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적곡 마로입니다.
앞에서 제가 했던 한사군의 헛소리야 어떻든 중요한 사실은 임둔군이니 진번군이니 하는 곳들이 그저 설치도 제대로 안되어 '서류상'으로만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은 군현이다는 주장입니다.
결국 북한의 현재 지명을 기준으로 할 때 서한(중국)이 제대로 점령한 지역은 기껏해야 평안북도, 평양특별시, 남포직할시, 평안남도 대동강 서쪽지역, 황해남도 정도입니다.
달리 말하면 서한이 관심 있었던 땅은 어디까지나 '위만 조선'의 땅이었고 그 중에서도 경제적 가치가 높았던 '요동반도'와 '평양 평야' 지역 및 '재령 평야(황해남도)' 지역이었지요.
이들 지역들은 모두 농업 생산성이 높은 농경지대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산업구조를 보자면 아무래도 농업이 우선이니 농업이 발전하는 나라가 곧 선진국이라는 말이지요. 서한(중국)이 굳이 눈독을 들일만한 지역이라면 이곳들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지역은? 별 관심도 없었겠거니와 설령 관심을 기울였다해도 현실적으로 통치도 어려운 만큼 이른바 '위탁경영'식으로 대처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시 말하면 현지의 거수 즉 현지의 지도자들을 달래어 감투, 즉 어거지 벼슬을 주고 '서류상'에 서한의 영토라고 등록은 해놓지만 실제로 실권은 현지의 지도자들이 쥐고 있는 형태라는 말입니다.
즉 서류상 현지법인 등록만 해놓고 실제 경영은 토박이 대장이 맡는 식의 통치지요.
해서 서류상 서한의 땅으로 리스트가 올라가 있지만 실제로는 '독립국'인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옥저입니다.
지도의 임둔군 지역을 보시면 이곳이 바로 '국사 교과서'에서 질리도록 보시던 '옥저' 및 '동예'라는 나라의 땅과 고스란히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첫번째 글에 딸린 지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서한이 굳이 서류상으로나마 옥저 및 동예를 자기네 영역으로 설정한 이유는 물론 제국으로서의 '체면유지'입니다.
사실 옥저와 동예는 자기네끼리 스스로 별 탈없이 먹고 사는데 남의 나라를 두고 서류에 올리다 없애다 다시 올리는 '펜 장난'만 하고 있었다는 말이지요.
그렇다고 옥저와 동예가 서한의 리스트에 올라가는 혜택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뭔가 혜택이 있으니 서한의 서류 장난질도 '그러려니'하고 받아들였겠지요.
첫 글 '북부 지방의 지형'이라는 지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옥저와 동예는 각기 함흥평야와 영흥평야에 위치해 있습니다. 농사 짓기는 딱 좋은 곳이지요.
여기서 생각해볼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낭림산맥이라고 하는 산맥의 존재입니다.
이 산맥은 예로부터 관북지방과 관서지방의 경계를 이루어 동서간 교통의 장애가 되었다고 하지요.
관북지방은 말 그대로 함경남북도를 말함이고 관서지방은 평안남북도 및 자강도를 일컫는 말입니다.
서한의 입장에서는 몹시나 성가시고 귀찮은 존재가 바로 낭림산맥입니다. 그 때문에 옥저를 침략할 이유가 적어도 3분의 1은 꺾였을 테니까요. 뭐 낭림산맥이 아니더라도 서한이 옥저를 침략하기는 했을까 싶기도 하지만요.
서한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낭림산맥을 건너서 정복하지 못할 바에야 체면을 세우는 한도 내에서는 평화적인 관계를 맺고 옥저와 동예의 평야에서 나는 물산을 들여온다면 그쪽이 모양새도 좋고 비용도 절감되겠지요.
옥저와 동예의 입장에서도 어떻든 선진문물이, 그것도 당혹스러울 정도의 '문화충격'을 수반하는 상황이 아닌 상당히 '토착화'된 문화가 들어오는 것인만큼 저항이나 이질감은 아무래도 적었겠지요. 아니, 설령 한사군 설치 초기 직수입 상태였더라도 별 지장은 없었을 것입니다.
다만 여기서 또 문제는 서한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낙랑군의 통치 영역을 줄여나가는 마당에 낙랑군이 굳이 옥저와 동예에 목매달아야 하는 당위성이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내버려두자니 체면이 서지도 않고… 해서 모순이 생길 수 밖에 없지요.
결국 손대기는 귀찮고, 그렇다고 손 떼기도 무엇하고 하는 경우 가장 손쉬운 방법은 오늘날에도 그렇지만 역시 이 일을 맡아줄 대행업체를 찾는 것입니다. 이른바 '중개인'의 존재지요.
첫글에 딸린 '북부지방의 지형'이라는 제목의 지도를 보시면 낭림산맥과 대동강 사이에 '빈 땅'이 있음을 보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또한 이 글에 딸린 지도를 보시면 낙랑군과 임둔군(실제로는 옥저와 동예) 사이의 빈 땅이 있음을 보실 수 있습니다.
당연히 두 지도에서 보이는 빈 땅(!)은 모두 같은 지역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평안남도 동부입니다.
흔히들 말하는 '최씨 낙랑국' 즉 낙랑왕 최 비, 태자 최 충(물론 가공인물입니다만), 둘째 최 운(역시『바람의 나라』가공인물입니다.), 딸 최 사비를 상기할 수 있는 지역이 바로 여기이기도 할 것입니다.
입지조건도 생각외로 좋습니다. 우선 묘향산맥과 낭림산맥이 있어 외적(구체적으로는 고구려)을 막기에는 딱 좋은 장소입니다.
그런데다 산맥이 있음과 아울러 이곳 평안남도 동부는 북한 지역의 젖줄 대동강이 시작하는 곳, 즉 대동강의 상류인지라 상상 외로 토지가 농사 짓기에 나쁘지 않지요.
어떻든 낙랑이라는 나라 이름부터가 서한 낙랑군과 그리 무관한 사이는 아니라는 점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낙랑이라는 이름이 한식(漢式)이든 (한국) 토착 언어든 말이지요.
게다가『삼국사기』「고구려본기」기록을 보면 최씨 낙랑국은 옥저 바로 이웃해 있으면서도 어느 정도 친한 사이로 나옵니다.
보통 바로 이웃해 있는 나라끼리는 친한 사이가 되기 어려운데, 이웃해 있으면서도 이해 관계가 충돌하지 않는 상황이 나오고 있음은 그만한 관계를 쌓아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이겠지요.
다음 편에는 본격적으로 최씨 낙랑국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회원 적곡 마로가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