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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 (無比) 큰스님 妙 法 蓮 華 經 문수원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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妙 法 蓮 華 經
(묘법연화경)
卷 第四
法師品 第十
(법사품 제십)
35. 藥王아 多有人在家出家에 行菩薩道하대 若不能得見聞讀誦書持供養是法華經者면 약왕 다유인재가출가 행보살도 약불능득견문독송서지공양시법화경자
當知是人은 未善行菩薩道요 若有得聞是經典者면 乃能善行菩薩之道니라 당지시인 미선행보살도 약유득문시경전자 내능선행보살지도
36. 其有衆生이 求佛道者로 若見若聞是法華經하고 聞已信解受持者는 當知是人은 기유중생 구불도자 약견약문시법화경 문이신해수지자 당지시인
得近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라 득근아뇩다라삼먁삼보리
37. 藥王아 譬如有人이 渴乏須水하야 於彼高原에 穿鑿求之하대 猶見乾土하면 知水 약왕 비여유인 갈핍수수 어피고원 천착구지 유견건토 지수
尙遠이나 施功不已하야 轉見濕土하고 遂漸至泥하면 其心決定知水必近이니 상원 시공불이 전견습토 수점지니 기심결정지수필근
38. 菩薩亦復如是하야 若未聞未解하며 未能修習是法華經하면 當知是人은 去阿耨多 보살역부여시 약미문미해 미능수습시법화경 당지시인 거아뇩다
羅三藐三菩提尙遠이요 若得聞解하야 思惟修習하면 必知得近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 라삼먁삼보리상원 약득문해 사유수습 필지득근아뇩다라삼먁삼보리
39. 所以者何오 一切菩薩阿耨多羅三藐三菩提는 皆屬此經이니라 此經開方便門하고 소이자하 일체보살아뇩다라삼먁삼보리 개속차경 차경개방편문
示眞實相이니 是法華經藏은 深固幽遠하야 無人能到어늘 今佛敎化成就菩薩호려하 시진실상 시법화경장 심고유원 무인능도 금불교화성취보살
야而爲開示니라 이위개시
40. 藥王아 若有菩薩이 聞是法華經하고 驚疑怖畏하면 當知是爲新發意菩薩이요 若聲 약왕 약유보살 문시법화경 경의포외 당지시위신발의보살
聞人이 聞是經하고 驚疑怖畏하면 當知是爲增上慢者니라 문인 문시경 경의포외 당지시위증상만자
나. 示弘經方規 ㈎ 示方規(1.標室衣座三 2.釋 3.勸修行)
41. 藥王아 若有善男子善女人이 如來滅後에 欲爲四衆하야 說是法華經者는 云何應說고 약왕 약유선남자선녀인 여래멸후 욕위사중 설시법화경자 운하응설
42. 是善男子善女人은 入如來室하고 着如來衣하며 坐如來座라사 爾乃應爲四衆하야 시선남자선녀인 입여래실 착여래의 좌여래좌 이내응위사중
廣說斯經이니 如來室者는 一切衆生中에 大慈悲心是요 如來衣者는 柔和忍辱心 광설사경 여래실자 일체중생중 대자비심시 여래의자 유화인욕심
是요 如來座者는 一切法空是니 安住是中然後에 以不懈苔心으로 爲諸菩薩及四 시 여래좌자 일체법공시 안주시중연후 이불해태심 위제보살급사
衆하야 廣說是法華經이니라 중 광설시법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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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법사품, 묘법연화경 법사품 중간 220쪽에 중간부터 37번부터 할 차례입니다.
거기에는 비유가 나오는데, 이 비유는 앞에서 이야기한 것을 비유를 통해서 좀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부처님께서 가끔 이런 형식을 취하죠. 뭘 이렇게 부처님께서 이해시키려고 하는 법을 이렇게 말해 놓으면 얼른 못 알아듣죠. 그래서 예를 끌어온다든지, 비유를 하나 든다든지, 또 부처님이 있는 일을 비유로 들기도 하고 전혀 현실성 없는 그런 이야기를 비유를 들어서 말하기도하고 그럽니다. 그러나 비유는 꼭 그 경우에만 해당되는 거지, 그 비유를 가지고 어떤 그와 반대의 경우를 자꾸 생각을 해서 따지면 비유는 맞지가 않아요. 그래서 비유는 어떤 부분과 한 부분에만 국한된 뜻을 나타내려고 하는 거다, 라고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37번부터 비유를 보기 전에 우선 다시 한번 올라가서 35번부터 보면
35. 藥王아 多有人在家出家에 行菩薩道하대 ◈若不能得見聞讀誦書持供養是法華經者면 약왕 다유인재가출가 행보살도 약불능득견문독송서지공양시법화경자 當知是人은 未善行菩薩道요 若有得聞是經典者면 乃能善行菩薩之道니라 당지시인 미선행보살도 약유득문시경전자 내능선행보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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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왕이여!
재가든 출가든, 청신사 청신녀든, 또는 출가한 사람이든 간에 보살도를 행하는데 있어서 만약에 이 법화경을 보거나 듣거나 또 독송하거나 또 서사, 수지, 공양하지 못할 것 같으면[◈若不能]
보살도를 제대로 행하는 것이 못된다[未善行菩薩道].
만약에 이 경을 얻어 듣게 된다면 이 사람은 보살도를 잘 행하는 것이다[能善行菩薩之道].
36. 其有衆生이 求佛道者로 若見若聞是法華經하고 聞已信解受持者는 當知是人은 기유중생 구불도자 약견약문시법화경 문이신해수지자 당지시인 得近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라 득근아뇩다라삼먁삼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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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이 법화경을 듣고 나서 믿고 이해하고 또 수지하는 이 사람은 큰 깨달음에 가까워졌다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得近阿耨多羅三藐三菩提].
가까워졌다라고 하는 그런 이야기, 그러니까 우리가 이 법화경 공부를 하게 되면 큰 깨달음, 불교는 깨달음이 목적이니까 불교라는 그 말 자체가 깨달은 사람의 가르침, 그렇습니다. 불이란 붓다란 말인데 그것은 불타라고도 하죠. 그것은 ‘깨달은 사람’, 또는 ‘깨달음’그런 말입니다. 그러니까 불교, 깨달은 사람을 가르침, 또는 깨닫게 하기위한 가르침, 깨달음의 어떤 세계를 펼쳐 보이는 것, 이렇게 풀이를 할 수 있겠지요, 풀이를 굳이 하자면.
그러니까 깨달음이 주목적이라구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하는 것, 보리라고 하든지, 이것 전부 깨달음입니다. ‘큰 깨달음’거기에 가까워 졌다,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 말을 좀더 구체적으로 비유를 들어서 이해시키려고 하는 거죠.
37. 藥王아 譬如有人이 渴乏須水하야 於彼高原에 穿鑿求之하대 猶見乾土하면 知水 약왕 비여유인 갈핍수수 어피고원 천착구지 유견간토 지수 尙遠이나 施功不已하야 轉見濕土하고 遂漸至泥하면 其心決定知水必近이니 상원 시공불이 전견습토 수점지니 기심결정지수필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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藥王아 譬如有人이 渴乏須水하야 於彼高原에 穿鑿求之하대
약왕 비여유인 갈핍수수 어피고원 천착구지
약왕이여!
비유하건대 어떤 사람이 있어 목이 말라서 물을 구하려고 높은 언덕에서 파서 물을 구하되,
渴乏須水하야
갈핍수수
목이 말라서 물을 구하려고 하여
於彼高原에 穿鑿求之하대
어피고원 천착구지
그래서 저 높은 언덕에서 파서 물을 구하되,
천착(穿鑿), 판다 이거야. 요즘 우리가 지하수를 파듯이, 파서 물을 구한다 이거야.
그런데 처음에 어떻죠? 간토(乾土), 마른 흙이 나와.
바짝 마른 흙이 나온다, 이거여.
猶見乾土하면
유견간토
오히려 마른 흙을 보게 되면,
오히려 간토(乾土)를 보게 된다. 마른 흙을 보게 된다.
‘건’이라고 발음하면 ‘하늘’이란 뜻이고, 말랐다,란 뜻이면 ‘간’이라고 해야 돼요, 발음을. ‘건명’, 하면 하늘이란 뜻으로 발음하고 ‘간토’라고 하면 마른 흙을 보게 되면,
猶見乾土하면
유견간토
마른 흙을 보게 되면,
知水尙遠이나
지수상원
물이 아직 멀어서
지수상원(知水尙遠)이라, 아직도 바싹 마른 흙이 나오니까 물이 나오려면 멀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죠.
施功不已하야
시공불이
공을 베풀기를 그치지를 아니하면,
그래도 계속 판다 이거야. 마른 흙 나온다고 멈춰버리면 안 되죠. 그래서 계속 파는 거여. 그러면
轉見濕土하고
전견습토
점점 젖은 흙을 보게 되고,
자꾸 밑으로 내려가면 점점 젖은 흙을 보게 되죠. 그러면 좀더 파고 내려가. 드디어,
遂漸至泥하면
수점지니
진흙까지 이르게 되면,
진흙을 만나게 되죠. 진흙까지 이르게 된다. 아 처음에는 마른 흙이더니 차츰차츰 좀 습기가 많은 습토를 보게 되고, 나중엔 진흙을 만나게 된다 이거여.
