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는 서양 음식이다. 원조는 독일이고 시장에 선보인 나라는 미국이다.
포크나 칼 식사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손에 쥐고 먹을 수 있는 간편음식이다. 간식 같은 먹을거리인데도 이 햄버거가 영양덩어리라며 비만인 들의 규제대상에 올라있다.
나는 햄버거를 좋아하지 않는다. 내나이 사람들이면 가까워 하기에는 뭣한 비릿한 특이음식이기도 하고, 더군다나 밀가루음식을 잘 소화해내지 못하는 내 위장기능으로 인해 호불호를 떠나있었다. 좀 튼실한 위장을 가졌더라면 이것저것 아무것이나 잘 먹을 텐데, 그렇지 못하니 음식을 가리게 되고 섭취량 또한 조절해야 한다. 조금만 조심하지 않으면 속이 쓰리거나 소화불량으로 생고생을 하게 되었다. 위장기능은 건강의 척도다. 위장기능 강화를 위해 무진 애를 쏟은 결과 지금은 남들처럼 먹어도 탈이 없어 그런 다행이 없다.
지난주 월요일, 점심식사를 앞둔 시각에 나이 지긋한 동료 한 분이 느닷없이 싸고 좋은 점심 먹을 데를 개발했대서 궁금증을 안고 그를 따라 나섰다.
직장인들에게 점심시간은, 배를 채우는 보신의 당위성도 있으되 오전 시간 내 업무의 긴장에서 벗어나 잠시 마음의 여유를 갖는 시간이기도 하다. 허나, 때때로 무얼 먹을 것이냐 하는 숙제에 부딪히게 된다. 내가 오가는 서울 명동에는 다양한 메뉴의 음식점이 즐비하다. 그 많은 가게들이 음식점 아니면 옷가게들인데, 음식점이 더 많을 것이라는 내 어림짐작이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언젠가 명동에 오래 일한 어느 여직원이 ‘명동에는 먹을 게 없어’ 하기에 ‘저이, 처음 명동에 전임왔을때는- 명동은 먹을 것도, 볼거리도 많은데다가 유행의 최첨단 거리라 특히 여자들에게는 너무 좋은 곳이야‘ 했던 그녀가 말을 바꾼 것에는- 사람의 간사스런 입맛을 들 수 있으리라. 아무리 맛좋은 음식이라도 내리 두 세끼를 먹게 되면 질역이 나게 된다.’오늘 뭘 먹지? 아! 그 집? 싫어, 어제 갔잖아‘. 이집 갔다 저 식당 갔다 점심여행을 한다.
그러나 인간관계는, 맛이 좀 덜해도, 성이 좀 덜 차더라도, 꾸준히 교분을 쌓아가야지 이사람 저사람 가리다가는 사람이 모여들지 않는다. 대개 절친한 동료끼리 점심시간을 즐긴다.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다른 부서 직원, 타 회사 사람들과도, 관련단체 직원들과도 가림 없이 사이를 돈독히 해야 하는데, 친교유지의 좋은 방법으로는 먹고마시는 대접이 그래도 제일 무난하다. 그런 점에서라도 격에 맞는 식당, 특이한 메뉴, 상대의 마음을 열게 하는 분위기 있는 고급레스토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식당정보를 평소에 미리미리 축적해두어야 한다. 이를 음식점 개발이라 이름 짓자. 특히 나이 들어 윗사람으로서 부하를 거느리기에는 맛있는 음식대접이 백 마디의 잔소리보다 효과적이다. 어찌 보면 햄버거 집을 드나드는 것도 젊은 세대들의 성향을 이해하는데 일조할 수도 있잖은가 생각해 본다.
내가 있는 사무실에는 근무자가 많지 않다. 나는 힘들게 일하는 여직원에게 자주 점심을 사준다. 내가 사줄 기회가 아니면 다른 이들과의 합석도 마다하지 않는다. 신혼인 여직원은 다소곳하고, 예의바른데다가, 조용조용한 말투와 튀지 않는 옷차림새가 요즈음 여성 같지 않다며 우리들은 그녀를 수녀님이라 부른다. 그녀는 점심대접을 아주 좋아한다. 여직원은 혼자뿐인지라 혼자 식당을 찾기가 거북스럽다며 여럿이 식사를 하면 맛도 더있는 것 같고 소화도 훨씬 잘된다며 여럿이 먹는 식사시간이 그리 즐거울 수가 없다고 한다. 그렇다. 혼자서 먹는 식사는 사육(飼育)에 불과하다. 그래서 직장인들의 점심식사는 식단선택도 중요하지만 동석자선택도 중요한 요소다.
