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감옥 속의 재롱잔치
우리는 지금 조지 오웰의 1984년을 살고 있다. 빅 브라더스의 감시 체제 하에서 투명하고 둥근 유리감옥에 갇혀 우리는 일거수 일투족이 모두 까발려지고 있다. 감시당하고 있으며, 기록되고 있다. 거짓이 통용되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으며, 그 까발려지는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손에 손에 카메라폰이나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있는 우리 모두는 서로에 대한 감시자이자 감시당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사생활보호란 옛말이 되어 버렸고, 사소한 일조차 인터넷에 올려지면 이미 국제적 사건으로 확대되어버리는 세상에 살고 있다. 모바일폰은 우리가 언제 어디서 누구와 통화를 얼마 동안 했는지, 신용카드 사용은 우리가 언제 어디서 얼마의 돈을 썼는지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있고, 컴퓨터의 발달로 우리의 재산 명세며 세금납부 실적이며, 의료보험의 발달로 병원진료기록이며, 금융거래실적 등까지 낱낱이 들어나고 있다. 도로교통법 위반자들에 대한 카파라치가 기승을 부리더니, 이제는 쓰레기무단투척을 감시하는 쓰파라치, 1회용 봉투 사용금지에 따른 봉파라치 등 전문신고꾼들까지 가세하고 있는 세상에, 점차 거짓이 통용되는 시간이 짧아지고 있다. 한 번의 거짓말이 진실로 오랫동안 위장될 수 있었던 그 공간차지의 범위가 점차 작아지고 있다.
얼마 전 베트남을 여행했을 때 하노이 시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던 상점의 간판은 놀랍게도 SAMSUNG이었고, LG였다. 시내를 누비고 있는 많은 차들 중에는 한글로 커다랗게 무슨 무슨 학원, 무슨 무슨 자동차정비소, 심지어 무슨 무슨 장의사라는 광고들이 쓰여져 있었고, 대우의 누비라가 하노이 시내를 누비고 있었다. 한국의 중고차가 그대로 수입되는 바람에 한글이 쓰여진 차들이 그대로 운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상당수의 차량은 아마도 한국의 차량절도범들이 훔친 차로 밀반출되었을 것이라는 설명이 곁들여졌다. 대우 김우중 회장은 베트남에서는 국빈 중의 국빈으로 대접받고 있다는 말을 가이드로부터 들으면서 인간의 성쇠를 다시 생각해 보기도 했다. 하노이 국제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대로변에는 좌우 양편으로 LG광고판이 군인들이 열병하듯 길게 늘어서 있었고, 베트남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에는 한글 문자들이 쓰여져 있기도 하였다. 한국 상품 넘버 원이라는 이미지가 베트남에 강하게 인식되면서 30여 년 전 피흘리며 싸웠던 적대국이었다는 이미지는 거의 불식되었다고 한다. 국민소득 400불을 갓 넘었다는 베트남에서도 이미 모든 국민들이 서서히 돈맛을 알아가고 있는 듯 했다.
10여 년 동안 총부리를 겨누었던 한국과 베트남도 그 사이에 삼성과 엘지, 대우가 비집고 들어가 돈의 강을 만들고, 경제적 이득을 상호간에 나누게 되니, 적대감도 스러져버렸다는 것이다. 돈맛의 위력을, 경제의 힘을 다시 한 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중앙정보부의 공작에 의해 고용된 파리 마피아에 의해 살해된 뒤 파리 어딘가에 암매장되었다는 사실이 월간 조선 3월호에 실렸다. 그 동안에도 중앙정보부에 의해 암살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했지만, 이처럼 명확하게 사실보도가 된 적은 처음이다. 1979년도에 실종되었으니, 실로 26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난 뒤에야 사실로 밝혀지고 있다. 얼마 전 중앙정보부가 스스로 과거사진실규명사안으로 규정한 몇 가지 커다란 역사적 사건들이 있었다. 김대중 납치사건이라든지, 인혁당 사건, 동백림 사건, 대한항공기 폭발사건 등등...... 이에 대해 과거사에 집착하는 것은 역사적 후퇴로 사회적 분쟁을 가져와 국민통합에 역행하는, 현집권세력의 반대세력 제거를 위한 집권시나리오라는 반대여론도 적지 않았다. 그렇지만 역사가 바로 세워지지 않으면, 그러한 거짓의 역사는 오래 갈 수밖에 없고, 그 거짓이 새로운 진실로 둔갑되면서, 우리는 가치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제 역사가 왜곡되거나 날조될 수 있는 세상은 지났다. 국민 모두가 기록자가 되어, 개인 홈페이지를 가지게 되고, 개인 방송국을 가지게 된 세상에서, 어느 누가 역사를 왜곡할 수 있으며 은폐하거나 조작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물론 하나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평가야 다양하게 나올 수 있겠지만, 그 사실 자체를 은폐할 수는 도무지 없게 되어 버렸다. 과학 문명의 발달은 사람을 갈수록 영악하고 교활하게 만들지만, 반면에 착하고 진실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시내 곳곳, 골목길마다 설치된 감시카메라는 우리의 행동 하나 하나를 부지불식간에 포착하고 있고, 호텔을 들어가도, 음식점엘 들어가도, 심지어 화장실과 목욕탕엘 가도 감시 카메라가 버티고 있으니, 이를 어찌할꼬?
삼성 휴대폰이 베트남 사람들의 통신을 장악하고 있고, 대우 자동차가 도로를 누비고 있는 세상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민주주의나 자본주의의 구별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코스모폴리탄 세상이다. 앞으로 서양 중심의 세계가 동양 중심의 세계로 바뀌게 되는 날이 가까운 시일 내에 오리라는 생각이다. 길어야 2,30년쯤 걸리려나...... 그 때 역사의 중심에 아시아가 우뚝 서게 될 것이다. 아니, 거짓이 아닌 진실이 우뚝 서게 될 것이다.
시사법률신문 112호 게재
첫댓글 어록97. 과학 문명의 발달은 사람을 갈수록 영악하고 교활하게 만들지만, 반면에 착하고 진실하게 살도록 강제하고 있다. <유리감옥 속의 재롱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