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늦었습니다.
발제요지
시론 ㅡ 왜 그 이름이 <장흥> 인가?
1, 장흥
ㅡ 어의적 차원의 <장흥>어원 풀이?
2,통설, 소수설
(1)통설
ㅡ인종조이공예태후임씨지향승지장흥부사 (仁宗朝以恭睿太后任氏之鄕陞知長興府使)
"정안현이 인종 왕비, 공예태후의 관향지라는 계기로 인종 1126년 또는 1129년 등에 장흥부로 승격되었으며,
<길이길이 흥하라>라는 뜻으로 <장흥>이라 명명했다"라고 본다.
cf,인종 재위=1122~1146, 공예태후 생몰=1109~1183
cf, 그런데, 장흥부 승격시점은 언제인가?
ㅡ 사견 ㅡ 의종 3년, 1149년설 지지한다 , <왕비기준설>이 아닌 <태후기준설>이 옳다.
ㅡ기존의 인종조 승격설은 잘못되었다고 본다)
(2)소수설
ㅡ중국지명 차용설
"고려 군현제도 개편 정비시에 .나주,광주,순천,해남,능주,장흥..등 중국사대적 차원에서 차용하였다"고 본다.
3,문제의 제기 ㅡ왜 그 이름이 <장흥>인가?
(1)의문점 1 ㅡ
cf, 고흥,대흥,길흥,영흥....ㅡ
(2)의문점 2 ㅡ
cf,장흥창 ㅡ 992년(성종11) 개경(開京:개성) 이남에 설치한 12개의 조창 가운데 하나로, 전라도 서남쪽 지방에서 거둔 조세미(租稅米)를 예성강 입구에 있는 경창(京倉)에 납부하던 조창이다. 《고려사》에 따르면 조동포(潮東浦)에 있었다고 하며, 이곳은 지금의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덕진리 또는 해남군 계곡면 송석리 둔주포(屯舟浦) 부근으로 추정된다.
(3)의문점 3 ㅡ
cf,15대 심수관의 질문....조선시대의 <장흥고>의 장흥과 <고려조 장흥부>의 장흥은 서로 연관되는 것 아닌가?
ㅡ고려시대 청자산지를 표시한 일본지도에는 <강진> 대신에 <장흥>을이 나타난다.
cf,장흥고(庫)ㅡ
(4)의문점 4 ㅡ
cf,조선시대 행정구역 개편과 <강진>의 등장ㅡ
4,사견ㅡ시론(試論) ㅡ 이른바 장흥 청자론
1) 관련된 사정 및 논거
.....
(1) ~(10)
2)결론
ㅡ임씨들이 중국 소흥,장흥에서 가져온 청자자기 브랜드<장흥>에서 유래된 것 아닐까?
5,덧붙임
1)추가적 검토 ㅡ 그렇다면 그간에는 왜 그런 본래의 뜻이 제대로 계승되지 못했는가?
(1)~(4)
2)보완의 필요성 ㅡ 이번 시론의 한계?
(1)~(2)
6, <참고자료 ㅡ 태안 마도 수중출토 목간 학술회의 보도기사>
태안 마도 앞바다 침몰 고려배 과연 조세 운반선 맞나?
한국목간학회 28일 국제학술회의 열어
ㅡ세계일보 ㅡ 2009,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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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마도 해역에서 발굴된 죽간. |
이달 초 충남 태안 마도 앞바다에서 인양된 ‘마도1호선’은 1207∼1208년 전남 서남해안에서 거둬들인 쌀과 벼, 조와 같은 곡식류를 개경에 있는 무신정권 실력자들에게 운반한 배였던 것으로 분석됐다.
- 하지만 이 고려시대 선박이 나라에 내는 조세를 운반한 조운선이었는지 아니면 각 개인에게 바친 지대(소작료)를 운반한 사선(私船)이었는지는 여전히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마도1호선에서 발굴된 고려시대 목간 17점과 죽간 50점을 분석해온 최연식 목포대 교수와 임경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한국목간학회 주최로 28일 서울대에서 열리는 제4회 국제학술회의 ‘동아시아의 목간 연구와 신출토 문자자료’에서 ‘태안 마도 수중 출토 목간 및 죽간의 현황과 내용’을 발표한다.
