명가인 나는 나는......
- '징역에서들 보면' 중 -
이러한 그의 고뇌는 '역시 박노해'답게 고뇌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현실적 패배를 인정한다. 그리고 그는 시를 통해 자신을 부정하고 그 자리에
서 새롭게 출발을 다짐한다. 이 시집의 중심시중 하나로 평받는 '그해 겨울나
무'를 보자.
1
그해 겨울은 창백했다
사람들은 위기의 어깨를 졸이고 혹은 죽음을 앓기도 하고
온몸 흔들며 아니라고도 하고 다시는 이제 다시는
그 푸른꿈은 돌아오지 않는다고도 했다.
세계를 뒤흔들며 모스크바에서 몰아친 삭풍은
팔락이던 이파리도 새들도 노래소리도 순식간에 떠나보냈다
잿빛 하늘에선 까마귀떼가 체포조처럼 낙하하고
지친 육신에 가차없는 포승줄이 감기었다
그해 겨울,
나의 시작은 나의 패배였다
2
후회는 없었다 가면 갈수록 부끄러움 뿐
다 떨궈주고 모두 발가벗은 채 빛남도 수치도 아닌 몰골 그대로
칼바람 앞에 세워져 있었다
언 땅에 눈이 내렸다
숨막히게 쌓이는 눈송이마저 남은 가지를 따닥따닥 분지르고
악다문 비명이 하얗게 골짜기를 울렸다
아무 말도 아무 말도 필요없었다
절대적이던 남의 것은 무너져 내렸고
그것은 정해진 추락이었다
몸뚱이만 깃대로 서서 처절한 눈동자로 자신을 직시하며
낡은 건 떨치고 산것을 보듬어 살리고 있었다
땅은 그대로 모순 투성이 땅
뿌리는 강인한 목숨으로 변함없는 뿌리일 뿐
여전히 춥고 서러운 사람들, 아
산다는 것은 살아 움직이며 빛살 틔우는 투쟁이었다
3
이 겨울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말할 수 없었다
죽음같은 자기비판을 앓고 난 수척한 얼굴들은
아무데도 아무데도 의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마디를 굵히며 나이테를 늘리며 뿌리는 빨갛게 언손을 세워 들고
촉촉한 빛을 스스로 맹글며 키우고 있었다
오직 핏속으로 뼛속으로 차오르는 푸르름만이
그 겨울의 신념이었다
한점 욕망의 벌레가 내려와 허리 묶은 동아줄에 기어들고
마침내 겨울나무는 애착의 띠를 뜯어 쿨럭이며 불태웠다
살점 에이는 밤바람이 몰아쳤고 그 겨울 내내
뼈아픈 침묵이 내면의 종울림으로 맥놀이쳐갔다
모두들 말이 없었지만 이 긴 침묵이
새로운 탄생의 첫발임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해 겨울,
나의 패배는 참된 시작이었다
- '그해 겨울나무' 전문 -
" 낡은 건 떨치고 산 것을 보듬어 살리"는 변증법이다. 다 떨궈주고 모두 발
가벗은 채 칼바람 앞에 서서 절대적이던 남의 것은 무너져 내렸고(소련의 붕
괴,자신의 패배) 그것은 정해진 추락이었다. 그가 껴안은 것은 남의 것을 도
려내고 남는 내것이었다. 그의 참된 시작은 이로부터 시작한다. 이 겨울이 언
제 끝날지 아무도 말할 수 없지만 남한테 의지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뿌리로
만 키우는 겨울의 신념, 그 내면의 종울림. 바로 긴 호흡 강한 걸음이다. '그
해 겨울나무'의 이러한 내적 변증법은 그의 옥중시편을 떠받침하고 있는 시적
골간이다.
'작아지자'에서 "작아지고 작아져서 / 마침내는 아무것도 없어진 나 - / 조
국의 들꽃이 되자" 나 '강철 새잎'에서 "썩어가는 것들 크게 썩은 위에서 /
분노처럼 불끈불끈 새싹 돋는구나 / 부드러운 만큼 강하고 여린 만큼 우람하
게 / 오 눈부신 강철 새잎"등이 그러하다.
그는 철저한 자기부정의 변증법을 통해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참된 시작' 발간 후 찬사와 아울러 비판 또한 받고 있다.
그중 비판은 구속 후 자신의 주관성에 갇혀 자기연민에 너무 집착하고 있다
는 점이다. '그리운 사람' '때늦은 나이' '눈물의 김밥'이나 '성호를 긋는다'
'그대 나 죽거든' 등은 지나친 자기 연민에의 집착이 강하게 드리워진 작품이
라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주관을 형상이 아닌 주관적 판단으로 직접 지시
하게 되면 독자들은 과장성, 상투성, 감상성을 느끼게 된다.
