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수요일 밤에 하는 '달콤한 나의 도시'라는 프로그램을 매 주 챙겨 봅니다. 서른
즈음의 여성 넷의 일상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만든 프로그램입니다. 큰딸은 집에 온
덕분에 엄마와 함께 처음 보게 되었습니다. 대중적인 인기는 없는지 시청률이 낮지만
엄마는 볼 때마다 서울 보낸 딸들이 생각난다고 합니다.
네 여성 중 하나는 결혼을 앞두고 있고 두 명은 연인이 있고 나머지 한 사람만 사귀는
남성이 없습니다. 연예인들이 아니라 카메라 앞에서 어색해 하는 모습은 남아 있지만
오래 밀착취재 한 덕분에 평소 생각과 행동이 나타납니다. 가족과 연인과 직장 동료와
부딪치고 다투고 화해하는 모습을 흥미있게 보고 나서 큰딸이 아빠에게 물었습니다.
"아빠는 좋아한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은 들으면 느낌이 달라요?"
"좋아한다와 사랑한다에도 여러 스펙트럼이 있겠지."
"서로 호감을 가진 남녀 사이로 한정하면요."
"아무래도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경우가 더 직접적이고 구체적이겠지만, 말하는 이의
태도, 어조, 표정 등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어떻게요?"
"평소에도 적극적으로 표현 잘 하는 사람이 지나가는 말처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과
부끄럼 타는 사람이 얼굴을 붉히며 좋아한다고 하는 경우를 생각해 봐."
"그럴 수도 있겠네요. 오래 사귄 연인이 사랑한다는 말을 주고받는 것과 처음 사귀기
시작하는 사이에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도 그렇고."
"맞아."
큰딸은 생각에 잠겨 물끄러미 TV 화면을 쳐다보았습니다. 프로그램 시청 중 큰딸이
출출하다고 했던 게 생각나 아빠는 부엌으로 가서 냄비에 물을 끓이고 국자에 기름
바르고 계란 깨뜨려 올려 수란을 만들었습니다. 맛있게 잘 먹고 난 큰딸이 아빠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오래 사귀면 설렘이 없어져요?"
"아무래도 처음 만날 때의 가슴 두근거림 같은 건 없지."
"그래서 부부 간에는 사랑보다 의리라고 하는 건가요?"
"글쎄. 뭐라고 부르든지 그 것도 사랑이 아닐까?"
"아빠는 엄마 처음 만났을 때 결혼할 거야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보다 이 사람이 좋다 하는 마음이었지."
"지금도 엄마가 좋아?"
"응, 좋아."
"하긴, 아까 아빠가 목 뒤 면도해 달라고 할 때 엄마가 기다리라고 하니까 섭섭해
하는 아빠 표정이랑 금방 가서 달래주는 엄마 말투가 꼭 연인 같았어요. 아직까지
그런 감정을 유지하는 거 보기 좋더라."
"뭐? 하하. 이 녀석이!"
웃으며 꿀밤 주려는 아빠 손을 피하며 큰딸은 혀를 내밀고 히히 웃었습니다. 이제
졸리다며 기지개를 켜면서 큰딸은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혼자 거실에 남은 아빠는
방금 큰딸과 나눈 이야기를 생각하며 테이블을 정리했습니다.
첫댓글 므흣하게 미소 머금고 가족들의 이야기를 지켜 보게 됩니다. ^^
므흣하시다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