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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제의(犧牲祭儀)
[밈(Meme)의 숙주를 벗고]
(히브리서 9장)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9:12)
어린아이가 태어날 때 첫 울음으로 세계와 소통하고 호흡을 시작합니다. 이 때 아기가 우는 것은 죄를 짓지도 않했는데 죄인으로 태어나는 것이 너무 억울해서 우는 것이라는 우스겟 소리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에서는 예수께서 십자가형으로 피흘려 죽은 사건을 유대 전통의 희생제의(犧牲祭儀) 모형으로 해석하고 예수께서 그 희생재물이 되어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고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유대 기독인들이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대 전통의 제사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이 모형을 사용해 예수께서 그리스도가 되심을 변증하고 설득하는 것은 어느 정도 효용면에서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이 모형으로 우리를 죄와 죽음으로 부터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몸을 '속죄'의 제물로 드리고 자신의 '피'를 뿌렸다는 '형벌대속론' 또는 '그리스도의 속죄론'은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늘 날까지 기독교 신앙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모형으로 예수께서 그리스도가 되심을 해석하는 것이 어떤 문제가 있으며 왜 그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까지 이어 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살펴 보고자 합니다.
동물이나 사람을 희생시켜 신에게 바치는 희생제의(犧牲祭儀)의 역사는 고대 구석기 시대의 원시신앙 형태에 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대 원시 사회에서는 자연재해나 질병 그리고 다른 집단으로 부터 오는 고통이 신의 분노로 온다는 신앙체계에서 고통을 피하기 위해 행하여 졌습니다. 그리고 신이 전쟁을 이기도록 도와 주길 바라고 전쟁 전에 행하여 습니다. 이러한 희생제의가 공동체 윤리와 질서 그리고 정치적 통제와 종교적 구심점이 필요한 시기에 법이나 규례로 정해져 제도화 함으로서 고등종교의 형태로 한단계 진화합니다. 이렇게 진화한 제의는 '예배'와 '속죄'라는 두가지 큰 의미로 드려지게 됩니다. 그런데 일상적인 예배로 드려지는 제사와 달리 '속죄'로 드려지는 예배는 다음과 같은 해결해야할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문제는 성서에 기록된 대로 산 짐승을 제물로 바치고 피를 뿌림으로는 마음까지 정결하게 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히9:9). 둘째는
거듭되는 희생제의에도 불구하고 공동체에서 반복되며 만연된 '죄'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 다는 점입니다. 셋째는 악한 사람이 죄를 저지르고 희생제물을 바침으로써 용서를 받을 수 있다면 아무도 선하게 살려고 하거나 올바르게 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는 책임 회피와 정의의 문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희생제의가 믿음의 체계 안에서 해석되어야 하는데 '희생제물'과 '피'와 '죄' 용서와 정결의 인과적 사실로서 해석하려는데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믿음의 체계안에서 이러한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는 방법으로 예수께서 십자가 형으로 피 흘려 죽은 사건을 그 동안 규례로 정해 드려오던 땅의 현실적인 제사로 부터 상징적인 희생제의로 해석하여 한 단계 더 진화시켰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인간이 만든 성전을 하늘의 성전으로, 땅의 대제사장을 예수로, 짐승 희생을 예수로, 짐승의 피를 예수의 피로 등가 내지 대체 시켜 믿음으로 갈릴리 나사렛 예수를 그리스도로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에 이르러 예수의 죽음과 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한다는 속죄론이 지지 받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죄'가 성립되기 위한 '법'이 있어야 되는데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고 부활한 순간 옛약속에 속한 율법과 규례가 용도를 다했기 때문에 '법'이 사라져 버려 예수께서 대속할 '죄'도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오늘 당신이 '죄인'이라 당신의 '죄'를 대신해 피 흘려 죽고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으십시요 라고 말하려면 이미 이천년전에 폐기된 율법을 소환해 당신이 '죄인'임을 입증해야 되는 전초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4세기의 어거스틴은 '현재의 죄'를 입증 하지 못하는 대신 태어 나기 전부터 '아담의 죄'를 물려 받았다는 '원죄론'을 주창하여 아기가 태어날 때 우는 것은 자신이 짓지도 않은 죄 때문에 죄인이 되었다고 억울해서 운다는 농담을 만들었습니다. 유아세례를 받는 분들은 원죄론의 신봉자 입니다. 이 '원죄론'은 창조의 원리인 자유의지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전형적인 결정론입니다. 각자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의 여지 없이 '죄인'으로 결정 되었다는 '원죄론'을 변호하기 위해 '예정론'을 만들어 냅니다. 그렇다고 '당신은 죄인'이라고 설명할 근거인 종교적 법이 없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지은 죄' 또는 '숨겨진 죄''양심'을 운운 하지만 새 약속으로 옛 약속에 속한 율법은 폐기 되었기 때문에 유대 전통의 속죄제사에서 속죄할 '율법아래의 죄'는 없습니다. 오늘날 이상과 같은 문제로 인해 '형벌 대속론' 또는 '그리스도의 속죄론'을 구성하는 희생제의 모형의 해석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까지 기독교 신앙의 중심사상으로 내려오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 일까요?
