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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를 모르는 바다
- 대산련 오지 탐사대와 함께 누카 트레일을 가다-
박 병 준
아득히 멀리서 달려 온 여명이 새벽을 열면 하늘은 밤새 살아 반짝이던 별들을 데려가고 대신에 산정을 내어놓고 수평선을 데려다 준다.
어둠 속에서 소리 지르던 바다는 무슨 사연 있기에 그렇게도 울부짖었나. 해안에 와서 부서지는 파도는 물거품만 남기고 사라지건만 바다는 쉬지 않고 파도를 밀어낸다. Nootka 해안의 밤은 파도소리로 잠이 들고 파도소리에 잠을 깼다.
와딩턴산을 떠난 대산련 오지 탐사대는 산불로 연기가 가득한 동리를 가로질러 6,000년 인디안 유적이 남아있는 Bella Coola에 와서 일박 하였다. 골짜기를 올라 바위에 음각되어있는 조각들을 둘러보고, 인디안 추장이었던 안내자가 설명하는 그들 조상에 관한 이야기도 들었다. 그 조각들은 오래된 것으로 학자들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6,000년 쯤 된 것이라 한다. 그들에게는 문자가 없었기에 유구한 삶은 있었지만 역사는 뒤안길에 묻혀 있었던 셈이다.
호텔로 돌아와 편한 잠을 자고 아침 일찍 페리에 올라 선상에서 하루가 걸리는 아름다운 해안 협곡, Discovery Coast Passage를 관통하여 밴쿠버 섬으로 건너왔다. 이 섬은 태평양 상에 떠있는 북미에서 제일 큰 섬으로, 길이가 450km이며 넓이가 남한의 사분의 삼 크기인데 주민은 겨우 70만이 살고 있다. 아름다운 해안과 깨끗한 호수, 울창한 숲이 자랑이다. 그리고 유럽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West Coast Trail도 이 섬에 있다.
요람처럼 흔들리는 선상, 침낭에 들어가 별들을 세며 잠이 들었다. 7월이 마지막 가는 날 아침 9시, 섬의 제일 북쪽 Port Hardy에서 내려 남으로 내려왔다. 날씨가 좋아 남행길이 즐겁다. 섬의 동편에 있는 연어의 고장, Campbell River에서 피자로 점심을 때웠다. 이곳에서는 5년 전부터 매해 50만 마리의 연어새끼들을 바다로 내 보냈는데 지금 성어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니 배를 타고 나가지 않아도 연어를 낚을 수 있을 정도다. 점심을 먹고 난 탐사대는 섬을 가로지르는 길 중간에 있는 Strathcona Park Lodge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다. 아름다운 호수 변에 그림 같은 건물이 있으며 서부 캐나다 아웃도어의 메카라 불리는 곳이다. 각종 산속 스포츠를 다양하게 즐길 수 있고 아웃도어 리더를 양성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하루는 암벽을 하고 다음날은 카누를 저어가 산중에서 일박했다.
8월 3일, 아침식사를 끝내자 바로 짐을 챙겨서 태평양 서쪽에 있는 Gold River를 향해 떠났다. 오후4시에 Nootka섬에 들어 갈 수상비행기가 예약되어있는 곳이다.
시내에 도착하자마자 합류하기로 된 김해영시인 가족을 만났다. 김시인의 장정을 위하여 온 가족이 섬으로 건너와 이 근처에서 하룻밤을 같이 묵었다 한다.
맑은 물이 흐르는 강가 피크닉 장에서 오랜만에 김치와 풍성한 밑반찬으로 접심을 배부르게 먹고 새 보급품도 정리하여 비행장이 있는 해변으로 갔다.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는 무지하게 넓은 활주로를 가지고 있다. 온 바다가 다 활주로다. 누카 트레일을 안내할 탁광일 교수가 합세하여 일행 열여섯 사람이 되어 두 번 비행으로 누카섬 북단으로 날아갔다.
덜커덩거리는 비행기는 두려움보다는 미답지를 찾는 흥분을 대신하고 있다. 조종사는 고도를 조정해 가며 우리가 관통할 해안선도 보여주고 곰도 가리킨다. 30여 분을 날아가 착륙한 곳은 Louie Bay의 Starfish Lagoon. 신발을 벗고 물속에 내린다. 그러나 우리를 맞는 건 눈부신 백사장이 아닌 이끼가 넌출진 칙칙한 나무숲. 귀기어린 원시림이다.
