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 유리왕은 도읍을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옮기고, 주변의 작은 나라들을 통합하여 5부족을 중심으로 한 연맹왕국을 이루었다. 대무신왕 시절에는 호동왕자가 낙랑의 일부 지역을 정복했으며, 미천왕 때에 이르러 낙랑군을 한반도에서 완전히 몰아내고 고조선의 옛 영토를 회복하였다. 제 6대 태조왕 때에는 옥저를 정복하고 만주지역으로 세를 확장하였으며 고국천왕에 이르러 부자상속제로 왕위 계승이 굳어졌다.
17대 소수림왕은 국가의 체제를 정비하고, 대내적으로 왕권을 강화하는 데에 힘을 쏟았다. 그는 불교를 받아들여 백성을 통합하였고 태학과 경당을 두어 교육에 힘썼다. 또한 율령을 반포하여 국가의 기본 법 체제를 정비하는 등 통치 질서 확립에도 앞장섰다. 19대 광개토대왕은 고구려의 영토를 가장 넓게 개척한 왕이다. 남으로는 백제와 겨루어 한강 이북까지 진출하였고, 요동지방을 완전히 차지하여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아우르는 거대한 영토를 차지한 것이다. 그 뒤를 이은 장수왕은 국내성에서 평양성으로 도읍을 옮기고, 적극적으로 남하정책을 추진하면서 백제와 신라를 압박해 고구려 최전성기를 만들었다.
이후 고구려는 중국을 지배한 수나라와 당나라의 연속된 침입과 귀족들 사이의 내분으로 인해 나라의 힘이 많이 약해졌다. 668년 나당 연합군의 공격에 평양성이 함락되면서 고구려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한반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나라, 중국의 침입에 맞서 한반도의 방파제 역할을 했던 나라, 대부분의 유적지가 북한과 중국에 있어 더욱 안타까운 한반도의 고대국가 고구려. 고구려의 역대 왕조 계보를 통해 그 역사를 가늠해보도록 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