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을 지나고 나니 찬바람이 그리 차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봄이 올 거라는 기대감 때문인 것 같다.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찬바람에 몸서리를 치면서 “겨울이 대체 언제쯤 끝나려나….” 짜증낸 것이 엊그제 같은데 바람이 무뎌진 것인지 감각이 무뎌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봄이 오는 것 같다.
대보름날. 날이 갑자기 추워진 것 같았다. 날은 춥지만 유기농생산지인 생명의 공동체에서 대보름 놀이를 한다고 해서 문경 세평농원으로 갔다. 차를 몰고 달리고 달려간 곳. 연과 현수막, 사람들이 여기 저기 보이는 가운데 연 날리는 아이들, 쥐불놀이 깡통을 챙기는 아이들, 윷놀이 하는 어른들, 모닥불에 고구마`감자를 묻는 사람들, 추운 날씨에도 시끌벅적이다. 생전 처음 보는 쥐불놀이가 해보고 싶어 아이처럼 줄을 서서 깡통을 받았다. 깡통 안에 숯을 골라 넣고 그 위에 나무토막을 넣어 막 돌리니 금새 불이 활활 붙었다. 불을 활활 돌리니 무섭기도 했지만 신기하기도 했다. 씽씽 부는 바람 속에서 아이들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깡통도 돌리고 연도 날리다가 추우면 모닥불 가에 모이고….
우리 조상들이 대보름을 어떤 연유로 이렇게 보냈는지 궁금해졌다. 우리 조상들은 달이 밝은 밤을 신비롭게 여겼다. 일년 중 첫번째 찾아오는 정월 보름은 더 소중히 여겨 대보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정월 대보름에 뜨는 보름달을 보며 한 해의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뤄진다고 생각해서 농부들은 풍년이 들기를 기원했다.
정월에 먹는 오곡밥이나 약밥, 묵은 나물은 겨우내 부족하기 쉬운 각종 미네랄과 비타민을 공급하는 훌륭한 음식이다. 오곡밥은 찹쌀`팥`수수`기장`검정콩 등 각종 잡곡을 넣어 탄수화물 뿐 아니라 단백질`지방 등 영양소를 골고루 맞춘 건강식이다.
여기에 현미로 오곡밥을 만든다면 금상첨화. 현미에는 백미에 비해 비타민E는 4배가 많고 칼슘은 8배나 많기 때문이다. 피부병예방의 기원이 담긴 부럼 깨물기 풍속도 상당히 과학적이다. 견과류 및 호도에는 피부를 윤기있게 하는 불포화지방산이 많다. 예전부터 그 기름을 짜서 피부병치료에도 썼으며 무기질과 비타민B1이 풍부해 요즘에도 피부미용 목적으로 쓰고 있다. 쥐불놀이의 경우 농촌에서 정월 첫 쥐날에 쥐를 쫓는 뜻으로 논 밭둑에 불을 놓은 세시풍속의 한 놀이다.
이 쥐불의 크고 작음에 따라 그 해의 풍흉, 또는 그 마을의 길흉을 점치기도 했다. 달집태우기는 보름달이 떠오르기 전에 나무로 틀을 엮고 짚을 씌운 달집을 마을 동산의 적당한 기슭에 만들어 둔 후 달이 솟아오르는 것을 처음 본 사람이 불을 붙이고 달을 향해 절을 한다. 이는 잡귀와 액을 쫓기 위함이며 달집에 수숫대, 볏짚을 넣는 것은 풍요로운 생산을 위함이었다. 남자들은 온종일 거둬들인 연을 걸기도 하고, 아낙들은 소원을 적은 종이나 입고 있는 새옷의 동정을 떼어 달집을 태우면서 자신의 액이 소멸되기를 기원한다. 불꽃이 환하게 피어오르면 풍물을 신나게 울리며 한바탕 어울려 춤과 환성을 울리며 뛰어논다.
문경농원의 찬바람이 그리 차게 느껴지지 않던 것은 대보름을 준비한 농부들의 마음이 우리에게까지 전해진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아무리 추워도 봄이 올 것이라 믿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아무리 추워도 이렇게 알지 못하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분들이 있으므로 봄은 올 것이다. 또 우리가 기대하고 있다면 그대로 되리라 생각한다. 2009년 기축년, 기대하면 기대하는 만큼 되리라! 박선희(곰네들누리터) 053)754-5551, cafe.daum.net/gomnedeu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