식사비를 아끼겠다고 한때는 도시락을 싸들고 회사에 출근한 적도 있었다. 도시락 점심에는 이점도 많지만 문제점도 있다. 내가 싸온 도시락과 남이 싸온 도시락의 내용물이 비교될 때는 음식을 장만하는 주부들의 음식솜씨를 가늠하게 되고, 예상치 못한 외식점심 약속으로 싸온 채로 다시 들고 귀가할 때는 정성껏 싸준 이에게 미안함도 없잖으며, 저녁 약속으로 인해 도시락 통을 아예 집에 들고 갈 수 없을 때의 난감함이 더 문제였다. 매일 도시락을 싸주는 주부의 입장으로 보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급기야 [돈 좀 덜 아낍시다. 도시락에 뭐로 채울 건지 너무 스트레스 받아요. 이거 보통 일이 아니에요] 도시락지참은 차츰 빛을 잃어갔다. 어쨌거나 점심 식사는 이런저런 고민을 안겨 준다.
점심을 사먹으러 가는 일은 자유 그 자체다. 그것은 자신이 정하면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의사결정의 주체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조그마한 업무 하나도 자신의 의사로 결정지울 수 없는 회사생활의 결제시스탬에서 일시나마 벗어나는 시간. 자장면을 먹고도 자장면 값보다 더 비싼 커피를 마셔도 어느 누구도 나무라지 않는 자유가 내게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 무얼 먹지?’ 걱정을 덜게 하는 그의 제의, 오라는 식당은 많아도 갔으면 하는 식당은 없어 망설이던 차에 싸고 좋은 식단이 있다니 귀가 솔깃할 수밖에……. 정확한 언질을 받지 못한 체 따라 나선 나, 쏟아져 나온 점심헌팅족들을 비집고 간곳은 미처 상상치도 못한 햄버거 가게였다. ‘아니 이게 뭐가 좋은 거라고, 난 이거 별론데!’ 하는 나의 거부의사를 아랑곳않은체 ‘자네 저 위 2층에 자리 잡고 있어, 어물어물하면 자리가 없어 서서 먹어야 해’ 하며 주문대열에 서는 그를 두고 처음 간 햄버거집 2층을 향해 비좁고 꼬불꼬불한 층계를 밟았다.
거기 2층에는 자그마한 식탁들에, 먹는 식당이라기보다 이야기하러 온 대화장 인양 침을 튀기며 그리도 조잘대는 젊은 객들을 보니, 내 돈 주고 사먹는데도 쑥스러워 몸 둘 바가 조심스럽다. 나이 어린 여성이 대종이다. 인근 성당에서 오셨는지 코큰 수녀님도 보였고 저편 구석진 자리에는 나이든 두 사람이 어울리지 않게 햄버거를 뜯고 있어 그나마 안도스러웠다. 처음이라 그런지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마치 낯선 이국땅에 온양 왠지 편안하지가 않았다. [이거, 제대로 먹기나 하것나?]
그가 들고 온 햄버거는 아주 큰 것이었다. 이름하여 왕버거다. 독일의 유명한 도시 함부르크를 따서 지은 햄버거라는 이름이 버거로 줄여 통한다. 왕버거, 버거킹, 치즈버거, 새우버거니 치킨버거니 하여 메뉴가 다양하다. 손 닦을 물수건도 없이 종이에 둘둘 말린 햄버거를 꺼내들었다. 빵 세 겹, 스테이크 두 겹, 야채, 엄청 컸다. 입을 하마같이 벌려야 입에 집어넣겠는데 작은 입이라 -보기에도 흉물스러워- 조금씩 베어 먹기로 했다. ‘이거 좀 입에 맞게 작게 만들면 안 되나?’ 하면서 콜라빨대를 입에 대고는 국물 삼아 입을 추기면서 가끔은 감자튀김을 붉은색 토마토캐찹에 찍어 반찬 삼아 먹는 과정이다. 점심끼니로는 처음 먹어보는 햄버거라 어떻게 해야 품위 있게 먹는 것인지 모호하고 불안정하여 못내 성이 차지가 않았다. 손에 묻으니 손가락을 쭐쭐 빠는 모양새가 그리 탐탁지 않았는데 막상 먹어보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에 나 자신이 얼떨떨했다.