발표문에 따르면 12세기 중반∼13세기 초반 개경을 향하다가 좌초된 것으로 알려진 마도1호선은 1207년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 전남 해남(당시 죽산현)과 나주(회진현), 장흥(수령현)에서 거둬들인 백미와 벼, 조, 메밀, 콩, 메주 등 곡식류와 젓갈류, 도자기 등을 싣고 개경을 향하다가 태안 마도 해역에서 좌초된 것으로 분석됐다.
- 목간과 죽간에 적힌 정묘(丁卯)년과 무진(戊辰)년은 수신자로 명기된 ‘대장군 김순영’이 김준거의 난(1119년) 때의 공으로 장군에서 대장군으로 승진했다는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등의 기록으로 미뤄볼 때 1207년과 1208년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함께 출토된 목재와 대나무편, 볍씨 등에 대한 연대측정 실험 결과도 이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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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간 또는 죽간은 함께 출토된 유물의 정확한 제작 연대는 물론 문헌 자료 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역사의 비밀을 밝히는 ‘타임캡슐’로 통한다. 사진은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태안 마도 앞바다에서 마도1호선을 발견해 유물을 인양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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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 발송자는 2007년 태안 대섬에서 발굴된 목간에서처럼 ‘호장 송(戶長 宋)’ ‘죽산현 □□ 군(君)’ 등 죽산현과 회진현, 수령현의 지방 향리로 적혀 있었고 수신자는 대장군, 별장과 같은 최상위 무반은 물론 검교대장군과 같은 검교직(임시특별직), 봉어동정, 전구동정과 같은 동정직(녹봉은 없고 전시과 토지만 받은 번외직)으로 표기돼 있었다.
발송지가 한 곳의 조창이 아닌 세 곳을 포함하고 있고 수신자가 경창(京倉)이 아닌 각 개인으로 돼 있다는 점은 마도1호선이 국가 세금을 운반하는 조운선은 아니었다는 추론을 가능케 한다. 즉 이 선박이 무신정권 실력자들이 지방 영지에서 거둬들인 소작료를 운반한 개인 선박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발표자들은 마도1호선이 사적인 성격만을 갖는다면 굳이 향리층이 관여할 이유는 없고 목간에 적힌 전출(田出)이 고려∼조선 초기 조세와 소작료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개경의 유력자들이 국가의 승인·지원을 받아 직접 조세를 거뒀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임경희 연구사는 “발송지와 발송자, 수신자 그리고 화물의 성격으로 볼 때 마도1호선 화물은 전시과(국가가 세수용 농토를 배분·관리하던 토지제도) 조세품과 실력자들의 사적인 공납품이 혼재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마도1호선이 조운선인지 (조운 성격을 띤) 사선인지는 당시 조세제도 현황과 맞물려 정교한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한편 28일 열리는 국제학술회의에서는 태안 마도 목간·죽간 연구 현황은 물론 ‘창녕 화왕산성 출토 목간’(김재홍·국립중앙박물관)과 ‘나주 목암리 출토 목간’(김성범·나주문화재연구소), ‘단양적성비문’(장경준·고려대) 연구발표가 이어진다. 또한 사카에하라 도와오(榮原永遠男) 일본 오사카시립대 교수의 ‘일본 고대목간의 연구동향과 과제’와 겅위안리(耿元麗) 중국사회과학원역사연구소 연구원의 ‘돈황 죽간 자료를 통한 당대 균전제 다시보기’ 발표도 예정돼 있다.
ㅡ송민섭 기자
첫댓글 멋집니다. 내일 기대 됩니다. 포럼시간이 짧지 않도록 고민하겠습니다. 내일 10:30분에 뵙겠습니다.
ㅡ저 앞쪽, 탐포에 2009,8,26자로 올렷던 <심수관 선생과 용산 월송 백자>도 함께 살펴주시면 감사하겟습니다.
제가 어찌 작가의 작품을 평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저는 그러한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요. 다만 독자로서 작가의 작품을 읽고 저로서는 감탄할 수 밖에요. 그리고 이해 차원에서 작가님에게 여쭐수는 있겠지만은요. ^^ ;
많은 자료와 준비에 큰 노고가 있었으리라 생각되며 시대와 뿌리를 생각하는 전문인 공동체인 우리 탐진포럼의 정체성 "나는 누구냐? 에 매우 시의 적절한 주제로 기대가 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ㅡ이번 발제내용에 추가보완의 필요가 있어 발표초고 일부를 우선 삭제시켰습니다.
ㅡ경청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연사로 직접 나오신 포럼행사 귀하고 가치있는 포럼다운 시간이었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