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유대인들
세계의 모든 문명과 나라들 중에서 온갖 정치 체제하에서도 4000년 이상이나 자신들의 율법과 전통과 관습을 지켜온 특이한 민족이 있다. 이들은 바로 유대인이다. 유대인의 역사는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의 이야기 같고 인류 역사에서는 일직이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다. 비록 그들은 억압받고 짓밟히며 다른 땅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가서 각국에 흩어졌지만 신화 속의 불사조처럼 흩어진 잿더미 가운데서 일어나 지금은 다시 역사의 장을 장식하고 있다.
우선 그들의 과거 역사는 주목할 만하다. 확실히 믿을 만한 역사의 자료로 아무리 찾아 봐도 이 민족의 역사적 자취를 따라올 나라는 없다. 유대 민족에 비하면 오늘의 세계를 이끌어 가는 국가들은 역사가 너무나 짧다.
이스라엘의 영광스러웠던 "황금 시대"는 그리스나 로마의 전성 시대보다 훨씬 이전의 일이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철학을 가르치거나 헤로도투스가 역사를 쓰기 훨씬 이전, 호머의 일리아드에 전통과 연대기가 겨우 기록되던 희미한 시대, 즉 다른 모든 믿을 만한 상세한 기록들이 있기 이전에 이스라엘은 잘 정비된 문명화되고 잘 체계화된 한 국가였던 것이다.
성경을 보면 그들은 다른 나라들이 문자를 지니기도 전에, 오늘의 어떤 민족의 문화보다도 더 널리 보급된 문화를 지녔음을 알 수 있다.
앗시리아는 멸망하고 바빌론은 무너졌으며 로마는 기울어져 패망하고 이집트는 "가난한" 국가가 되었으나 파괴의 잿더미에서 영향을 받지 않고, 그들을 짓밟은 다른 모든 정복자들보다 오래 지속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세기 동안 모든 나라에 흩어져 국가의 중심지, 정부, 국가, 그리고 종교적이든 비종교적이든 집회의 장소 조차 없었으나 그들은 결코 다른 나라에 흡수되지 않았으며 다른 민족과 동일시되거나 다른 민족의 독특한 속성에 빠져들지 않았다.
지금까지 어떤 나라도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그렇게 뚜렷하고 명백한 증거를 지닌 나라는 없었다. 그들을 위해 홍해의 물은 뒤로 물러가고 요단강이 갈라졌다. 그들은 기적적으로 광야에서 삶을 유지했으며 하나님의 도움으로 적군으로부터 보호받았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 받았다. 숫양의 뿔나팔을 불어 포위한 도시의 성벽을 무너뜨려으며, 태양과 달은 그들의 적을 물리치는 시간을 주기 위해 정지했다(수10:13). 하늘의 천사는 그들의 주변에서 보호하였으며 한 천사는 이들을 구하기 위해 185,000명의 앗시리아 군을 죽였다.
어떤 나라도 그렇게 많은 위인을 세상에 배출한 나라는 없다.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이 강한 사람, 모세와 같이 훌륭한 지도자이며 입법자, 이집트의 요셉이나 바빌론의 다니엘 같은 정치가, 다윗 같은 왕, 솔로몬 같은 지혜로운 자 등등, 어떤 나라에서도 히브리 예언자인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과 같은 선지자와 이 모든 사람들 훨씬 뛰어난
"갈릴리 사람"
즉 예수님 같은 분은 일찍이 나온 적이 없었다. 1세기에는 사도 바울의 이름만큼 눈부시게 빛난 이름이 없다. 또 역사에서 주체가 되어 이끌어 가는 것은 유대인들이다.
유대인들이 보존되어 왔다는 것은
"역사의 기적"이다.
프레드릭 대왕은 "성경의 영감에 대해 한 마디로 증명해 보라"고 왕궁의 목사에게 말하자 그는 한마디로 "폐하, '유대인'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유대인은
"타고 있으나 소멸하지 않는 가시덤불"
로 상징 될 수 있다.
우리는 이 유대인들이 보존되어 온 놀랄 만한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나님의 그들에게 중요한 몇 가지 사명을 맡기고, 그 일을 수행하도록 시켰다고 가정한다면 이것을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몇몇 개인들을 세우셔서 특별한 사명을 맡기신 것을 믿는다. 그러므로 한 민족을 세우신 것도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는가?
첫 번째로 우리는 유대인을 세우신 목적은 하나님이 한 분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가르치기 위한 것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브라함 시대에 다른 모든 민족들은 우상 숭배, 자연 숭배와 다신교에 빠져 있었다. 2000년간(B.C.1921-A.D.30) 유대인을 제외한 어떤 민족도 하나님이 한 분이라고 믿고 이것을 가르친 적은 없다. 유대인은 다른 나라에 대해 "유일신교(Monotheism)"의 선구자가 된 것이다. 유대인들의 영향을 받지 않은 나라들은 여전히 유일신교가 되지 않았다.
두 번째로 유대인은 성경을 기록하고, 보존하고, 전하도록 세워진 민족이다. 즉 말씀을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이다(롬2:1-2).
모든 성경은 유대인들에 의해 기록되었다. 유대인들은 성경을 보존하는데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고 또한 소중히 지켜 왔다. 만약 그들이 아니었다면 오래 전에 성경은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세 번째로 유대인은 이 세상을 구할 구주를 보내기 위해 세우셨다. 예수님은 누구인가? 유대인이다. 성경에는 그분의 족보가 아담부터 베들레헴에 출생하시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네 번째로 도적적인 타락에서부터 세상을 구하기 위해 유대 민족을 세우셨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라"
(요4:22)라고 하신 것은 유대인을 통해 세상의 구주인 그리스도가 온다는 단순한 의미인가? 그렇다면
"너희는 땅의 소금이라" 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 유대 민족이 세상의
도덕적인 부패
를 막는 도구가 되어야 하며, 만일 민족들 가운데 유대인들이 사라진다면 또한 마치 노아가 그의 가족들이 방주 안에 있을 때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을 멸하신 것처럼, 또 롯이 소돔과 고모라에서 피한 후에 하나님이 그 광야의 도시들을 멸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지상에서 멸하실 것이 아닌가?
베드로가 초대 교회 회의에서 말한 내용(행15:13-18)과 로마인들에게 보내는 바울의 서신(롬11:1-5,11,12,15,17,23-27)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예수님의 말씀이 후자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즉, 각 민족들의 구원과 지구상의 어느 민족의 존재 유무는 도덕적이든 육체적이든 간에
한 민족으로써 유대 민족의 보호와 존속됨
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제 유대 민족의 역사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THEIR PAST
역사 초기인 B.C. 1936년, 대홍수 있은 후 412년이 지났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갈대아 우르에서 셈의 후손인 아브라함을 불러내어 한 새로운 민족이 아비가 되게 했다.