동행인 그는 햄버거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는 지난여름 독일사는 딸이 출산으로 딸네 집에 두어 달 체제하는 동안 무료한 낮 시간 바깥구경을 하면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것이 햄버거였다면서, 똑 같은 제품인데도 독일보다 여기 한국이 훨씬 싸다고 했다. 게다가, 이 햄버거 집은 점심시간에는 같은 제품을 거의 반값에 할인판매하고 있어 특별히 내게 소개해 준다며 장황을 떨었다.
다른 나라 음식들과 비교해보면 우리 식단은 많은 손질과 개선이 요구된다. 거의 일률적으로 매운맛, 냄새 풍기는 내용물, 가짓수가 많은 반찬, 전기세척기로도 씻기 힘들게 만들어진 그릇들, 개선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점심 저녁 식사시간에 그날 매출을 올려야하니 짧은 시간에 바삐 돌아가는 식당들, 그 많은 그릇들에 먹다만 음식들을 버리고는 재빨리 씻어 다음 객들에게 담아주어야 하는데 어디 깨끗이 씻기나 할까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식당에서 가장 힘든 일은 그릇세척이다. 그 일을 한달만 하면 그만 지쳐버린다. 식당종업원들은 대개 석 달을 못 버틴다. 식기세척기에 드는 전기료가 인건비에 비래 더 싸게 먹힐 텐데도 우리네 그릇들은 그게 안 된다는 것. 하다못해 남자종업을 고용, 식기세척을 맡기는 식당도 있다. 식당 일은 어느 노동보다 힘든 악성노동인데도 취업하기 쉬운 것은 그릇세척 등은 별 기술을 요하지 않기도 하고 수시로 발생하는 종업원들의 결원이 많아서다.
햄버거가 유행하게 된 배경에는 미국의 산업발달로 여성들이 일터에 나가면서 시작된다. 부엌에서 남편과 식구들의 먹을거리를 전담하던 주부들까지 시간이 모자라 간편음식이 요구되면서다. 서양인들과 잠시 생활해보면 부엌일이 어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껴 남자들도 쉽게 식사 준비할 엄두를 내게 된다. 그들의 가정 내 식사는 접시 딱 하나뿐이다. 음식을 큰 그릇에 담아놓고는 덜어먹게 한다. 가만히 보니 자기 접시에 묻은 소스 한 방울까지 빵으로 닦아 먹어치운다. 그러고는 바로 식기세척기에 세척을 맡긴다.
오래전 일이다. 미국의 글로벌 햄버거회사 간부가 얼마 전에 작고한 조선일보 고 이규태 논설위원에게 [한국에서 햄버거 영업시도]에 대해 의견을 구해왔다. 그는 한마디로 가능성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 이유로, 한국인의 식습관을 들었다. (쌀)밥에 (된장)국은 필수고 김치를 곁들여야 하는데 그것과는 전혀 다른 햄버거라니, 간식이라면 몰라도 성공할 수 없다는 자문을 했다. 그의 자문은 정확한 지적이었다. 미국의 햄버거회사는 그의 지적을 감안해 쉬이 달려들지 않았는지, 우리나라에서 처음 햄버거를 판매하게 된 기업은 미국자본이 아닌 롯데리아다.
