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낭국제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22: 30분 경이었다. 곧바로 대기중인 버스에 올라 숙소로 결정된 Sandy Beach Hotel Non Nuoc Resort로 갔다. 그리고 잠시 호텔 로비( 식당과 함께 숙소와 조금 떨어져 있다)에서 대기하며 방배정을 받았다.
내일 잠에서 일어난 후 짐을 꾸려 이 식당에서 조식을 하고 곧바로 성모발현 성지로 떠나야 한다.
순례 이틀 째, 2016, 8월 12일. 다낭.
서울에서 함께한 안내인과 현지 가이드와 작은 모임을 갖았다. 내가 배정받은 숙소는 1층, 그들의 숙소는 3층이었다. 3층으로 가 소주를 나누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셋이서 나누었다. 새벽 2시 40분까지 이어진 자리의 결론은, 순례를 차질 없이 하자는 의미가 깃든 작은 모임이었다. 3시경 나의 숙소로 돌아 온 나는 조심 조심하며 룸메이트인 파스칼 형님에게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하여 샤워를 끝낸 후 침대에 누웠다. 아늑했다. 침대 메트리스에서 얻는 푹신함을 느낄 사이도 없이 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찰나의 순간 화살기도를 날리고 있었다. 어떤 순간이라도 5시까지 일으켜 세워 주소서.... 자기 체면술인 셈이다.
그 기도발은 정확하게 먹혀 들었다. 5시에 일어나 발빠르게 샤워를 한 후 카메라 하나만 챙긴 후 밖으로 나왔다. 일출을 보기 위함이다. 나 보다 더 부지런한 사람이 있었다. 네델랜드에 왔다는 여인, 해변 기슭을 따라 조킹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사진 몇장을 찍은 후 산책을 하였다. 운해에 가려 일출 보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다만 오늘 일정도 자비와 은총안에서 형제적 친교와 이해와 관용과 사랑으로 매듭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전구하며 걸었다. 해변의 기슭을 걷는 일은 산 길을 걷는 것과 달리 색다른 매력이 있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푹신하고 감미로운 모래사장을 걸을 수 있다. 파도 소리는 썰물과 밀물에 따라 전혀 리듬이 달라진다. 그리고 광활한 옥빛 수면과 저멀리 수평선이 무한세계로 이끄는 착각을 느끼게 되고 눈부신 태양이 정열적으로 다가 온다. 이에 반해 산 속은 제한적공간이 주는 숲의 푸른 공간이 아늑하면서 참선과 묵상적 기운을 서리게 한다. 새소리, 바람소리도 마음 경치가 되어 고요로 이끌어 준다. 온갖 자연의 소리가 정서 혜안으로 번득이는 곳이 바로 숲 속의 일이다. 깊은 침잠은 결국 명상도 가능하게 해 준다. 아무튼.....
다시 숙소로 돌아 오는 길에 스프링쿨러가 물을 뿜기 시작하였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무지개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해안선을 응시하고 있었다. 늘 그렇지만 의식적으로 하는 기대는 성사와는 거리가 멀다. 항상 준비하고 살며 늘 보편적 기다림으로 최선을 다하다 보면 오히려 좋은 결과를 주시는 경우가 더 많다. 해안으로 나가는 작은 언덕을 넘어 오자 낮이 익은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이번 성지순례에 함께 참석한 자매, 헬레나, 데레사 자매들이었다. 아침 인사를 나눈 후 사진 몇 장을 만들어 두었다.
마틸다, 프란치스카 자매님도 만났다. 이 분들도 같은 방법으로 추억을 사진을 통해 확인해 놓았다.
안드레아 형제님과 M말가리다 자매님도 아침 인사를 나누고 작은 추억을 쌓아 두었다.
데레사, 체칠리아 자매님도 아침 인사를 나누었다. 아침 산책중 만난 순례자들의 사진을 찍은 후 서둘러 식당으로 갔다. 거의 대부분 나오셔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오늘 일정은 식사 후 짐을 챙겨 다낭을 떠나야 한다. 이곳 호텔에서 1시간 소요되는 성모님 발현지 짜기우로 가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 한 후 성모님 동산으로 올라 가 묵주기도를 드릴 계획이다. 이 후 일정은 호이안으로 이동하여 호이안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투본강을 통통배로 1시간 유람하며 목공예 단지를 살펴 본 후 다시 배를 타고 강을 건너 구 시가지인 우리나라 인사동 거리같은 곳을 찾아 풍흥의 집, 내원교, 관운정 사당 등을 투어해야 한다.