{그때 주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고향과 네 친족과 네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할 것이며 네게 복을 주고 네 이름을 위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되리라. 너를 축복하는 자들에게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리라. 네 안에서 땅의 모든 족속들이 복을 받을 것이라.}
이것은 조건적인 약속이 아니며 성경의 어느 곳에도 이 말을 번복하는 구절이 없다는 사실을 주목하라.
아브라함은 60세에 부르심을 받았으나, 이교도이며 우상 숭배자였던 그의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15년 동안 하란에 머물렀다. 그 후에야 그는 "약속의 땅"으로 떠나간 것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십여 차례 나타났는데, 이것을 "하나님의 현현(Theophanies)"이라고 한다.
갈데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발전적인 것이었다. 하나님의 약속은 "땅"에 관한 것이었고 그의 자손이 "큰 민족을 이루리라"는 것이었다(창12:1-2). 세켐에서는 "내가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창12:7)고 하신 약속이 있었으며, 벧엘에서는 모든 땅을 "네 씨"에게 주고 "티끌 같게 하리라"는 것이었다(창13:15-16). 마므레에서는 그의 자손들이 "하늘의 별들"처럼 많아지고 그 "땅"은 "이집트 강"에서부터 "유프라테스 강"까지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다(창15:15,18). 그리고 모리아에서도 그의 자손에 관한 약속을 재확인하셨다(창22:16,17).
이 약속은 그의 아들인 이삭(창26:1-4)과 그의 손자 야곱(창28:10-15)에게까지 조건없이 확고히 하셨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약 70명에까지 이르렀을 때 그의 자손들이 이방 나라에서 타국인이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예언대로 이집트에서 그 후손들은 400년 동안 괴로움을 당하였다(창15:13-14).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과 혼인하지 못하게 하시고 그들이 단일 민족으로 번성할 시간을 주시기 위해, 그들을 카나안을 떠나도록 길을 마련하셨다. 먼저 요셉을 이집트로 보내시어 땅에서 기근이 시작되었을 때 유대 민족들의 위한 양식을 준비하도록 하신 것이다. 그들은 그곳 고센 땅에서 구분되어 살게 하셨다.
그들의 역사에서 다음으로 중요한 사건은 이집트를 탈출한 사건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실 때가 되자 노예 생활의 어려움을 더욱 더하여 그들을 이집트를 떠나고 싶도록 하셨으며, 결국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 모세를 보내어 구원하도록 하셨다. 그들이 이집트에서 나온 후 일년이 안되어 율법이 주어졌고, 성막이 지어졌으며, 희생 제물을 드리는 제사 의식이 시작되었고, "유대 국가"가 성립되었다. 그러나 그 해가 다 지나갈 무렵 카데스 바데아에 도착하자 그들은 약속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더 행군해 나아가길 거절했다. 이 결과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토록 하셨다. 그들은 그곳에서 기적적으로 생활을 영위했으며 "불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되었다.
40년의 광야 생활이 끝났을 때 여호수아의 인도 아래 그들은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에 들어가 차지하였다.
이것으로 그들은 역사의 세 번째 시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를 "재판관 시대"라고 한다. 이 재판관 시대는 450년간 지속되었다. 이런 형태의 국가는 신정 통치로서 이후로 장로들과 재판관들에 의해 다스려졌다. 그러나 백성들은 보이지 않는 왕의 통치에 만족하지 못하고 선지자 사무엘을 찾아가 다른 민족들처럼 보이는 왕을 달라고 요구했다. 사무엘은 이들의 요구를 기뻐하자 않았으나, 이 문제를 하나님께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주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시기를 "백성이 네게 말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그들의 음성을 들으라. 그들이 너를 거역함이 아니요, 나를 거역하여 나로 그들을 다스리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삼상8:7).
사무엘은 백성들이 택하는 그 왕이 자신들에게 행할 것들에 관하여 엄중하게 경고했다. 하지만 백성들은 그의 말을 듣기를 거부하였으며, 결국 사울이 왕위에 올랐다. 이스라엘 역사의 네 번째 시기의 시작이었다. 사울은 40년간 통치하였고 그 뒤를 다윗이 계승하였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왕으로서 그 또한 40년간 통치하였으며 다음 40년은 솔로몬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솔로몬의 통치 시대는 최초의 성전이 건축되었으며, 그의 정치는 가장 영광스러웠으나, 많은 첩들과 후궁들을 거느리고 또한 이방 신들을 따라가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의 잘못된 통치로 인하여 유대 왕국은 쇠퇴되기 시작했다.
솔로몬이 죽은 후 B.C. 975년에 왕국이 분열되었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은 유다와 베냐민, 두 지파를 거느리고 예루살렘 성전을 차지했다. 그리고 대적자로 나선 여로보암은 남은 열 지파를 다스리는 왕이 되었고 사마리아에 수도를 세웠다. 이스라엘이라고 불린 이 북왕국은 급속히 세력이 기울어 이들 왕국의 열 지파는 B.C. 721년에 앗시리아에 포로가 되었으며 남쪽 유다 왕국은 100년 정도 더 지속되다가 B.C. 597년에 이르러 느브캇네살 왕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되었다. 이것으로 계속적인 위대한 선지자들에 의해 예언되어 왔던 지파간의 싸움은 끝이 나게 되었다.
유다가 포로로 잡혀가고 예루살렘이 멸망함으로써 성경에 예언되 있는 "이방인들의 때들"이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
"이방인들의 때들"
"The Times of the Gentiles, "
에 관해서는 다니엘서에서 전체적인 윤곽을 묘사하고 있다.
유대 역사의 다섯 번째 시기는 예레미야25:11절에 예언된 대로 70년간의 포로 시대가 끝난 B.C. 536년부터 시작되었다. 약 4만명의 포로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수도와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했다. 성전은 그 후 20년 지난 후에야 비로소 완성이 되어 바쳐졌다. 외곽 성벽은 70년이 더 지난 B.C.445년이 되어서야 완성되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가도록 허락 받았지 자신들의 주권 행사는 여전히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유대 당에 대한 자치 제도는 인정되었지만, 그 땅을 점령한 정복자들의 허락이 있어야만 했다.
