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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고 싶고, 오래 간직하고 싶은 대하소설
시대를 초월한 영원한 감동을 주는 한국문학의 고전
100년을 이어갈 조정래의 문학 산맥, 그 감동을 만나다!
1천만 부 돌파라는 대한민국 출판 사상 초유의 기록을 세우며 민족의 소설로 우뚝 선 조정래의 대하소설『태백산맥』.
『태백산맥』의 시간적 배경은 한반도가 해방과 분단을 동시에 맞아 남한의 단독정부가 수립되고, 4·3항쟁과 여순사건이 일어난 1948년 10월부터 6·25전쟁이 끝나고 휴전이 조인되어 분단이 고착화된 1953년 10월까지다. ‘민족사의 매몰시대’, ’현대사의 실종시대’라 불리는 역사에 정면으로 부딪혀 80년대 최대의 문제작이 된 『태백산맥』은, 1983년 《현대문학》에 원고지 16,500매 연재를 시작으로 1986년 제1부 출간(한길사)과 1989년 완간(전10권) 이후 300만 부가 판매되었으며, 1994년『태백산맥』의 영화화(임권택), 1995년 해냄에서 재출간, 2000년에는 일어판 10권이 완간되었다.
그동안 6·25전쟁과 분단을 다룬 소설은 많았지만 『태백산맥』만큼 이를 깊고 넓고 세밀하게 형상화한 작품은 없었다. “우리 문학이 여기까지 이르기 위해 해방 40년의 기간이 필요하였다”(김윤식)라는 찬사를 얻을 만큼, 해방 전후의 치열했던 역사와 민족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태백산맥』은 시대를 초월한 감동을 주는 영원한 한국문학의 고전임에 틀림이 없다.
제1부 : 한의 모닥불 [1권~3권]
여순반란사건이 종결된 직후부터 1948년 12월 빨치산 부대가 율어지역을 해방구로 장악하는 데에까지의 과정이 그려져 있다.
소설의 첫 장면은 1948년 10월 24일 밤이다. 여순 사건과 함께 좌익에 의해 장악되었던 벌교가 다시 진압세력인 군경(軍警)의 수중에 들어가자, 정하섭이 상부의 밀명을 받고 좌익 반란군들은 벌교로 잠입하기 위해서 산 속으로 퇴각한다. 그는 마을에서 외따로 떨어진 현씨네 제각(祭閣)에서 살고 있는 무녀(巫女) 소화를 이용하는데, 소화는 정하섭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이며 감시를 피해 정하섭의 심부름꾼 노릇을 한다. 그러면서 둘 사이엔 사랑이 싹터 임신까지 하게 된다.
불과 나흘 전만 해도 벌교는 좌익의 수중에 들어 있었지만 여수에서 국군 14연대가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거점으로 하여 좌익 반군들이 순천까지 그 세력이 확대하게 된다. 남로당 조직에 연결되어 있던 벌교 지역 좌익 세력들이 반군에 합세하여 벌교를 장악한 것은 1948년 10월 20일. 그러나 이들은 사흘을 견디지 못하고 군경 진압군에 의해 밀려서 벌교를 포기하고 산 속으로 퇴각하고 만다. 벌교를 장악했던 군당 위원장 염상진은 하대치, 안창민 등과 함께 조계산으로 쫓겨 가게 되었지만 진압군의 세력이 미치지 못하는 궁벽한 율어면을 점거한다. 그리고 그들은 이 지역에서 토지개혁을 실시한 후 그곳을 해방구로 선포하고 조직과 세력을 정비한다.
군경 진압군은 벌교를 장악했던 좌익 반군 세력을 몰아낸 후, 청년단의 도움으로 마을에 남아 있는 좌익 세력과 부역자들을 찾아내기 위해 힘쓴다. 그 바람에 마을에 남아 있던 사람들마저 좌익과 우익으로 서로 갈라지고 원한이 겹쳐서, 반란군과 함께 산 속으로 가 버린 입산자 가족들은 온갖 곤욕을 치르게 된다.
