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서 쾌속선으로 1시간 20분 거리, 대이작도와 사승봉도 사이에는 만조시에는 바다가 되었다가 간조시에는 물이 빠져 광활한 모래섬이 생기는 '풀등'이라는 바다의 신기루가 있다.
썰물 때 불과 3 - 4시간 보였다가 밀물이 들면 사라지는 모래섬. 섬사람들은 이곳을 '풀등' 또는 '풀치'라고도 부른다. 모래가 많이 모여 있는 곳을 모래풀이라고 불러왔는데 그 모래톱의 등성이가 드러난다고 해서 풀등이라고 부른다. 풀치는 물이 흐르는 곳의 가장자리에 두둑하게 생긴 언덕 모양의 둔치에 모래풀이라는 단어를 합쳐서 풀치라고 한다는 설과, 갈치 새끼인 풀치 떼들이 푸른 바다를 길게 휘어가는 모양새라고 해서 풀치라고 불렀다는 설이 주민들 사이에 전해지고 있다.
실제 이작도 섬 모퉁이에서 내려다 보면 풀치는 영락없이 갈치 떼가 바다 한 가운데를 휘젓고 가는 모습이다. 하루에 두 번씩, 음력 보름과 말께인 사리 때 가장 크게 모습을 드러낸다. 풀등 전체 모습은 대이작도 부아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잘 볼 수 있다.
이 신비의 섬은 그 규모가 무려 30만 평에 이른다. 대이작도나 승봉도에서 들어갈 수 있는데, 풀등에 올라 모래섬을 걷다보면 가도가도 끝이 보이지않는다. 섬인지 육지인지 구별이 안갈 정도이다.
풀등은 이어도의 16배 크기로 동서 약 3.59km, 남북 1.15km에 이른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사리 때는 길이가 5km까지 드러난다. 해수에 잠겨 있는 부분까지 포함하면 32.49k㎡ , 길이가 동서 9.8km, 남북 4.4km에 달한다고 한다.
태풍이나 해일의 피해를 막아주는 천연방파제 역할과 해수욕장으로도 활용된다. 풀등은 뛰어난 모래경관과 수산생물의 서식지로서 보호할 가치가 높아 해양생태계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런데 이처럼 해양생태학적으로 귀중한 모래섬이 점점 줄어드고 있거나 심지어 섬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국토해양부가 해양환경관리공단 주관으로 실시한 2012년 대이작도 해양생태계 정밀조사에 의하면, 풀등의 면적은 2008년 1.79k㎡
에서 2010년 약 1.59k㎡ 로 2년간 11%나 감소하였고, 2012년 8월 제15호 태풍 볼라벤 내습 후에는 풀등의 정상부가 북쪽방향으로 20-30m 가량 이동한 사실도 확인하였다.
또한 평상시에는 한강하구로부터 유입되는 퇴적물이 대이작도에서 외해 방향으로 서서히 이동되다가 태풍과 같은 강한 에너지에 의해 반대방향으로 역동적으로 이동되면서 풀등이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밝혀내기도 하였다. 풀등 규모가 줄어드는 원인에 대해 논란이 분분하다. 지역주민들은 풀등의 침식원인을 1990년대 중반부터 대이작도 남단 선갑도 해역에서 이뤄진 해사채취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조속한 과학적 원인분석과 대책이 절실하다.
아무도 없는 허허벌판 모래사막을 계속 걸어본다. 사방은 바다. 철창벽 없는 감옥에서 자유를 만끽한다. 갈매기떼들 만 이방인들을 반겨준다. 웅덩이처럼 움푹 패어진 사구들도 있는 반면, 대부분 지역은 다리미질을 한듯 곱게 다져진 사막이다.
섬 중간 낮은 곳에는 아직 바닷물이 덜 빠져나가 갯골 모양을 이루고 있는 곳도 보인다. 모래 위에 그려진 흔적들이 아름답다. 바다가 그리고 간 수묵화들. 조물주가 만든 자연보다 더 아름다운 예술작품이 있겠는가?
풀등은 대이작도 작은풀안 해수욕장에서 가장 가깝지만 사승봉도 역시 지척이다. 9시 45분 경 모래섬에 입도,약 1시간 반 정도 걸었을까? 어디까지 걸었는지 알 수가 없다. 이정표도 없는 길. 아직도 끝은 보이지않는다.
함께 온 동료 한 명이 보이지않는다. 평지사막이니 당연히 보여야 할 것 같은데 아무리 둘러봐도 시야에 들어오지않는다. 자세히 보니 섬 코너 한 쪽에서 쬐그만 점 하나가 움직인다. 역시 넓다. 발길을 재촉한다.
또 다른 무인도 사승봉도를 가기 위해 아쉽지만 11시 15분에 다시 타고 온 배로 철수한다. 사승봉도 역시 물이 빠지면 길이 4km, 폭 2km의 광활한 백사장이 들어난다.
물이 들어오기 전에 두 섬을 모두 보기 위해 서두른다. 사승봉도가 지척으로 눈에 들어온다. 사승봉도는 '사도(沙島)'라고도 부른다. 개인이 소유한 섬으로서 관리인만 살고 있는 무인도이다. 깨끗하고 고운 모래로 다져진 백사장은 야영하기에 좋으며 갯바위에서의 바다낚시 명소로도 알려져 있다. 피서철에는 승봉도 선착장에서 부정기적으로 배가 다니지만, 비수기에는 섬에 직접 연락해서 배를 불러야 한다.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주변이 조용하고 깨끗하며, 저녁이면 바다 끝으로 떨어지는 석양이 특히 아름답다.
이곳 역시 간조 때는 '풀등'처럼 끝이 보이지않는 모래사장이 장관이다. 이곳이 풀등과 다른 점은 풀등은 만조가 되면 모래섬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지만 이곳 모래사장은 사승봉도에 이어져 있어 물이 빠지면 사승봉도의 일부가 된다는 점이다.
모래섬 코너에서 우리 일행을 태우고 왔던 낚싯배가 기다린다. 뒤에 보이는 섬은 '섬마을선생님' 촬영지로 유명한 대이작도다. 거리상으로는 대이작도가 풀등과 제일 가깝다.
배에 오르면서 잠시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이 모래섬을 떠나지않고 그대로 바다로 가라앉으면 어디로 가게 될까? 용궁으로 가는 길이 혹시 보일까? 동화 속 인어공주라도 만날 수 있을까?(글,사진/임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