다낭 외곽으로 나와 국도를 이용하여 1시간을 달린 끝에 짜기우 성당에 도착하였다. 건물외형은 성모님께서 신자들 양손으로 껴안아 주신는 형상으로 분홍색으로 마감되었다. 1층은 제대를 빼곤 빈 공간이었다. 1층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깔고 누워 있었다. 그들은 성모 승천 대축일 행사에 참여하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제대 옆으로 짜끼우 발현 성모님께서 서 계셨다. 긴 머리가 인상적이었다. 순례자들은 미사를 봉헌하기 위하여 2층으로 올라 가도록 한 후 난간에 세우고 몇장의 사진을 남겨 두었다.
오늘은 제 19주간 년중 금요일로서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상탈 수도자의 날이다. 미사준비로 데레사 총무님께서 분주하신 모습이다.
입당성가 32번, 언제나 주님과 함께의 성가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주레사제께서 입당하셨다.
독서: 내가 너희에게 베푼 영화로 네 아름다움이 완전하였다. ( 에제키엘 예언서 16,1 -15, 60,63),
독서자는 모니카 자매님께서 수고해 주셨다.
복음: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마태오19,3-12)
봉헌: 이번 순례에서는 봉헌은 공동경비를 거둔 금액에서 일괄적으로 하기로 결정하였다. 5개의 조로 편성한 후 조장을 두어 각조에서 독서와 봉헌과 신자들의 기도를 하고 인원 부족한 조일 경우 다른 조에서 협조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공동경비 지출 용처는 생수비용, 봉헌금, 기부금, 사용료, 기타잡비 및 가이드, 버스운행 기사를 위한 에티켓 비용이다.
성찬의 전례는 양성체를 모실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파견성다: 49번 옹기장이를 부를 때 주레사제께서 퇴장 하셨다.
그리고 주레사제를 모시고 순례자 단체사진을 ...
1층 성전에 계신 짜기우 발현 성모님이시다. 베트남도 믿는 신자들도 박해에 시달려야 했다. 정확하게 드러난 순교자 숫자는 우리보다 조금 더 많다. 긴 검은 머리가 인상적인 성모님을 찾아 인사를 드렸다.
1층에 계신 성모님을 뵙고 묵주기도를 드리기 위하여 성모동산으로 올라 갔다. 베트남 중앙에 위치한 다낭은 항구도시다. 월남전 당시 청룡부대가 주둔했던 곳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다냥에서 서남쪽으로 42.8km 떨어진 짜기우 성당은 성모발현지로 유명한 곳이다.
120년 전 1885년 9월 어느날, 탐리왕이 천주교 신자들을 체포하기 위하여 군사들을 보내자 신자들은 성당으로 피신하였다. 성당에 몰려 든 신자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하얀 옷을 입고 성당 지붕에 발현하신다. 창과 화살로 무장하고 공격하던 군사들을 막아 단 한명의 희생자도 없이 무사했다. 성당 안에 있던 신자들은 성모님을 볼 수 없었지만 밖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이를 알려 당시 프랑스 브루웨 주임 신부가 외방선교회에 보고함으로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성당에서는 성모성월인 5월과 발현시기인 9월 두 차례 기념행사를 성대하게 치룬다. 지금도 성당 안에는 발현 당시 있던 성모상과 감실을 원형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 그리고 순례자를 위하여 100여명의 숙소와 식사를 제공하며 이 모든 일은 6명의 수녀님들이 도맡아 주신다. 우리가 본 성당 1층에 누워 있던 신자들은 성모승천 대축일 행사에 참석하려고 온 순례자들이었던 것이다.
신축되어 봉헌된 성모 동산에 있는 매괴당. 흰 빛이 정결함을 일깨운다. 검은 긴 머리결을 휘날리며 박해자의 병사들을 막기 위하여 성당 마루에 서 계신 형상으로 만들어진 성모상! 자비와 은총의 빛이 정결함과 더불어 가득함을 느꼈다. 앉은뱅이 붉은 의자를 내려 모두 앉았다. 기도의 달인 모니카 자매님은 벌써 묵주 기도를 향해 달음질 치기 시작하였다. 잰걸음의 소유자 모니카 자매님! 재속회 형제회에서 정과 부의 직책으로 함께 봉사한 관계로 너무 잘 아는 사이다. 감성적이고 성가와 동요, 가곡도 분위기에 맞춰 잘 부르시는 자매님이시다. 은총의 결과 인지 이번 순례 길에서 느끼는 것은 최방제 소년에 대한 추모성 애정과 눈물이 자꾸 비친다.
