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비로소 만화가라는 내 길이 보였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마다 하는 필수 기본 수업이 있다. 초가집이나 기와집, 그리고 치마저고리와 바지저고리 같은 우리 것들을 아주 정밀하게 그리도록 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일생 동안 그런 걸 그릴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 사람이라면 최소한 저고리 고름은 어떻게 매는지, 기왓장은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저고리 고름을 리본 모양으로 그리는 학생들을 보며 ‘우리 것부터 알자’는 마음으로 권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바지저고리만 그리는 만화가’로 불릴 만큼 역사 만화가로 알려졌지만, 역사물을 그리는 만화가가 되겠노라 마음먹기까지 나에게도 짧지 않은 방황의 시간은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미술시간, 처음으로 그림이라는 걸 그려 본 이후 나의 꿈은 줄곧 화가였다. ‘그림 천재 났다’는 칭찬에 내가 정말 천재인 줄 알고 우쭐한 적도 있었다. 미대에 합격, 입학금만 겨우 마련해 시작한 대학생활은 혹독한 가난과의 싸움이었다. 아끼던 책을 팔아 끼니를 해결했다.
교재와 실기도구를 사지 못해 수업 시간에 들어가지 못하기도 하고, 천막 천을 얻어 캔버스를 직접 만들고, 비싼 유화물감을 감당 못해 페인트를 섞어 그린 적도 있다. 한번은 창덕궁을 그려야 했는데 입장료가 없어 그냥 돌아와 상상으로 그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림을 내놓고는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이후 공짜로 먹여준다는 것만으로 기쁘게 군대를 갔지만 제대한 후에도 현실은 변화가 없었다.
복학도 하고 유학도 가서 제대로 화가의 길을 걷고 싶다는 희망을 간직한 채 나는 생계를 위해 만화를 그렸다. 만화책을 처음 본 건 초등학교 4학년 때. 글씨만 빽빽한 책만 보다가 그림과 글씨가 같이 있는 책을 보니 참으로 신기했다. 만화책을 보다가 결말이 마음에 안 들면 뒷부분을 더 그리기도 하고, 아예 줄거리를 꾸며 그림을 그렸다.
만화를 좋아했고, 심심파적으로 만화를 그렸지만 한 번도 만화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나는 당연히 화가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복학조차 할 수 없는 가난한 미대생이었던 나에게 만화는 가장 적합한 돈벌이 수단이었다. 연재하는 만화마다 제법 인기를 끌며 10여 년을 만화가로 살던 어느 날이었다. 배고픔과 가난도 면하고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겨서일까.
내 속에서 소용돌이가 치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만화가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만화는 화가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잠깐의 수단이었는데 어느새 만화가 내 삶의 중심에서 나를 지배하는 게 싫었다. 만화를 그리면서도 늘 회화에 마음이 가 있으니 항상 마음이 무거웠다.
독자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말을 들어도 별로 반갑지 않았다. 때때로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할 사람인데 지금 뭐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느 날 이런 고민에 매듭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늦기 전에 원 없이 그림을 그려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수입이 줄었지만 아내는 다행히 나를 이해해 주었다. 그렇게 2년이 다 되어갈 무렵, 이상하게도 나는 다시 만화가 그리고 싶어졌고, 단호하게 그림을 접었다. 돌이켜보면 한바탕 한풀이였을 뿐, 나는 그저 그림에 약간 재주가 있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때서야 만화를 제대로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로소 만화가라는 내 길이 보였다. 만화가가 되기로 작정한 후 어떤 만화가가 될 것인가,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진지하게 고민했다. 워낙 옛날이야기나 역사를 좋아했기에 그거라면 재미있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24시간 만화만 생각하고 살아왔다. 잠을 잘 때도 머리맡에 항상 노트와 볼펜을 놓아둔다. 불을 켜지 않고도 메모를 할 수 있게 노트도 펴 놓고 볼펜도 눌러놓는다. 잠을 자면서도 스토리를 쓴다. 어떤 만화가가 되어야 할지 고민하는 학생들을 많이 본다.
독창성 있는 작품이 생명도 길다. 문제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아야 한다. 모든 삶이 그렇듯 자기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을 분명히 알고 가면 어려움도 어렵지 않게 이겨나갈 수 있다. 하지만 자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것도 해내는 과정을 겪어야만 한다.
마치 역사물 한 편을 쓰기 위해 기나긴 자료 조사의 고된 시간을 갖듯이, 아무리 지루 하고 힘들어도 먼저 바지저고리와 기왓장부터 정성을 다해 그려 보듯이 말이다.
만화가 이 두 호 님은 1943년 경북 고령군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으며, 중학교 2학년 때 <피리를 불어라>를 시작으로 50여 년 동안 만화를 그려왔습니다. 대표작으로는 <암행어사 허풍대> <바람소리> <머털도사님> <덩더꿍> <객주> <임꺽정> 등이 있으며 YMCA 우수만화작가상, 한국만화문화상, SICAF2004 코믹어워드대상, 문화예술 발전 공로자에게 주는 보관문화훈장(2007) 등을 수상했습니다.
현재 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의 교수로 재직 중인 님은 8월말 퇴임을 앞두고 있습니다. 요즘은 10권짜리 ‘한국사’를 그리고 있으며 앞으로 ‘동학’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어 6년 전부터 자료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
첫댓글 ^-^
머털도사~~ 꺅 진짜 조아하는데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