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가 늦었네요.
오늘 오전에 후기를 남기려 했으나 갑자기 밀려닥친 업무때문에
부득이 이제서야 글을 남깁니다.
우선 어제는 잘 들어갔구요,
장담한대로 처음부터 자리에 앉아서 끝까지 갔습니다.
두분 모두 잘 들어가셨겠죠?
집으로 가는 길에 요즘 재밌게 읽고 있는 책을 꺼내들었습니다만
제 머리속에서는 온통 헤드윅 생각 뿐이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 정리가 된 후에 작품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볼 생각입니다.
그만큼 헤드윅은 저에게 큰 화두를 던져주었습니다.
3년전 그때처럼...
저의 헤드윅에 대한 첫 기억은 2년전입니다.
인사동에서 열린 '퀴어영화제'에서 '헤드윅이야기'라는 다큐영화를 봤었습니다.
원작인 '헤드윅'의 소재를 따서 만든 성적소수자들의 삶에 대한 다큐였죠.
워낙 낯설던 영화였고, 그래서인지 새로운 영화를 보았다는 느낌외에는 큰 감흥은 없었습니다.
덕분에 원작인 '헤드윅'에 대한 줄거리 정도만 나중에 찾아봤었습니다.
그리고 올 봄이었나?
조승우와 오만석이 헤드윅의 타이틀롤로 공연한다는 뉴스를 접했죠.
한번 봐야 겠다..이런 생각을 줄곧 했었습니다.
(저는 조승우가 유지태 다음으로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고 평가합니다.)
그러다 어제 공연을 보게 되었습니다.
공연의 초반부분이었습니다.
헤드윅 아니 한셀의 어머니가 한셀에게 들려주신 얘기에 대한 노래가 나왔습니다.
이해하기 힘든 그림들과 함께
노래의 가사를 듣기위해 온 신경을 집중했으나
몇몇 구절밖에는 들을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몇마디 구절에서 저는 또다른 작품인 '에쿠우스'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이후의 전개를 보며 저는 끊임없이 에쿠우스가 매치가 되더군요.
에쿠우스.
실은 제가 3년전에
대학 연극반에서 공연을 했던 작품입니다.
쑥스럽지만 제가 알런을 했었습니다.
작품분석을 하면서
그리고 공연 전날까지도 알런에 대한 고민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미친놈'(죄송합니다) 역을 하다가 내가 미쳐버리는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알런을 연기하면서 제가 받았던 스트레스는 엄청났습니다,
알런의 이중성과 언뜻 보이는 혼란.
그리고 클라이막스에서의 폭발.
이후의 알런은 어떤 모습일까?
정상인으로 돌아갔을까?
아니면 계속해서 말을 사랑하는 소년으로 살아갔을까?
또 아니면 기억을 애써 부정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갔을까?
다이사트는 또 어떻게 되었을까?
헤드윅은 정말 놀라울정도로 에쿠우스의 알런과 닮아 있었습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표절이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표절이라는 건 아닙니다.ㅜㅜ)
알런의 회상과
앵그리 인치의 공연
다이사트와 이츠학
클라이막스의 폭발...
공연이 결말로 치닫는 동안 헤드윅의 결말이 제가 예상하는 것과 다르기를 바랬습니다.
제가 좀 더 혼란스러워 지기를 바랬거든요...
하지만 에쿠우스의 알런이 그랬듯
헤드윅은 혼란을 딛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습니다.
다이사트가 알런을 보면서 그랬듯 이츠학도...
3년전 에쿠우스 공연을 하면서 고민했던 지점들을
헤드윅이 말끔히 씻어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몇십년이 지난 지금 이시대에
에쿠우스와 헤드윅이 변함없이 관객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역시 연극이 좋구나
내가 연극하기를 잘했구나
앞으로 사명감을 갖고 연극을 해야겠구나
내가 느끼고 우리가 느꼈던 카타르시스를 더많은 관객들에게 느끼게 해주어야 겠구나...
유치하지만 이런 생각을
다시금 갖게 해주던 공연이었습니다.
헤드윅을 보신분들 중에 혹시
이런생각 안해보셨는지요.
'헤드윅'의 진정한 주인공은 헤드윅이 아닌 '이츠학'이라는...
자신의 지난 얘기를 읍조리며 조금씩 정체성을 찾아가는 헤드윅을 바라보며
관객들 눈치채지 않게 조금식 감정의 변화를 보이며
결국에는 자신감에 찬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는 이츠학.
또한 헤드윅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까지는
이츠학이 공이 컸습니다.
이츠학은 계속해서 헤드윅에게 욕을 해대며 토미와 헤드윅의 현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헤드윅'은 이츠학의 작은 비중이 아쉬웠던 작품이었습니다.
오늘 일필휘지로 쓴 제 글을 보면 내일은 또 다른 글을 쓸 수 있을듯 합니다.
아직 머리속이 정리가 안되고 있기 때문이죠.
.
공연을 본후 쥔장님과 민정씨와 이런저런 얘기를 했었습니다.
제 생각과 다른 부분들이 많아서 더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시간관계상 그러지 못한점이 많이 아쉽네요.
다음에는 좀 더 충분한 시간을 갖고 많은 얘기들을 나눴으면 합니다.
카페내에 토론 소모임을 갖는건 어떨까요?^^
아무튼 카페 덕분에 보석같은 시간을 갖게 되서
참 의미있는 하루였습니다.
제가 평일에 대학로에서 공연을 본것은 거의 10년만인것 같습니다.^^
다음에도 좋은 만남이 있었으면 합니다.
PS.선배님. 감사합니다. 나중에 제가 술이라도 한 잔 사겠습니다.^^
첫댓글 좋지요^^ 우리들의 보석같은 시간을 위하여~
OST의 예습없이 처음 헤드윅을 보면 가사를 잘 알아듣기 힘든거 맞는거 같습니다. 저또한 그랬고, 그래서 처음 헤드윅을 봤을때는, 공연을 놓칠까 가사 파악을 아예 포기하고 봤습니다. 볼때마다 점차 달라지는 제 감정에 놀라버린 헤드윅입니다. 님도 다시한번 OST를 들으시고 보시기를 추천하고 싶네여.
요새 공연장에 가면 헤드윅의 노래를 모두 따라부르는 분위기..첨 보는 사람들이 엄청 민망해하더라구요^^
후기 올리시죠^ 그리고 유린타운 함 같이 가실래요?
맞아요 앞 줄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가운데는 20대 중반 이후 뒷불과 2층은 30대에서 40대까지
안그래도 헤드윅 OST 들어볼라고 P2P 검색했었습니다.ㅎㅎ 예술을 사랑한다는 사람이 불법다운이라니.ㅋ 제가 '뮤지컬은 정서에 안맞아' 하면서 애정의 끈을 놓고 있었던 시간들이 후회가 되었던 공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