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팔년도 자유중국 항공기 추락사고
이 내용은 2022. 8.12(금) 카페 ‘개갈 안 나네’에 포스팅하였던 것입니다. 그 후 여러 분들의 다양한 제보와 의견이 있어 일단 가능한 한 확인하여 올리지만 아직도 고쳐야 할 곳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새로운 사실이나 의견이 있으면 댓글로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2022.8.20)
아래는 자유중국 항공기 추락 사고에 대해 목격자들이 회상하는 대담록이다.
일시 : 2022년 8월 11일 1300~1400
장소 : 충무로 버커킹
참석 : 신정섭, 심의섭, 오수영, 이인석
심의섭(사회):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 얘기 좀 들으려고 하는데 신 정섭 선생의 고향에서 있었던 일이라서 기억이 잘 살아나면 좋겠습니다. 1955년도 3월 26일이 이승만 대통령의(1875.3.26~1965.7.19) 여든 번째 생일인데, 팔순축하행사에 자유중국의 축하 사절단이 탑승한 전용기가 대만에서 김포로 오던 중에 오서산에서 추락했다는 설이 자자했습니다. 어떤 비행기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좌우간 비행기가 충청남도 홍성군과 보령시에 걸쳐있는 오서산의 남쪽 산허리에 충돌한 사건인데 아마 3월 25일인가? 이른 새벽일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비행기가 추락한 동네 이름이 어디지요?
신정섭: 그 사고가 일어난 곳은 충남 오서산 보령쪽 중하층, 황룡리와 장현리의 경계 지점 구막골 골짜기에서 최초 일어났고, 여러 차례 튀어 나가 황룡리쪽 산 아래까지 잔해가 떨어졌어요. 오서산(791m)은 충남에서 계룡산(845m) 다음으로 높은 산이고 서해안에서는 제일 높은 산이어서 서해의 등대라고도 합니다. 따라서 높은 산이 항로 앞에 있는데 비행기의 고도가 낮았다면 일어날 수 있는 사고입니다. 오서산을 중봉, 상봉으로 생각하면 중봉에 충돌한 사건입니다. 비행기가 대만과 김포를 오가는 항로인데, 어떤 비행기가 어떤 목적으로 오서산을 남쪽에서 북쪽으로 넘다가 오서산에 충돌했습니다. 사고 날자는 3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의 생일 전날인 3월 25일(금), 초저녁 때 6시~8시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당일 초저녁에 동네 사랑방에 모였던 마실군들이 ‘쾅’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전해집니다. 만약 다음날 26일 리승만 대통령 생일을 축하하려는 대만의 경축 사절단이 탑승했다면 전날에 오는 길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입니다. 나도 사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비행기가 산을 받아 폭발한 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것을 보았어요. 비행기가 떨어진 곳은 당연히 엉망진창 있었겠지요. 불이 나서 연기가 하늘 높이 솟아오르고 그랬어요. 동네 사람들이 궁금해서 많이들 몰려갔습니다. 할 얘기는 아니지만 아마 갔던 사람 중에 개중에는 이것저것 주어온 사람들도 있었답니다. 비행기가 폭발해서 흩어진 잔해이니까 무언가 호기심이도 있었을 것이고, 또 쓸모가 있을 것 같은 것은 주어가지고 왔겠지요. 불이 났으니까 탈 수 있는 것은 다 타 버렸을 터이고 흩어진 것은 쇠붙이나 쇠 덩어리, 부품 쪼가리 같은 것일 텐데 주어다가 쓰거나(?) 엿장수들한테 팔면 비싸게 받을 수 있었을 테니까요.
심의섭: 아마 동네가 뒤숭숭하고 어수선 했을 것입니다. 평화로운 한적한 시골에 큰 난리가 났을 겁니다. 비행기가 산을 들이받아 폭발하고 승객들이 전멸했으니까요.
신정섭: 당연하지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고 눈에 선한 것은 개죽음을 한 영혼들의 귀신이 붙을까 봐서 너무나 무서워서 동네가 야단이었어요. 무서우니까 뭐 대책을 찾아야 헸을 터인데, 어쩌겠어요. 무당이 큰 역할을 맡아야 했어요. 아마 근동에서 유명하다는 무당들은 모두들 와서 귀신 안 붙도록 굿을 많이 했지요. 동네 굿도 하고 집집마다 굿을 안 한집이 없었을 겁니다. 귀신을 쫒아야 하니까 그럴 수밖에 별 수 없었겠지요.
심의섭: 아 참, 이 사건에 대해 오 수영 선생하고도 몇 번 얘기해 봤어요. 이참에 전화 한번 해봅시다. 오 선생, 오래만입니다. 지난번에 오서산 비행기 추락 건 얘기를 나눴는데 여기 신 선생도 같이 있으니까 몇 마디 나누어 봅시다. 혹시 생각나는 이야기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오수영: 아, 반갑습니다. 그거요 . . . 내 기억으로는 아마 국민학교 4학년 때인 것도 같고(1955), 중학교 3학년 때인 것도 같은데(1960) 확실한 년도는 기억이 가물거려요. 봄 방학 때 보령시 청라면 장현리 명대계곡 귀학송(육소나무) 옆에 사시던 누님 댁에 놀러 갔었습니다. 사고난지 얼마 안 되어서 현장을 가본 적이 있어요. 지금도 소름 돋는 얘기인데 그때까지도 구두가 신겨진 채로 잘라진 발목이 나뒹구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던 기억이 살아납니다. 아마 그 때는 사회질서나 위기대응이나 모든 것이 지금 같지 않아서 사고수습도 제대로 못하고 그냥 방치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인석: 그렇네요. 오 선생이 봄방학 때로 기억하는 것 보니 3월 25일에 사고가 난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내 기억으로도 중학교 때인 것 같은데요.