진흙을 만나면 물이라고 하는 것은 금방 가까이에 있다는 걸 알겠죠.
其心決定知水必近이니
기심결정지수필근
그 사람의 마음에 결정코 물이 반드시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나니,
무엇을? 수필근(水必近) 물이 반드시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말이여. 그건 틀림없죠. 조금만 더 파내려 가면 물이 있을 것이란 것을 알게 된다.
그런 비유를 들었습니다. 요건 앞에서도 몇 번 말씀을 드렸지마는 법화경에는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비유를 일곱 가지, ‘법화7유’라 해서 일곱 가지 비유를, 유명한 비유를 말하고, 그 다음에 ‘방출(旁出)’이라 해서 그 일곱 가지 비유를 들지 않고 또 비유가 또 두 가지가 있어요.
요 비유는 일곱 가지에 들지 않는 비유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홉 가지 비유를 말할 때만 요 비유가 포함이 돼요.
그래서 요 비유를 가지고 정식비유라고 삼을 것이냐? 아니면 방출이냐? 다시 말해서 요건 그런 큰 중요한 비유에는 포함시킬 수 없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있고, 여러 가지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렇게 비유가 하나 있습니다. 그 관계를 아셔야 돼요.
‘7유’ 할 때는 요건 들어가면 안 되고, ‘9유’, 아홉 가지 비유에는 요게 들어갈 수 있는 그런 비유입니다,
이렇게 비유를 하나 말하자면 우물을 팔 때 그 경우를 가지고 비유를 하나 해 놓고 그건 또 예컨대 뭐와 같으냐 하면,
38. 菩薩亦復如是하야 若未聞未解하며 未能修習是法華經하면 當知是人은 去阿耨多 보살역부여시 약미문미해 미능수습시법화경 당지시인 거아뇩다 羅三藐三菩提尙遠이요 若得聞解하야 思惟修習하면 必知得近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 라삼먁삼보리상원 약득문해 사유수습 필지득근아뇩다라삼먁삼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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菩薩亦復如是하야
보살역부여시
보살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보살도 역부여시하야, 우리 공부하는 사람도 또한 다시 이와 같다, 뭐와 같으냐?
若未聞未解하며 未能修習是法華經하면
약미문미해 미능수습시법화경
만약 듣지도 못하고 이해도 못하며, 법화경을 닦아 익혀 나아가지 아니하면,
만약에 미문미해(若未聞未解)하면 미능수습시법화경(未能修習是法華經), 그저 자나 깨나 법화경입니다. 말하자면 진리의 말씀이고 또 이것은 부처님께서 고행해서 깨달으신 내용의 총 결산이기 때문에 이 법화경 속에 부처님의 세계, 불교의 세계, 불교의 목표, 불교의 대의가 오롯이 담겨있기 때문에 그래서 자꾸 법화경, 법화경 하는 거죠.
그리고 그것은 곧 다름 아닌,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나서 살아가는데 가장 유익하고 보람된 삶의 길을 제시하는 그런 가르침이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법화경을.
무슨 불교의 경전이다, 아니면 불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경전이다, 이런 차원이 아니고, 이렇게 법화경을 자꾸 소중하다고 칭찬하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유익하고 보람된 길을 가르치는 거죠.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뭐니 뭐니 해도 사람으로서 가장 유익하고 보람된 삶을 사는 게 그게 우선이라고요. 우린 뭐 쓸데없이 다른 것 자꾸 크게 중요하지도 않는데 많이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마는 사실은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어떻게 사람으로 사는 게 가장 유익한 삶인가? 그 방법, 그걸 우리는 알아야 돼요, 사실은.
사람이 어떻게 사는 게 제일 유익하고 제일 보람되고 뜻있는 삶을 사는가 하는 이거부터 먼저 연구해야 합니다, 그걸 연구를 해 놓고 그 다음에 다른 부수적인 것을 사실은 연구를 해야겠죠.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깜양으로 ‘아 나는 요걸 갖는 게 제일 큰 보람이다, 살아가는 제일 큰 가치다’ 라고 자기 나름대로 다 그렇게 정해져 있어요.
그게 무슨 타당성이 있던, 없던, 그건 상관없이 모두, 저 많은 길 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자기 나름대로 자기 인생의 가치관이 그런대로 설정이 되어 있다구요. 그런데 그것이 타당하냐? 하는 것입니다. 그게 문제죠.
그래서 사실은 우리가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사람으로 사는 방법, 또 어떤 게 정말 가치 있는 삶이냐 하는 것, 사람이 사는 그 문제에 대해서 연구를 해야 돼요. 그 문제에 대해서 연구를 철저히 해서 정확하게 밝혀놓고 그 다음에 살아야 되겠죠.
법화경은 그런 입장에서는 최고의 가르침이다, 그래서 말하자면 법화경, 법화경 하는 거죠. 그래서 우리 공부하는 사람이, 보살들이 또한 다시 그와 같아서, 이 법화경을
若未聞未解하며 未能修習是法華經하면
약미문미해 미능수습시법화경
만약 듣지도 못하고 이해도 못하며, 법화경을 닦아 익혀 나아가지 아니하면,
미문미해(未聞未解),
듣지도 못하고 이해도 못하고 수습도 못해, 법화경에서 가르친대로 수지 독송 위인 해설, 이런 닦아 나아가는, 익히는 그런 것들도 하지 아니했다고 한다면,
當知是人은 去阿耨多羅三藐三菩提尙遠이요
당지시인 거아뇩다라삼먁삼보리상원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큰 깨달음에 이르러 가기가 오히려 멀 것이요,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큰 깨달음에 가기가 (去), 큰 깨달음에 이르러 가기가 오히려 멀다, 이거여. 왜 그런가 하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법화경보다 더 좋은 게 없다 이거지. 그런데 법화경을 우리가 모른다면 인생을 깨닫는다고 하는 게 멀 수 밖에 없다는 거지.
그건 마치 우물을 팔 때 아직도 마른 흙이 나오는 경우와 똑 같다. 그런데
若得聞解하야 思惟修習하면 必知得近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
약득문해 사유수습 필지득근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만약 듣고 이해하여 들어가고 사유하고 자꾸 익혀 닦아나아가면
반드시 큰 깨달음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만약에 법화경을 자꾸 듣고 읽고 그리고 조금이라도 자꾸 이해해 들어가고 그리고 생각하고 수습하는 것,
사유한다, 우리가 이렇게 편안하게 듣고 말면 안 되죠. 한 구절이라도, 한 대목, 한 가지 이야기라도 그걸 가만히 생각을 해 봐야 돼요.
내가 설사 설명을 한다 하더라도 그걸 얼마나 설명하겠어요? 본래 법화경이 담고 있는 그 뜻을 십분의 일도 설명이 되었을까 말까예요, 사실은. 십분의 일만 우리가 그 뜻을 설명한다하더라도 그건 잘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 설명에만 맡길 게 아니라, 설명은 참고로 듣고, 그 다음에 각자의 경험과 각자 지식과 각자의 인생을 연관시켜서 자꾸 생각을 해야 돼요. 사유(思惟)가 중요합니다, 사유. 사색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사색하고 사유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자꾸 반복하는 것, 수습(修習)이라고 하는 것은.
읽는 문제가 읽는다든지, 쓰는 문제가 쓰는 거라든지, 예를 들어서 마음을 안정시키면 안정시키는 거라든지, 염불이면 염불, 참선이면 참선, 자꾸 그것을 반복해 가는 것이 수습(修習)입니다.
사유수습(思惟修習)할 것 같으면,
이 법화경을 듣고 그런 자세가 필요해요.
‘아이고 뭐 더 이상 생각할 필요 없이 자세히 설명해 준다’?
천만에요. 전혀, 십분의 일도 제대로 설명 못 한거예요. 그렇게 알아야 됩니다. 아주 이 속에 무궁무진한 뜻이 담겨있어요.
내가 화엄경도 물론 좋아하지만, 법화경을 보면 ‘ 아 정말 좋다!’라고 하는 것, ‘정말 훌륭한 경이다!’라고 하는 것을 아주 절실히 느낍니다. 너무 화엄경은 호활하고 넓고 어디 종잡을 수가 없죠. 그런데 법화경은 그런대로 손에 잡히고 또 그 속에 담겨있는 아주 무궁무진한 뜻이 아주 갈수록 자꾸 달라져요. 볼 때마다 다르고, 아주 참 신기한 경전이 법화경이다, 싶은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내가 이해한 게 얼마가 될 것이며, 또 거기에 설명을 한다고 한들 십분의 일이라도 제대로 할까, 그런 정도예요.
사실입니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그런데, 그러니까 듣는 여러분들이 자꾸 사유해야 돼요. 사색하고, 또 그 나름대로 여러 가지 다른 참고 될 만한 책을 자꾸 읽고, 그렇게 하면
必知得近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
필지득근아뇩다라삼먁삼보리
반드시 큰 깨달음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반드시 큰 깨달음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돼.
큰 깨달음에 가까워졌다라고 하는 것을 틀림없이 알게 돼. 그러니까 아까 우물 파는 경우에 비교하면 어떻게 되죠?