그 이유를 저는 리처드 도킨스가「이기적유전자」에서 문화의 진화를 말하며 사용한 밈(Meme)으로 설명 해보려 합니다. 밈은 생물학에서의 유전자가 복제되어 다음 세대로 전달 되며 자연선택적 진화를 하는 것 같이 문화에서도 한 사람이나 집단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생각 혹은 믿음이 전달될 때 그 생각이나 믿음이 모방되어 전달 되면서 진화하는 사회문화의 구성 요소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밈은 계속 변화하고 진화하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전파되는 정보나 아이디어를 말하며 도킨스는 밈을 뇌에서 뇌로 전파되는 전염성을 가진 정신의 바이러스라고도 말합니다. 현 인류를 호모사피엔스로 부터 포노사피엔스로 부를 만큼 개인 모바일 기기로 부터 컴퓨터 까지 인터넷 망으로 연결되어 정보를 주고 받는 것을 중독성이 강한 '인터넷 밈'이라고도 하며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언텍트 밈'이라는 신종 바이러스에 감염돼 조종 당하기도 합니다.
Wendell Krull에 의해 숙주 관계가 밝혀지고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에 도 소개되었던 장형 흡충이라는 기생충은 밈을 설명하기 좋은 사례입니다. 즉 양의 배설물을 먹은 달팽이가 흡충의 알을 먹게 되고 달팽이 안에서 부화한 유충이 달팽이의 점액과 함께 나오면 개미가 그 점액을 먹을 때 흡충이 개미한테 기생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흡충 중 한두 마리가 개미의 신경절을 타고 뇌로 들어가 개미를 조종하여 개미가 양의 피딩 타임에 맞춰 아침 저녁 때 풀잎 끝으로 기어 올라가 매달리게 하고 낮에는 일상으로 돌아 가도록 조종합니다. 그러면 양이 개미와 함께 풀을 먹게되고 흡충은 양의 뱃속 담도에서 자라 산란을 합니다. 흡충은 이렇게 개미를 숙주로하여 조종함으로서 양의 뱃 속 담도로 들어 가 자라고 산란하여 세대를 이을 길을 스스로 엽니다. 밈은 이러한 흡충과 같이 우리들의 뇌에 기생하며 숙주가된 우리를 조종하는 힘이 있습니다. 이 밈이 종교성을 가질 때 그 힘은 시공을 초월하여 더 크게 증폭되어 인간을 조종하게 됩니다. 기독교로 보면 신약성서가 기록될 당시 공동체 리더들의 믿음을 기초로한 갈릴리 나사렛 예수에 대한 대속적 해석이 공동체에 심어진 밈의 한 형태로 힘을 발휘해 온갖 박해와 수난 속에서도 오늘 날까지 이어져 오는 것을 봐도 그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최근 석가탄신일에 봉축행사를 하는 조계사 앞에서 팻말을 들고 찬송하며 예수 믿으라고 외치던 사람들이 '믿음의 밈'에 조종 당하며 타 종교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 하는 밈의 힘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기독교 밈은 꾸준히 진화의 과정을 거쳐 그리스도 공동체안에서 믿음의 문화유전자로 복제되며 이어져 왔습니다. 종교현상도 인류 보편 문화의 일부로 진화된다는 사실은 종교학자들이나 인류문화 연구자들이 밝혔습니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 환경에 따라 기독교의 교리와 신학체계에 따라 분파를 이루어 각각 다르게 변화해온 사실로도 입증할 수 있습니다. 각 분파의 중심에는 해석을 통해 밈을 생성하고 그 밈을 교리로 구축해 교인들에게 이의 없이 받아 들이도록 주입시켜 자신들의 추종자로 조종하는 장사꾼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하이라키적 교회권력의 정점에 있는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사상과 믿음을 밈으로 심어 교인들을 숙주화 해 조종 확대 재생산 시킴으로써 교인들 각자의 결단에 따른 자각의 믿음과 사랑의 수고로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는 것을 막아 왔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간들을 숙주로 하여 번져 나가듯이 우리들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 만든 교리와 신학의 밈이 스멀 스멀 우리 뇌를 파고 들어 숙주가 되어 확대 재생산 하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 봐야 할 것입니다.