이곳은 온대 다우림(多雨林) 지역이라 나무가 잘 자라고 또 습해서 산불이 날 염려가 없다. 큰나무들이 마음껏 자라 있고 또 고목이 되어 쓰러져 길을 막는다. 짐승이나 다닐 만한 미끄러운 오솔길을 따라 50분쯤 가니 해변이 나타난다. 시야 가득 파도가 넘실거리고 왼편에는 기암이 우뚝 서있어 아담하다. 우리가 첫날밤을 지낼 Third Beach라는 곳이다.
이렇게 4박 5일 36km의 해안 오지탐사가 시작되었다.
빈 땅에 여긴 부엌, 그리고 밥 먹는 곳, 저긴 놀이 공간, 구획을 지어놓고 소꿉살림을 시작한다. 원시의 공동체 삶이 이만했을까. 모닥불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저녁밥을 나눈다. 알파인 스타일의 술 한 잔 우정도 있다. 이 알파인 스타일은 큰 사발 하나에 술을 가득히 부어 돌아가면서 마시는 방법인데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도 입에 대었다가 다음 사람에게 넘겨야 된다. 몇 순배를 돈다. 이는 자기의 주량에 따라 스스로 조종이 가능한 음주법이다. 예수님께서도 마지막 만찬 때에 잔 하나에 포도주를 부어 돌려가며 마셨을 것이라는 문제로 성만찬과 관계되어 신학자들 간에 이견이 있는 참 오래된 음주문화라 생각된다. 어쨌든 술 한 순배로 너, 나, 내 것 네 것이 없이 하나가 된다.
사위가 어두워질수록 더욱 밝아지는 모닥불은 다가오는 어둠을 갉아 먹는다. 하늘엔 반딧별이 초롱을 켜고 눈길 따라 흐른다. 모닥불이 없다면 캠프의 노른자위가 빠지는 격, 불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 탁교수의 강의를 듣는다.
탁광일 교수는 산림과 생태학을 연구하는 분야의 전문가다. 1999 년부터 2003 년까지 밴쿠버 아일랜드, 벰필드라는 곳에서 현장중심 환경교육 연구소를 만들어 대학생들을 지도하였고 지금은 환경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 저서에 ‘숲은 연어를 키우고 연어는 숲을 만든다’가 있다. 대학생들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번 오지 탐사를 위하여 특별히 초빙하여 동행하게 된 것이다.
밤이 깊어질수록 하늘의 별들은 더욱 영롱해지고 새벽을 기다리는 밤하늘을 보면서 우리도 한 마리 외로운 새가 되어 각자의 침낭 둥지로 들어갔다.
Nootka Island는 4,300여 년 전부터 First Native(원주민)가 살아왔고 유럽인이 Vancouver Island 중 가장 먼저 발을 디딘 곳이기도 하다. 스페인 사람들이 처음으로 이 해안을 발견했으며 1778년 영국인 James Cook 선장이 두 척의 배를 이끌고 나타났다. 그에 의해 이 섬은 지도상에 존재하게 된다. 그 이후로 이 곳은 Sea-otter(해달)의 교역장이 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Vancouver선장과 Quadra선장 사이에 해안쟁탈전이 벌어진 일도 있었다. 1803년에는 Boston호가 원주민들에 의해 공격당해 두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승무원들이 살해당하기도 했다. 살아남은 두 사람은 2년 동안 노예생활을 하였으며, 그 중 Jhon Hewit이라는 사람이 그 체험담을 ‘White Slaves of the Nootka'라는 책으로 출판했다. 이것이 캐나다 원주민의 삶에 관한 처음 글이 된다.
섬에서 맞는 첫 아침이다. 산 너머 여명이 새 날을 들고 와 읍하고 있다. 아침이 불칼로 왔다가 붉은 장미로 피어나는 바다. 소금기 머금은 바닷바람이 싱그럽다.
모두들 볼일을 갈 차례다.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들은 주의사항이 섬에서 볼일 보는 방법이었다. 용변을 트레일에 남기지 말 것. 땅에 파묻지도 말 것, 파도치는 해안에 가서 일을 보고 물살에 쓸려 가게 하거나 숲에서라면 나무껍질이나 이끼에 싸서 바다로 가져 갈 것. 또 한 가지 덧붙인다면 휴지는 쓰레기로 가져오거나 태울 것. 참 고약한 일이다. 살아 숨쉬는 바다를 향해 엉덩이를 내밀라는 얘긴데 뼈대 있는 가문의 자손이 할 짓이 아니다. 휴지를 찾아들고 바닷가 바위 뒤로 갔다. 안과 밖이 참 시원했다.