벌교의 유지로서 주민들의 신망이 두터운 김범우는 무고한 사람들까지 처단되고 고문을 당하는 등 고통을 받게 되자 희생을 줄여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김범우의 개인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총살을 당한다. 벌교 지역에서는 흉흉해진 민심을 돌리고 혼란된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수습위원회를 구성한다. 그리고 일제시대에 친일파였고 해방 직후 제헌국회의원이 된 최익승을 수습위원회 대표로 선임하게 된다. 김범우는 최익승을 찾아가 읍민들의 희생을 줄이도록 호소하였으나, 오히려 좌익을 두둔하는 빨갱이로 몰려 경찰서에 구속 되었다가 순천으로 송치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청년단 감찰부장이라는 감투를 쓴 염상구는 양효석, 송성일 등 우익 희생자 아들들이 조직한 이른바 멸공단을 지원, 밤이면 입산자 가족들을 찾아다니며, 부녀자, 노인을 가리지 않고 잔인한 보복을 한다. 이 과정에서 하대치의 아버지 판석 영감이 목숨을 잃는다. 아들 정하섭이 좌익에 가담했기 때문에 좌익 세력이 벌교를 장악했을 때, 악덕 지주로 처단되지 않고 살아남은 양조장 주인 정현동은 다시 군․경찰이 들어오자 빨갱이로 몰려 경찰서에 갇힌다. 최익승은 정현동을 빼내주는 조건으로 양조장 지분 절반을 차지하고, 정현동은 벌교에 진주한 토벌대의 후원회 회장을 맡는다.
아들 김범우가 순천 경찰서로 송치되자 그의 부친 김사용은 김씨 문중의 힘을 빌려 아들을 석방시키고 경찰서장 남인태를 다른 지역으로 전출시킨다. 벌교가 수복되자 좌익 잔당이 처단되는 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는 것은 벌교를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진 좌우익의 대립과 갈등이다. 일본인들에 의해 주도된 간척 사업으로 일찍부터 일제 자본이 침식한 이 지역은 토지를 둘러싸고 지주와 소작농 사이에 엄청난 갈등이 쌓였던 곳이다. 이런한 사회적 모순이 해방 직후 좌우익의 이념적 대립으로 치닫고 결국은 계급의 대립과 투쟁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어수선하던 시절 한국사회의 한 단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벌교를 장악했던 염상진을 중심으로 한 좌익 세력의 존재와 그 사회적인 실체가 드러나며, 이에 대응하는 토착지주와 자본가를 중심으로 하는 우익 세력이 군경의 힘을 업고 벌이는 여러 형태가 잘 그려져 있다.
이들 사이에 끼어 있는 비참한 입산자 가족들의 삶과 함께 중도적인 입장의 지식인 김범우 등의 활동은 대립과 갈등의 사태 해결을 위한 하나의 대안이 되고 있다.
제2부 : 민중의 불꽃 [4권~5권]
제2부의 핵심은 토지의 소유와 연관된 농민들의 좌절과 분노이다. 여순반란 이후 약10개월에 걸쳐 일어난 사건들이 1949년 1월의 소작농 봉기를 전후로 하여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벌교 지방은 농민이 전체 주민의 8할에 해당한다. 그리고 대부분이 지주에게 목을 매달고 있는 소작농이 8할이다. 농민들은 해방된 후 토지개혁에 상당한 기대를 걸었지만, 이승만정권이 농지개혁을 하지 못하자 불만이 갈수록 높아만 간다.
북에선 이미 무상몰수 무상분배 형식의 농지개혁이 실시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지주들은 농지개혁 이전에 소유 농지를 처분하고자 한다. 소작인 모르게 논을 처분한 고흥 지주 서운상은 불만을 품은 소작인 강동기가 삽으로 내리찍는 바람에 중상을 입었고, 강동기는 그 길로 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된다. 반면에 서민영은 지주로서 자기 소유의 논을 모두 소작인들과 공유하는 것으로 하여 협동농장을 운영하였고, 농지문제의 심각성 및 농민들의 참상을 국군 벌교지구 사령관 심재모에게 들려주어 심재모로 하여금 농민들의 농지개혁 요구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공정하게 처리하도록 한다.
