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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예배설교문(온생명교회/ 2011-12-18)
기도응답으로 받은 아들 2(눅 1:13-25)
요한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을 것임
오늘은 대강절 마지막 주일입니다. 대강절은 기도절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주셔서 우리의 모든 곤란과 고통을 풀어주십사 기도하는 절기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에게서 나올 수 없으니 하나님께서 구원자를 보내어 달라고 기도하는 절기입니다. 이 모든 탄식과 간구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성탄절에 오신 아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먼저 다른 한 아기를 보내어 주겠다고 하십니다. 제사장 사가랴와 그의 부인 엘리사벳에게서 태어날 아기 요한입니다.
천사는 사가랴에게 그 아들의 태어남이 그들 자신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많은 이들은 누구겠습니까? 엘리사벳과 마찬가지로 불임에 시달렸던 많은 부인들이겠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기다렸던 경건한 주의 백성들입니다. 그들은 요한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어떻게 돌아보시는지 분명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요한은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을 입을 것입니다. 그는 주 앞에서 큰 자가 될 것입니다. 그도 부친처럼 제사장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는 제사장중에 큰 자가 될 것입니다. 아니, 제사장보다 훨씬 나은 자가 될 것입니다. 요한은 우선은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않을 것입니다. 나중에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요한의 이런 금욕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극단적이라고 생각하면서 귀신들렸다고 평가합니다. 하지만 요한은 귀신들린 것이 아니라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을 받습니다. 몇 달 후에 수태고지를 받은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는데 요한이 태중에서 기뻐 뛰놀았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요한은 태내에서부터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 모든 아이가 이런 은총을 입을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드문 일입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돌이키는 일을 하게 될 것임
요한은 외형적인 행태로서는 귀신들렸다고 볼 수밖에 없는 금욕적인 모습을 하겠지만 실은 모태에서부터 성령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왜 이런 독특한 모습을 가지도록 하셨을까요? 요한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17절이 천사가 한 말의 하이라이트입니다. 가브리엘은 요한을 구약시대 가장 위대한 선지자였던 엘리야에 비유합니다. 엘리야는 배교하는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선포한 인물입니다. 그렇다면 지금도 배교하는 시대라는 말일까요? 그 배교하는 시대에 하나님께서 요한을 보내셨다는 말일까요? 놀라운 사실은 구약 성경 마지막 책인 말라기서에 보면 바로 이 엘리야가 올 것이라는 예언으로 모든 구약성경이 마무리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바로 이 예언이 요한의 출생을 통해 성취될 것입니다. 말라기서에서 예언하고 있듯이 요한은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돌아오게 할 것입니다. 자녀들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할 것이라는 말은 생략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부흥은 다른 것이 아니라 언약가정이 회복되는 부흥입니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에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마음을 돌이켜서 하나님께로 같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사는 요한이 할 일이 말라기 선지가가 예언한 가정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요한은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우습게 생각하던 이들이 의인의 성품, 즉 시편 1편에서 노래하고 있듯이 복있는 자의 모습으로 돌이키게 될 것입니다. 악인의 꾀를 쫓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복있는 사람, 의인 말입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백성을 준비시킬 것입니다. 구약시대 모든 제사제도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직분자들이 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준비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준비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때때로 소위 말하는 부흥을 허락하셨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을 돌이키는 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우리도 우리 시대와 교회의 무기력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부흥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부흥을 일시적인 반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깜짝 카드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요한은 일시적인 부흥을 일으킬 인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 백성 가운데 임하는 것을 자기 손가락으로 직접 가리킬 인물입니다.
요한은 주님이 오시기 직전에 하나님의 백성을 최종적으로 준비시킬 수 있는 역할을 부여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준비되어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 백성들 가운데 전격적으로 찾아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사는 예수님의 수태고지가 이루어지기 전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요한을 예수님의 선구자라고 부르지 않고 주, 곧 하나님 앞에 오는 인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5절에 보십시오.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된다"고 합니다. 16절을 보십시오. “그는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할 것이다”라고 합니다. 17절을 보십시오. “그가 주 앞에 앞서 올 것이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할 것이다”라고 합니다. 요한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사람이요, 하나님을 위한 사람입니다. 지금까지도 하나님께서 이 지상에서 일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지만 이제는 하나님께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일하겠다고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 세상에 살기 위해 오겠다고 하십니다.
사가랴는 하나님이 친히 나타나실 것임을 믿지 못함
제사장 사가랴는 천사가 한 말을 듣고서 어안이 벙벙합니다. 그와 그의 아내는 평생 자식이 없는 수치로 인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자식을 달라고요. 유대인들에게 자식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저주라고 생각했다는 것을 알면 이들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제사장 가문이 말입니다. 그는 자기 뒤를 이어서 제사장 사역을 감당할 아들을 달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성공할 아들을 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경건한 주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수종들 아들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주신 기도응답에 직면해서는 도무지 받기 힘들어 합니다. 사가랴의 불신은 자신이 아들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 자체에 대한 불신만은 아닙니다. 그는 자기에서 주어질 아들이 하게 될 일에 관해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실 아들을 통해 하나님이 친히 이 땅에 오시는 길을 준비하게 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기가 힘들었습니다.