사형, 죽음과 관련된 시들에서 이러한 경향은 두드러진다.
단 한번만 더 생의 기회가 주어지기를
낮게 낮게 부르짖다 순명하던 날
이렇게 나는 살았고 너는 가는가
비누곽에 민들레꽃 심어준다던
봄은 아직도 멀은데
아 눈이라도 함빡 쏟아져 내렸으면
- ' 사형 집행일 ' 중 -
서른 다섯 생일날, 오 '이제와 우리 죽을 때'
맑아지고 밝아진 마지막 미소 한 떨기
나를 아는 모든 이에게 남겨줄 수 있도록
더 겸허하고 더 성실하게 투쟁하게 하소서
더는 늦지 않게 서둘지 말고
새벽 종울림으로 울러나 흐르게 하소서
- ' 때늦은 나이 ' 중 -
또 그는 '바람잘 날 없어라' '모과 향기' '가다 가다가' '나는 순수한가' 등
의 시를 살펴볼때 독자들에게 상당히 익숙한 상투적인 시틀에서 벗어나지 못
하거나 어설프게 산문화되는 경향을 보인다는 지적도 있다. 즉 감정의 절제나
응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시 전체를 관통하는
의미와 내용에서만 아니라 문체나 리듬, 어조, 어휘의 선택과 결합방식, 이들
의 상호작용에 의해 형성되고 드러나는 분위기에서 나타난다.
또, 이 시기의 작품들은 극심한 감정의 동요를 보이고 있다. 시집 '참된 시
작' 뿐만 아니라 산문집 '민들레처럼'에서도 그 내부의 글들간에 상호충돌하
는 것들이 많이 있다. 그만큼 변화가 심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는 박노해의 심신의 상태를 살펴보면 이해가 된다. 앞서도 이야기 했듯이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로 인한 이념의 쇠퇴, 문민정부의 수립으로 천민자본주
의의 부분적 개조 등 일련의 발빠른 변화는 민중운동 진영의 사상적 혼란과
질서의 재편을 불러오기에 충분한 조건들이었다. 더구나 그는 이념과 신념을
지키기위해 싸우다 사형을 구형받고, 자살에 실패하는 등 인간으로서의 최후
의 단계까지 이르는 악조건까지 겹쳐졌기에 방황하고 좌절하는 것은 인간으로
서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방황과 좌절도 잠시였다. 경주교도소에 이감된 후 그는
'그해 겨울나무'처럼 긴 호흡 강한 걸음을 희망차게 내 딛으며, 방황과 좌절
속에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고 변혁운동의 대오를 쉽게 이탈해 버린 사람들에
게 이렇게 이야기까지 하고 있다.
저거 봐라 새잎 돋는다
아가 손 마냥 고물고물 잼잼
봄볕에 가느린 눈 비비며
새록새록 고목에 새잎 돋는다
하 연두빛 새 이파리
내가 바로 강철이다
엄혹한 겨울도 두터운 껍질도
제 힘으로 뚫었으니 보드라움으로 이겼으니
썩어 가는 것들 크게 썩은 위에서
분노처럼 불끈불끈 새싹 돋는구나
부드러운 만큼 강하고 여린 만큼 우람하게
오 눈부신 강철 새잎
- ' 강철새잎 ' 전문 -
모두 지치고 돌아서고 싶을때 억지로 끌려가는 것은 억지 그 자체다. 왜 이
리 지치고 나태해 졌는지를 생각하고 서로가 서로를 받춰주고 위로해 주는 따
뜻함이 필요하다. 이 사실을 박노해는 뼈 저리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바로
자기 자신을 통해서 말이다. 그래서 박노해는 다시 희망과 낙관으로 일어선
다. 완전한 패배의 폐허를 보듬어 안고 다시 일어서고 있다. 계간 '창작과 비
평' 1996년 봄호에 발표한 5편의 신작시는 구속 후 박노해의 고난과 좌절, 고
통, 절망, 억지로라도 부여잡고 놓치지 않으려 했던 신념에 대한 갈등들을 모
두 뛰어넘어 '승화'의 경지로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꽃시절 다 바치고 다시 한번,
앙상히 말라가는 온 몸으로
최후의 생을 바쳐 피워낸 꽃
패배를 패배시킨 투혼의 꽃!
슬프도록 아름다운 흰 목화꽃이여
- ' 목화는 두번 꽃이 핀다 ' 중 -
새벽 찬 물로 얼굴을 씻고 나니
창살 너머 겨울나무 가지 사이에
이마를 탁 치며 웃는 환한 별 하나
오 새벽별이네 !