염상진 등 좌익 반란군은 율어 해방구에서 토지개혁을 실시하여 농민의 대환영을 얻고, 그들의 지원으로 자신들이 내세운 혁명 과업을 착실히 수행한다. 벌교의 농민들에게는 이러한 율어 지역의 변화가 오히려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염상진의 빨치산 부대는 벌교읍을 습격하여 지주들로부터 쌀을 빼앗아 인민들에게 고루 나눠 먹도록 하기도 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요상스런 대잇기 작업을 추진하다 사령관 심재모는 용공 혐의로 서울로 압송되고 그 후임으로 백남식이라는 관동군 출신의 친일 경력을 지닌 인물이 등장한다. 벌교 지역 주둔군 사령관으로 새로 부임한 백남식은 하숙집 주인 과부 송씨와 그녀의 딸 연희를 농락하고 토벌군이 철수하게 되자 송씨의 딸을 속여 끝내 결혼을 한다. 그는 송씨 재산 절반의 반을 차지하고 그 돈으로 자신의 병과를 헌병으로 바꾸어 후방 근무를 택한다. 그의 행태는 당시 부패한 군의 실상과 그 비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때 벌교의 유지 김범우는 벌교를 떠나 서울에서 반민 특위 사건이나 백범 김구 암살 사건을 맞는다. 그리고 백범과 몽양이 이승만과 한민당을 위시한 친일 세력에 의해 암살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벌교 지역에서 지주들이 소작인 모르게 자기 땅을 팔아먹거나 빼돌리는 일이 더욱 늘어나자, 농민들은 이에 분노하여 대규모 항의 시위를 일으킨다. 지주 정현동은 농지개혁을 피하기위해 멀쩡한 논에 바닷물을 끌어들여 염전을 만들겠다고 하다가 이에 분개한 소작인의 낫에 찍혀 죽음을 맞는다.
그즈음 농지개혁법이 발표되는데, 대부분의 소작농들은 토지의 무상몰수 무상분배가 아니라 유상몰수 유상분배란 것을 알고는 더욱 분노하기 시작한다. 농지를 분배받은 소작인들은 농지 값으로 평년작 생산량의 한 배 반을 5년간 분할상환 하고, 정부는 지주들에게도 같은 조건으로 지가증권을 교부해 주기로 한 유상분배의 농지개혁은 대다수 소작인들의 불만과 실망을 그대로 남겨둔 채 그 막을 내린다.
한편, 벌교에 주둔한 군경과 지역 청년단은 사태가 악화되자 농민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짓밟기 시작하는데.....
제3부 : 분단과 전쟁 [6권~7권]
제3부는 1949년 10월부터 1950년 12월까지 6.25전쟁의 현장과 함께 소설의 무대는 벌교 지역을 벗어나 전쟁의 현장을 따라 확대되고 있으며, 남과 북의 상황 변화와 미국의 개입 등이 비판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6.25의 발발과 함께 벌교는 다시 염상진 등에 의해 장악되고, 좌익 세력들은 인민의 해방을 감격스럽게 맞이한다. 그러나 권서장의 지시에 의해 경찰이 철수하기 직전 좌익 전향자인 80여명의 보도연맹 대원들을 뱀골재 골짜기에서 미리 사살하였기 때문에 또다시 살육의 참상을 겪는다.
인민에게 피해를 입혀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나라 재정에 피해가 생기게 해서도 안 되기 때문에 공산주의 국가에서 규정하는 재산의 범위가 각 개인이 생산해 낸 일체의 소유물을 징수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당은 인민에게 세금을 부과하는데 세금원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과학적인 조사방법이라며 가축은 물론 논두렁의 콩, 감나무에 달린 감의 개수, 심지어 곡식의 낟알세기까지 하며 구먹구구식으로 재산조사를 실시한다.
당으로부터 농지를 무상으로 분배받아 지주에게서 독립한 농민들은 이 징수방법에 의하면 2할 5푼의 세금만 빼면 그만이었고, 그렇게 되면 전과 다르게 가축까지 다 세금원으로 계산했다 하더라도 세금은 3할 미만에 불과할 뿐이었지만, 지역마다 약간씩의 차이는 있었지만 거의가 반타작인 5할을 지주에게 소작료로 바치고 또 세금은 따로 내게 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농민들은 새 법이 더 이익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세세하게 부과하는 세금에만 거칠게 반발을 하고 나섰다. 완벽한 홍보 ․ 계몽을 통한 이해와 납득의 과정 없이 시행됨으로써 농민들은 재산의 범위와 조사의 방법에 대해 감정적인 반발을 하였던 것이다.
