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완가사選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내방가사 들어보소』》 2023.1.31.
<장향규의 규방가사>
조선조 양반 마님 고아(高雅)한 문학 세계
올곧게 이십여 년 천착(穿鑿)해 상재(上梓)하니
끊어진 규방가사(閨房歌詞)를 계승한 공(功) 빛난다
@ 아래는 내가 쓴 장향규의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내방가사 들어보소』의 축하 서문(賀序).
<하서(賀序)>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최고의 문학평론가로 평가받는 미국 예일대학교 교수였던 해럴드 블룸(Harold Bloom, 1930~2019)이 이렇게 말했다.
문학교수 학자가 좋은 일을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해로운 일은 하지 않으리라는 생각,
또는 자신에게는 해롭게 하더라도 어쨌든
남에게는 해롭게 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했음을 기억하고 있다.
그렇다. 천하의 명언이다. 해럴드 블룸은 문학을 하는 교수 학자가 비록 좋은 일을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신에게는 해롭게 하더라도 남에게는 해롭게 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명언은 저자 혜완 장향규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저자는 대구대학교 외래교수를 역임한 여성학자로 20여 년전 규방가사(閨房歌辭)에 입문하여 100여 편의 가사를 쓴 현역 작가이자 교육자이다.
저자는 “노계문학상”을 수상하였고, 저서로 『그대가 보내 주신 연꽃 한 송이』, 『골든 캐슬 스토리』, 회갑기념문집 『매경집』, 손녀 양아록 『옥토끼, 불토끼』등 4권이 있다.
조선시대 여류문학은 규방문학(閨房文學)과 기류문학(妓流文學)으로 구분할 수 있다. 내방가사(內房歌辭)는 규방문학의 하나로 조선후기 영남지방의 양반집 부녀자들 사이에서 유행하였는데 규중가도(閨中歌道), 규중가사(閨中歌辭) 등으로도 불린다.
판소리 「흥보가」를 보면, 흥보 마누라가 가난을 견디지 못하고 슬피 울며 “환도소연(環堵蕭然) 불폐풍일(不蔽風日) 도정절(陶靖節)의 가난하기 내 집보단 대궐이요, 삼순구식(三旬九食) 십년일관(十年一冠) 정광문(鄭廣文)의 가난하기 내게 대면 부자로세”라고 한을 토해낸다.
위의 “환도소연 불폐풍일”은 도연명의 「오류선생전」에서, ‘삼순구식 십년일관’ 역시 도연명의 시 「의고」(擬古)의 “한 달에 아홉 번 밥을 먹고(三旬九遇食)/ 십년 동안 같은 모자를 쓴다네(十年著一冠)”에서, “정광문(鄭廣文)의 가난하기 내게 대면 부자로세”는 두보(杜甫)가 「취시가」(醉時歌)에서 광문관박사 정건(鄭虔)은 “호화저택에선 고량진미 먹길 싫어하나(甲第紛紛厭梁肉)/ 광문선생은 먹을 밥도 부족하네(廣文先生飯不足)”에서 용사(用事)한 것이다.
이를 보면 흥보 마누라의 지적(知的) 섭렵은 도연명(陶淵明) 시를 거쳐 두보(杜甫)의 시에 이르고 있다. 그녀는 비록 고전소설 속의 인물이지만 대단한 지식인이다. 이런 지적인 여성이 가난한 흥부의 처가 된 것은 매우 아까운 일이다. 비록 문학 작품이지만 조선조 양반가의 부녀자의 지식수준이 매우 높았음 유추할 수 있다. .
온 솥 안의 국을 다 먹어봐야 국 맛을 아는 것이 아니다. 고기 한 점(一臠)만 먹어보면 온 솥 안의 맛(全鼎之味)를 알 수 있다. 저자가 “노계문학상”을 수상한 「누항사」의 일부를 보기로 하자.
만물은 저마다 의탁할 곳이 있건마는
흘러가는 구름처럼 의지할 곳 없으니
단사표음 허당반벽 궁핍한 살림살이
어느 때에 은은한 남은 빛이 있었으리
위의 1~2행 “만물은 저마다 의탁할 곳이 있건마는/ 흘러가는 구름처럼 의지할 곳 없으니”는 도연명의 「영빈사」(詠貧士) 제1수의 “만족각유탁(萬族各有託) 고운독무의(孤雲獨無依)”를, 3행의 단사표음(簞食瓢飮)은 『논어』의 「옹야편」(雍也篇)에서, “허당반벽”은 박인로(朴仁老, 1561∼1642)의 「누항사」(陋巷詞) “허당반벽(虛堂半壁)에 슬듸 없이 걸려고야”에서, 4행의 “어느 때에 은은한 남은 빛이 있었으리”는 다시 도연명의 「영빈사」의 “하시견여휘(何時見餘輝)”를 용사하였다.
위의 4행만 보면 저자는 도연명의 시와 『논어』와 박인로의 「누항사」를 얼음에 박밀듯(誦如氷瓢)이 암송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련(一臠)으로 전정지미(全鼎之味)를 알 수 있고 얼룩무니 한 점(一斑)을 보고도 전표(全豹)를 알 수 있듯이 저자의 가사문학 세계의 깊이와 높이 그리고 지적(知的) 섭렵과 내공의 넓이와 향기의 세계를 알 수 있다.
지금은 21세기 첨단과학시대이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양반가 부녀자들의 문학인 규중가사를 짓고 공부하는 여류들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고 반가운 일이다. 이는 전통 규방문화를 계승발전시키는 일로 우리 현대문학사에 한 장을 차지할 것이다. 이 책의 간행은 규방가사의 세계를 이해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저자의 문학 활동은 적어도 자신에게는 해롭게 하더라도 남에게는 해롭게 하지 않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행위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훌륭하고 멋지다. 이 혜완가사선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내방가사 들어보소』는 저자가 고희를 맞아 상재(上梓)한 것이다. 고희를 축하하고 앞으로도 규방가사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할 것을 믿는다. 불녕(不佞)은 저자와 아주 작은 인연이 있어 기꺼이 하서를 쓴다.
끝으로 이탈리아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움베르도 에코(Umberto Eco, 1932~2016)의 말을 덧붙인다.
“사람이 죽음을 넘어서는 것은 자녀를 남기는 것과 책을 쓰는 것이다.”
2022년 1월 설촌서재(雪村書齋)에서
단국대학교 전 부총장, 전 한국한문학회장 金 相 洪
(장향규, 도서출판 달구북, 2022.10. 17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