하나둘 잠에서 깬 대원들이 텐트에서 기어 나온다. 몇 사람은 곰 때문에 공중에 달아 놓았던 음식물을 가져오고 여자 대원들은 아침 준비에 분주하다.
안내서에 의하면 우리가 첫날밤을 지낸 Third Beach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1969년에 좌초되어 버려진 그리스 화물선의 잔해가 있고 거기서 또 왕복 두 시간 거리에 2차 대전 때의 레이더 기지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쪽 일정을 생략하고 해변을 따라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3일간 매일 10km를 걸어야 되는 긴 여정이다.
무거운 짐을 메고 걷는다. 들기가 힘든 배낭이지만 메고 나면 걸을 만한 게 신기하다. 각자의 짐이다. 해변은 자갈로 미끄럽고 숲 속은 넘어진 나무와 진흙탕이 있어 또 우리를 힘들게 한다. 그래도 가야 한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나만의 길이다.
섬에 들어온 둘째 날, 우리는 귀한 보물을 하나 만나게 된다. 17 년간이나 산속에 숨어 있었던 유리공이다. 1960 년대 일본해안 어장에서 그물을 매어 달았던 것인데 그물 묶음에서 떨어져 나와 태평양을 표류하여 캐나다 해안까지 나들이 온 귀한 손님이다. 직경이 50cm는 족히 되는 큰 것이다. 그물로 싸인 것이 그대로 남아 있어 더 가치가 있는 것이라 한다. 17년 전 탁교수의 친구가 두 개를 발견하여 한 개는 그때 들고 나왔고 한 개는 굴속에 숨겨 두었다가 2년 전에 다시 와서 그 자리만 확인하고 가지고 오지 못했다. 그새 곰이 다른 곳으로 옮겨 놓은 것을 겨우 찾아 왔다 한다. 보는 사람마다 탐을 내니 보물일시 분명하다. 긴 세월이 비켜 갔고 또 사연이 서려있는 물건이다. 대원들이 번갈아 가면서 배낭에 묶고 운반했다.
해안 굽이를 돌 때마다 새 풍광이 펼쳐진다. 백사장 끝난 곳에 기암이요, 바다를 피해 산길로 접어들면 어김없이 원시시대를 만난다. 이마까지 늘어진 덩굴과 고목을 칭칭 동여매고 있는 이끼. 발목을 휘감아드는 고사릿과 식물들이 금시라도 거친 호흡으로 달려들 듯하다. 언뜻언뜻 트이는 전망에 새 힘을 얻고 걷는다. 일곱 시간쯤 자갈해변과 산길을 걷고 나니 피곤이 몰려온다. 그 사이 멀찍이 보았던 곰과 둥지에서 머리를 내밀던 흰머리독수리의 새끼들은 도시의 아이들에게 신비의 세계로 다가오고.
이번 굽이를 돌면 오늘의 야영지가 될 것인가 기대하고 있는데 거기서 밀물이 길을 막는다. 썰물이 되어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매트를 꺼내서 펴고 나른한 오수에 잠긴다. 한쪽에선 주워온 바다 고동을 삶아 먹느라고 부산하다. 옷핀까지 동원해 고동을 먹는데 모두 초등학교 아이가 되어버린 듯하다.
이 거대한 바닷물을 끌고 갔다가 밀어내는 힘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수십 년 동안 양수기로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을 물을 몇 시간마다 끌고 가고 또 끌어 온다. 창조주의 경륜이다. 그래서 바다는 살아있고 그 속의 생명체도 새 힘을 얻는지 모른다.
Headland 두 굽이쯤이면 닿을 듯싶었던 Calvin Creek과 폭포는 나타나지 않는다. 탁교수 말과는 달리 자꾸 뒷걸음치고 있는지 몇 굽이를 돌아도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허나 길은 갈 만큼 다 가야 끝나는 것을. 이만큼이면 다 와가겠지 제 자신을 속이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깨를 누르는 짐만 없다면 구비 구비 기대하며 사는 삶이 얼마나 멋진 것인가 생각해 본다.
쉴 새 없이 감동시키는 절경이 아니었다면 중간쯤에서 퍼져 그만 주저앉았을 게다. 끝없는 대해,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 문득문득 나타나는 기암괴석, 옷을 벗고 드러누운 괴목들, 지루한 듯싶을 때 들어서는 산길과 자일타기. 긴장하지 않고선 미끄러지는 위태로움에 한가하게 불평할 여유도 없다. 대열을 짓고 가는 대원들을 보면 먼 행상 나선 등짐장수거나 남부여대한 피난민 행렬 같다. 노인이라 덜어주는 경로의식도 없고 여자라 하여 대신 져 주는 기사도 없어 버거운 제 몫의 짐을 지고 타박타박 걷는다.