B.C. 168년에 시리아의 왕, 안티오쿠스(Antiochus E Piphanes)는 이집트와의 전쟁에서 팔레스타인을 빼앗고 두 차례나 예루살렘을 휩쓸었다. 그는 성전을 황폐하게 만들고 제사를 못하게 하고 유대인들을 학살하였다. 이러한 악행으로 인하여 마침내 마카비(Macabees)형제의 지휘하에 폭동이 일어나기까지 이르렀다. 이들의 반란은 B.C.166년에서 B.C.40년까지 계속되었다.
B.C. 63년에 유다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으며 그 후 60년 동안 로마 제국은 성지 박해를 한 층 더하였다. 이즈음 약 B.C.5년에 예언자들은 다니엘이 예언한 구주의 오실 때가 가까웠음을 알고(단9:25),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며 성전을 자주 찾아갔다(눅2:25,26).
그 해 9월경 예수님께서는 베들레헴에 탄생하시어 목자들이 그를 방문했으며 시몬과 안나에 의해 수 주일이 지난 후에 성전에 알려졌다. 또한 동쪽에서 온 현자들이 경배하기 위해 찾아왔다. 예수님께서는 이집트로 피해 유년, 청년 시절을 보내신 후, 나사렛을 돌아오셨다. 30세에 요단강으로 오셔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역을 시작하셨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분 자신이 메시아라는 가르침을 거절했으며 "영광의 주님"을 이방인들과 합하여 십자가에 못박았다. 그 뒤 A.D. 70년에 로마군이 쳐들어와 예루살렘과 성전을 로마의 타이터스 장군이 파괴했으며 유대인들은 뿔뿔히 흩어지게 되었다.
II. THEIR PRESENT.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과 더불어 유대 민족의 슬픈 역사는 시작되었다. {모든 백성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그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마27:25)고 했던 그들의 외침이 그대로 성취된 것이다.
A.D.50년 예루살렘은 로마군의 침입으로 3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학살되었고, 그들의 최악의 고난은 유대의 로마 총독인 게시우스 플로러스에 의해 A.D.66년에 시작되었다. 그의 폭정은 각처에서 항거하는 시위를 유발시켰다. 더욱이 폭군 네로는 6만명의 병사를 보내 베스파시안으로 하여금 그의 아들인 타이투스와 함께 예루살렘을 치도록 명령하였다. 그는 갈릴리 북쪽에서 아스모니아인의 유명한 장군이자 역사가인 요세푸스와 접전하게 되었다. 요세푸스는 요타파타에 진을 치고 항거했으나 힘이 부족하여 결국은 40,000명 이상의 병력을 잃고 패하였다. 곧이어 갈릴리는 정복되었고 수천명이 전쟁으로 인하여 죽었다. 그러나 유대와 예루살렘의 함락은 베스파시안이 네로의 죽음을 듣고 철수하는 바람에 일단은 유보가 되었다. 그러나 그후 베스파시안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아들인 타이투스를 시켜 성지를 점령하고 예루살렘을 함락시키도록 했다.
A.D.70년 4월, 10만을 헤아리는 로마군은 예루살렘을 향해 진격해 왔고 예루살렘은 그 진격을 당해내기에는 너무도 허술했다. 더욱이 성안은 서로 경쟁하는 파벌들 사이에 통수권을 놓은 갈등으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로마군의 포위는 4개월이나 계속되었고 성안에는 기근이 돌아 자기 자식을 먹는 참혹한 일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포위된 상황이 더 걷잡을 수 없이 비참해지자 타이투스는 이 상황에 대한 자신의 책임 없음을 하나님 앞에 변명하였다.
예루살렘성은 세겹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90개의 탑으로 방어되었다. 그러나 마침내 A.D.70년 8월 5일, 아토니아 성탑이 점령되었고 로마군들은 성벽으로 몰려들어갔다. 타이투스는 세계 불가사의 중의 하나라고 일컬어지는 훌륭한 유대 성전의 건물들은 훼손시키지 말라고 명했지만, 병사들에 의해 헤롯 성전은 화염에 휩싸이게 되었고 결국은 모두 무너져 허탈하게도 돌무덤만 남기고 말았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 전쟁으로 100만이 넘는 사람들이 죽었고, 9만 7천명 정도가 살아서 포로가 되었으며, 그 중 건장한 청년들은 로마로 끌려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로써 다니엘이 예언한 바가 이루어진 것이다. {또 장차 올 통치자의 백성이 성읍과 성소를 파괴하리니 그 종국은 홍수를 (뒤덮인 것) 같을 것이요 전쟁의 종국에는 황폐함이 결정되느니라}(단9:26).
예루살렘이 타이투스에 의해 멸망되었고 유대인들은 각처로 흩어졌지만 그것이 유대 역사의 끝은 아니었다. 그로부터 65년 후인 A.D.135년, 유대인들은 로마 권력에 대항할 수 있을 만큼 세력을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로마의 하드리안 황제는 3년 반이나 계속되었던 전쟁을 일으켜서 유대인들을 완전히 이산시켜 놓았다. 그는 팔레스타인을 완전히 휩쓸어 58만명을 죽이고 시온을 마치 쟁기질하듯 파헤쳐 놓음으로 미가서 3:2의 예언을 성취시켰다. 그 후 팔레스타인에는 유대인들이 거의 살지 않게 되었다.
A.D. 362년 배교자 줄리안(Julian)황제는 예루살렘을 재건하여 주의 예언이 거짓임을 보이려고 시도했지만 폐허에서 불이 일어나 그의 군사들을 쫏아내었다.
A.D. 140년 하드리안 황제 시대부터 콘스탄틴 황제까지 유대인들은 추방된 로마 제국 전역에서 상당히 번성하였다. 심지어 그들은 초대 교회 시대의 이교도 박해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콘스탄틴 황제가 A.D. 312년에 기독교로 개종하자 사태는 완전히 달라졌다. 오히려 유대인들은 비난과 박해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누리던 제국의 호의와 특권을 빼앗기고 가는 곳마다 배척 당했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종교를 가질 자유를 누리고 시민으로서 권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암흑 시대는 "성전(聖戰)"이라는 "제1차 십자군 전쟁 때인 A.D. 1096년에 이르기까지 더욱 심화되었다. 그들에게 죽음이 장막이 드리워졌으며 이것은 종교 개혁이 지나서야 비로소 풀려날 수 있었다.