제사장 사가랴는 하나님께서 친히 이 땅에 오신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제사장인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성전 중에서도 지성소에 임재하셔서 자기 백성들의 기도를 받으시는 분입니다. 하지만 그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천국의 성전에 계신 분입니다. 그 하나님이 이제는 지상에 직접 나타나시겠다고 하니 믿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것도 자기 아들이 바로 그 하나님 앞에 와서 그 하나님을 가리키고, 그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백성들을 준비시킨다는 것이 믿기 힘들었습니다. 새로운 시대의 계시가 너무 광대해서 사가랴는 그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간구에 응답하시는 방법은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일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너무 큰 것을 기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까지도 너무 작은 것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가운데 임재해 달라고 기도하지는 않으니까요.
사가랴가 천사의 말을 믿지 못하자 그 천사는 마침내 자신이 가브리엘이라는 사실을 밝힙니다. 왜 이제 비로소 가브리엘이라고 밝힐까요? 자신의 말에 신빙성을 더하기 위해 그랬을까요? 그것은 자신이 구약 시대 다니엘에게 나타났던 바로 그 가브리엘이라는 사실을 밝히기 위함입니다. 그때 가브리엘이 나타난 것도 다니엘이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언제 포로에서 해방될 것이냐고 물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가브리엘을 보내 주셨습니다. 다니엘은 70년 포로생활이 끝나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씀을 기억하고는 기도했습니다. 가브리엘은 다니엘이 기도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말했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70년 포로생활이 끝나면 하나님의 백성들의 문제가 다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가브리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앞으로 더 큰 고난과 끔찍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가브리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고난과 고통을 겪을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 모든 고난과 고통을 겪은 후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든 죄악이 용서받고 하나님의 의가 온전히 성취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지극히 거룩한 이를 통해 이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가브리엘은 자신이 약 600전에 말했던 말했던 그 예언이 이제 드디어 성취될 시점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 왔습니다. 고난과 고통의 때가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구원자를 보내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구원자로 오실 것입니다. 이제 전무후무한 날이 곧 도래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날보다 더 위대한 날이 임할 것입니다.
선지자 말라기는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직전에 선지자 엘리야가 등장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거꾸로 뒤집어 보면 이 날은 하나님의 크고 영광스러운 구원이 임하는 날입니다. 이제 모든 고난과 심판의 날이 지나가고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날이 임할 것입니다.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예언했던 바로 그 날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최종적으로 구원받는 날이 되었습니다. 요한은 자기 손가락으로 바로 그 날에 오실 주님을 가리킬 것입니다. 너무나 믿기 힘든 발언이지 않습니까? 어떻게 일개 제사장의 아들이 하나님 자신이 직접 오시는 날을 가리킬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 하나님이 오셔서 이 땅에 머무르시는 것을 위해 하나님의 백성들을 준비시킬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게 실은 신약시대의 목사들이 강단에서 하고 있는 일인데 우리는 이 중요성도 모르면서 그냥 막 소리를 질러대고 있습니다. 사가랴처럼 그것은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차라리 정직한 태도일 것입니다.
사가랴가 벙어리 된 것이 도리어 표적이 됨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한 사가랴는 벙어리가 됩니다. 불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될 때까지 벙어리로 있게 될 것입니다. 가브리엘이 하는 말을 들어 보십시오. 사가랴는 아들을 낳을 때까지 말을 못하게 될 것이고, 그 때가 되면 하나님의 말씀은 이루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는 성전 바깥에서 기도하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자신이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습니다. 사가랴는 이제 드디어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하셨다고 하는 소식을 전할 수 있었는데 그 기회를 잃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사실입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번에도 아무런 말도 듣지 못하고 실망하면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사가랴의 입이 닫힌 것은 표적의 역할도 했습니다. 성전 바깥에서 기도하고 있던 하나님의 백성들은 사가랴의 말문이 닫힌 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사가랴에서 무언가를 보이셨고, 무언가를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어렴풋하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자기들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그 시간에, 성전에서 사가랴가 분향하면서 그 모든 기도들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그 시간에 하나님께서 사가랴에서 무언가를 보이셨고, 무언가를 말씀하셨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사가랴를 기다리고 있던 경건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떤 방식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사실을 감지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가랴가 벙어리 되게 하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통절한 간구에 대한 기도응답이 이미 주어졌다는 것을 보이셨습니다. 또한 그 기도응답이 어떤 방식으로 최종적으로 성취될 것인지를 더 예의주시하게 만드셨습니다.