마지막 모퉁이를 돌면서도 Calvin폭포의 실체를 믿지 않았다. 하도 고대하던 것이라 눈앞에 나타난 폭포가 허망할 만큼 여정은 길고 멀었다.
폭포는 그 폭이 무려 10여 미터가 넘고 높이는 4,5 미터 정도여서 여느 폭포와는 사뭇 다른 인상이다. 떨어지는 폭포가 아니고 바위를 비스 틈이 타고내리는 개울이다. 그러나 흐르는 물줄기와 시원한 물맛은 심산유곡의 어느 약수와도 견줄 수가 없다.
텐트자리와 부엌 공간, 그리고 야영의 필수인 모닥불 필 자리가 아주 천혜로 주어졌다. 근사한 빨래 건조대까지. 폭포를 마주하고 물길을 곁에 둔 집터가 명당자리임에 틀림없다. 목욕재계까지 하였으니 오늘밤엔 기막힌 꿈을 꿀 것 같다.
또 한 아침이 열린다. 일찍 일어나 아침바다를 만나는 시간이다. 산은 그늘을 만드나 바다는 그늘을 만들지 않는다. 끝없는 수평선이 있을 뿐.
아득히 김시인이 바닷가를 따라 걷는 게 보인다. 갈매기 떼를 만나러 가는가. 갈매기들이 이방인을 피해 조금씩 옮겨가는 게 망원경에 잡힌다. 썰물이라 바위는 바다 깊숙이 검은 옷을 입은 채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해안에서 원시로 그냥 살아간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아침잠에서 깬 늑대 한 쌍이 눈 비비고 물 마시러 왔다가 걸음을 돌린다. 늠름하게 잘 생긴 녀석들이다. 늦잠 자던 애들은 늑대를 놓쳤다고 애통해 한다. 허나 만물이 모두에게 인연이 있는 건 아닌 법. 순하게 돌아서는 야생늑대가 오히려 인간다워 보이는 건 왜일까. 자연의 주인이 이방인에게 떠밀려 제 서식처를 빼앗긴 격이다. 전날은 발자국만 보고 늑대가 있을 것이라 짐작을 하였는데---. 탁교수도 늑대를 보는 것은 처음이라 했다.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Bajo Point와 Beano Creek을 향해 출발한다. 어제보다는 좀더 긴 노정. 각오를 단단히 하고 배낭끈을 조인다. 모랫길과 조약돌길, 자갈돌길과 해초 노적가리길. 물결이 지어놓은 온갖 그림을 감상하며 가는 게 쉽지마는 않다. 이제 더 이상 수다를 떨 만한 여력이 없어 푹푹 빠지는 발자국만 헤아린다. 언제 도착할지 얼마나 더 가야할지 묻는 이도 없다. 그저 재깔거리는 돌멩이들의 합창에 귀 기울일 뿐.
또 헤아릴 수도 없는 모퉁이를 돌고 남근 모양의 Bajo Point를 보며 다 왔구나 싶어 반가웠다. 그러나 인디안 보호구역이며 개인소유라 잠시 일별만 하고 야영은 할 수 없단다. 정면에서 본 Bajo Point는 잘 생긴 백옥루 기둥을 닮았다. 보는 각도에 따라 이리도 달라질 수 있음이 놀랍다.
숲 속엔 세월의 무게를 감당 못한 나무들이 가로세로 누워 있고 그 쓰러진 나무들은 새로 떨어진 씨앗의 토양이 되었다. ‘Nursing Tree'라던가. 뱃속에 생명을 잉태하고 모든 자양분을 나누어주는 어미의 생태를 닮았다. 저축분이 모자라면 제 이(치아)의 칼슘까지 내어놓는 품새가. 특별히 눈에 띈 것이 죽은 나무등걸을 베고 핀 Chicken in the wood라는 버섯이다. 나풀거리는 호접(胡蝶)인 듯, 한 송이 요염한 양귀비인 듯. 그 주황빛이 선명해 눈길을 거둘 수가 없다. 먹을 수 있으나 검증이 안 되었으니 시도는 금물이라는 탁교수 설명에 버섯은 멸종의 위기를 넘긴다.