젖은 흙이 나온다 이 말이죠. 젖은 흙이 나오고 또 진흙까지 나온다 이거예요, 진흙까지. 진흙까지 나오는 그런 상태가 되는 거예요, 지금 법화경 공부하는 사람은요, 우물 파는데 진흙아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야.
그러면 물이 펑펑 솟는 것은 뭐죠?
깨달음이야. 큰 깨달음, 아뇩다라삼먁삼보리 거든. 그럼 그건 멀지 않는 것인 거거든요, 사실은. 법화경 공부만 자꾸 열심히 하면, 뭐 큰 깨달음을 얻는 것은 문제없다구요, 사실은. 이건 틀림없습니다.
나는 볼수록 법화경에 대한 믿음이 강해지고, 어떤 경전보다도 제일 애착이 가요, 법화경이. 그런 것을 자꾸 느낍니다. 공부하다 보니 자꾸만 그걸 느껴요.
내가 법회 같은 것하고, 어디 가서 강의하는데 제일 고맙게 생각을 하고, 또 왜 법회와 강의를 하느냐? 하는 이유가 뭐냐?
강의함으로써 내가 공부한다는 그게, 첫째도 그것 때문에 하고, 둘째도 그것 때문에 하고, 셋째도 그것 때문이라.
그러니 여러분들이, - 그 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 듣는 사람이 나에게는 듣는 사람이 스승이라. 듣는 사람을 위해서 내가 공부하니까, 듣는 사람이 아니면 나를 공부 시킬 사람이 없어.
잘 안 한다구요. 요즘 또 거기서 방학이라고 큰절에서 공부하는 사람이 두 사람이 따로 또 있다구요. 그런데 그 사람 한 사람 앉혀놓고 하나, 백 명을 앉혀놓고 하나 연구는 똑 같아.
알건 다 알아야 되지, 연구할 건 다 연구해야 되지, 그 배우는 사람이 나를 가르치는 거라. 참 묘한 도리야, 그게.
배우는 사람이 나를 가르친다구요. 그래서 그들이 하는 거예요, 그들.
오직 나는 뭐 때로는 힘들고 할 때도 있지마는 그래도 내 공부가 되는 그 재미에 하는 거예요. 그 것 뿐이라구요, 달리 다른 것 없습니다, 사실은. 내 공부 되는 재미.
자꾸 그렇게 하다보니까 법화경에 대한 이해가 달라져요. 이 법화경 내가 한두 번 본 것도 아니고, 강의도 한두 번 한 것도 아니고, 지금 법화경을 다섯 번 째 강의를 해요, 나는 다 적어놨거든요. 그저 몇 시간하는 건 다 빼고, 전체적으로 하는 게 다섯 번 째 지금 하는데 할 때마다 전혀 새로운 맛이고, 또 다르고, 그 전에 몰랐던 것, 그 전에 알았던 것은 소용없어, 또.
지금 아는 그게 지금 내 것이야. 거 참 묘한 거죠. 그 전에 알았던 그것 - 맛을 느끼고 메모한 것 - 을 봐도 별로 맛이 안 나고 지금 내가 이해하고, 지금 내가 맛을 느끼는 것, 그게 내 것이더라 구요, 가만히 보니까.
그러니까 이것은, 성현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참 아주 불가사의하다 라고 하는 것을 아주 절실히 느끼는데, 여기 법사품에도 법화경의 위대함을, 또 법화경의 공덕을 아주 많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정말 법화경에 대한 믿음이 갈수록 자꾸 강해진다고 하는 것을, 두터워 진다고 하는 것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에 공부만 하면 큰 깨달음은 가까웠다, 가까웠다, 하는 것은 이건 틀림없는 사실이라.
법화경 공부만 제대로 하면 큰 깨달음, 이 큰 깨달음이란 다른 게 아니에요. 인생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인생에 대한 깨달음을, 인생의 실상을 깨닫는 것이 가까워졌다, 틀림없는 사실이거든요.
39. 所以者何오 一切菩薩阿耨多羅三藐三菩提는 皆屬此經이니라 此經開方便門하고 소이자하 일체보살아뇩다라삼먁삼보리 개속차경 차경개방편문 示眞實相이니 是法華經藏은 深固幽遠하야 無人能到어늘 今佛敎化成就菩薩호려하 시진실상 시법화경장 심고유원 무인능도 금불교화성취보살 야 而爲開示니라 위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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所以者何오
소이자하
까닭이 무엇인가?
모든 사람들의 큰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전부 이 경에 다 소속이 되어있어, 전부 이 경에 다 연결이 되어있다 이거예요. 이 경에 다 소속이 되어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지. 법화경 공부만 잘 하면 모든 공부가 다 이 속에 포함되어있어요. 정말 진짜 불교공부는 법화경 한권, 이건 또 부피가 이쯤이면 일생 공부할 만해요.
반야심경이나 금강경도 좋지마는 그건 좀 짧고 어떻게 보면, 짧고,
법화경은 부피도 근사하잖아요. 공부하는 사람 같고,
또 여기는 자고로 주의서가 또 많아. 연구서가 많아, 엄청나게 많아,
일본에는 법화경 공부해서 박사학위 받은 사람이 수백 명이 돼요.
법화경만 연구해서, 일본 불교는 거의 70~80%가 법화경 불교니까요.
중국에도 법화경 공부 많이 했어요, 사람들이.
정말 ‘경중의 왕’이라고 할만하고, 또 양이 그렇게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아서 상당히 공부할 만하고, 그리고 아주 여러 가지 다종다양한 뜻이 담겨있어. 금강경도 참 선명하고 좋은 뜻이 담겨 있죠. 그런데 반복된 게 많죠.
법화경의 구절구절, 대목 대목마다, 품 품마다 다른 뜻들이, 다른 내용들이 담겨있거든요. 그게 또 상당히 재미가 있다 구요. 어떤 아름다운 산을 가서 구경을 하면, 골짝 골짝 마다 능선 능선 마다 새로운 경치,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 같은, 그야말로 금강산을 보는 것 같은, 금강산 백 개쯤 펼쳐놓고 그것을 감상하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所以者何오
소이자하
까닭이 무엇인가?
一切菩薩阿耨多羅三藐三菩提는 皆屬此經이니라
일체보살아뇩다라삼먁삼보리 개속차경
일체 보살들의 깨달음이 다 이 경에 속해 있느니라!
그럼 뭐 다죠, 뭐. 더 이상 덮을 게 없죠. 다 이경에 속해 있다 이거예요. 법화경 하나에다 다 소속되어있다.
이건 참 하나도 나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법화경의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요 말에 대해서 추호도 의심의 여지가 없어요.
此經開方便門하고 示眞實相이니
차경개방편문 시진실상
내가 법화경의 대지를 보통 말하는 것은 ‘회삼귀일(會三歸一)’, ‘회삼승(會三乘) 귀일승(歸一乘)’ 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전부터 스님들을 가르치면서
‘개방편문(開方便門) 시진실상(示眞實相)’, 요걸 법화경의 대지라고 하자, 그런 주장을 했어요.
‘방편문을 열어서 진실상을 보이는 것’이다.
此經開方便門하고 示眞實相이니
차경개방편문 시진실상
이경은 방편문을 열어서 진실상을 보이는 것이니,
온갖 방편을 이야기합니다. 많은 방편을 이야기하죠.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 안에는 진실상이 있어. 진실한 어떤 진리의 가르침이 그 속에 있다 이거예요.
내가 그랬죠? 문은 여러 가지다. 예를 들어서 팔만 사천 문이 있는데 그 문은 각각 다르고, 방향이 각각 달라, 크기도 다르고.
그런데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 안에는 전부 한 방이다, 이거예요. 한 방. 어떤 방향의 문을 열고 들어갔던지 그 안에는 방은 한 방이다.
그런데 열고 들어오는 문의 방향과 크기와 온갖 그런 것들이, 치장과 또 눈에 끌리던지 안 끌리던지 요런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 통일된 말하자면 하나의 가르침, 이게 부처의 길이거든요. 진실상이라고 하는 것은 말하자면 ‘회삼귀일(會三歸一)’, 여기서 회삼귀일과 연관시켜 말씀드리자면 방편문은 삼(三)에 해당되고, 진실상은 일(一)이 되겠죠. 그러니까 삼승을 모아서 일승으로 돌아간다, 그러니까 삼은 방편문이거든요, 결국. 그러니까 삼(三)을 열고 들어가면 ‘일불(一佛)’이라고 하는, ‘진실상(眞實相)’이라고 하는, ‘부처의 삶’이라고 하는 그 삶의 하나로 모두 연결이 되어 있고, 통일이 되어 있다, 이걸 보이는 것이 이 경의 큰 취지[개방편문(開方便門) 시진실상(示眞實相)], 이런 뜻으로 보겠죠.
是法華經藏은
시법화경장
이 법화경의 창고는,
장(藏)자를 붙였어요. 이 창고, 법화경이 갈무리되어있는 그 창고는
深固幽遠하야 無人能到어늘 今佛敎化成就菩薩호려하야 而爲開示니라
심고유원 무인능도 금불교화성취보살 이위개시
아주 깊고 견고하여 사람들이 능히 이르기 어렵거늘 지금 부처님께서 교화하는 것은 보살을 성취하기 위해서 열어 보이느니라.
