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 교인들
우리는 일상에서 “저 사람 참 진상이다.”, “진상 떠는 저 사람이 누구지?”, “저 진상 손님, 또 왔네.”라는 말을 흔히 사용한다. 진상이란 사전적 의미가 알고 싶어서 낱말 사전을 찾아보니 검색이 안 된다. 아직 표준어가 아니라는 뜻이다.
비록 진상이란 말이 표준어는 아니지만 자주 사용하고 있고,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소통할 수 있는 용어이면 언젠가 국어사전에 오르게 될 것이다. 대박, 치맥, 먹방, 콩글리시 등이 영국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되었듯이 진상도 사전에 등재되는 날도 멀지 않았으리라.
아무튼 진상이란 말은 두루 사용되고 있다. 식당이나 백화점과 같은 서비스 업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진상 고객 때문에 힘들어한다. 버스 기사는 진상 승객들로 인해 속이 상한다. 대리운전하는 이들과 택배 업무를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상상을 뛰어넘는 진상들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진상들은 우리 사회 두루 퍼져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휴대전화 신호음과 큰 목소리로 통화함으로 여러 승객의 휴식을 빼앗는 자들도 있다. 누가 봐도 개념 없는 자들이다. 어떤 이들은 별것도 아닌 일로 까다롭게 굴고 까칠하게 응대하므로 함께 살아가는 삶의 행간을 어지럽게 한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에나 진상들이 한둘씩 양념처럼 끼어 있다. 교회도 진상들이 없을 수 없다. 다행히도 진상이란 말이 교회 안에서 공식화할 수준에 이를 정도는 아니다. 앞으로도 진상이란 말이 교회에서 사용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진상이란 말은 어쩐지 비속어와 같은 느낌이 든다. 어감 자체가 거북스럽고 우호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해도 이미 진상이란 단어가 보통 사람들이 두루 사용되고 있는 언어여서 폐하여질 것 같지도 않다. 머지않아 교회 안에서도 채용되는 결과가 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교회도 그 시대의 보통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용어를 금지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진상이란 말이 교회 안에서 사용할 틈이 생기지 않도록 함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진상 교인들은 이미 교회 안에 진주해 있다. 주일 결석을 맡아 놓고 하는 교인, 봉사와 헌금에 인색한 교인, 상습적으로 예배 시간보다 늦게 오는 성도, 설교 시간 졸거나 딴전을 피우는 신자, 자기 일은 하지 않으면서 남의 일에 간섭하고 비판하는 신자, 회의 때마다 찬물을 끼얹는 사람들이 진상 교인이다.
따지고 보면 하나님 앞에서 진상이 아닌 자들이 없다. 괜찮다 싶은 교인들이 있긴 하지만, 사실은 조금 나은 진상일 뿐이다. 이렇게 글을 쓰고 나도 본의 아니게 진상과 같은 부질없는 행동을 한다. 교회 안에 진상 교인이 한 명도 없는 날은 예수님이 다시 올 때나 가능하다. 주 오실 때까지 진상 노릇 조금 적게 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따름이다.
오늘도 우리는 서로의 부족함을 이해하고 용서하며 인내해야 한다. 진상 같은 모습이 드러날 때마다 겸손과 사랑으로 덮어 주고, 서로를 세워주는 연습이 필요하다. 결국 교회공동체는 완전한 사람이 아닌, 서로의 불완전함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며 성장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