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적인 제목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왔던 영화 <아름다운 시절>, 한번쯤 볼 만한 영화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 영화에 대한 뒷이야기와 수상 경력을 말하자면 정말 끝이 없다. 많은 평론가들의 호평과 비판의 대상이었고, 이제는 한국 영화사에서 엄청난 공룡 같은 존재가 된 작품이다.
시종일관 롱 테이크 기법으로 사실성을 극대화하며 한국전쟁 이후의 이념문제, 인간 군상들의 삶의 모습 등을 객관적으로 표현하려 하고 있다.
카메라는 영화 속 나레이터인 어린 성민의 시선이다. 관객은 성민의 눈을 통해 이 모든 사건을 목격하게 되고 생각하며 해석하게 된다.
전쟁 직후 미군 부대에서 일을 하게 된 성민 아버지와 그 주위 인물들의 힘겨운 삶의 모습을 작품에서 그리고 있다.
각박한 현실에 찌든 채 어른들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을 때에도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기만 하다. 여기저기를 쏘다니던 아이들은 마을의 방앗간이 미군과 양공주들의 정사 장소임을 알게 된다. 정사 장면을 훔쳐보던 성민과 친구 창희는 어느 날, 미군 병사와 창희의 엄마가 함께 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만다. 그리고 성민의 아버지는 망을 보고 있었고.
다음 날, 미군과 동네 처녀가 정사를 벌이던 그 방앗간에서 우발적인 화재가 발생하여 미군이 사망해 버리고 그 날 이후 성민의 친구 창희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많은 추측이 난무한 가운데 창희는 미군에 의해 살해되었을 것이라고 모든 사람들은 인정하게 된다. 하지만 화재가 발생한 지역에서 발견된 창희의 미제 라이터를 바라보며 어느 날 밤 꿈 속에서 자기의 방을 방문한 창희의 모습을 통해 성민은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된다.
잃어버린 친구에 대한 희망, 그리고 전쟁 뒤에 남겨진 사람들의 끈질긴 삶의 희망까지도.
영화의 관전 포인트는 우선 각 인물들이 보여주는 상을 통해 여러가지 종류의 삶과 처지, 거기에 따른 만물상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작품에 소재로 사용된 여러가지 소품이나 장면의 상징적인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도 영화 감상의 깊이를 더해 준다(창희의 라이터, 성민 삼촌이 군복 염색하는 장면, 미군의 상징적 의미,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성민 아버지의 붉게 페인트칠해진 몰골 등등).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의 시선을 붙잡는 것은 이 영화의 제목인 <아름다운 시절>이다. 이광모 감독이 말하는 아름다운 시절의 의미는 무엇일까? 척박하기만 했던 시절에 대한 강한 반어적 표현이었을까? 어린 아이의 시선을 통해 바라보았던 세상의 모습이었기에 그 시선을 통해 그려진 세상은 아득한 향수와 동심을 불러일으키는 아름다운 시절로 본 것이었을까? 깜깜하고 아득하기만 현실 속에서도, 마치 창희의 라이터에서 피어오르는 불꽃처럼 항상 희망을 부여잡고 있었던 시기이기에 그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아름다울 수 있었던 시절이란 뜻이었을까? 아니면 비록 경제적으로나 물질적 가치로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풍요로운 현실에 대비하여 꺼져만 가는 삶의 희망적 요소들에 대한 역설적 대비를 영화를 통해 감독은 보여주기를 원했을까?
순수한 아이의 시선 속으로 들어가 보자. 그리고 영화 속 상황을 나레이터 성민의 시선과 우리의 머리를 가지고 재구성해 보자. 영화가 끝나고 그 시선을 거두지 말고 이제는 현재의 우리 모습을 롱 테이크로 비추어 보고 주위 사람들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비춰보고 관찰해 보자. 나아가 비춰지는 외적 상황뿐 아니라 보이지 않은 타인으로 향하는, 그리고 타인에게서 뻗어 나온 관계들을 가늠해 보고 내 가치관과 영성까지도 재조명해 보자.
거기에서 나와 여러 관계에 대한 희미한 불씨가 살아날 것이다. 지금까지 한번도 보지 못했던 불길을 제공할 그런 불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