아주 깊고 견고해. 이 창고가 아무 손에나 열리고, 옅고 그러면 안 되죠. 유원(幽遠)이라, 아주 깊고 멀어. 법화경이 있는 창고는 그런 곳이야. 무인능도(無人能到)라, 사람들이 능히 이르기 어려운 그런 창고야.
今佛敎化成就菩薩호려하야 而爲開示니라
금불교화성취보살 이위개시
지금 부처님께서 교화하는 것은 보살을 성취하기 위해서 열어 보인 것이니라.
그러니까 이 법화경에 몇 번 나왔죠?
‘아무에게나 설하지 마라’여기도 그런 말이 있죠. 불가난분별이라.
여기 법사품에도 그런 말을 했죠? 저 앞에도 그런 말이 있었고. 함부로 그렇게 할 것이 아니다.
그리고 늘 자주 나오는 말 중에 뭐죠?
이 법화경은 교보살법(敎菩薩法)이면 뭐죠?
그 다음에? (대중)“불소호념(佛所護念) ” ,
교보살법(敎菩薩法)이며 불소호념(佛所護念)이러라, 그랬죠?
불소호념(佛所護念)이란, 부처님이 아끼는 바이다, 이 말입니다. 부처님이 상당히 중요하고 아끼는 바이다. 중요하고 아끼는 것이라면 함부로 내어놓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함부로 안 내어놔요. 그게 아끼는 거죠. 그게 중요하게 여기는 거지.
불소호념이란 말은 그 말이고.
그러니까 아무에게나 내어 보이지 않으니까 보살에게만 가르치지.
수준 높은 사람에게나 가르친다는 거야. 그러니까 교보살법이며 불소호념이라고 구절구절 박아놨잖아요, 그 말을.
‘이건 내가 아무에게나 내어 보이는 것이 아니야. 아무에게나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야. 드러날 사람에나 가르친다’ 이거야.
그러니까 저 앞에서 오천 명이 무리를 떠났죠. 오천 명이 자리를 떠나니까 ‘아 저 사람들에게 말했다가 오히려 말만 잃어버리고 저 사람들이 어디 가서 비난만 할 것이다’
비난하면 오히려 안 듣는 것 보다 못할 것이다 이거야. 그 사람들이 괜히 비난해서 지옥에라도 떨어지면 어떻게 하느냐? 그러니까
‘이제 들을만한 사람만 남았으니까 이젠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
이랬거든요. 처음에 그랬다구요. 그게 뭐냐? 불소호념이라.
부처님 자신이 아끼고 보호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함부로 말할 게 아니거든요.
보살쯤 되는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거야, 또. 보살의 길을 가르치는 것도 되고, 보살의 길을.
‘보살의 길이 무엇인가?’라고 하는 것을 가르치고, 또 그런 가르침을 들을 만한 사람에게 이 법화경을 이야기한다 이 말입니다.
여기 보면
이 법화경의 창고[是法華經藏]는,
이건 창고가 꼭 따로 있어서가 아니죠. 하나의 어떤 형식으로써 법화경의 가치와 깊이를 이렇게 표현해 보는 것입니다.
깊고 견고해 그 창고는[深固],
뭐 무사의 힘으로도 안돼. 깨지지 않는다구요, 잘.
또 깊고 먼데 있어. 저 깊고 먼데에, 그윽하고 먼데 있어[幽遠].
사람이 능히 이를 수가 없어[無人能到].
그 이를 만한 사람은 없어. 이르려면 보살이라야 돼.
今佛敎化成就菩薩호려하야 而爲開示니라
금불교화성취보살 이위개시
지금 부처님께서 교화하는 것은 보살을 성취하기 위해서 열어 보인 것이니라.
왜 법화경을 꺼내어 와서, 그 깊은 곳에 있는 법화경을 꺼내어 와서 왜 이야기하느냐?
보살을 성취하려고, 보살을 만들려고, 보살을 성취시키기 위해서[今佛敎化成就菩薩],
지금 이것을, 법화경의 창고를 열어보였다.
그들을 위해서 열어 보였다[而爲開示], 이랬습니다.
법화경이 이렇게 되어있기 때문에 이걸 조금 지나치게 이해하는 사람들은 또 이상한 데로 또 흘러요. 이 법화경을 아주 너무 신성시 하는 나머지, 무슨 사도 비슷하게 흐르고 ‘나무묘법연화경’ 이름만 외워도 이상하게 된다고 하는 그런 식으로도 이야기하고 그래요. 이런 것을 좀더 깊은 뜻을 이해를 안 하고, 그만 액면대로만 받아들여서 그렇게 된 거죠.
어쨌거나 이런 이야기도 상당히 의미 있는 이야기입니다.
무엇보다도 모든 사람들의 깨달음, 부처님의 깨달음이나, 보살의 깨달음이나, 이 깨달음은 만약 인생에 대해 제대로 인생을 이해할 수 있는 이 깨달음은 모두 이 경에 소속되어있다는 가르침은 참 뛰어나죠.
40. 藥王아 若有菩薩이 聞是法華經하고 驚疑怖畏하면 當知是爲新發意菩薩이요 若聲 약왕 약유보살 문시법화경 경의포외 당지시위신발의보살 약성 聞人이 聞是經하고 驚疑怖畏하면 當知是爲增上慢者니라 문인 문시경 경의포외 당지시위증상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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藥王아 若有菩薩이 聞是法華經하고 驚疑怖畏하면 當知是爲新發意菩薩이요
약왕 약유보살 문시법화경 경의포외 당지시위신발의보살
약왕이여!
만약 어떤 보살이 이 법화경을 듣고[聞是法華經]
놀라거나, 의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면[驚疑怖畏]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새로 발심한 보살이요,[新發意菩薩]
이 불교에 있어서 상당히 정신적 수준이 높다하더라도, 또 이런 세계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 발심은 했는데 모르는 사람들이 이 법화경의 이런 도리를 듣고, ‘모든 사람들이 부처다!’라고 하는, 어떤 사람도 ‘부처님’에 대한 자기의 이해가 있어요. 기독교인들도 ‘부처님’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 이해가 있고, 어떤 경우의 사람도 그 나름대로 다 이해가 있어요. 그런데 이 법화경에 오니까 ‘모든 사람들이 부처가 된다’고 하는 수기를 하는 그런 입장이니까 놀라고 의심하지. ‘부처님은 내가 알기로 그런 게 아닌 줄 아는데 어떻게 나더러 부처님이 된다고 그렇게 하는가?’
그게 두렵기도 하고, 그런 말이 혹 두렵기도 하고 그런 거야. 그런 사람은 신발의보살(新發意菩薩)이다, 그랬어요.
若聲聞人이 聞是經하고 驚疑怖畏하면 當知是爲增上慢者니라
약성문인 문시경 경의포외 당지시위증상만자
만약에 성문이 이 경을 듣고 놀라고 의심하고 두려워한다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증상만자이니라.
그런데 만약에 성문, 저기는 어떤 보살이 그럴 경우를 말하고 여기는 성문, 여기서 성문은 누군가 하면 부처님 밑에서 내~ 부처님 따라다니면서 법문만 자꾸 듣고 한, 출가한 스님들이 이 말에 해당됩니다. 저기 보살이라고 하는 것은 재가 신도들이 해당되고, 성문인, 약성문인이라고 하는 것은 이건 출가한 스님들에 해당되는 말이에요. 그 출가한 스님들 중에서 이 경을 듣고 경의포외(驚疑怖畏) 저 보살이, 재가 보살이 느끼듯이 놀라고 의심하고 두려워할 것 같으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증상만자(增上慢者)라 그랬어요.
똑같은 경우예요.
경의포외(驚疑怖畏)라 하는 것은 똑같은 경우인데 왜 한 사람은 신발의보살(新發意菩薩)이고, 왜 한 사람은 증상만자(增上慢者)냐?
여기에 상당한 뜻이 있습니다.
보살이란 말하자면 대중, 일반 대중을 말하고, 어떤 그야말로 세속에 살면서 불교를 이해하려고 하는 그런 보살을 말하는 것이고, 그런 사람은 이런 말을 들으면 놀라긴 한다 이거예요, 놀라긴 하고, 그렇지만 그 사람들은 신발의보살(新發意菩薩)이야, 새로 발심한 보살이고, 그런데 이 말하자면 한 마디로 중들은 내~ 법문을 들어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전문적으로 공부한다고 부처님 밑에서 머리 깎고 살면서 - 성문 이죠 - , 살면서도 아 이런 뜻을 잘 몰라서 이런 법화경 도리를 들으니까
경의포외(驚疑怖畏)한다, 놀라고 의심하고 두려워한다.
이것은 제 나름대로 공부했다고 하는 그게 있어서 그래 가지고 법화경을 못 받아들인다고 하는 것입니다.
