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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아는 운동권 후배 중에 정치지망생이 하나 있어. 그 친구가 저번 주 전남일보에 고전담론이라는 시리즈를 격주로 연재하게 되었다고 하더라고. 첫 연재기사를 보내주면서 한번 읽어보고 평을 해달라고 하드만. 읽어 봤더니 재미는 있는데 중대한 오해를 하고 있는지라 한 마디 안 할 수 없었어. 난 갈 데 없는 선생놈이라 아는 체 안 하면 입에 가시가 돋나 봐. 재미있게 구성해서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어 좋았네. 중국 선진유학자와 조선 개국 공신, 그리고 근대 서양의 사회계약론자를 불러내서 현 시국의 절박한 과제를 말하겠다는 착상도 좋았네. 왕권사회의 시대사상을 근대 시민사회의 민권사상과 병치시키려는 욕망일 것 같네. 특히 유가의 민본주의, 그 중에서도 맹자의 역성혁명 사상을 서양의 민주주의와 동일시하려는 시도는 매우 위험한 것이 아닐까 싶네. 그 왕이 왕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사상이네. 역성혁명도 폭정하는 왕은 죽여서라도 덕으로 다스리는 왕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니 여전히 백성은 다스림의 대상에 머물고 말지 않겠는가. 지배의 주체, 권력의 주체가 민이 되는 정치체제를 말하네. 신분사회에서 민주주의는 민이 지배자를 지배하는 체제였지 않은가. 민이 지배자를 제어하는 도구가 법이겠지. 그래서 이 시기 민주주의는 법치주의와 동의어가 되는 거네. 그러다 신분제가 폐지된 근대 이후 민이 민을 지배하는 체제로 발전하게 되지 않는가. 민이 민을 지배한다는 건 일종의 형용모순 같지만, 그 내용은 시스템을 통해 민이 가진 권력을 스스로 결집해서 분배하고 자신들을 위해 소비하는 정치체제를 의미할 것이네. 여기서 민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차이가 나타나네. 성군이 나타나 어리석은 백성을 교화함으로써 군과 민이 모두 도덕적 완성을 이룰 수 있다는 거겠지. 민주주의 역시 훌륭한 리더를 필요로 하지만, 그의 리더쉽은 성군의 그것과는 다를 것이네. 시스템을 이해하고 그것이 작동하게 주권자들의 자발성을 이끌어 내는 능력이 더욱 중요할 것이네. 민주주의 사회에서 리더의 능력만이 아니라 주권자인 시민들의 참여가 중요한 까닭이 거기에 있겠지. 민본주의를 민주주의와 혼동하게 되면 어리석은 박근혜 대신 세종대왕 같은 대통령을 뽑는 것으로 나라의 미래계획은 완성될 거라고 오해를 하게 되지 않을까 염려되네. 워낙 널리 퍼져 있는 오해라서 짚고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아 한 마디 했으니 양해해 주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