영국의 박해
A.D. 1020년 캐뉴트(Canute)왕은 모든 유대인들 영국에서 추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A.D. 1096년에는 런던의 크라플 케이트 지역만이 유대인에게 묘지로 허락되었다. A.D. 1096년 유럽에서는 침례를 거부하는 모든 유대인들을 학살할 목적으로 십자군 전쟁이 시작되었다. 헨리 2세는 십자군 전쟁 중에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유대인들에게 6만 파운드를 내라는 명령을 내렸다. A.D. 1189년 리차드1세가 즉위하였을 때 유대인들에 대한 살인적인 반란이 일어나 런던에 살던 유대인 가구는 한 집도 남김없이 강탈당하고 살해당했다.
그 다음해 "요크성의 비극"이 발생했는데, 요크성에 랍비를 비롯한 500명의 신도들은 감금되어 살아날 길을 전혀 찾지 못하자 서로 죽이기에 이르렀으며 랍비의 우두머리가 불을 질러 성은 화염에 휩싸였다. 포위하고 있던 병사들이 성문을 부수고 들어갔을 때는 감금되어 있던 유대인들은 모두 한 무더기가 되어 제단에 바쳐진 제물처럼 발견되었다.
A.D.1272년 에드워드1세 때까지 왕들은 스폰지에서 물을 짜내듯 그들을 억압하여 돈을 모으도록 허락하였다. 에드워드1세는 16,500명에 달하는 유대인을 영국에서 쫓아내었다. 그후 4세기 동안 영국 땅에는 유대인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프랑스의 저주
A.D 1306년 예루살렘 멸망을 기념하여 금식하는 그 날 이른 아침에 프랑스에 거주하는 모든 유대인들을 남녀노소 상관없이 십만 명이나 왕실에 그들의 재산을 모두 빼앗기고 국외로 추방되었다. 10년이 지나면 돌아와도 좋다는 허락이 내려졌으나 광분한 양치기들과 강도들에 의해 그들을 수천 명이나 살해되었다. A.D 1883년에 또 다시 유대인에게 프랑스 식민지에서 떠나라는 명령이 내려졌으며 A.D 1723년에 비로서 루이14세가 유대인들에게 프랑스에서 주택을 소유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이것으로 박해의 물결이 그 방향을 달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피로 물든 독일의 손
1348년에 1350년 사이에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어 전 인구의 ¼의 생명을 잃었으나, 유대인들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왜냐면 그들은 생활이 깨끗하고 레위기에서 요구하는 위생적인 생활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으로 인하여 그들만이 흑사병에 제외되었다는 것 때문에 병의 발생에 대한 의심을 받게 되고 급기야 우물이나 샘에 독약을 풀었다는 죄목을 받게 되었다. 독일에서는 독약 제조, 운반, 용기의 색, 취급자 명단을 발표하여 시민에 알려지게 하였다. 그 결과로 그들은 끊는 냄비와 활활 타오르는 불에 손을 넣는 고문을 당했으며, 전 독일을 휩쓸고 다니면서 유대인을 멸종시켜야 한다며 설교하는 광신자들의 명령을 따라야 했다. 스트라스버그에서는 그 마을 전체 인구를 차지하는 2천명의 유대인들 모두가 화형대로 끌려가 불살라졌다. 그들은 카톨릭 자녀들을 유괴하여 유월절을 양 대신 사용했다는 혐의와 신성한 성찬식의 빵을 훔쳐 칼로 잘랐다는 혐의였다. 1560년 프라하(체코의 수도)로부터 추방령이 내려졌고 이후 콘스탄티노풀에서는 유대인 구역에 살던 3천여 가구가 불타고 5천만 크라운(영국의 화폐단위)에 해당하는 재산이 몰수되었다.
스페인의 대학살(Holocausts )
스페인에서는
"종교 재판소"
라는 막강한 권력을 지닌 기구가 있었다. 이것은 그들을 위협하고 신앙을 버리고 배교한 유대인으로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땅이 갈라져 그들을 삼키듯이 백명의 남녀가 사라졌다. 결코 돌아오지 않는 사람도 있었으며, 어떤 이들은 차갑고 어두운 지하 감옥에서 오랫동안 감금되어 창백하고 마른 반미치광이가 되어 돌아오곤 하였다. 가끔 화형장에 이르는 거리로 굽이치는 행렬이 보였고, 재로 변할 제물들은 불 속에 던져지는 순간까지 명령이 철회되기를 바라면서 고문을 당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이단 심문소에 끌려나와 통로를 지나
"철 처녀(Iron Maiden)"
의 방이라고 하는 곳에 이른다. 이 곳에는 속이 텅 빈 쇠로 만들어진 여인상인 철 처녀는 스프링을 건드리면 문이 열리고 수많은 제물의 피로 녹슨 쇠못이 박힌 내부 표면을 드러낸다. 사형수가 발을 놓기가 무섭게 못은 날카로운 비명 소리와 함께 몸 속에 파고들어 신체를 갈기갈기 찢어 놓고 희생물의 피가 뿌려지고 곧 아래에 놓인 불타는 화로 속에 던져졌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1492년 페르나드 왕과 이사벨라 왕비는 거주하는 모든 유대인에게 추방령을 내렸다. 유대인은 그 칙령을 면해 보려고 60만 크라운을 바쳤다. 왕과 왕비는 망설이며 그 돈을 받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졌다. 그 때 스페인 종교 재판장 톨쥐마다가 겸연쩍은 그 왕 앞에 서서 십자가에 못박히 예수상을 쳐들고 외쳤다.
"가롯 유다에게 은 삼십에 팔린 이 사람을 보십시요. 이제 왕께서는 그를 더 비싼 값에 하나님 앞에서 이익을 얻으려 하십니까?"
그 왕은 완고한 도미니카 수도사 앞에서 몸을 떨고 유대인들을 내보내야만 했다. 그들에게는 준비 기간으로 4개월이 주어졌다.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아무데도 정착할 만큼 호의적인 곳이 없었다. 일부는 아프리카 노예로 팔려 갔다. 많은 유대인들은 이탈리아에 도착했다. 그들이 당한 고통은 말로 이루 표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2백년이 지난 1680년에도 스페인의 유대인 확대는 여전했다.
끔찍한 악몽처럼 몇 세기 동안 무시무시한 형벌과 박해의 역사가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일어났다.
하지만 이러한 박해의 기나긴 밤도 마침내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영국이
"1753년 귀화령"
을 통과 시켰을 때 박해의 물결이 물러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1776년 독립 선언"
이 서명되자 찬란한 자유의 아침이 찾아오게 된 것이다. 다만 러시아의 유대인을 제외하고 모든 나라에서 오늘날까지(1920년) 비교적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박해의 긴긴 시간 동안에도 유대인이 그 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는 기적 같은 사실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라는 것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수많은 고통에 대한 그들의 인내의 비결은 다음의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1. 그들의 율법이다.