한편, 심재모는 용공혐의로 서울로 압송되었다가 벌교 지역 주민들의 진정으로 풀려나서 군에 복귀하여 태백산지구 공비 토벌작전에 참가하고 있던 중 6.25전쟁을 맞는다. 그는 여러 부대를 옮겨 다니며 6.25전쟁 당시 무방비 상태로 부패와 무능에 빠져 있던 군대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 군부의 모습은 벌교지역 주둔군 사령관이었던 심재모를 통해 이 전쟁의 성격을 소상히 그리고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민간인들을 빨갱이로 몰아 살상하는 특무대원들의 횡포는 맹목적인 이념 전쟁의 단면을 보여준다. 피난 수도 부산의 모습도 이 부분에서 다르지 않다. 특히 벌교의 최익승은 부산으로 피난 와서도 군대와 짜고 군수품을 빼돌리며 사리사욕을 채우고 있는 장면이 반민족적인 자본가들의 행태를 반증이라도 하듯 보여주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내용은 중도적인 입장을 고수하던 벌교 지역의 김범우와 손승호 등 지식인층의 사상적인 전향이라 하겠다. 김범우는 인민군 치하에서 전북도당에 근무하다 인민군이 패퇴하자 도망을 다니던 중 미군들이 한국 여성을 겁탈하려는 것을 목격하고 구해주다 미군에게 붙들려 옛날 OSS의 경력을 인정받아 강제로 통역관이 된다. 그는 미군들이 자행한 강간, 살인, 방화 등 비인간적이고도 부도덕한 행태를 보면서 한국전쟁이 미군과 우리 민족의 싸움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분개하며 탈출을 결심한다.
결국 김범우는 미군 부대에서 탈출한 후 공산주의 노선을 택하게 되며 인민군에 자진 입대한다. 손승호도 6.25전쟁 후 공산주의자의 길을 택한 후에 빨치산으로 입산한다. 벌교의 염상진 역시 다시 입산하게 되는데 이때 많은 소작인들이 염상진을 따라 입산한다.
제4부 : 분단과 전쟁 [8권~10권]
제4부는 1950년 12월부터 1953년 7월 휴전협정 직후까지의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소설의 대미에 해당하는 지리산의 빨치산 투쟁이 이야기의 중심을 이룬다.
소설적 공간이 다시 벌교와 지리산 지역으로 고정된다. 6.25전쟁은 유엔군의 참전과 중공군의 개입으로 교착 상태에 빠지고, 전선은 38선 부근에서 대치 상태가 지속된다. 퇴로가 막힌 인민군과 빨치산 세력이 지리산 일대에 근거지를 두고 무장투쟁을 계속한다. 그러나 군경의 진압작전에 따라 이들의 투쟁은 점차 무력해진다. 특히 박헌영 등 남로당 계열이 전쟁의 실패와 함께 숙청되었다는 소문이 전해지자 패배감과 낭패에 빠져들지만, 그들은 역사 선택의 기로에서 항전의 결의를 가다듬는다. 자신들의 투쟁과 죽음이 역사 투쟁으로의 전환임을 인식하고 대부분 강렬한 최후를 맞는다.