사가랴는 한달 동안 성전에서 벙어리로 지냈습니다. 다른 제사장들이 사가랴가 벙어리가 된 것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성전에 예배하고 기도하러 오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사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사가랴는 몸짓으로만 자신의 뜻을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글로 쓸 수도 있었을텐데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 놀라운 일이 성전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주목했을 것입니다. 성전이 가리키고 있던 그 분이 오실 것이라는 말일까요? 그의 마음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오묘함을 경외하는 가운데 기다렸을 것입니다. 사가랴가 한달 동안 성전에서 봉사한 후 집으로 돌아갑니다.
엘리사벳은 침묵가운데 하나님이 하신 일을 묵상함
곧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이상한 것은 엘리사벳이 잉태를 하고 나서 다섯 달 동안 숨어 지냈다는 사실입니다. 자기 이웃들에게도 임신한 사실을 전혀 발설하지 않고 숨겼습니다. 창피해서 숨긴 것이 아닙니다. 나이들어 임심했으니 이웃이 흉 볼까 봐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아이를 가지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흉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자랑하고 싶겠습니까? 자신의 평생 가슴에 맺힌 한이 풀어지는 시간인데 말입니다. 게다가 엘리사벳은 남편이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 때문인지 이웃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사벳은 도리어 죄인처럼 숨어 지냅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신이 잉태한 것이 사적인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도에 대한 공적인 응답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벳은 자기 남편이 받은 하나님의 징벌을 같이 나누어 지는 의미에서도 침묵했습니다. 남편 사가랴가 아들의 출생 후에 비로소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처음으로 밝힐 기회를 주었습니다. 엘리사벳이 다섯 달 동안 숨어 지내면서 가진 마음이 어떤 것이었는지 25절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잉태를 하나님께서 자신을 돌아보신 일로 고백합니다. 자신이 잉태한 것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부끄러움을 없애주는 것임을 인정합니다. 그만큼 그녀의 잉태는 영광스러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숨어 지내면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이제 어린이 질문을 볼까요? ‘1번. 사가랴는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 맞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지요. 사가랴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사실 자체를 믿지 못했는지, 아니면 자기에게서 태어날 아이가 할 일을 도무지 믿지 못한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가랴가 자기에게서 태어날 아들 요한이 하나님께서 친히 이 땅에 오실 길을 준비할 것이라는 사실을 믿기 힘들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2번. 엘리사벳은 부끄러워서 잉태한 것을 밝히지 못하고 숨어 지냈다, 맞습니까?’ 아닙니다. 엘리사벳은 그동안 아이를 가지지 못해서 심히 부끄럽고 수치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들을 잉태했으니 너무나 기뻐서 자랑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여인으로서의 수치가 물러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기에게 잉태된 아이는 사적인 아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의 간구에 대한 하나님의 공적인 응답이었기 때문에 그 의미를 깊이 묵상하며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3번 괄호를 채워 볼까요? ‘(하나님)께서 친히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든 (고통)을 끝내 주실 것이기에 주의 오실 길을 (준비)해야 한다.’ 이 문장이 바로 성탄절의 의미입니다.
전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인해 올해 성탄절이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는 소식입니다. 잔뜩 움츠려 든 성탄절이 될 것입니다. 신자인 우리의 마음도 잔뜩 위축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한 해가 마무리되고 있지만 새해는 더 힘든 시간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오시기 직전의 하나님의 백성들처럼 우리도 탄식과 간구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당하고 있는 곤란은 이미 우리에게 임하신 주의 은혜와 구원을 제거할 수 없습니다. 어린아기가 이 땅에 태어났지만 하나님의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이 태어났습니다. 성탄절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돌아보신 날이요, 신자의 모든 간구와 탄식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진 날입니다. 기뻐하십시오.
말씀 묵상하고 나누기
1. 요한이 하지 않을 일이 무엇이며, 그에게 임한 은혜가 어떤 것입니까?
2. 요한은 구약시대 어떤 선지자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까?
3. 요한이 수행할 일을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한 것과 연관지워 설명해 보세요.
4. 사가랴가 믿지 못한 것이 무엇일까요?
5. 사가랴의 벙어리됨이 기도하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어떤 인상을 주었을까요?
6. 엘리사벳이 잉태한 후 숨어 지낸 이유가 무엇인가요?
7.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새로운 일을 행하시겠다고 할 때 믿을 수 있나요?
어린이를 위한 질문
1. 사가랴는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 맞습니까?
2. 엘리사벳은 부끄러워서 잉태한 것을 밝히지 못하고 숨어 지냈다, 맞습니까?
3. ( )께서 친히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든 ( )을 끝내 주실 것이기에 주의 오실 길을 (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