이것은 유대인들을 질병으로부터 보호했고 감정을 제어하여 안정시켰으며, 유대인들의 충동적인 성격을 제어시켰고 후손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2. 그들의 민족적인 소망이다.
밝게 빛나는 소망은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그들로 하여금 꿈을 가지고 살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바로
"메시아가 오리라"
는 소망이었다. 메시아가 오리라는 이 소망은 이스라엘의 기나긴 밤 동안 샛별처럼 더욱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소망은
"의의 태양"
이 떠올라 어둠을 몰아내는 여명의 그 날로 그들의 생각을 이끌어 갔으며 깊은 강을 채우는 물처럼 정의와 평화가 충만한 밝은 천년 왕국을 이 땅에서 꿈꾸었다.
오늘날 유대인에게는 광야에서처럼 낮의 구름 기둥도 밤의 불기둥도 없다. 그들은 옛날처럼 제사장도, 제물도, 제단도 없다. 그들은 아직도 유월절을 지키지만 유월절 어린양을 잡지는 않는다. 모든 제물과 제사는 중지되었다. 그들에게는 왕도, 재판관도, 선지자도, 영감을 받은 기록자들도 없다. 우림과 툼밈(제사장의 가슴에 차던 물건 출28:30)은 아무런 계시도 나타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존귀하지만 아무런 밝은 소망도 없다. 그들이 지금까지도 기다리고 있는 마지막 선지자, 즉 메시아는 바로 그들이 배척하고 죽인 "갈릴리 사람"이었지만, 그들은 아직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요셉을 은 이십 냥에 팔아 버린 후 이집트의 왕좌에 앉아 있는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던 그들의 선조처럼 그들은 예수를 잡아 은 삼십에 팔아 버렸고 그 예수는 지금 하늘의 왕좌에 앉아 계시지만 그들은 눈이 가려져 알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그들이 처한 상황은 호세아 3:4의 예언, 즉
{이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들 동안 왕도 없고, 통치자도 없고, 희생제도 없고, 형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트라빔도 없이 거하다가}
는 것이 성취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기도 한다. 예루살렘은 반드시
{또 그들은 칼날에 쓰러질 것이며, 모든 민족들에게 사로잡혀 갈 것이요, 또 예루살렘은 이방인들의 때가 찰 때까지 이방인들에게 짓밟히리라.}(눅21:24)고 하지 않았던가?
바울은 이것에 대하여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이방인들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는 이스라엘의 일부가 완고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롬11:25-26)
우리는 아직 유대인이 이방 국가나 교회의 자리에 대신 차지하고 있지 않음을 알고 있다. 그들은 다시 이 땅 위에 국가들 중에 높임을 받을 것이다. 이 때문에 그들이 여태껏 보존되어 온 것이다.
로마서 11장에서 다음과 같이 반문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라고 질문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느니라}(2절) 11절에서 바울은 두 번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들이 실족함으로 넘어졌느냐?}, 즉 그들이 "다시 일어나지 못하도록 넘어졌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바울의 답변은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그들의 실족함으로 구원이 이방인들에게 이르렀으니 이는 그들을 시기 나게 하였느니라}(롬11:11) 이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 번째는 유대인이 실족하여 넘어짐으로 이방인이 구원받을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방인의 구원이 유대인을 시기 나게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버리셨다면 왜 그들이 시기하기를 원하시겠는가?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들의 실족함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고 그들의 쇠퇴가 이방인들의 부요함이 되었다면, (즉 만일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주어져 그들에게 그러한 축복되었다면)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은 어떠하겠느냐?}(롬11:12).
즉 유대인이 하나님께로 회개할 때 그것은 개인이 아니라 "민족적 부활"이 될 것이다. 바로 다음 사도 바울은 이같이 말한다.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해가 된다면 그들을 받아들임은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나는 생명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즉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돌아왔을 때 이것은 개인이 아닌
"민족적인 부활"
로 "부활"과 같은 것이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은
"두 올리브 나무"
에 대한 이야기로 바꾼다.(롬11:17-27).
하나는 "참올리브나무"라 부르고 다른 하나는 "돌 올리브나무"라고 부른다. 참 올리브나무 중 일부 가지만 꺽여진 것이다. 왜냐하면 엘리야가 살던 시대에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는 칠 천명이 있었던 것처럼 "은혜의 선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기 때문이다.(5절) 그리고 우리는 참 올리브나무의 좋은 가지가 몇은 잘려 나갔지만 뿌리와 줄기는 아직 살아 있어 거기에 돌 올리브나무가 접붙여져서 참올리브나무의 한 뿌리와 가지가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여기서 우리는 참 올리브나무는 뿌리까지 뽑혀 죽은 것이 아니라는 점과 잘려 나간 그 곳에 돌 올리브나무가 접붙임을 당함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결국 원 뿌리가 살아 참올리브나무와 돌올리브나무 모두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이 이방인들을 일깨워 주기 위해 설명했다. 로마에 있는 이방인 신자들은 자신들이 유대인들을 대신한다고 기독교가 유대교를 차지했다는 것을 자랑삼았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교회의 수많은 사람들이 기독교가 유대교를 차지하고 성경의 유대인들을 향한 모든 약속들이 교회가 차지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 가지들에게 자랑하지 말라. 네가 자랑하여도 네가 뿌리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지탱하는 것이니라.}(롬11:18)
그리고 바울은 그들에게 가지가 잘려진 것은 접붙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믿지 않은 것 때문이며 유대인의 불신앙이 오히려 이방인들에게 유익이 되었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있다. 또한 잘려 나간 참올리브나무의 가지들이 회심하여 돌이킨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접붙이실 것이다(롬11:17-26).
우리는 여기서 유대인이 회개하고 불신앙에서 돌이킨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그들의 본토로 회복하실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III. 유대인들의 미래
THEIR FUTURE.
