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무형문화재 제52호 시나위 기예능보유자.
본관은 충주(忠州). 해금산조와 피리 시나위의 명인이다.
경기도 평택군 포승면 내기리에서 경기 세습무 지용득 명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8년 이석은(李錫隱)에게 승무·검무 등 여러 춤을 배웠고,
1928년 조학윤에게서 호적(胡笛)을 배웠다.
1930년에는 정태신(鄭泰信)에게 양금·단소·퉁소를 배웠고,
1931년에 지용구(池龍九)에게서 해금·풍류 시나위를, 양경원(梁慶元)에게서 피리 삼현육각(三鉉六角)과 시나위를 배웠다.
1932년 김계선(金桂善)에게 대금 시나위를 배웠고,
1935년 지용주(池龍珠)에게 무악장단을 배웠으며, 다음해에는 박춘재(朴春載)에게 경기소리·서도소리를 배웠다.
1937년 조선음악연구소에 입소하여 악사가 되었고,
1938년에는 한성준무용단(韓成俊舞踊團)의 반주악사로 활약했으며,
1946년에는 서울중앙방송국 전속국악사가 되었다.
1960년에는 국악예술학교 교사로서 유망한 신인들을 많이 길러냈다.
1966년에는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초대 상임지휘자로 취임했다.
1967년 서울특별시 문화상을 수상했다.
197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2호 시나위의 기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가,
1975년 해외이민으로 지정이 해제되었다. 하와이로 건너가 민속악을 정리하다가
1980년 사망했다.
해금산조와 피리 시나위를 통한 피리산조의 길을 열게 한 뛰어난 민속음악인 중 한 사람이다.
평택덕목리성지
위치:평택시 현덕면 덕목리 647-1
지정:경기도 기념물 제2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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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덕면 덕목리는 신라시대 수성군의 영현 가운데 하나였던 광덕현의 치소가 있던 마을이다.덕목리성은 원덕면 마을 진입로를 사이에 두고 동서로 나누어져 있다.
성은 평지 토축성으로 모양은 보기 드문 장방향이다. 현재 동성에는 원덕면 마을이 들어서서 성곽의 모양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었고, 서성은 1960년대 이후 경지정리 사업으로 동, 서, 남쪽 성벽이 대부붐 유실되어 북벽과 서벽 일부 127미터만 남아 있다.
학술조사결과 남아 있는 성벽에서 성 밖으로 둘렀던 해지와 보수된 흔적이 발견되었다.이와 같은 내용을 고려할 때 유실되기 이전의 성 전체 둘레는 250~300미터로 추정되며, 축성 시기는 축성법의 변화로 볼 때 신라 말에서 고려시대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