증상만(增上慢)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나름대로 공부했다고 하는 아만, 잘난 체하는 것, 자기 나름대로 ‘아이구, 나는 부처님 밑에서 공부를 몇 십년을 했는데...’ 하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증상만자(增上慢者). 그런 사람들이 이 법화경이 제대로 귀에 안 들어가. 그러니까 이 불교라고 하는 이치는 이 정신에 관계되는 것이고, 마음의 도리에 관계되는 것이기 때문에 ‘불교 공부를 얼마나 했느냐?’ ‘불교를 믿은 지가 얼마냐?’이것과 전혀 관계가 없어요.
정말 마음이 열려있는 사람은 이런 소리 딱 들으면, 법화경의 이런 말씀을 들으면 부처 ‘불(佛)’자가 뭔지 전혀 모르는 사람도 딱 마음이 계합되는 수가 있고, 소견이 좁은 사람은 예를 들어서 뭐 부처님 밑에서 설사 수백 년을 공부했다 하더라도 그게 이해가 안 될 수가 있습니다. 그 참 묘한 도리예요, 이 불교라는 것은. 그래서 어떤 선을 그어 놓아서 말하기가 참 어려운 거예요.
육조 혜능스님 같은 분은 전혀 일자 무식꾼인데, 전생부터 선근이 있었던지 금강경 읽는 한 마디에 딱 그냥 마음이 열려 버리기도 하구요, 어떤 사람은 수십 년 고생 고생해도 도대체 이해가 안 되고, ‘이게 무슨 소린가’싶기만 하고, 그게 참 불교의 뭐라고 할까 장점 이면서 또 특이한 그런 점입니다.
다른 기능 같으면 배우면 배운 만큼 익숙해지고, 배운 만큼 잘 할 수 있겠지. 그런데 이 불교는 참 그게 아니야.
그래서 여기 성문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 밑에서 수십 년 공부하는 사람들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앞에서 오천 명이나 자리를 박차고 나갔잖아요. 전부 그 사람들이거든.
그 사람들은 제 깜양대로 지식이 있고, 나름대로 뭘 많이 배웠다고 하는 게 있어서 잘난 체 하는 사람, 증상만자(增上慢者)를 우리 말로 하면 잘난 체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다 이거예요.
여기 스님들 아주 좋다고 몇 번 다니더니 그만 안 보이잖아요. 그게 전부 증상만(增上慢)이에요. ‘아이구 뭐 몇 번 들어보니 그 소리가 그 소린데 뭐 들을 것 없다’ 안 오잖아요. 한 사람도.
그 참 묘하지. 어쩔 수 없어요. 성문이라고 못 박아놨잖아요. 성문은 출가한 스님들이야 여기서. 이 법화경에서 성문이라고 하는 것은 무조건 출가한 스님들이라. 이 법화경은 대부분 재가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비구들을 상대로 해서 말하기도 하고 여기는 또 여기에 전부 보살 중심으로 이야기한 대목도 있고, 뭐 사부대중이 원칙이니까, 우리 불교 집안에는.
그러니까 어디를 배제하고, 어디를 취하고, 그럴 수는 없어요. 다 같이 이야기를 하는 데도 여기 보면 출가한 성문들을 많이 비판한 곳이 많습니다, 저기 유마경과 법화경 같은 이런 경전은 출가해서 때가 절여있는 사람들, 그 나름대로 어떤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그런 사람들을 상당히 많이 비판해요.
좀 혁신적이지 못하고, 좀 마음이 열려있지 못한 그런 사람들을 상당히 비판하는 그런 내용들이죠.
여기만 보더라도 어떤 보살이라고 하는 것은 출가 재가를 따지지 않는 거예요. 대승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말하거든요. 그런 사람이 법화경을 듣고 놀라면, ‘아 이 사람은 초발심자니까 놀랄 수밖에 없다’, 이러는데 성문으로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가지고 몇 십 년 공부했는데도 불구하고 법화경을 듣고 놀라 자빠진다는 이 사람은 제 나름대로 잘난 체 하기 때문에 그런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41. 藥王아 若有善男子善女人이 如來滅後에 欲爲四衆하야 說是法華經者는 云何應說고 약왕 약유선남자선녀인 여래멸후 욕위사중 설시법화경자 운하응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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藥王아
약왕
약왕이여!
若有善男子善女人이 如來滅後에 欲爲四衆하야 說是法華經者는 云何應說고
약유선남자선녀인 여래멸후 욕위사중 설시법화경자 운하응설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있어 여래가 돌아가신 뒤에 사부대중을 위해서 이 법화경을 설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알맞게 설하느냐[云何應說]?
응설(應說), 응설(應說)은, 그 사람들에게 아주 적절하게 말하는 사람이냐? 어떤 조건이 딱 들어맞는 조건을 맞춰서 가지고 설하는 사람이냐?
요게 법화경에서 유명한 ‘홍경삼계(弘經三戒)’라.
경을 펴는데 있어서, 경을 설하는 데 있어서 세 가지 법도, 세 가지 법도를 여기서 소개해요. 이건 법화경에만 있는 아주 유명한 말입니다.
여기 법사품이 묘한 게 저 앞서는 ‘오종법사(五種法師)’라 해서 법화경 몰라도 법화경만 지니고 다녀도 전부 법사고, 법화경 출판하는 출판사 직원들도 전부 법사다, 이렇게까지 이야기가 되는데, 여기는 조금 차원을 달리해서 여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사부대중을 위해서 말하는 사람이야. 법화경을 설법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가장 적절한 설법자가 되느냐? 응설(應說), 요 응자(應)가 참 묘해요. 딱 들어맞는, 응합 하는, 잘 맞는 응(應), 그런 설법자가 되느냐?
세 가지 조건을 이야기합니다.
42. 是善男子善女人은 入如來室하고 着如來衣하며 坐如來座라사 爾乃應爲四衆하야 시선남자선녀인 입여래실 착여래의 좌여래좌 이내응위사중 廣說斯經이니 如來室者는 一切衆生中에 大慈悲心是요 如來衣者는 柔和忍辱心 광설사경 여래실자 일체중생중 대자비심시 여래의자 유화인욕심 是요 如來座者는 一切法空是니 安住是中然後에 以不懈苔心으로 爲諸菩薩及四 시 여래좌자 일체법공시 안주시중연후 이불해태심 위제보살급사 衆하야 廣說是法華經이니라 중 광설시법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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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善男子善女人은 入如來室하고 着如來衣하며 坐如來座라사
시선남자선녀인 입여래실 착여래의 좌여래좌
이 선남자 선녀인은 여래의 방에 들어가서, 여래의 옷을 입고, 여래의 자리에 앉아서,
여래의 방에 들어가야 돼, 첫째. 여래의 방이 어딘지 얼른 찾아서 들어 가야 돼. 여래의 옷을 입어야 돼. 여래의 옷을 착복을 해야 돼. 여래의 자리에 앉아야 돼. 부처님이 앉는 그 자리에 앉아서 해야 된다, 이거예요. 참 이거 유명한 말인데요.
여래의 방에 들어가야 되고, 여래의 옷을 입어야 되고, 여래의 자리에 앉아야 된다.
爾乃應爲四衆하야 廣說斯經이니
이내응위사중 광설사경
이렇게 되어야 아주 딱 들어맞는 사중을 위해서 널리 이 경을 설하는 것이니,
그래놓고,
如來室者는 一切衆生中에 大慈悲心是요
여래실자 일체중생중 대자비심시
여래의 방이란 일체 중생에게 큰 자비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요,
그럼 그 여래의 방이란 것은 뭐냐? 일체중생의 마음에 큰 자비의 마음 바로 그것이다 이거예요. 모든 사람들에게 자비심을 일으키는 사람, 그게 여래의 방이야. 그러니까 불교는 말하자면 형이상학적인 이야기고, 또 어떻게 보면 상당히 관념적인 그런 이야기고, 정신세계, 그 정신세계도 아주 고도의 정신세계이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이해가 잘 안 돼요. 그러니까 설명이 아주 그 참 이렇게 나오잖아요. 자비심을 일으켜야 된다, 그렇게 하면 너무 어렵고 설명이 진부하잖아요? 그러니까
‘여래의 방에 들어가야 된다, 그 여래의 방이란 뭐냐? 큰 자비의 마음이다 ’
如來衣者는 柔和忍辱心是요
여래의자 유화인욕심시
여래의 옷이란 부드럽고 인욕하는 그 마음이요,
여래의 옷을 입어야 된다고 했는데 그럼 여래의 옷이란 뭐냐?
유화인욕심(柔和忍辱心), 아주 부드럽고 인욕하는 마음, 아주 마음이 부드러워. 성품이 부드럽고, 그 사람에게 그저 누구라도 가까이 가도 전혀 그 사람에게 가까이 가서 손해 볼 것 같지 않고, 다칠 것 같지 않고, 뭐 아무리 내가 실수를 해도 핀잔 줄 것 같지 않은, 그런 따뜻하고 감싸주는 그런 마음이 있고, 또 내가 그 사람에게 해치는 일이 있고, 내가 손해 보이는 일이 있어도 또 그 사람은 잘 참아줘, 인욕해. 그게 부처님의 옷이야.
그래서 자실인의(慈室忍衣)라, 자비의 집과 인욕의 옷이다, 그런 글을 쓰기도 하고 그러죠.
