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일본 도의원선거가 있었다. 일본언론은 44년만에 제1당이 된 민주당과, 반대로 대패한 자민당의 움직임을 시시각각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며칠 전 나는 시내에서 일이 늦게 끝나 택시를 타고 귀가를 하게 되었다.
그 때 택시 운전수가 백밀러로 나를 가만히 살펴보더니 ‘혹시 한국인이 아니냐’ 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70대의 그 운전수는, 자신은 주로 신주쿠 언저리를 돌며 운행을 하고 있는데, 그러다보니 하루에 보통 3-4명의 한국인 손님을 태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뜸 한국인은 왜 그리 목소리가 크냐고 물었다. 한국인 손님들이 자주 택시 안에서 핸드폰으로 전화를 거는데,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꼭 싸우는 사람 같아서 간혹 무서울 때가 있다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어서 ‘그렇습니까?’하는 정도로 응대를 했다. 일본택시 운전수치고는 나이답지 않게 좀 말이 많은 것 같아, 처음에는 그저 으례적으로 '네네' 만을 읊조렸다.
그런데 이 운전수의 이야기는 급기야 며칠 전 있었던 도의원선거로 넘어 갔다. 그는 자민당이 참패할 것을 진작부터 알았기 때문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투표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어떻게 자민당이 참패할 줄을 미리 알았느냐”고.
그랬더니 그는 갑자기 목소리 톤을 높이며 말했다.
“일본의 정치수준이 바닥으로 떨어졌어요. 아니 말이 됩니까? 일개 개그맨 출신을 일본의 총리로 옹립한다는 게.”
그는 유독 ‘개그맨출신 주제에’ 라는 말을 강조했다. 내가 한국인이어서인지는 몰라도 노골적으로 비하하는 말을 서슴치 않았다. 참으로 듣기 거북한 말을 연이어 쏟아냈다.
운전수가 거론한 개그맨 출신 총리 옹립 이야기는 그의 말대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국민적 지지로부터 추락할 대로 추락한 아소 타로 정부와 여당인 자민당이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대안이, 최근 인기가 대단히 높은 미야자키현의 히가시고쿠바루(東国原英夫) 지사를 자민당 총재로 옹립하는 것이었다. 일본에서 자민당총재는 그대로 일본의 총리를 뜻한다.
히가시고쿠바루 지사는 운전수의 말대로 비토 다케시군단 소속의 개그맨 출신이다. 바로 이를 가지고 운전수가 ‘개그맨출신주제’를 운운한 것이다.
하지만 히가시고쿠바루는 일본전국에서 가장 인기있고 가장 지지율이 높은 미야자키현 지사다. 그는 가정도 포기하고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던 지방 소도시에 불과한 미야자키현을 전국구의 명소로 바꾸어 놓은 장본인이다.
그것은 그가 직접 일본전국을 발로 뛰어다니며 미야자키현을 세일즈 한 덕분이다. 때문에 미야자키현 사람들은 그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보낸다. 그는 개그맨 출신이라는 과거 이력마저도 미야자키현을 세일즈 하는데 그대로 접목시켰다.
이를테면 개그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미야자키 토산품인 멜론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말이다. 그는 미야자키현을 알리는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았다. 하다못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벌이는 토산품 이벤트쇼에도 기꺼이 참가해 현을 선전했다.
작년에는 200여명의 현민들과 함께 전세기를 빌려 한국으로 세일즈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최근 한국인들의 일본여행이 급증하자 미야자키현으로 관광와 달라고 직접 한국으로 가 관광세일즈를 한 것.
이같은 열정적인 현정(縣政)활동에는 개그맨출신이라는 과거 직업은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이었지만, 그러나 나이든 운전수는 그의 ‘중앙정부진출’ 시도에 ‘감히’ 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렇잖아도 그의 사부인 비토 다케시가 그를 불러 충고했잖아요. 자민당 총재선거에 출마하지 말라고. 본인도 그럴 것이라고 대답했고.”
여기까진 정말 좋았다. 비록 나이든 운전수의 말이 공감할 수 없는 말이긴 해도, 오는 동안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내집까지 올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운전수가 엉뚱한 말을 한 것이다.
“미즈쇼바이(물장사)하면서 이런 저런 손님을 받다보니, 정치문제에도 밝으시군요.”
