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J다방] 구림문화예술원 (1) 곽종철 문화관광해설사
구림마을과 왕인의 숨결 깃든 지역 문화·예술·역사 알리미
돈을 좇는 일보다는 영암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문화 봉사’
1955년, 미암면 남산리에서 태어난 이후 줄곧 영암에서 살아오고 있는 진성 토박이 곽종철 구림문화예술원장을 아는 사람은 하나같이 ‘돈 되는 일 빼고 다 하는 이 시대의 선비’라는 평을 한다.
곽종철 원장을 설명하기에는 그 어떤 수식어보다 간결하고 명료한 평가다. 다소 마른 듯한 체구와 차분한 말투, 자칫 차가워 보일 수 있는 인상이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따듯한 정과 깊은 생각을 엿 볼 수 있는 단어 그대로의 ‘선비’다.
따듯한 차 한잔을 앞에 두고 근황을 나누던 중 구림문화예술원이 탄생한 배경에 대해 질문을 던지자 곽종철 원장의 눈이 일순 반짝였다.
“참 좋은 사람들이 모인 단체에요. 국악, 한복, 목공예, 도자기 공방, 하모니카 연주 등 다양한 문화예술인들인데 뜻을 한데 모으기에는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 영암을 사랑해서 이 구림마을에 터를 잡은 사람들이라 그런지 다들 영암을 위해 힘을 모으자는 것에 이견 없이 뭉쳐주신 분들이죠. 단체의 출범과 동시에 코로나19가 터지면서 큰 활동을 못 하고 있지만 영암만의 문화예술 콘텐츠를 개발하고 지역민들을 위한 기부와 봉사를 이어갈 생각입니다.”
영암을 위해 공부해야 할 것도, 해야 할 일도 많이 남아있다는 곽종철 원장은 최근 KBC 방송국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영암을 홍보하기도 했다.
“꼭 거창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꾸준히 배우고 만들어가기 위해 구림문화예술원이 탄생한 것이죠. 영암을 위해 하고 싶은 것이 많아요. 지난주에는 광주 KBC에서 찾아와 구림마을과 왕인문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촬영하기도 했어요. 아직 방송되지는 않았지만 영암을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곽종철 원장은 영암의 숨겨진 역사에도 관심이 깊다. 향토사로 활동하며 월출산 깊은 곳에 숨겨진 역사자료를 찾아 헤기도 했다. 요즘은 의병장 ‘양달사’와 ‘양방매’의 흔적 찾기에 열심이다.
“일제시대를 거치며 가치 높은 역사자료들이 많이 소실 됐어요. 약 5m 규모로 추정되는 성풍사지 미륵상의 발목만 남아있다든지, 국보나 보물이 될 가능성이 있는 거북상의 목이 사라졌다든지 하는 안타까운 사례가 많죠. 지금은 조선 최초의 의병장 양달사와 양방매의 흔적을 찾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역사를 다시 바꿔써야 한다는 생각에 조선 최초의 의병장인 양달사의 역사를 부정하고 있어요. 그림자 속에 묻혀 흩어지고 부서진 양달사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죠.”
곽종철 원장은 한때 언론사에 몸담았던 경력도 있다. 당시 지역민 간 공존과 상생을 중요과제로 생각했던 곽 원장은 현실과의 괴리로 오랫동안 활동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며 기억을 꺼냈다.
“퇴직하고 몇 개월 후 모 지역언론사 경영본부장 자리를 맡게 됐어요. 그런데 언론이라는 것이 현실과는 아주 다르더군요. 모두와 공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컸는데 결국 사업체라는 경제적 목표와 어긋나는 부분이 많았어요. 결국 내가 내려놓는 것이 맞다는 생각에 1년 2개월의 인연을 정리했지요.”
미암과 서호, 서영암 등 약 32년간 몸담았던 농협을 떠나 이제는 문화관광해설사로서 지역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그는 죽정마을의 명물 ‘월출산 여우네 문학관’의 주인이다.
“이 곳은 항상 열려 있어요. 시를 쓰는 아내를 위한 공간과 지인들과 차 한잔할 수 있는 곳, 우리 영암을 찾은 관광객들을 맞을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만든 곳이라 문을 잠글 수가 없죠. 누군가는 어디서 지원받아 지었다고 오해도 많이 하시지만 약 10년 전에 사비 9000만원을 들여 지은 문학관입니다. 그 누구라도 편하게 앉아 차 한잔과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곳이니 언제라도 들러 주세요.”
영암을 사랑하는 일념 하나로 살아가는 그의 순수한 열정이 지역민들에게 따듯한 온기로 전달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