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죄악을 구제한 염불 법
- 정목스님 -
진리를 먹고 사는 사람은 언행이 법답고 맑고 향기로움이 솟아나
자연히 밖으로 드러나고 깨달음은 언설을 초월하여 말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범부에게 진리를 전하는 수단으로 언어를 빌리지 않고는 별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 없음으로 진리에 이르는 법을 가섭존자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여 선가(禪家)를 이루었고
말로서 진리에 이르도록 아난존자가 부처님의 말씀을 유통(流通)하니 그 가르침이 바다를 이루었습니다.
부처님의 마음을 전한 가섭존자와 그 말씀을 전한 아난존자는
모두 깨달음을 이룬 분이여서 언행이 진리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었습니다.
오늘날 불법문중(佛法門中)에는 오욕(五欲)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 진리를 말하여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코와 귀가 다툼을 일으키게 하고 오히려 마음을 혼란케 하니
부처님과 조사(祖師)의 은혜를 생각하면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간(世間)에서도 한 분야에 십년이상 힘써 정진하여야 장인(匠人)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세계와 인생의 근원을 궁구하여 깨달음을 얻고자 도를 닦는 수도(修道)인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머리를 깎고 전문 수행인이 되었다 하여 진리에 계합하지 못한 채
짧은 혀로 진리를 설한다면 당연히 언행(言行)이 일치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법입니다.
또한 농부가 어업을 가르치고, 어부가 농사법을 가르치면 냉소를 금할 수 없는 것처럼
참선을 하는 자가 염불을 말하고 염불하는 자가 참선을 말하면
정토(淨土)의 조사와 열반(涅槃)의 선사가 함께 배를 잡고 웃을 일입니다.
한 법을 택하여 평생을 수행하여도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일이 허다한데
이곳저곳을 넘나들면 자신에게 무슨 이익이 있고, 남에게 무엇을 전하겠습니까?
더욱이 자신의 업장소멸(業障消滅)을 위해 지장보살을 부르고 소원성취를 위해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시주(施主)자의 복을 기원해 주는 자가 깨달음을 말하고,
몇 철의 안거(安居)로서 선(禪)을 말한다면 자칫 말하는 자와 듣는 자 모두가 진리는커녕
오히려 미혹에 빠져 윤회의 삶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진리란 이해로써 얻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체득해야 할 경지입니다.
언어를 초월한 곳에 이르지 못하고 어떻게 언어로서 진리를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깨달음을 얻었다 하여도 언어의 묘(妙)를 살리지 못하면 뜻과 말은 천리로 빗나가게 되는 법입니다.
쉽게 말하면 진리에 어긋나기 십상이고 어렵게 말하면 이해하기 곤란합니다.
근본과 지말(枝末)에 통달해야 진리에 계합하는 언행으로써 깨달음으로 인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근본에는 밝되 지말(枝末)에 어둡기 때문에 깨달음을 얻었다 하여도
중생을 제도하는 일에 뒷짐을 짓고 열반에 안주하여 움직이지 않습니다.
지말(枝末)에는 밝되 근본에 어둡기 때문에 온 종일 바쁘게 뛰어 다녀도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나는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 기본적인 교육과정을 모두 마치고 수행의 길을 걸어 왔으나
전생에 지은 업력이 무겁고 지혜롭지 못하여 욕망이 그치지 않는 수행생활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이름만 수행자이지 삶의 방편에 불과하고 승려는 직업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점점 깊어져 갔습니다.
더욱이 "생업에 종사하면서 수행을 통해 어떻게 생사윤회로부터 해탈이 가능한가?
그들에게 깨달음을 요구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라는 의문과 고뇌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정토신앙과 염불(念佛)법을 만나게 되는 인연이 있어 출가정신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토신앙에 몰입하여 오랜 기간을 탐구하고 꾸준히 염불(念佛)행을 실천함으로써
일찍이 느껴보지 못한 불법의 오묘한 도리와 염불수행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10년 공부 도로 아미타불”이라는 속담이 허망한 말이 아니라
진리였음을 깨닫고는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나와 같은 죄악의 범부를 구제하는 법은 오직 염불 법임을 깨닫고 몇 날을 환희심으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이것이 원효성사의 [무량수경종요] 곧 [일심정토] 법문을 해설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토신앙과 염불법은 이 시대의 범부를 위해 가장 적합한
시기상응(時機相應)의 정법(正法)이며 인류의 희망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데 이르렀습니다.
이제 오직 정토신앙에 전념하여 정진하고 그 사상과 염불법을 보급하는 데 신명을 바치고자 합니다.
불법의 진리가 아무리 위대하다 하여도 그 가르침을 통해 민중의 의식을 일깨워
참다운 삶으로 인도하지 못하면 팔만대장경은 죽은 언어로서 아무런 쓸모가 없을 것입니다.
아직 불법의 대해(大海)에 접근하지 못했거나
깨달음의 길에서 번민하는 자는 함께 탁마하여 정토에 왕생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인연이 있고 믿음이 있는 자는 금생에서도 쉽게 염불삼매를 얻어 불법의 묘미를 체득하고
삶의 의미를 새롭게 실감하는 때가 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