허걱! 이건 웬 뚱단지 같은 말? 이런저런 손님을 받다니?
결국 그 운전수는 나를 한국클럽에서 일하는 호스티스로 생각한 것이었다. 그래서 평소 일본인답지 않게 손님인 나에게 일부러 말을 건 것이었다. 사회나 정치적인 문제를 이야기할 때마다 ‘이런저런 분야의 손님’ 을 운운했다.
처음에는 나도 장난기가 발동, 그렇다 하는 식으로 받아 넘겼다. 이런저런 손님이 많다보니, 아소타로 수상을 싫어하는 손님도 있고, 앞의 히가시고쿠바루 미야자키현 지사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가하면, 또 도민 세금으로 가능성도 그닥 높지 않은 도쿄올림픽 유치를 벌이는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지사를 싫어하는 손님도 있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나의 말을 냉큼 받아 운전수가 이렇게 말했다.
“설령 올림픽 유치가 실패하더라도 유치운동을 하는 동안 그만큼 도쿄를 세계에 알린 셈이 됐으니 꼭 마이너스라고 할 수만은 없지요. 그런데 그보다도 미즈쇼바이(물장사:일명 술장사를 뜻함)를 하는 한국여자들은 이시하라 지사를 유독 더 싫어할 걸요. 한국술집을 모두 없애버렸으니. 우리 일본인은 덕분에 치안유지가 잘 돼 좋아하지만.”
이건 또 무슨 시츄에이션?
한국술집을 없애버려 도쿄치안이 좋아졌다?
여기서 그만 나의 자제력은 그 둑이 무너져버렸다.
“그런 거 아니거든요? 물론 한국여성들이 이시하라 도지사를 싫어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은 이시하라 지사의 역사를 왜곡하는 발언이나 한국인을 비하하는 제 3국인 발언 같은 망언 때문에 싫어하는 것이지, 합법적인 방법에 의해 한국 유흥업소를 없애는 것 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거든요? 그리고 요즘 도쿄도에서 일어나는 각종 도리마(무차별살인사건)사건 범인은 한국인이 아니라 모두 일본인이거든요. 근데 거기에 왜 한국인하고 치안 문제를 결부시켜요? 혹시 운전수 아저씨, 전쟁세대세요?” 내가 열받아 높은 톤으로 다다다다 일사천리로 내뱉자, 조금은 당황했는지 운전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미즈쇼바이 하는 분 아니세요?”
우리집에 거의 도착했을 시점이었다. 이때는 나의 장난기가 싹 가셔버렸다.기분도 불쾌해질 대로 불쾌해져 버린 뒤였다. 그래서 좀전과는 달리 내말 투가 공격적이 되어버렸다.
“아닌데요.”
“그럼 뭐하시는 분인지…”
“기잡니다.”
“에?...”
“그래도 아저씨가 절 유흥업소에 종사할 정도의 미인으로 인정해줘서 고맙네요.”
나도 한바퀴 빙 둘러 꽈배기를 꽈 말을 했다.
“아, 아, 대단히 미인이십니다. 너무너무 미인이십니다.”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말까지 버벅거렸다. 그 때부터 그는 종전과는 달리 뒷좌석에 앉아 있는 나를 향해 몇 번이고 고개를 조아리며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난 이런 일본인이 제일 싫다. 1분도 채 안돼 180도 태도를 확 바꾸어 버리는 일본인의 태도. 물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는 좋은 것이다. 하지만 그 태도에 얼마만큼 진정성이 담겨있느냐가 문제다.
그는 내가 손님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한국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처음부터 호스티스라고 단정하여 이야기를 시작했다.
물론 여기에는 내가 장난기가 발동하여 부인하지 않고 그렇다고 시인한 잘못은 있다.
하지만 그 운전수는 내가 택시를 타자마자 한국인라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한국인은 시끄럽다’ ‘한국술집을 없애버려 도쿄치안이 좋아졌다. 그래서 한국 술집여자들은 이시하라를 싫어할 것이다’라는 근거도 없는 이야기를 일삼았다.
재미있는 것은, 내가 집앞에서 내려 1층 사무실로 들어와 불을 켤 때까지, 그 택시가 떠나지 않고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는 것이다. 그 운전수는 내가 맨션 현관문을 열고 들어 올 때까지 ‘죄송합니다’를 연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