如來座者는 一切法空是니 安住是中然後에 以不懈苔心으로 爲諸菩薩及四衆하야
여래좌자 일체법공시 안주시중연후 이불해태심 위제보살급사중
廣說是法華經이니라
광설시법화경
여래의 자리란 일체법공(一切法空)이 이것이니, 이런 가운데 편안히 머물러 있으면서 게으르지 않는 마음으로 여러 보살과 사부대중들을 위하여 이 법화경을 널리 설할 것이니라.
그 다음에 여래의 자리라는 것은 뭐냐? 여래가 앉는 자리란 뭐냐?
일체법공이 이것이다.
부처님의 옷, 다시 말해서 일체 중생을 자비한 마음으로 대할 줄 아는 것, 그 다음에 유화, 인욕심, 인욕할 줄 아는 그런 마음, 뭐 그건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가 그런 것을 갖추었느냐? 안 갖추었느냐? 그런 것은 차치하고라도, ‘자비심’, 언필칭 하는 소리 아닙니까?
인욕심, ‘참아라!’사실 참, 참는 마음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아니하면 설법하기 어렵죠. 나는 아까 강의하고 법문하는 것이 오직 내 공부되는 그 덕, 그 이익 하나 보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드렸습니다마는 여기서는 조건이 자비심이 있어야 부처님 말씀을 해 줄 수 있고, 인욕심이 있어야 해 줄 수 있다, 그리고 그 보다 아주 중요한 것은 여래의 자리에 앉아야 돼. 일체 법공(一切法空)을 알아야 돼.
모든 법이 공하다고 하는 사실, 공의 자리에 앉아 있어야 돼. 그건 정신세계이거든요.
부처님의 앉으신 자리는 뭐냐? 바로 ‘공(空)의 이치’다.
‘공의 이치’라고 하면 반야심경(般若心經;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에서 제일 처음에 전체적인 뜻을 말하는데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모든 것이 다 공이다
오온이 공하다는 말은 우리의 몸도 마음도 텅 비었다 이 말이야. 몸도 마음도 텅 빈 줄로 볼 것 같으면[照見], 모든 문제 해결이다[度一切苦厄], 온갖 고통과 어려움과 문제는 다 벗어난다, 일체 고액을 벗어난다 이 말이여. 일체 고액을, 일체의 고통과 일체의 문제들을 전부 벗어나, 한꺼번에 다 해결이야. 몸도 마음도, 이 세상의 고통이 무엇으로부터 있죠?
내 몸으로부터 생긴 거야. 내가 있기 때문에 고통이 있는 거지 뭐.
‘나’라고 하는 것은 뭐여? 정신세계와 이 육신, 그 두 가지야. 정신적으로 오는 고통이 있고, 육신 때문에 오는 고통이 있고, 간단히 설명하면 그 것 뿐이야, 다른 것 없습니다.
그러니 이 육신과 정신, 그게 오온(五蘊)이거든요.
색(色)은 육신이고 수(受)·상(想)·행(行)·식(識)은 정신이라구요. 그러면 그것이 텅 빈 줄로, 개공(皆空), 텅 비었다. 내가 다·개(皆)자해서 빌·공(空)자니까, 텅 비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몸도 마음도 텅 빈 줄로 볼 줄 알면, 사실은 텅 비었는데 우리가 텅 빈 줄로 볼 줄을 몰라, 아직은.
텅 빈 뒤에야 그때야 알지, 텅 빈 그때야 알지, 아직은 텅 비지 않았기 때문에, 텅 비지 않은 것을 놔두고 텅 빈 것으로 보질 못 한다구요. 그런데 조금 수준이 있는 사람들은 그대로 눈앞에, 아무 탈 없이 펄펄 살아있는 모습 그대로 보고, 그대로 두고 텅 빈 줄로 봐. 텅 빈 줄로 본다구요. 사실은 누구나 다 텅 비어. 어차피 텅 빌 거야, 이게. 어떤 내가 애착하는 게 있고, 어떤 내가 미워하는 게 있어도 그거 다 텅 빈다구요. 미워하는, 그 불같은 감정, 이 세상을 다 태우고 싶은 그런 분노의 마음도 시간 가면 그게 다 사그러들고 말아. 결국 다 사그러들고 만다구요. 그걸 불교에선 텅 비었다 그래.
육신이야 말할 것도 없지 뭐. 그 대통령 자리에 얼마나 높고 근사한 자리입니까? 그런데 땅에 떨어지고, 떨어져서 저기 감옥 속에 까지 갔으면 그 입장에서 대통령 자리가 뭐가 있습니까? 그게 텅 빈 것 아니여, 그게? 텅 빈 거여. 그 자리란 게 정말 텅 빈 거여.
가만히, 그것도 내 것 말고 남의 것을 가지고 생각하면 더 이해하기가 쉬워. 내 것은 잘 이해가 안돼. (웃으심)
내 것 가지고 하면 이해가 잘 안되고, 남의 것을 가지고 이야기하면 그래도 조금 이해가 간다구요. 그 참 묘하지, 대통령 남의 것이니까, 정말 텅 비었다구요. 아 하늘까지 높던 그런 그 자리가 땅에 떨어져서 감옥 속에 까지 가 있었으면 그런 수모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보통사람도 경찰서에 한번 갔다 하면 창피한데, 대통령을 했던 사람이 감옥을 가면, 이건 뭐 창피해도 수천 배, 보통 사람이 유치장에 한번 갔다 온 것 보다 천 배, 만 배 더 창피한 일이지.
천 배, 만 배 더 창피한 일이지 그게, 그만큼 지위가 높으니까. 그러니 그런 지위가 어떻게 있다고 할 수가 있냐 이거야.
텅 빈 거야, 개공(皆空)이야.
몸도 마음도 그런데 그게 쉽게 이해가 안된다 이거야, 그게 쉽게 이해가 안돼. 정말 아주 얇은 한 꺼풀 싹 벗기고 나면 그런 경험 텅 비었어. 아무 것도 없는 줄로 본다.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 그렇게 본다고 했죠.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密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 반야심경(般若心經)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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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일체 고통으로부터 다 벗어나 있어. 어떤 문제로부터도 다 벗어나 있어. 그런데 그 분은 중생들이 벗어나지 못하고 그렇게 그렇게 별 것도 아니데 허우적대니까 할 수 없이 자비심으로 건져 주려고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이렇게 관세음보살이 자비심으로 그렇게 하는 거지, 본인에게는 그런 고통 없어요, 본인에게는 그런 고통 없습니다. 자기는 그런 고통 없어요. 우리가 사실 부처님이라고 하는 문제도 엄격하게 말하자면 어떤 상태에 지금 있던지 간에 그 상태에 있는 그대로 다 부처님이라구요. 석유를 가지고 몸에 뿌리던 말 던 그것도 역시 그대로 부처님이야. 칼로 ? 도, 칼로 ?도 부처님이라구요. 그대로 부처님이라구요. 그렇게 볼 줄 알면 되는데, 본인은 그렇게 안 되어 있지, 아직도. 그렇게 안 되어 있는 사람이 너무 많아.
언젠가 그전 종정(宗正)스님 법문에 그런 유명한 법문했죠? 초파일에 그전 종정(宗正)스님 법문을 내렸을 때, ‘교회에서 찬송가를 부르는 부처님, 공장에서 땀 흘리는 부처님, 논에서 농사짓는 부처님...’ 하고 온갖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경우의 사람이라도 다 부처님이다, 그런 법문을 내린 적이 있어요. 그 전 종정(宗正)스님.
사실은 엄격하게 이야기하면 어떤 상태든지 다 부처님입니다.
그런데 그 부처님인 줄로 ...
