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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에게 물었다 | ||||||
"무소유로 살겠다고 했는데 그 결과가 이것이니?" 질문을 깊이 묵상하면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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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힘들다고 말하는 아내에게 언성을 높였다. 너무 추워 지하방에서 살기가 힘들다고 아내가 대전 처남집으로 내려갔었다. 그런데도 아내의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었던 모양이다. 나를 보자마자 편치 않은 마음을 내보였다. 편치 않은 마음을 보이는 아내에게 감사하지 못한다고 언성을 높인 것이다.
부엌도 없고 화장실도 없는 단칸 지하방에서 생활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지하방은 일정한 수입이 없는 우리에게는 참으로 적당한 거처이다. 김성복목사의 배려로 집세도 전기세도 물세도 난방비도 내지 않고 겨울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 군산에서 인천 지하방에 와 보니 수도가 얼어서 물이 나오지 않았다. 수도가 얼면 이층 화장실 사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내와 24시 찜질방에 가서 하룻밤을 지냈다. 그리고 아침에 재활원에 가서 성우형제와 함께 주일 예배를 드렸다.
재활원 화실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고 지하방으로 왔다. 그런데 이런 생활이 아무 희망도 보이지 않는 생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불안해 하는 이유가 이런 생활이 1년이 넘었는데도 생활에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여기 저기 일할 곳을 찾고 있지만 목회만 30년을 한 우리에게는 직장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아내의 나이가 이제 쉰 여덟 살이 되었으니...
내가 나에게 물었다. "야, 너 왜 이렇게 사는 거니?" "무소유로 살겠다고 했는데 그 결과가 이것이니?"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는 꼴이 이 모양이니?" 하나님이 돌보신다고...
그래서 힘들어서 불평하는 아내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던 것이었다. "우리가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보여야 하쟎아!"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한 경쟁사회에서 무능력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돈이 만능인 사회에서 돈으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돈이 떨어지면 어쩔줄 몰라하는 우리 모습이 우습다. 무능력해 보이는 내 모습을 보니 영 지혜롭지 못한 인생을 살아 온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순간 벼랑 끝에 선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렇게 살다가 죽어도 좋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나를 믿고 평생 살아온 아내를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어제 아내가 '당신이 나보다 일찍 죽으면 살 길을 찾아야지요.'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대전에 가서 직장을 구하기 위해 일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오직 목회자의 아내로 살아온 아내에게 내가 죽으면 살 길이 있을까?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리라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리라 그렇게 믿기만 하면 되는 거냐구 그런데 벼랑 끝에 선 것 같은 이 느낌은 무엇일까?
눈에 보이는 현실이 너무 암담했기 때문이었다. 육십년을 넘게 살았는데 살 집도 없고 아무 대책이 없으니... 무대책으로 산다고 후배들이 놀렸을 때 하나님이 대책이시라고 했는데... 왜 벼랑 끝에 선 느낌이 든 것일까? (아내가 '다른 목사들이 당신을 보면서 당신처럼 살지 않겠다고 하겠네.'라고 말했을 정도니까)
내가 나에게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 생각이야?" "믿음으로 살아야지. 믿음으로..." "그리고 기도하며 사랑으로 살아야지."
다시 나는 나에게 물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이고, 사랑으로 사는 것이 뭐야?"
나는 나에게 하는 질문에 대답을 하기 위해 묵상을 했다.
하나님, 바울은 감옥에서 고생을 하다가 목이 잘려 죽었잖아요. 그리고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메달려 죽었잖아요. 사도들 중에 편하게 살다가 죽은 사람이 없잖아요. 하나님, 자발적으로 가난하게 산 것이 무슨 잘못인가요?
포기할 수 없는 나의 삶의 목표를 바라 보았다. 이제 시작인데 세상의 절망이 나의 희망을 잡아 먹고 있었던 것이다.
간암으로 투병생활을 하고 계신 수덕이 형님을 방문했을 때 "형님, 살아야 할 인생의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병마와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살아야 할 목표가 없으면 병마와 싸워 이길 수 없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리고 수덕이 형을 위해 간절히 기도를 했었다.