여기 까지 '죄' 또는 '원죄'를 빼고는 교회 장사가 되지 않기 때문에 종교 장사꾼들이 이에 저항하는 수 많은 사람을 이단으로 몰아 죽이고 '죄' '원죄' '대속' '속죄'의 '밈' 을 우리 뇌에 심어 복제 확대 재생산해서 이어져 왔음을 '밈'으로 설명 해 봤습니다.
이제 누구 누구가 해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해석할 준비가 되었나요? 지금 여기서 나만의 믿음으로 하는 해석만이 나를 밀고 갑니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많은 식자들이 말하는 공통점이 사회문화가 격변할 수 있는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현대 인류문화의 한 축인 종교가 진화를 할 수 있는 매우 고무적인 환경 변화입니다. 대부분 두가지 측면으로 진화할 것으로 예측하는데 그 첫째는 각 종교가 탈종교화 하여 밖으로 향했으나 단절된 의식이 내면을 향하여 연결되는 영성이 중심이 되며 둘째는 탈종교화는 종교간의 벽을 허물고 종교간의 이해와 융합으로 다원화 하는 동시에 영적으로 회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연적인 상태의 생태계에서는 역진화가 불가능 하듯이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밥그릇을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 진화에 저항 해도 기독교가 탈종교화 함으로서 표층종교로 부터 영성의 심층종교로 진화 하는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특히 진화의 방향은 외형적으로 대집단을 이루는 교회가 쇠퇴하고 개인의 영적 역량과 소규모 가정 교회중심으로 재편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현상은 이미 기독교 사상이 기초가된 서구에서의 교회 건물이 다른 종교의 건물이 되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교회공동화로 진행 되고 있는 것으로 입증 되고 있습니다. 이제 교회나 사찰에 나가며 공동체에 숟가락 얹는다고 구원받는 것으로 여기는 시대는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북미나 유럽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명상이 처음 우리 나라를 비롯한 극동지역 에서 수출되었지만 다시 역수입 되어 번창하고 영적 지도자를 자처하는 구루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이며 웰빙에서 힐링으로 좌표를 옮기며 각종 힐링센터가 우후죽순처럼 문을 여는 현상은 이미 우리가 진화의 한 복판에 있음을 실감케 합니다. 이러한 진화 현상은 앞으로 기독인으로서 한 개인 뿐만 아니라 교회공동체의 사회문화적 역할과 책임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게 만듭니다. 일제 식민시대 부터 '기독교 밈'의 숙주로 부터 벗어나 순수한 그리스도의 영성으로 깨어나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 그리스도의 삶을 산 훌륭한 스승들이 계십니다. 대표적인 분들로 다석 유영모 선생님과 그 제자인 함석헌, 김흥호 목사님, 박영호 선생님, 그리고 동광원 수도 공동체를 이끈 이공 이세종 선생님과 맨발의 성자 이현필 선생님 그리고 언님들, 성서조선을 펴낸 김교신 선생님 등이 계십니다. 이 분들께서 연 회통의 영적 지평과 길, 그리고 가르침이 우리에게 또 하나의 밈이 되지 않고 도전이 되길 원합니다. 오늘 숨님께서 아들러 심리학을 해석한 '미움 받을 용기'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 대 변혁기에 '미움 받을 용기'를 내어 ' 네가 뭔데 그래?' 비난 할지라도 '밈의 숙주' 노릇을 멈추고 자신의 해석과 목소리로 변혁을 주도해 나아 갑시다. 이미 자신이 어떤 사상이나 가치 믿음의 체계에 경도되어 조종 당하고 있다면 깨어 그 숙주의 껍질을 깨고 나와 용기 있게 자신만의 주체의 날개로 자유의 하늘로 날아 오르길 응원합니다. 이제 예수께서 중보자 되시고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이 됐다는 새언약의 길을 여셨으니 어린 아이로 스스로 숙주가 되어 세뇌된 의식을 깨우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단독자로 서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길 소원합니다.
2021. 6. 13 평화 호건🙏
첫댓글 진정한 제사장과 예언자, 왕 같은 존재로 발돋움 하기 위해서는 "밈의 숙주 노릇을 멈추고 추종자가 아니라 용기 있게 자신만의 주체의 날개로 그리스도를 따르고 자유의 하늘로 날아 오르길 응원합니다." 는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