우여곡절 끝에 Beano Creek에 닿았다. 계곡에서 흐르는 물이 호수같이 고여 있고 바다와 민물 사이에 자갈돌이 제방을 쌓고 있다. 그 제방에 있는 자갈들이 콩을 닮아서 이곳을 Beano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뙤약볕에 달구어진 자갈길을 따라 힘들게 왔다. 시원한 맥주 한잔이 간절한데 꿈인가 생시인가 맥주 파는 소녀를 만난다. 원시 해변의 소녀가 맥주를 팔다니---. 이 해변은 본시 개인이 소유하였던 산림지역인데 180 에이커에 달하는 해변 땅을 여섯 가구가 사서 여름 별장으로 개발하였고 벌목회사에 나무를 팔아 해안까지의 비포장도로를 만들었단다. 그림 같은 여름 별장이 숲 속에 자리하고 있다. 예쁜 자갈이 햇볕에 잘 달구어진 바닥에 두 여성은 벌써 찜질 방에 온 것처럼 자리 잡고 있다.
아침에 있었던 내기 게임에서 진 탁교수가 맥주를 사기 위하여 흥정을 하는데 열두 살짜리 맥주 파는 아가씨가 맹랑하기 짝이 없다. 많이 살터이니 싸게 팔라고 하는데 많이 팔 수 없단다. 그 이유가 특별하다. 오늘 다 팔고나면 내일 팔 맥주가 없어지고 그러면 내일 맥주 파는 재미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어쨌든 시원한 맥주를 한잔씩 하고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천막 칠 자리가 마땅치 않아 교섭을 나갔다. 개인소유인 숲 속 모래사장에 양해를 얻고 천막을 치니 꽤 아늑하다. 식수가 가까워 안성맞춤이다.
저녁을 먹고 모두들 강 건너 화장실 갈 채비를 하는데 “고래다!”하는 외침이 들린다. 겅중겅중 퍼석퍼석. 마음은 바쁜데 물길은 어찌 그리 더디고 자갈밭은 왜 그다지도 팍팍하던가. 고래는 성난 파도처럼 온 앞바다를 주유하며 물기둥을 뿜어댄다. 큰 몸집은 짐작할 길이 없고 분수만 보다가 긴 잠수 끝에 사라져 버려서 참 허망하다. 늦게 도착해 미처 못 본 대원들은 퍽 서운해 하고. 그러나 이곳에 사는 분들은 고래가 우리들을 위해 특별히 출연해 쇼를 보인 거라며 행운이라 치하한다.
밤에 비가 뿌렸다. 누카섬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만나는 비다. 비는 대지를 적시고 먼 길 떠난 나그네의 마음도 적셔준다.
아침에 일어나 만난 바다는 밤새 지치지도 않았는지 여전히 파도를 밀어내고 있다. 돌아오는 숲길에서 달을 만난다. 집을 떠날 때는 상현달이었는데 지금은 하현달로 기울어 가고 있다. 나뭇가지 사이에 걸려있는 달을 안는다. 달은 외로운 나그네를 보듬어 주고 감미롭게도 내 가슴에 와 안긴다.
누카 트레일 마지막이 Friendly Cove다. 1880년 경 스페인 국왕이 협상용으로 보낸 스테인드글라스를 창문에 장식한 교회건물이 박물관이 되어 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입구에서 힘차게 비상하는 연어 조각을 만날 수 있고 천장에 닿을 듯한 두 개의 토템폴이 건물 정면을 차지하고 있다. 약탈과 침략으로부터 영토와 문화를 지켜낸 생생한 기록이 있는 곳일진대 지금은 겨우 두어 가구만 살고 있는 한촌(閑村)일 뿐이다. 우리를 태우고 나갈 M. V. Uchuck이라는 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4박 5일, 섬을 종단하는 트레일에서 우리는 원시림을 헤맸고 자갈길과 바위길, 동굴과 절벽을 넘어왔다. 늑대와 곰, 흰머리독수리, 고래와 물개, 해달과 갈매기떼, 폭포와 수평선을 만났다. 숨어 있던 오랜 삶의 자취와 사라져간 인디언들의 표호를 들었다. 그런가 하면 체력의 한계를 알리는 내 자신의 목소리도 거기 있었다.
누카 트레일 36km는 살아 숨쉬는 자연이다. 그리던 이상향이 생생하게 펼쳐지는 꿈이다. 문명과 지성의 탈을 벗어던진 열여섯 벌거숭이들의 추억이다.
메아리를 모르는 바다, 불러도 대답할 수 없으니 그는 영원히 고독할지 모른다.
첫댓글 가 본 사람이 있어 안 가 본 사람도 가 본듯 해진다. 함께 간 누카 트레일 언젠가 가게 될런지 모르겠군요. 자연의 맛을 전해주는 분에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