모든 사람들이 과정리 신원국민학교로 내몰렸다. 여러 개의 길에는 각 마을에서 몰려나온 사람들이 두려움과 불안에 떨며 무리지어 걸음을 옮겨 운동장에 부락단위로 줄을 서 있었다. 와룡리 사람들이 탄량골에 가까이 왔을 때는 땅거미가 안개 퍼지듯 하고 있었다. 맞은편에서 10여명의 군인들이 다급하게 몰려오고 군인들 사이에는 경찰 두어 명과 지서주임도 섞여 있었다. 탕.탕.탕... 총소리들이 터지기 시작하자 온갖 비명들이 뒤엉키고, 사람들이 벌떡벌떡 솟구쳤다가 서로 얽히고설키며 엎어지고 뒤집어지고 고꾸라지고 처박히고 있었다. 얼마가 지나자 비명도 들리지 않고, 몸도 솟구치는 사람도 없이 조용했다. 총소리는 한동안 더 울렸다. 확인사살이었다. 무고하게 죽어간 양민들의 시체 위로 하늘에서는 까마귀떼만이 유유하게 선회하며 차츰차츰 그 높이를 낮추어 날고 있었다. 많은 날들이 흐른 뒤 밝혀진 일이지만 거짓말처럼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임분임, 그녀의 나이 스물넷이었다.
한편 인민군에 입대했던 김범우는 서울을 거쳐 서부전선으로 후퇴하던 중 마구 떨어지는 폭탄을 피해 도망치다 금촌 근방에서 부상으로 의식을 잃는다. 정신을 차려보니 견딜 수 없는 통증과 함께 오른쪽 다리는 피투성이였고, 주위에는 함께 도망치던 인민군들이 쓰러져 있었다. 지팡이가 필요했다. 그때 인기척이 들렸다. “쏘지 마! 난 인민군이 아냐. 난 인민군에 강제로 끌려간 대한민국 국민이란 말이야” 김범우는 두 팔을 들어 올린 채 기를 쓰며 외쳐댔다. 그렇게 살아서 재수술까지 했지만 김범우의 다리는 끝내 완치되지 않았다. 허벅지에서부터 장딴지까지 세 군데에 박혔던 파편들을 빼낸 상처가 흉측스러웠지만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다리는 절룩거려야 했다. 김범우는 자신이 부상을 당하고도 이렇게 살아남게 된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말보다는 그 말을 ‘영어’로 유창하게 외쳐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영어가 자신의 목숨을 살렸다는 사실에 쓰디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거제도수용소에 갇히게 된 김범우는 뜻밖에도 그곳에서 제자 정하섭을 만난다. 그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정하섭 쪽에서 일부러 찾아온 것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놀라움과 반가움에 비해 정하섭에게는 놀라움이 없었다. 두 사람은 6.25전쟁을 민족해방전쟁이라고 믿고 있다. 이들의 눈을 통해 거제 포로수용소의 실상이 속속들이 파헤쳐진다. 포로 석방 때에 정하섭은 북으로 가고 김범우는 반공 포로로 위장, 석방되어 고향에 돌아온다. 그는 정하섭으로부터 남한에 남아 거점을 구축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다. 지리산에 근거했던 빨치산 세력은 군경의 토벌작전으로 모두 와해된다.
이름 없는 숱한 빨치산 전사들과 함께 손승호도 독립투사 인민군 소장인 김범준도 토벌군의 총탄에 쓰러진다. 염상진이 이끄는 빨치산 부대는 군경과 수많은 전투를 하였으나 패퇴를 거듭한다. 염상진은 퇴로가 막히자 부하들과 함께 수류탄으로 자폭한다. 그리고 그의 목이 벌교 읍내에 내걸린다. 염상진이 염원했던 <인민해방>은 실패로 끝나지만, 염상진을 추종했던 하대치 등이 살아남아 염상진의 무덤 앞에서 새로운 투쟁에의 결의를 다지고 어둠속으로 사라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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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래 : 1943년 전남 승주군 선암사에서 태어나 광주 서중학교, 서울 보성고등학교, 동국대학교 국문과 졸업했다. 197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단편집 『어떤 전설』,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 『황토』, 『한, 그 그늘의 자리』, 중편 『유형의 땅』, 장편소설 『대장경』, 『불놀이』 『인간 연습』, 『사람의 탈』,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산문집 『누구나 홀로 선 나무』, 청소년을 위한 위인전 『신채호』, 『안중근』, 『한용운』, 『김구』, 『박태준』, 『세종대왕』, 『이순신』, 자전 에세이 『황홀한 글감옥』 등을 출간하였으며,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성옥문학상, 동국문학상, 단재문학상, 노신문학상, 광주문화예술상, 동리문학상, 만해대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