그리고 60년 대 70 년 대 우리들의 옛 모습을 베트남에서 보는 것이다. 나는 스스로 세 가지를 다음과 같이 함축해 마음에 담았다.
소외, 회개, 회상이라는 화두를 세웠다.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소외된 곳으로 자주 발걸음 옮기기, 2) 과도한 일들로부터 물러서기, 3) 옛것을 익혀 오늘의 지혜로 삼기(초심으로 돌아 가기)
영보님 뒤 기둥에 앉아 세 가지 마음으로 묵주기도의 길을 따라 걸었다. 매괴당 아래 사방의 마을과 숲, 창조적인 질서를 품은 평화가 가득했다. 오르면서 느끼고 내려 보면서 그런 느낌은 더욱 더 깊어 졌다. 묵주 기도를 끝낸 후 평화의 마음으로 인류의 모성 앞에 섰다.
그리고 샷다를 누르기 전 " 성모님, 당신을 뵙기 위해 멀고 먼 38 위도의 나라에서 온 한국 신자들입니다. 당신의 은총으로 사랑과 평화의 전구에 힘 입어 앞으로 남은 순례와 걸음여행 일정을 살펴 주옵소서" 기도를 드린 후 동그란 샷다를 꾹 눌렀다. 샷다 소리가 오늘 정겹게 다가 왔다. 나는 그 소리를 샬롬으로 들었다. ^*^ - ~ ^i^
순례내내 재담과 수다와 유익한 이야기를 들려 주시는 자매님들이시다. 장의자에 앉아 장시간 ~~~ 지루하지 않아 좋고 간혹 앞으로 넘어 오는 먹거리도 있어, 이사갈 계획은 전혀 없다.
같은 당집을 소속에 두고 있는 자매님들이시다. 그 당집 사목회장도 계신다. 작년, 김대건 신부님과 최양업신부님, 그리고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조선교회 지도자 신부님 발자취를 함께 따라 걸었던 자매님도 보이신다. 함께해 주신 자매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주변 들과 마을과 숲이 너무 평화롭고 우리 진달래처럼 화사한 꽃이 너무 좋아 지나가는 자매님들을 잡고 사진을 만들었다. 화면을 통해 슬쩍 보니 좋다. 배경도 좋고 피사체는 더욱 더 좋고..... 버스로 달려 호이안으로 장소 옮겨 점심을 해결하였다. 긴 식사 행렬을 만들어 모두 같은 동선상에 앉아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 만큼 식당 규모가 컸다. 전형적인 베트남 요리로 우리나라 전통 밥상과 같은 분위기다.
통통선을 타고 투본강을 거슬러 올라 토기 가마를 보고 목공예 작업과정을 살펴 보았다. 섬세함이 드러났다. 손재주가 좋은 결과 가발산업을 시작으로 각종 봉제 제품으로 기업을 일구고 중화학 공업까지 발전 시킨 우리나라 경제 성장과정을 되돌아 보니 베트남에게 많은 잠재력을 볼 수 있었다. 지금 베트남 봉제 수준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호이안 유네스코 지정 구시가지 전통거리를 보기위하여 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이 곳 다리를 건너야 구시가지 전통 거리로 갈 수 있다. 낮설지 않은 풍경이 다가 왔다. 그것은 중국 전통 거리에 익숙함 때문이 아닌가 한다.
엄마와 아들이 강 기슭으로 다가 오더니 바지를 내리고 ~~ 그 모습이 꼭 우리들 모습 즉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이국에 온 것이 아니라 이웃 마을로 마실을 다녀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그 유명한 관운장 사당을 먼저 들렀다.
오늘도 분주한 하루 일정이었다. 이젠 다시 하이번 터널( 베트남에서 긴 터널이다) 경유하여 후에로 돌아가야 한다. 약 3시간 30분 소요된다. 그리고 저녁을 챙긴 후 내일을 위하여 Imperal hotel에서 여장을 풀고 휴식을 취해야 한다. 약 7년이란 시간동안 함께 순례와 걸음여행을 해 온 사이다 보니 순위가 좋은 운동선수들처럼 불편함이 없다. 각자 자기 위치에서 알아서 움직이고 따라 주니 여간 수월한게 아니다. 버스 안에서 기도로서 하루를 마감하며 짧은 휴식을 요령껐 취하며 후에에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샬롬! 순례기와 걸음여행 이야기는 세 째날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