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 안에 답변 불가능한 오류가 실제로 존재하는가?
유명한 조직신학자 웨인 그루뎀은 성경의 무오성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성경의 무오성이란 성경 원문은 사실과 반대되는 그 어떤 것도 주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성경이 정확히 이런 의미에서 무오할까요?
제가 전도사 때 쓴 『좋은 씨와 맑은 물』이라는 책에서, 저는 성경이 완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1. 천문학적인 증거 2. 기상학적인 증거 3. 해양학적인 증거 4. 지구과학적인 증거 5. 동물학적인 증거 6. 식물학적인 증거 7. 생리학적인 증거 8. 보건위생학적인 증거 9. 고고학적인 증거 10. 예언적인 증거를 소개한 일이 있습니다.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저는 성경이 모든 면에서 무오하다고 온전히 믿었습니다.
지금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성경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해치지 않는 지극히 사소한 오류들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이 바뀐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마도 그 시작은, 강금성 선배님과의 교제였던 것 같습니다. 또 최근에는 월터 카이저, F. F. 브루스, 맨프레드 브라우치, 피터 데이비즈 등 4명의 저명한 복음주의 신학자들이 공저한 『IVP 성경난제주석』이라는 두꺼운 책을 탐독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책은 제목이 말해주듯이 성경의 난제 즉 난해구들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책입니다. 성경의 난해구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아무런 설명이 없는 말씀'과 '성경의 다른 부분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말씀'입니다.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후자입니다. 그런데 피터 데이비즈는 그 책 서론에서 후자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성경 내의 불일치들은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이 공모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강한 증거다. 오히려 그러한 차이들 덕분에 기록자들과 그들이 쓴 텍스트의 신뢰가 확립된다."
제가 성경의 무오성에 대해 깨달을 때 통합 목사님이 같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형사들이 수사를 위해 여러 사람의 증언을 들을 때, 모두 똑같은 단어와 문장으로 대답하면 오히려 짜고 말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반면에 중요한 핵심에 관한 사실들은 맞지만 표현이 조금씩 다르면 증인들이 실제로 그 사건을 본 것이라고 간주한답니다.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진실하다고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저자들이 조금씩 다른 관점을 가지고 다른 표현들을 하고 있으나 그 핵심은 같기 때문에 그 다름이 오히려 진실을 증명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며칠 후 그 목사님이 메일을 보내왔는데, 거기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마태복음에 부활사건이 나옵니다.
같은 이야기가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도 나옵니다.
문제는 그 묘사가 조금씩 다르다는 겁니다.
비평가들에게는 좋은 먹잇감이 되겠지요.
이렇게 내용이 서로 다른 걸 보면,
예수님 부활이 가짜 아니냐.
실제로 그 내용 묘사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이런 의심이나 비평에 대해서 '말도 안 되는 소리하고 있네 ... ' 그렇게 넘어가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것이 단순히 부활사건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성경 전체 내용에 대한 신뢰성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에 대한 논의를 조금 어려운 말로 성경의 무오성 논쟁이라고 합니다.
성경에는 서로 일치하지 않는 내용들이 있다.
서로 부딪치거나 모순되는 말씀들도 있다.
그러니까 성경을 믿을 수 없다.
기독교의 절대 진리를 인정할 수 없다.
이런 주장들이 계속 있어 왔다는 겁니다. ...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동일한 사건을 두고 묘사가 조금씩 다릅니다. ...
이걸 가지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부활사건 자체를 의심합니다.
왜 이렇게 내용이 다르냐는 거지요.
그런데 역사가들은 그 세부 묘사가 오히려 조금씩 다르기에 서로가 표절한 것이 아니다라는 증거가 된다고 합니다.
네 개의 복음서가 각각 다른 전통과 자료들을 수집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기록했기 때문에, 그 세부 묘사는 각각 다르지만 이야기의 핵심 내용은 동일할 수 있었다는 거지요.
『예수는 역사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는 이 부활사건에 대한 부분을 '역사가의 기교'라는 표현으로 설명합니다.
무슨 말이냐? 만약에 어떤 자료들이 서로 일치하지 않으면 철학자들은 모순의 법칙에 근거해서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사실일 수 없다. 그러니까 필요 없어!'
그렇지만 역사가는 서로 다른 복음서의 내용들을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서로 불일치하는 내용들이 있군. 그렇지만 무슨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 그래 맞아, 보충적인 세부 묘사가 다를 뿐이야.'