만약 누가 유대 민족이 아닌 다른 민족의 미래에 대해 토론하라 한다면 우리는 먼저 그러한 시도를 포기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상치 못하는 사태로 인하여 틀려 버릴 수 있는 가능성 있는 상상에 그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대인에게는 "성경"에서 기록된 특이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성경은 유대인의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에 관해서도 예언하고 있기 그에 관한 모습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회복
1. 사실로서
{그러므로, 오 내 종 야곱아, 너는 두려워 말라. 주가 말하노라. 오 이스라엘아, 놀라지 말라. . . . 이는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원할 것이요 내가 너를 흩어 버렸던 모든 민족들의 결말은 있게 할지라도, 내가 너의 결말은 있게 하지 않겠노라. 그러나 내가 너를 공의로 바로잡으리니, 처벌하지 않은 채 그대로 두지는 아니하리라.}(렘30:10-11)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사로잡힌 자를 다시 데려오리니, 그들이 황폐한 성읍들을 세워 그 곳에 거주할 것이요, 또 그들이 포도원들을 경작하며 그 포도주를 마시겠고, 그들은 또한 정원들을 만들어 그 열매들을 먹으리라. 내가 그들을 그들의 땅에다 심으리니, 그들이 다시는 내가 그들에게 주었던 그들의 땅에서 뽑히지 아니하리라. 주 너의 하나님이 말하노라}(암9:14-15).
그러나 위의 말씀을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왔을 때 이미 성취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왜냐면 유대인들은 그 이후 다시 그들의 땅에서 쫓겨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약속은 그들이 다시는 그들의 땅에서 끌려 나오지 않으리라는 말씀은 분명히 미래의 회복을 말하는 것이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것은 처음 회복이지만 성경은 두 번째 회복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그 날"(천년왕국의 날)은 주께서 다시 "두 번째"로 손을 펴사 남아 있는 그의 백성의 남은 자들을 회복시켜 앗시리아와 이집트와 파드로스와 쿠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의 섬들로부터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사11:11).
유대인은 결코 한번 밖에 회복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바빌론에서였다. 이집트에서 카나안으로 간 이집트를 탈출한 것은 회복이 아니었다. 만약 전에 소유한 적이 없었다면 회복했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팔레스타인인 여호수아가 정복하기 이전에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의 손에 들어간 적이 없었다.
다시 유대인들은 "바빌론 포로"부터 돌아왔던 때의 "동쪽"이 아닌 "모든 나라들"로부터 "북쪽"에서 되돌아 올 것이다
{주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보라, 그 날들이 오나니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 땅에서 인도한 주의 살아 계심으로는 더이상 말하지 않고 그대신 북쪽 땅과 그들을 쫓아내었던 모든 땅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자손을 인도한 주께서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었던 그들의 땅으로 그들을 다시 데려오리라.}(렘16:14-15)
그리고 그들은 결코 다시는 흩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는 내가 그들을 좋게 하기 위하여 그들 위에 내 눈을 둘 것이며 내가 그들을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리라. 또 내가 그들을 세우고 넘어뜨리지 아니하며 그들을 심고 뽑아내지 아니하리라}(렘24:6).
이 사실은 예레미야31:35-36절에서 더욱 확실히 말해주고 있다.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주가 해를 낮의 빛으로 주고 달과 별의 법칙들을 밤의 빛으로 주었으며 파도가 소리칠 때 그 바다를 나누었도다. 만군의 주가 그의 이름이라. 만일 그러한 법칙들이 내 앞을 떠난다면 그때는 이스라엘의 자손도 내 앞에서 영원히 나라가 되는데서 끊어지리라}(렘31:35,36).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들 자신의 땅으로 다시 회복될 때 모든 "열두 지파"가 돌아올 것이다. 로마서 11:26에 바울이 말하기를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하였으며, 에스겔은 그의
"마른 뼈들의 계곡"
의 환상에서 그 뼈들이 "모든 이스라엘의 집"을 예표한다고 들었다(겔37:11).
여기서 의미하는 바를 천년 왕국이 시작하기 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모든 후손들을 부활시켜 그들을 팔레스타인의 땅에 다시 두신다고 가르치는 몇몇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에스겔 37:12을 근거로 하고 있다.
{보라, 오 내 백성아, 내가 너희 무덤들을 열어서 너희로 너희의 무덤들로부터 나오게 하여 너희를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오리라.}(겔37:12).
그런데 그러한 해석은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사실이 될 수 없다. 첫째로, 팔레스타인 땅은 그렇게 많은 사람을 수용할 만큼 넓지 않고, 둘째, 이것은 죽은 몸들의 육체적인 부활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백성의 "민족적 부활"을 묘사했다. 11절에서 "뼈들"의 부르짖음은
{우리의 뼈들은 말랐고 우리의 소망은 사라졌으며 우리의 부분은 완전히 끊어졌도다}
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죽은 이스라엘의 개인적인 부르짓음이 아니라 그의 땅에서 "끊어져" 죽은 민족의 부르짓음이다. 이것은 영적으로 그리고 민족적으로 죽은 백성의 울부짓음이다.
"무덤들"이라는 단어에 있어서 우리는 "문자적인 무덤들"로 이해해서는 안되는데, 이는 뼈들이 무덤들 안에 있지 않고 골짜기에 흩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본문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즉 "민족들의 묘지에" 포로의 상태로 묻혀있는 이스라엘을 다시 데려와 그들을 다시 그들 자신의 땅에 둘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다음 아래 구절로 인해 확실해 진다.
{내가 "민족들 가운데" 있는 너희 무덤들을 열어서 너희로 너희의 무덤들로(민족들 가운데서 불러내어) 부터 나오게 하여 너희를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오리라}(겔37:12).
여기에서 이스라엘 땅 안에 있는 어떤 무덤의 열림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해지지 않았음을 주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이스라엘의 죽은 자들의 일반적인 부활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다른 나라에 살던 이스라엘인들만을 말한다.
그리고 다음 두 구절이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 이는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의 무덤들을 열어서 너희의 무덤들로부터 너희를 나오게 할 때 (즉, 그들 자신의 땅으로 돌아왔을 때), 이것은 너희는 내가 주인줄 알지니, 내 영(성령)을 너희 안에 두리니 그리하면 너희가 (민족적으로) 살리라. 또 내가 너희를 너희의 본토에 두리니 (겔48:1-29절에 지파들의 땅이 묘사되있다.) 그 때에 너희는 나 주가 그것을 말하였고 수행한 줄 알리라. 주가 말하노라.'}(겔37:13,14).
이것은 이스라엘이 그들 자신의 땅에 다시 모여진 후 그곳에서 그들이 먼저 심판을 받고(겔20:34-38, 22:19-22) 그 다음에 회심할 것이다(겔36:24-27).
만일 우리가 오직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서만 언급한 것으로서 다니엘이 언급한 부활을(단12:2) 듣고자 한다면, 천년 왕국 전에 다니엘의 "백성", 즉 유대인들의 일반적인 육체적 부활이 없다는 것이 더욱 확실해 지는데 이는 단지 얼마 만이 그 때에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그가 분명하게 말했기 때문이다.