심의섭: 국민학교 4학년 때면 1955년, 단기로 4288년이네. 그러니까 쌍팔년도(88)네요.
이인석: 쌍팔년도라고 하는 말이 거기서 나왔어요. 우리도 한 동안 쌍팔년도라는 말을 참 많이 사용했어요.
오수영: 1953년 휴전이후 정국이라 무법천지였어요. 1960년 4.19때까지 무질서가 판을 치는 극심한 혼란기를 겪어야 했어요. 1948년 정부수립 연도부터 우리의 유구한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서 써오던 단기(檀紀)연호를 1960년 5.16 쿠데타 이후 군사정부는 기년법(紀年法)을 제정하여 1962년 1월 1일부터 서기 연호를 쓰기 시작 했어요.
심의섭: 그래서 그 후부터 무질서라든가 혼란했던 시절을 이야기할 때 쌍팔년도라고 말하게 되었지요.
신정섭: 요즈음은 쌍팔년도라는 말이 사라지고 있어요. 옛부터 쓰던 말인 ‘옛날, 옛날, 한 옛날에’,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같은 말 대신 쌍팔연도를 들먹였습니다. 앞으로는 그러한 무법천지, 무질서가 판을 치는 혼란한 세상이 다시 오지 말아야 합니다. 아, 그리고 사고 연도는 동네사람들의 증언과 내 장조카인 신재완(65) 전 웅천중고등학교 교장이 1960년 3월 25일로 확실히 고증해주고 있습니다.
심의섭: 그럼 사고 발생 날자는 확실해졌네요.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당시에는 큰 사고이었는데 백과사전에서 국제 항공사고를 검색해보면 오서산 항공기 추락 사고는 없어요. 그래서 이렇게라도 단편적인 기록을 남길까 생각한 것입니다. 물론 당시 모든 신문이나 통신을 뒤적이면 기록이 어디엔가 있겠지요. 그런데 나는 그런 능력도 없고, 거기까지는 조사를 할 수가 없습니다. 아마 우리도 이미 나이가 들어 그 일을 기억할 수 있는 마지막 세대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구전으로라도 남기고 싶어서 오늘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입니다. 그래야 후대의 관심 있는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해서 이야기라도 남기고자 한 것입니다. 하지만 나이든 사람들의 기억이라서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대충은 맞는 이야기이지, 전혀 틀린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생신이 3월 26일인데 축하행사가 거국적으로 거행되었고, 팔순인 1955년부터 1960년 4.19까지 해마다 대통령 생일을 공휴일로 정해서 축하행사를 벌렸습니다. 심지어 서울이란 이름이 외국인들에게는 발음이 쉽지 않다고 해서 이승만 박사의 호인 우남(雩南)을 넣어서 새 서울의 이름을 우남 시로 하자고까지 했다니까요. 그건 그렇고, 동네사람들이 그곳에 많이들 들락날락, 왔다 갔다 했겠지요?
신정섭: 암, 당연하지요, 비행기가 충돌한 산 중턱이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주변이 둥그렇게 표시가 났었어요. 마치 나무가 안 붙은 채석장처럼 말이야. 어찌나 큰 충돌 이었는지 비행기 타이어가 황룡리 쪽으로 2km 밖까지 날라 갔고, 죽은 자의 팔, 다리, 사지가 찢어져서 나무에 걸리거나 주변에 널브러져 있었답니다. 어떤 이는 그곳에서 팔목에 붙어 있는 우데마끼도 주서 왔다는 얘기도 있었어요. 내도 중학교 다닐 때 같은데 몇 학년 때인지는 정확히는 생각이 안나요. 이제 다들 늙어서 그 사건을 목격하고,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우리가 제일 늙은이인가 봐. 나는 당시 어린 학생이었으므로 그 날 그 사건 현장에 가보지는 않았어요. 그 후에는 몇 번 올라가서 가서 충돌 흔적을 보기는 했지요. 그런데 귀신이 붙는다는 무서운 얘기를 많이 들어서 오들오들 떨렸어요. 사고가 나고서 한 달이 지나더락(지나도록) 현장 수습이 제대로 안 되어서 동네사람들이 나무하러 가는 것도 무서워서 피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 . . 귀신 이야기는 너무 많았어요. 그때까지도 시체 찢어진 것들이 나무에도 걸려있었대요. 나무를 하러갔다가 나무대신 쇠 쪼가리 같은 이상한 물건들을 주서오곤 했대요. 비행기 쪼가리는 비쌌을 터니까 일부러 가져오기도 했겠지요. 참 오래 만에 추억을 더듬어 되살리자니 마음이 퀭합니다.
심의섭: 좋은 증언에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이만하고 다음에 계제가 되면 좀 더 이야기 나눠봅시다.
일동: 감사합니다.
첫댓글 우데마끼는 당시 유행하던 손목시계(ウデマキ, 懐中時計, ウデに巻く腕時計, 팔뚝시계, 팔목기계, 손목시계)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