그런데, 문전성시의 요즈음 햄버거가게를 보면 그의 지적은 틀려버렸다. 당시 장년층의 식습관에 관한한 정확한 분석이었지만, 커가는 아이들의 식습관변화에 대해서는 미처 예상치 못한 것이다. 햄버거가 처음 시중에 판매될 때는 그야말로 간식용이었다. 아이들을 외출에 데리고 나가 손쉽게 쥐어주는 것이 햄버거였고, 달짝지근한 그 맛에, 잡기 힘든 숟가락 젓가락 없이 손에 쥐고 좋아라며 뜯어먹는 그 동심, [나 어제 햄버거 먹었다!] 동무들에게 자랑거리로도, 어느 햄버거가 맛이 좋다느니 아이들의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요즈음 청장년들이나 커가는 아이들의 식성을 보자. 라면으로 햄버거로 국수로 밥에서 멀어져간다. 갈수록 서양식을 비롯해 특이한 외국식이 인기를 더하고 있다. 요즈음 세상은 오늘 런던의 유행이 내일이면 서울에 온다. 뉴욕도, 동경의 그것도 그 어느 나라의 유행도 하루 지나면 우리 땅을 점해버린다. 글로벌시대다. 글로벌시대는 식습관도 예외가 아니다. 그 많던 명동의 다방이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도 글로벌화 한 커피전문점 때문이다. 비록 값이 비싸더라도 스타벅스커피를 찾는걸 보면 요즈음 세대들 유행이라면 조건이 없다.
부족하던 쌀이 남아돌게 되었다. 남아도는 쌀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하여 일본 사람들의 갖은 노력은 가관이다. 가장 오래된 방법은 주먹밥이고 김밥의 개발이며, 쌀 과자, 쌀방, 찹쌀떡/모찌, 심지어 거리 자동판매기에도 맛깔스런 초밥을 판매한다. 쌀농사는 농민들의 삶이고 쌀로 빚은 음식은 쌀을 먹는 국민들의 정서가 베어있다. 우리나라는 정부에서 수매한 쌀(벼) 저장에 드는 비용만도 일년에 4,000억원을 웃돈다니 희한한 세상이 돼버렸다. 쌀이 남아돌다니 원 세상에…….
지난번 나를 햄버거 집으로 안내했던 그가 없는 어느 날 점심 약속파행으로 나 혼자 서성이다 그 햄버거 집을 찾게 되었다. 가긴했으나 어떻게 주문을 해야 하는지 어리 거렸다. [점심특선]이라 써 붙인 선전지를 보고는 [이거-]했다. [왕버거 말입니까?] 하기에 얼떨결 고개로 답했다. 다행히도 지난번 먹어본 그 햄버거였다. 고객이 많아 삼층으로 갔다. 먹이(?)를 풀기 전에 저만치서 젊은이들이 시선에 잡혔다. 왕버거는 빵이 세 겹이라 일거려짐 방지용으로 빵둘레에 마분지를 덧싸서 준다. 그 젊은이는 마분지를 조심스럽게 떼어내더니 겉종이를 덮은 체 손바닥으로 꾸욱 눌러 납작하게 하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어름콜라컵의 플라스틱뚜껑을 열고는 거기다가 토마토캐찹을 짜낸다. 취급요령이 숙달된 조교 같았다. [됐다. 저래 하면 작은 내 입으로도 쉽게 먹을 수 있겠구나. 캐찹을 짤 데가 없어 감자튀김을 먹을 때마다 짜서 찍었는데] 그날은 햄버거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된 날이었다.
내가 정보에 어두운가봐, 요새 세상에 햄버거 하나 제대로 먹는 방법을 모르다니 버거맹(盲) 아닌가. 컴맹을 면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기도 했는데 또 다른 것에서 [맹]이 되다니. 그깟 버거맹이면 어때, 누가 뭐라겠는가만…….
비록 버거가 잘 먹히우고 스타벅스커피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많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갈비탕, 따로국밥, 김치찌개, 순두부를 맛있게 끓여내는 식당엘 가보면 거기에도 미니스커트를 입은 늘씬한 여성에서부터 코에 링을 단 젊은 히피남성들에까지 김이 무럭무럭 나는 그 뜨거운 찌게를 후후 불면서 [어! 시원해] 맛있게 먹는 한국인이 많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아무래도 우리들은 치즈먹쟁이가 아니야. 매운고추맛 쏘는마늘 맛이 제격인 엽전들이야.
첫댓글 위의 글은 서되반님이 바람새의 자료실에 올려 주신 글인데 지금 미국에서 매 끼니마다 느끼는 '햄버거타령'을 잘 표현해 주어서 이 곳으로 옮겨 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