그러니까 세부 묘사가 조금씩 다르다고 해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역사적 사실 그 자체가 흔들리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여러분, 공감이 되시지요! 옳은 지적입니다. 그러나 옳긴 해도 성경의 불일치에 대한 충분한 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우리 안에 성경의 불일치들에 대한 의문이 생겨납니다. 그런데 이런 의문들에 대해 피터 데이비즈는 간략히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왜 그렇게 많은 불일치와 난해구절이 있는 것일까? 그런 난제들을 추적할 수 있는 아주 많은 원천이 있다. 우리에게 전해 내려온 사본들에 있는 필사자들의 실수. 같은 사람이나 장소에 여러 이름이 사용되는 경우. 공식 연도와 왕들의 재위 기간 및 사건 발생 기간에 관한 여러 다른 계산법, 개별 저자들이 지닌 특별한 시야나 목적 때문에 여러 난제들이 발생한다(그러한 저자의 시야나 목적에 따라 자료들이 연대순이 아니라 주제별로 배치되기도 한다). 또한 한 가지 사건이나 사물을 여러 저자들이 다른 입장에서 기록하기도 했다."
어떻습니까? 이 말 하나로 벌써 많은 의문들이 해소되는 것 같지요! 같은 책 두 페이지 뒤에서 피터 데이비즈는 또 이렇게 썼습니다.
"예수님의 어떤 말씀들은 복음서마다 다른 정황에서 등장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흔히들 예수님이 반복해서 말씀하셨을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점은 쉽게 인정할 수 있다. 당연히 예수님은 다양한 상황에서 함축적으로 말씀하셨을 것이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든지, '청함을 받은 자들은 많되 택함 입은 자들은 적으니라'라는 말씀을 예수님이 단 한 번만 말씀하셨다고 가정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러나 비교연구를 해보면, 어떤 특정한 맥락에서 언급됐던 말씀이 다른 복음서 기자들이 쓴 것이나 다른 자료에서는 다른 맥락에 배치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순전히 시간 순서만 따른 것이 아니라 다른 배열원칙도 따른 것이 분명하다. 어떤 기록자는 동일 주제나 문학형식을 지닌 상당수의 말씀들을 하나로 묶기도 하고 또 어떤 기록자들은 공통된 핵심단어 때문에 그렇게 하기도 한다(막9:43-50의 불과 소금에 대한 말씀이 그 예다)."
한 가지 더 소개하면, 글리슨 아처는 『성경 난제 백과사전』이라는 책에서 매우 중요한 이런 지적을 했습니다.
"성경의 역사적 기록들이 고고학의 발견이나 히브리 족속 이외 다른 족속의 고대 문서의 증거와 일치하지 않는 듯이 보이는 것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경우에는 언제나 성경 그 자체가 가장 수준 높은 고고학적 문서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이방의 기록이 성경의 설명과 일치되지 않을 때마다 히브리 저자가 오류를 범한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단지 비평가들의 우둔한 편견일 따름이다. 이방의 왕들은 자기를 찬양하는 선전을 퍼뜨렸는데 이것은 현대에도 똑같다. 어떤 진술이 앗시리아 설형문자나 애굽의 상형문자로 기록되었다는 단순한 이유로 그것이 히브리어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더욱 신빙성이 있고 사실적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무한히 유치한 발상이다. 기원 전 시기의 고대 문서들 중에서 정확성과 완전성을 지닌 분명한 증거를 구약성경만큼 많이 제공하는 것은 없다. 따라서 성경의 진술이 세속의 비문이나 사본과 일치되지 않을 때마다 성경이 틀렸다고 가정하는 것은 증거의 규칙을 어기는 것이다. 인간이 알고 있는 모든 문서들 중에서 오직 히브리어와 헬라어 성경만이 예언과 성취의 패턴 - 이것은 인간의 능력을 완전히 초월하는 것이며 오직 하나님만이 가능한 것이다 - 에 의하여 그 정확성과 신적 권위를 증명했다."
맞습니다. 그러므로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주장에 절대 미혹되지 마십시오. 요즘 뉴스들이 얼마나 편파적이고 부정확한가를 보십시오. 또 중국이나 일본, 북한뿐 아니라 우리나라 좌파가 역사를 얼마나 왜곡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면 십분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실 것입니다.
그럼 이것을 염두에 두고, 불일치되는 구절들을 직접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의 불일치되는 구절들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