모든 열두 지파의
민족적 회복
을 의미함은 "마른 뼈들의 계곡"의 환상에서 명백해 진다(겔37:15-28).
선지자는 막대기를 가져다가 그 위에 쓰라고 하는 말을 듣는다.
{유다와 그의 동반자 이스라엘의 자손을 위하여}
이것은 두 지파, 즉 "유다"로 알려진 유다와 베냐민 지파를 의미한다.
그 다음에 그는 또 다른 막대기를 가져다가 그 위에 쓰라는 말을 듣는다.
{요셉, 즉 에브라임의 막대기와 그의 동반자 이스라엘의 온 집을 위하여}
요셉의 아들은 열두 지파 가운데서 요셉을 대표했으며 여로보암의 반란 이후 열 지파는 이따금 그의 이름(에브라임)으로 불렸다(사7:17).
에스겔이 일을 마쳤을 때, 그는 두 막대기를 함께 맞추어서 끝과 끝이 맞도록 하여 한 막대기가 되게 하라고 듣는다. 그가 이 일을 하자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백성의 자손들이 네게 말하여 이르기를 "당신은 이것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우리에게 보여 주지 아니하겠나이까?"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에프라임의 손에 있는 요셉의 막대기와 그의 동료 이스라엘의 족속들을 취하여 그들을 그와 함께, 즉 유다의 막대기와 함께 놓아 한 막대기가 되게 하리니, 그들이 내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 하라. 네가 쓴 막대기들을 그들의 눈 앞에서 네 손에 쥐고 그들에게 말하라.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의 자손을 그들이 간 이방 가운데서 빼어 내어 사면에서 그들을 모아서 그들의 본토로 데려와 이스라엘의 산들 위에 있는 땅에서 그들로 한 민족을 만들고 한 왕이 그들 모두에게 왕이 되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할 것이요, 그들이 다시는 결코 두 왕국으로 나뉘지 아니하리라}(겔37:21-22).
이 구절에서 우리는 모든 열두 지파인
"모든 이스라엘의 집"
이 그들 자신의 땅에 다시 모여 에스겔 48장에 기술된 방식대로 그 땅을 재분배 받을 것을 보게 된다.
{그날에 "유다의 집"이 "이스라엘의 집"과 함께 동행하리니 그들이 함께 북쪽에서 와 내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유업으로 주었던 땅에 오리라}(렘3:18).
잃어버린 열 지파
만일 열두 지파 모두가 그 거룩한 땅에 다시 회복될 것이라면, 자연적으로 "지금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유대인들도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자손들인데 그러면 남아 있는 "열 지파"는 어디에 있는가? 어떻게 그들이 동일시 될 수 있는가? 많은 자료들이 영어를 쓰는 종족인 "앵글로색슨들"이 그 잃어버린 열 지파들의 후손들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쓰여졌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될 수 없는데 이는 이스라엘에 관하여 말하여지기를 {이 백성이 홀로 거할 것이요 민족들(nations) 가운데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 아니하리라}(민23:9). 그러나 "앵글로 색슨족"은 민족들 가운데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스라엘은 많은 날 동안 왕이나 통치자나 성전 없이(호3:4) 있게 될 것이다. 앵글로 색슨족은 왕들과 대통령들(presidents)과 통치자들과 종교적 경배의 핵심 인물들이 있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도 그 거룩한 땅 밖에서는 적은 숫자가 될 것이고 민족적인 저주 아래(신4:26,27; 28:62-68)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 중 어느 하나도 "앵글로 색슨족"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무할례"의 형벌은 "끊어지는 것"인데(창17:12-14) "앵글로 색슨들"은 "무할례"이며, 따라서 유대인들의 특권을 부여받지 못한다.
오늘날 유대인들은 모든 열두 지파들의 대표자들이다.
1. 이스라엘의 몫은 모든 지파에서 B.C.975년에 솔로몬의 왕국이 나뉠 때에 유다에게도 주어졌다(대하11:5,13-17).
2. 많은 수가 르호보암의 손자, 아사의 때 이스라엘에서 유다로 도망했다(대하15:8,9).
3. 열 지파가 B.C.625년에 포로로 잡혀간 이후 96년이 지나서, 히스기야의 후손 요시아가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지켰다. 또한 많은 사람이 "이스라엘의 남은자"로 참석했다(대하35:17,18).
4. B.C.605-587년에 유다가 바빌론으로 끌려 갔으며 많은 이스라엘 민족들이 그와 함께 끌려갔다.
5. B.C.536년에 유대인들이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올 때 바빌론과 앗시리아가 동일시 되었으며, 이스라엘은 유다와 마찬가지로 돌아올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 에스라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그가 몇 이스라엘인들을 데려다가(에스라7;28), 성전이 봉헌되었을 때 그들은 모든 열두 지파들을 위하여 희생제물을 드렸다고 했다(에스라6:16,17).
결론적으로 포로에서 돌아온 자들은 모든 열두 지파들을 완전히 대표하고 있다. 이제, 바빌론에서 돌아온 자들의 후손들이 A.D.70년과 A.D.135년에 흩어졌기에 우리는 "그들이 없는 곳이 어디있겠는가?"라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을 조심스럽게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위의 설명으로 완전하게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에스겔 37:15-25에서 "열두 지파" 그대로 미래에 다시 모일 것이라고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어느곳인가 있을 것이다.
존 윌킨스 경은 "나의 영광 이스라엘"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잃어진 곳에서 찾으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불렀을 때 그곳은 우상을 섬기는 곳이었다. 그는 히브리인(건너온 사람)으로 불려졌다. 그러다가 이스라엘이 우상에 빠지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유프라테스강 건너편으로 그들을 돌려보내셨다. 역사에 보면 열 지파가 앗시리아로 잡혀가고 선지자는 그들이 앗시리아로부터 돌아오리라고 예언하고 있다(사11:11,16). 또한 우리는 그들이 아직도 그 곳에 있다고 확실히 추론해 낼 수 있다.
죠세프스는 A. D. 70년경 그들이 그 곳에 살고 있었다고 쓰고 있으며 제롬도 5세기경 그가 쓴 "호세아서 주석'에서 죠세프스와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또 이들이 이주했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들은 페르시아의 오루미아 호수 옆, 쿠디스탄 산맥의 정착지에 사는 어떤 민족들과 동일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들은 평화의 제물, 첫열매, 십일조 등을 바쳐 모세의 율법이 요구하는 여러 형태의 의식을 지키고 있다(윌킨스).
2. 시기에 관하여
a. "이방인들의의 때"가 찰 때까지.