믿음으로 살다 살다, 사랑으로 살다 살다 죽으리라. 두환이 결혼식에 참석한 후 군산에서 인천으로 오는 버스를 타러 가는데 시외버스 터미날까지 배웅을 나온 후배목사가 차비를 챙겨 주었다. 그도 가난한 농촌 교회 목사인데도... 나는 돈을 받은 것이 아니라 사랑을 받은 것이다. 인천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후배목사의 따뜻한 사랑으로 평안하게 올 수 있었다. (두환이는 내가 벌교에서 목회할 때 중학생이었는데 지금은 전도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질문을 깊이 묵상하며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 빈들교회를 떠나면서 '21세기에 믿음의 그루터기를 남기겠다.'고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빈들교회를 떠난 지 5년이 지났다.) 그리고 지난 1년동안 사랑으로 살아왔던 수많은 일들이 떠올랐다. 그래,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 사는 거야. 그리고 사랑이 메말라가는 세상에 사랑을 심는 거야. 내가 나에게 질문을 하고 대답을 하면서 주일 오후를 보냈다. |
첫댓글 경제적으로 어려운것 같습니다. 화천에 있는 시골교회를 가시면 먹거리,잠자리 해결될수 있을것 같은데..지금 나이 같으면 농사일 도와주고 일정 수입도 벌수 있고 신앙생활 할수 있고..직장을 알아보고 있을 열정이면 소개해주고 싶네요..
저는 무소유를 원하지 않아요. 일용할 모든 것들은 양식으로 구합니다. 그 양식이 떨어진 적이 없습니다. 어려운 적은 많이 있었지만 일용할 것들로 고생하지는 않았습니다. 무소유 하고 싶어도 무소유가 되지 않더군요. 내 잔이 넘치나이다 찬양할 수 밖에 없게 만드신 하늘에 감사를 드립니다. 아이들이 한창 사춘기를 지낼 무렵 반지하 그것도 아이들이 한발짝에 화장실 두 발짝에 안방 세 발짝에 내 방 이라고 노래부르던 시절도 있었고 까마귀가 물어다 주는 것만 바라보고 살던 시절도 있었지만 일용할 모든 것들은 풍성했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믿음과 사랑의 씨알을 뿌리면 그것들이 쑤욱쑤욱 자라서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믿음과 사랑의 씨앗이었는지는 후에 가 보면 알지요. 기다려야 해요. 기다림은 그리움으로 다가오고 그리움은 결국 하늘을 만나지게 하더이다. 아무 것도 없어도 덩실덩실 춤추며 살아갈 수 있더이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금식하고....이러한 것들이 하늘의 메시지로 들릴 때 내 삶은 생명으로 가득차더이다.
무소유의 본질은 정신적인 것에 있지않나 생각합니다. 의식의 성장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정신적인 비움(허)이 중요합니다만 물질은 의식의 성장을 돕는 한에서만 유용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사용하고 버릴 수단이나 도구에 집착할 필요는 없지만 필요한 만큼은 있어야겠지요. 수단의 미덕은 적절히 사용하는 것에 있습니다. 목적은 당연히 영적 성장이겠구요. 그러나 이세상은 선과 함께 악과 불합리도 가득하므로 우리모두에게도 그렇지만 고결한 분들에게는 살아내는 것 자체가 특히 더 고난스러운 것같습니다.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모든 것은 일용할 것 만큼은 꼬옥 필요합니다. 소유해야지요. 그러나 비움은 다른 차원인 것 같이 느껴집니다. 비운 만큼 하늘의 것들이 채워집니다. 비움이 무인줄 공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에요. 하늘의 것이라고 해야 맞을 겁니다. 다른 것과 바꿀 수도 비교할 수도 없는 무언가가 있더이다.
삶으로 하나님을 증거하겠다는 신앙자세에 경의를 표합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실제로 사는 사람은 아주 드물거든요. 목사님이 무능해서 무소유로 산 것은 아니겠지요.
인품과 삶이 깨끗하고 높으신 분으로 다가옵니다. 일용할 양식을 위해 무슨 일이나 하실 태세가 되어있지만 먹을 게 없어서 찬물만 마시다가 세상을 뜬다면 그 죄와 책임을 배불리 먹은 자들이 져야겠지요.
이 베드로입니다. 저 역시 하늘에 맏기고 생활합니다 진부한얘긴 접겠읍니다. 기도하십시요
순례자의 길이 때론 벅찰때...
삶이란...언제나 우리의 모든 것을 뛰어넘는 것이기에...
감히...쉽게 논할 수가 없음을 절감하게 됩니다...
박수를 보내드리며...
하느님을 경외하는 그 씨름과 고뇌에 함께...두손모아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비록 현재의 열매가 달달하게 다가오진 않아도...
값진 열매이기에...
가시는 님의 길에
중심의 평화와 고요가 더욱 함께하시길...응원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