참조
무비스님의 한글 법화경 법사품 전문
妙法蓮華經 卷 第四 第十 法 師 品
1. 수행인(修行人)이 경전을 듣는 공덕 2. 범인(凡人)이 경전을 수지(受持)한 공덕 3. 죄(罪)를 얻는 사람과 복(福)을 얻는 사람 4. 게송으로 거듭 밝히다 (1) 경을 수지하는 공덕 (2) 죄를 얻는 사람과 복을 얻는 사람 5. 경전을 찬탄하다 6. 경전을 설(說)하는 규칙(規則) 7. 게송으로 거듭 밝히다 (1) 경전을 찬탄하다 (2) 경전을 설하는 규칙 (3) 공덕을 밝히다
제10 법사품(法師品)
1. 수행인(修行人)이 경전을 듣는 공덕 1. 이때 세존께서 약왕(藥王)보살을 인하여 팔만 대사(大士)들에게 말씀하였습니다. “약왕이여, 그대가 이 대중 가운데 있는 한량없는 천신․용왕․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사람․사람 아닌 이와,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들을 보라. 성문(聲聞)을 구하는 이, 벽지불(辟支佛)을 구하는 이, 불도(佛道)를 구하는 이들로서 이와 같은 이들이 모두 부처님 앞에서 묘법연화경의 한 게송․한 구절을 들었거나, 내지 한 생각 동안이라도 따라서 기뻐한 이들을 내가 모두 수기(授記)하노라. 그들은 마땅히 최상의 깨달음을 얻으리라.” 2. 부처님은 약왕보살에게 말씀하였습니다. “또 여래가 열반에 든 후에라도 만약 어떤 사람이 이 묘법연화경의 한 게송․한 구절만이라도 듣고 한 생각동안 따라서 기뻐하는 이에게도 내가 또한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수기를 주노라. 2. 범인(凡人)이 경전을 수지(受持)한 공덕 3. 만약 또 어떤 사람이 묘법연화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해설하고 쓰되 내지 한 구절이라도 그렇게 하며, 또 이 경전을 공경하기를 부처님과 같이하여 갖가지 꽃․향․영락․가루향․바르는 향․사르는 향․일산․당기․번기․의복․풍악으로 공양하거나, 내지 합장하고 공경하면, 약왕이여,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들은 이미 십만억 부처님께 공양한 것이니라. 여러 부처님 계신데서 큰 서원(誓願)을 성취하고 중생들을 어여삐 여기어서 이 인간에 태어난 줄을 알아야 하느니라. 약왕이여, 만약 어떤 사람이 묻기를 ‘어떠한 중생이 오는 세상에 부처님이 되겠느냐’고 하면, ‘이러한 사람들이 오는 세상에 반드시 성불하리라’고 대답하라. 왜냐하면, 만일 선남자․선여인이 이 묘법연화경에서 내지 한 구절이라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해설하고 쓰며 갖가지로 이 경에 공양하되, 꽃․향․영락․가루향․바르는 향․사르는 향․일산․당기․번기․의복․풍악으로 하거나 합장하고 공경하면, 이러한 사람은 일체 세간 사람들이 응당히 우러러 받드는 바가 되느니라. 이러한 사람에게는 응당히 여래에게 공양하듯이 공양해야 하느니라.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대보살로서 최상의 깨달음을 성취하였느니라. 중생들을 가엾게 여기어 이 세상에 태어나기를 원하여 묘법연화경을 널리 펴서 연설하고 분별하는 것이니라. 그런데 하물며 경전을 전부 받아 지니며 갖가지로 공양하는 사람이겠는가. 약왕이여,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스스로 청정(淸淨)한 업보(業報)를 버리고 내가 열반한 뒤에 중생들을 가엾게 여겨서 나쁜 세상에 태어나서 이 경전을 연설하는 줄을 알아야 하느니라. 4. 만일 이 선남자․선여인이 내가 열반한 뒤에 은밀히 한 사람만을 위하여 이 묘법연화경을 설하되 내지 한 구절만이라도 말해준다면,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여래의 심부름꾼[如來使]이며, 여래가 보내신 사람이며, 여래의 일을 행하는 사람인줄을 알아야 하니라. 그런데 하물며 대중 가운데서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널리 연설하는 사람이겠는가. 3. 죄(罪)를 얻는 사람과 복(福)을 얻는 사람 5. 약왕이여, 만약 어떤 악한 사람이 나쁜 마음으로 한 겁 동안을 부처님 앞에 나타나서 부처님을 항상 훼방하고 꾸짖더라도 그 죄는 오히려 가벼우니라. 만약 어떤 사람이 한마디의 나쁜 말로써 집에 있는 이나 출가한 이가 묘법연화경을 읽고 외우는 이를 훼방한다면 그 죄는 매우 무거우니라. 6. 약왕이여, 묘법연화경을 읽거나 외우는 이가 있으면,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부처님의 장엄(莊嚴)으로 장엄하는 사람이며, 곧 여래께서 어깨로 업어주는 사람이니라. 그가 있는 곳에는 마땅히 향을 사르고 예배하여야 하며, 일심으로 합장하고 공경 공양하고 존중 찬탄하여야 하느니라. 꽃․향․영락․가루향․바르는 향․사르는 향․비단 일산․당기․번기․의복․음식과 풍악을 연주하여야 하느니라. 인간의 상품(上品)의 공양거리로 공양할 것이니라. 천상(天上)의 보배로써 뿌려야 하며, 천상의 보배덩이를 받들어 올려야 하느니라. 그 까닭은 이 사람이 기쁘게 설하는 법문을 잠깐이라도 들으면 곧 최상의 깨달음을 얻게 되기 때문이니라.” 4. 게송으로 거듭 밝히다
(1) 경을 수지하는 공덕 7. 이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려고 게송을 말씀하였습니다. 만약 부처님의 도에 머물러서 자연의 지혜를 이루려면 항상 마땅히 묘법연화경을 받아지니는 사람을 항상 부지런히 공양할 것이니라. 그 어떤 사람이 일체지혜(一切智慧)를 빨리 얻으려면 묘법연화경을 받아 지니고 또 받아 지니는 사람을 공양할 지니라. 8. 만약 어떤 사람이 묘법연화경을 받아 지니는 이가 있으면 마땅히 알라. 그는 부처님의 심부름꾼으로서 중생들을 가엾게 생각하는 사람이니라. 이 묘법연화경을 받아 지니는 모든 사람들은 청정한 국토를 버리고 중생들을 가엾이 여겨서 여기 태어난 것이니라.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태어나고 싶은 데로 마음대로 태어나서 이 나쁜 세상에서 최상의 법을 널리 연설하리라. 응당히 하늘의 꽃과 하늘의 향과 하늘의 훌륭한 의복과 하늘의 아름다운 보배로써 법을 설하는 사람에게 공양할 것이니라. 내가 열반한 뒤 나쁜 세상에서 이 경전을 받아 지니는 사람에게는 마땅히 합장하고 예경(禮敬)하기를 세존께 공양하듯이 하여야 하느니라. 훌륭한 반찬과 맛좋은 진수와 갖가지 의복으로 이런 불자에게 공양하고 잠깐이라도 그 법문을 들을지니라. 만일 이 다음 세상에 이 경을 받아 지니는 사람은 내가 그를 인간에 보내어 여래의 일을 행하게 하는 것이니라. (2) 죄를 얻는 사람과 복을 얻는 사람 9. 만일 한 겁 동안에 항상 나쁜 마음을 품고 성낸 얼굴로 부처님을 비방하면 한량없는 무거운 죄를 얻을 것이니라. 이 묘법연화경을 읽고 외우고 지니는 사람을 잠깐동안만 욕설하여도 그 죄는 부처님을 비방한 죄보다 더 크리라. 어떤 사람이 불도(佛道)를 구하려고 한 겁 동안을 합장하고 내 앞에 서서 무수한 게송으로 찬탄하면 이렇게 부처님 찬탄한 연고로 한량없는 공덕을 얻게 되지만 이 경전을 지니는 사람을 찬탄한다면 그 복은 부처님을 찬탄한 복보다 더 크리라. 팔십억 겁 동안에 가장 훌륭한 물건과 소리와 향과 맛과 감촉으로써 이 경전을 지니는 사람을 공양하고 이와 같이 공양한 뒤에 잠깐이라도 법문(法門)을 들으면, ‘나는 지금 큰 이익을 얻었다.’라고 스스로 기쁘고 경사스럽게 여기리라. 약왕이여, 내가 이제 그대에게 말하노라. 내가 설한 여러 가지 경전들, 그러한 모든 경전 중에는 이 묘법연화경이 가장 제일(第一)이니라. 5. 경전을 찬탄하다 10. 이때에 부처님이 다시 약왕보살 마하살에게 말씀하였습니다. “내가 설하는 경전이 한량없는 천 만 억이라. 이미 설하였고 지금 설하고 장차 설할 것이니라. 그 가운데서 이 묘법연화경이 가장 믿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우니라. 약왕이여, 이 경전은 여러 부처님의 비밀하고 중요한 법의 창고이니라. 함부로 선포하여 망녕되게 사람들에게 전하여 주지 말라. 부처님 세존들이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니라. 옛적부터 일찍이 드러내어 말하지 않았느니라. 이 경전은 여래가 세상에 있을 때에도 원망과 질시가 많았는데 하물며 열반한 뒤이겠는가. 11. 약왕이여, 마땅히 알라. 여래가 열반한 뒤에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능히 쓰고 지니고 읽고 외우고 공양하며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면, 여래가 곧 그에게 옷으로 덮어줄 것이니라. 또 다른 세계에 있는 부처님의 보호하고 마음에 간직하는 바이니라. 이 사람은 크게 믿는 힘과 염원하는 힘과 선근(善根)의 힘이 있느니라.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여래와 함께 숙식(宿食)을 같이하는 사람이며 여래가 손으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을 것이니라. 12. 약왕이여, 어디서든지 이 경을 설하거나 읽거나 외우거나 쓰거나 또 이 경전이 있는 곳에는 다 마땅히 칠보로 탑을 쌓아야하느니라. 지극히 높고 넓고 장엄하게 꾸밀 것이며 더 이상 사리(舍利)를 봉안(奉安)하지 말 것이니라. 왜냐하면, 이 경전에는 이미 여래의 전신(全身)이 있기 때문이니라. 