{또 그들은 칼날에 쓰러질 것이며, 모든 이방 나라에게 사로잡혀 갈 것이요, 또 예루살렘은 "이방인들의 때"가 찰 때까지 이방인들에게 짓밟히리라}(눅21:24).
b.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실 때.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제부터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는 복있도다.'라고 말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마23:39).
3. 방법에 관하여
a. 회심하지 않은 채 다시 모인다.
{내가 너희를 이방 가운데서 빼내고 모든 나라에서 너희를 모아서 너희의 본토로 데려와서 그 때에 너희 위에 깨끗한 물을 뿌리리니 그리하면 너희가 깨끗케 되리니 너희 모든 더러움과 너희의 모든 우상들로부터 내가 너희를 깨끗케 하리라. 내가 또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으리라. 내가 너희 육체에서 돌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같은 마음을 주리라. 또 내가 나의 영을 네 안에 두어 너희로 나의 규례대로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나의 명령을 준수하고 행하리라}(겔36:24-27).
b. 회개하기 전에 그들은 심판을 받을 것이다.
{또 내가 능력있는 손과 뻗친 팔과 진노를 부음으로써 백성으로부터 너희를 인도해 낼 것이며 너희가 흩어진 나라들로부터 너희를 모으리라. 내가 너희를 백성의 광야로 데려와서 내가 거기서 얼굴을 마주보고 너희와 더불어 변론하리라. 내가 이집트 땅의 광야에서 너희 조상들과 더불어 변론한 것같이 내가 너희와 더불어 변론하리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또 내가 너희를
"막대기 아래로 지나가게 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언약의 속박으로 데려와서 너희 가운데서 나를 거역한 자들과 나를 거스려 범죄한 자들을 제거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들이 거하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낼 것이나 그들은 이스라엘의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리라. 너희는 내가 주인줄 알리라}(겔20:34-38).
그 다음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 분의
"용광로"
"Melting Pot."
에 던져 넣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모두 찌꺼기가 되니 보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예루살렘 가운데로 모으리라. 그들이 은과 놋과 철과 납과 주석을 풀무 가운데로 모아 그 위에 불을 불어 넣어 녹이는 것 같이 내가 너희를 나의 성냄과 분노 속에 모아 너희를 거기에 남겨두고 녹이리라. 그렇다. 내가 너희를 모아 내 진노의 불길로 너희 위에 부으리니 너희는 그 가운데서 녹으리라. 은이 풀무 가운데서 녹는 것같이 너희도 그 가운데서 그렇게 녹으리라. 그리하면 너희는 나 주가 내 분노를 너희 위에 부은 것을 알게 되리라."}(겔22:19-22).
{보라, 내가 내 사자(엘리야 말4:5,6)를 보내노니 그가 내 앞서 길을 예비하리라. 또 너희가 찾고 있는 주께서 갑자기 자기 성전에 오시리니 곧 너희가 기뻐하는 언약의 사자시라. 보라, 그가 오시리니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가 오시는 날 누가 감히 살 수 있으랴? 그가 나타나실때 누가 서리까? 이는 그가 정련하는 자의 불과 같고 표백하는 자의 비누같으리라. 또 그는 은을 연단하고 정화시키는 자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들을 깨끗케하고 그들을 금과 은처럼 깨끗케하여 그들로 의로운 제물을 주께 드리게 하리라}(말3:1-3).
{내가 그 삼분의 일을 불을 통과하게 해서 세련된 은처럼 그들을 세련할 것이며 연단된 금처럼 그들을 연단하리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그들을 들으리라. 내가 말하기를 이는 나의 백성이라 말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주는 나의 하나님이라 할 것이라}(슥13:9).
유대인들은 아직도 이러한 경험을 겪어보지 못했다. 이것은 예레미아 30:4-7과 다니엘12:1에
"야곱의 환란의 때"
"Time Of Jacob's Trouble, "'
로 언급되었고, 그리스도께서도 이것을
" 대 환 란 "
이라고 부르셨으며, 주님과 스카랴 선지자는 그것을 주의 돌아오심과 연합시키셨다(마24:21-31, 슥14:1-11).
이 끔찍한 심판들의 결과로 그들은 불행함 속에서 주님을 부를 것이다.
{또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의 거민들 위에 은혜와 간구의 영을 부어주리라.}(슥12:10).
그 후에야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오실 것이다.
{그의 발은 그날에 예루살렘 앞 동편에 있는 올리브산 위에 서시리라.}(슥14:4).
{그들은 그들이 찔렀던 나를 쳐다볼 것이며,}(슥12:10)
그리고 유대 민족은 하루 만에 태어나게(회개) 될 것이다.
{누가 그러한 일을 들었으리오? 누가 그러한 일을 보았으리오? 세상이 하루에 생겨날 수 있으며 민족이 순식간에 태어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진통하자마자 그 자녀들을 낳았도다}(사66:8).
주님의 부활 이후에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에 대하여 바울은 말하기를,
{그리고 맨 마지막에는 달을 채우지 못하고 태어난 것 같은 나에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5:8).
바울이 말한 것은 그가 때가 되기 전에 태어났다는 말이며, 그의 탄생은 조산이었고 그의 "새로운 탄생"은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탄생"의 상징이 아니라, 주께서 돌아오실 때 유대민족의 탄생을 예표하는 것이다. 바울이 주님의 영광을 보았고 그의 음성을 들었듯이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셔서 올리브산에서 그 자신을 계시하실 때 유대 민족도 예루살렘에 모이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 그들이 "이집트인들의 재물들"을 가져왔다(출12:35-36). 이와 마찬가지로 그들이 그들 자신의 땅으로 돌아올 때, 그들은 "이방인들의 재물"들을 가져올 것이다(사60:9, 61:6).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그들 자신의 땅으로 돌아올 때,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모든 것을 소유하고 점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땅"(the Royal Grant)
은 이집트의 강에서 "큰 강", 즉 유프라테스 강까지이며(창15:18), 에스겔에 따르면(겔48:1-29) 다메섹의 북동쪽에 있는 하맛(Hamath)에서 남쪽의 카데스(Kadesh)까지이다. 성전은 다시 지어질 것이다. 주의 영광도 다시 돌아올 것이다. 희생제사도 다시 드려질 것이다. 정부가 다시 세워질 것이며, 땅의 민족들이 이스라엘을 통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다(슥8:20-23).
유대인들의 미래에 관해 좀더 알고자 한다면 "대환란"과 "하나님의 나라"에 관해 쓴 장을 읽어보고 또한 "유대인"과 "천년왕국"에 관한 도표를 참고하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