어둔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온다고
가장 먼저 떠올라
새벽별,
아니네 !
뭇 별들이 지쳐 돌아간 뒤에도
가장 늦게 남아 있는 별,
끝까지 돌아가지 않는 별이
새벽별이네
새벽별은
가장 먼저 뜨는 찬란한 별이 아니네
가장 나중까지 어둠속에 남아 있는
바보같은 바보같은 별,
그래서 진정으로 앞서가는
희망의 별이라네
지금, 모든 별들이 하나둘
흩어지고 사라지고 돌아가는 때,
우리 희망의 새벽별은
기다림에 울다 지쳐 잠든 이들이
쉬었다 새벽길 나설 때까지
시대의 밤하늘을 성성하게 지키다
새벽 붉은 햇덩이에 손 건네주고
소리없이 소리없이 사라지느니
앞이 캄캄한 언 하늘에
시린 첫마음 빛내며 떨고 있는
바보같은 바보같은 사람아
눈물나게 아름다운 그대,
오 새벽별이네 !
- ' 새벽별 ' 전문 -
박노해는 감옥이라는 엄혹한 현실의 한계를 딛고 이렇게 다시 일어서고 있
다. 그는 이제 절망속에서, 좌절 속에서, 모스크바의 삭풍 속에서 헤메이고
있지만 않는다. 그는 아이 가진 여자의 둥그스름한 배를 보고 먼저 듣는 첫
울음소리('그날 이후')의 기쁨을 보고 있으며 종교집회에 위문 공연 온 유치
원 아이들의 맑은 눈('맑은 눈의 메아리')에서 내일의 희망을 본다.
III. 나 오 며
1. 패배를 인정하는 용기있는 시인 혁명가 박노해
박노해는 시인인가 혁명가인가? 그는 분명 시인이나 혁명가가 아니다. 그는
시인이자 혁명가이다. 앞에서도 지켜 보았듯이 그의 삶은 혁명가의 길을 걸어
가면서 불태우는 투지와 구속 후 느끼는 좌절, 그리고 다시 새록새록 폐허 속
에서 돋아나는 강철새잎의 의지로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시는 혁명의
그날을 이야기하는 그의 몸부림이자 삶 그 자체이다.
그는 보통사람은 도저히 엄두도 못 낼 용기가 흘러 넘친다. 그는 정권과의
싸움에서 공개적으로 패배를 가슴 아프게, 그러나 당당하게 선언했다. " 내
온 목숨 바친 사랑의 슬로건 가라 ! 자본가 세상 쟁취하자 ! 노동해방"( '마
지막 시')을 이를 악물고 외쳤으나 그는 끝내 "나의 시작은 나의 패배였다"
('그해 겨울나무')고 솔직히 고백하고 쓰라린 패배의 노동,억장 터지는 배신
의 노동에 참여한다('조업재개').
그러나 그는 다시 자신을 철저히 부정하고 변증법적으로 일어서고 있다. 그
래서 세인들 사이에서는 "역시 박노해야!" 라는 감탄이 쏟아진다.
그가 우리 문단사의 이정표를 세우는 시인으로 주목받고 있다느니 우리 민중
운동사에 한 획을 그었다느니 하는 평가들은 잠시 접어 두자. 그는 아직도 교
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구속된 몸이다. 그런 그가 엄혹한 현실을 딛고 죽음의
고통도 이겨내는 참된 시작을 향해, 함빡 웃으며 한발한발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그 아름답고 소박한 그러나 무엇보다 강인한 용기를 잃지 않고 새 희망을 찾
아 나서는 불굴의 인간 박노해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나의 행동은 부
끄럽기 그지없다.
시인 박노해, 아니 인간 박노해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
2.참고자료
채광석 - '시집 노동의 새벽 해설' ( <노동의 새벽> 1984.풀빛 )
홍정선 - '노동문학과 생산주체' ( <노동문학> 1988창간호.실천문학사 )
박노해석방대책위원회-'누가 우리의 투쟁을 졌다하는가1'(91.박노해석대위)
정남영 - '박노해시 해설' ( <머리띠를 묶으며> 1991.미래사)
김병익-'시집 참된시작 발문-겨울나무의 뿌리키우기-'(1993.창작과비평)
임규찬-'박노해 최근 시의 성격과 변화에 대하여'(<실천문학>1993년가을호)
조정환-'민주주의 민족문학론에 대한 자기비판과 노동해방문학론의 제창'
( <민족민중문학론의 쟁점과 전망> 1989. 푸른숲 )
백진기-'노동문학,그 실천적 가능성을 향하여'(<시인 제3집>1985.시인사)
반경환,신범순,정한용 - '재수록을 마치며'(<현대 시세계>1992년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