이 탑에는 마땅히 온갖 꽃과 향과 영락과 비단 일산과 당기와 번기와 풍류와 노래로 공양 공경하고 존중 찬탄해야 하느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이 탑을 보고 예배하고 공양한다면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벌써 최상의 깨달음에 가까운 사람인줄 알아야 하느니라. 13. 약왕이여, 많은 사람들이 집에 있거나 출가하여 보살의 도를 수행하면서, 만약 이 묘법연화경을 보고 듣고 읽고 외우고 쓰고 지니고 공양하지 못하면,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보살의 도를 잘 행하지 못하는 것이니라. 만약 이 경전을 듣는 이라야 능히 보살의 도를 잘 행하는 것이니라. 14. 어떤 중생이 불도(佛道)를 구하는 사람으로서 이 묘법연화경을 보거나 들으며 듣고 나서는 믿고 이해하고 받아 지닌다면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최상의 깨달음에 가까워 졌느니라. 약왕이여, 비유하자면 마치 어떤 사람이 목이 말라 물을 구하려고 저 높은 언덕에서 우물을 팔 적에 마른 흙이 나오는 것을 보고는 물이 아직 먼 줄을 아느니라. 땅을 파기를 쉬지 아니하여 젖은 흙을 보게 되고, 점점 더 파서 진흙이 나오게 되면 마음속으로 물이 결정코 가까이 있는 줄을 아느니라. 보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만약 이 묘법연화경을 듣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고 닦아 익히지도 못한다면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최상의 깨달음에 이르기가 아직 멀었느니라. 만약 듣고 이해하고 생각하고 닦아 익힌다면 반드시 최상의 깨달음에 가까워지는 줄을 알지니라. 무슨 까닭인가. 모든 보살들의 최상의 깨달음은 다 이 경에 속해있기 때문이니라. 이 경전은 방편의 문을 열어서 진실한 모양을 보이는 것이니 이 법화경의 법의 창고는 깊고 견고하고 그윽하고 멀어서 능히 이르러 갈 사람이 없지마는 이제 부처님이 보살들을 교화하고 성취하기 위하여 열어 보이는 것이니라. 약왕이여, 만일 보살이 이 법화경을 듣고 놀라서 의심하고 두려워하면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새로 발심(發心)한 보살이니라. 만일 성문이 이 경전을 듣고 놀라서 의심하고 두려워하면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잘난 체하는 사람이니라. 6. 경전을 설(說)하는 규칙(規則) 15. 약왕이여, 만일 선남자․선여인이 여래가 열반한 뒤에 사부대중을 위하여 이 법화경을 설하려면 어떻게 설해야 하겠는가. 이 선남자․선여인은 여래의 방에 들어가서 여래의 옷을 입고 여래의 자리에 앉아야 사부대중을 위하여 이 경을 널리 설할 수 있느니라. 여래의 방이란 것은 온갖 중생 가운데 대자비(大慈悲)한 마음이요, 여래의 옷이란 것은 부드럽고 온화하고 인욕(忍辱)하는 마음이요, 여래의 자리란 것은 모든 법(法)이 공(空)한 것이니라. 이런 가운데 편안히 머물러 있으면서 게으르지 않는 마음으로 여러 보살과 사부대중들을 위하여 이 법화경을 널리 설할 것이니라. 16. 약왕이여, 내가 다른 국토에 변화하여 된 사람[化人]을 보내어 그를 위하여 법문을 들을 사람들을 모으게 하고 또 변화하여 만든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들을 보내어 그의 법문을 듣게 하리라. 이 모든 변화하여 된 사람들은 법문을 듣고 믿고 받아 순종하고 거스르지 않으리라. 만약 법을 설하는 이가 한적하고 쓸쓸한 곳에 있으면 내가 천신․용왕․귀신․건달바․아수라들을 보내어 그의 법문을 듣게 하리라. 내가 비록 다른 나라에 있더라도 법을 설하는 이로 하여금 때때로 나의 몸을 보게 할 것이니라. 만일 이 경의 구절과 토를 잊어버렸으면 내가 다시 말하여 주어 분명하고 정확하게 설하게 하리라.” 7. 게송으로 거듭 밝히다
(1) 경전을 찬탄하다 17. 이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려고 게송으로 말씀하였습니다. 게으른 생각을 버리려거든 응당 이 경전을 들어야 하나니 이 경전은 듣기도 어렵고 믿고 받아들이기도 또한 어려우니라. 비유하면, 어떤 사람 목이 말라서 물을 찾으려고 높은 언덕에서 우물을 팔 적에 마른 흙이 나오는 것을 보면 물이 아직 멀리 있는 줄을 아느니라. 점점 파서 진흙이 나오면 물이 결정코 가까이 있는 줄을 아느니라. 약왕이여, 마땅히 알아라. 이와 같이 여러 사람들이 법화경(法華經)을 듣지 못한 사람은 부처님의 지혜가 매우 멀지만 만약 이 깊은 경전(經典)을 들으면 법문을 듣는 일은 완전히 마치리라. 이 경은 모든 경전의 왕(王)이니 듣고 자세하게 생각한다면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들은 부처님의 지혜에 가까웠느니라. (2) 경전을 설하는 규칙 18.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을 설하려면 응당히 여래의 방에 들어가서 여래의 옷을 입고 여래의 자리에 앉아서 대중 가운데서 두려움이 없이 널리 분별하여 설하라. 큰 자비심은 방이 되고 부드럽고 온화하고 인욕하는 것은 옷이 되고 모든 법이 공한 것은 자리가 되니 여기에 앉아서 법을 설하라. 만약 이 경전을 설할 때에 어떤 이가 욕설을 하거나 칼로 베고 막대기로 치고 돌을 던질지라도 부처님을 생각하여 응당히 참아야 하나니라. (3) 공덕을 밝히다 19. 나는 천 만 억 국토에서 깨끗하고 견고한 몸을 나타내어 한량없는 억 겁 동안 중생들을 위하여 법을 설하느니라. 내가 열반한 뒤에 이 경을 설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조화로 만든 비구․비구니들과 청신사․청신녀들를 보내어 법사(法師)에게 공양하게 하니라. 여러 중생들을 인도하여 모아 놓고 법을 듣게 하리라. 만일 어떤 사람이 나쁜 생각으로 칼․작대기․돌등으로 해치려하면 조화로 만든 사람을 보내어 법사를 호위(護衛)할 것이니라. 만약 법을 설하는 사람이 쓸쓸한 곳에 홀로 있어 적막하고 아무도 없는데서 이 법화경을 읽고 외우면 그때에 내가 청정(淸淨)하고도 광명(光明)이 있는 몸을 나타내리라. 만약 문장이나 구절을 잊어버리면 그를 위해 설해주어 통달케 하리라. 만일 어떤 사람이 이런 공덕을 갖추어서 사부대중들에게 법을 설하거나 아무도 없는 곳에서 이 경을 외우면 모두 나의 몸을 보게 하리라. 만일 어떤 사람이 외딴 곳에 있으면 내가 천신과 용왕과 야차와 귀신들을 보내어 법을 듣는 대중이 되게 하리라. 어떤 사람 설법(說法)을 좋아하여 잘 분별하고 걸림이 없으면 모든 부처님들이 보호하고 생각하시어 능히 대중들을 환희케 하리라.
20. 만약 이 법사를 친근(親近)하는 사람은 보살의 도를 빨리 얻을 것이며, 이런 법사를 따라 배우면 항하강의 모래처럼 많은 부처님을 친견(親見)하리라.
무비스님의 한글 법화경 법사품 전문 妙法蓮華經 卷 第四 第十 法 師 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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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能善行菩薩之道,,, 이 經을 듣는 사람은 보살도를 잘 行하는 것이며 곧 깨달음을 얻게 된다. " 開方便門 示眞實相 " 여래의 옷이란,,, 부드럽고 인욕하는 마음. 여래의 房이란,,, 일체 중생에게 큰 자비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 여래의 자리란,,, 모든 법이 일체 空함을 아는 것. 이 法華經을 읽거나 듣거나 수지 하는 것만으로도 십만억 부처님에게 禮敬, 讚歎, 供養하는 것과 같다,,, ! 明星華 보살님, 정말 수고 많이 하셨어요 !
인생에 대한 바른 깨달음을 열어주는 법화경... 자꾸 읽고 읽고 또 읽고... 그리고 그 뜻을 새기고... 고맙습니다. 明星華님 _()()()_
감사합니다_()()()_
法華經은 開方便門 示眞實相..._()()()_
홍경삼계(弘經三戒)...入如來室(큰 자비의 마음),着如來衣(부드럽고 인욕하는 마음),坐如來座(일체법공.공의 이치를 깨달은 자).._()_
開方便門 示眞實相 _()()()_
고맙습니다_()()()_ 녹취를 과외삼으며 두번째 사경을 오늘 회향했습니다 ^^ ......
여연행님_()()()_
若得聞解하야 思惟修習하면 必知得近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 만약 듣고 이해하여 들어가고 사유하고 자꾸 익혀 닦아 나아가면 반드시 큰 깨달음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어찌 입을 열어 표현할 수 있으리... 明星華 님! 고맙고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思惟修習...고맙습니다. _()()()_
明星華 님, 큰 스님, 고맙습니다.()()(), ()()()
불소호념(佛所護念)이란, 부처님이 아끼는 바이다~~~감사드립니다, 성불하세요~~()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_()()()_
명성화님, 수고하셨네요. ^^* 잘 읽고 갑니다. 시원합니다. ()^^*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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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深固幽遠하야 無人能到어늘 今佛敎化成就菩薩호려하야 而爲開示니라 ...........
일체 보살의 최상의 깨달음이 법화경에 속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