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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적 자연주의의 인식론적 함의성 및 교육적 의미
박선형
(조선대학교)
I. 들어가는 말
전통적으로 인식론은 경험과학과 분리되어 선험적(a priori)인 규범적 기업(normative enterprise)으로 간주되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어떻게 생각하여만 하는가와 같은 규범적 질문들이 철학의 중심적 논의가 되면서 사물은 어떻게 구성되며, 인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다루는 서술적 관심은 철학의 영역에서 배제되었다. 즉, 인식론의 관심은 정당화의 맥락(the context of justification)을 찾는 것인데 반하여 심리학과 같은 경험과학은 발견의 맥락(the context of discovery)에 관심을 기울인다고 보았다(Reichenbach, 1938; Haack, 1975). 이러한 전통 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식론적 문제들은 결코 경험 과학적으로 연구하거나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이 일반적 통념이었다.
철학과 경험과학의 이원적 분리는 사상적인 영향력과 시대적인 흐름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원래부터 철학이 독점적인 규범적 학문으로서 규정되었던 것은 아니다. 주지하듯이 그리스 시대의 철학은 만물의 근원을 다루는 자연철학과 윤리, 정치학을 다루는 도덕철학이 결합된 종합된 학문이었다. 즉, 사물이 어떻게 있는가에 대한 서술적 질문(descriptive questions)과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규범적 질문(normative questions)은 서로 분리되어 독립된 영역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철학의 문자적 어원인 그리스어 필로소피아(philosophia)가 지혜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는 것은 이를 시사한다.
그러나 비자연주의적 시각으로 철학을 연구하고자 하였던 학자들의 입장(예컨대, Plato와 Descartes가 주창한 인간 마음의 비물질적 특성을 강조한 심신이원론)은 철학과 과학의 이원론적 구분을 촉진한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이성적 판단과 마음의 사고는 정신적으로 내재된 기능으로서 인간 두뇌와 독립적인 비물질적인 것으로 간주하였다. 또한 산업혁명 이후 자연철학의 하위분야인 물리학, 화학, 천문학, 생물학 등이 19세기부터 급속하게 발달함에 따라 철학은 내용적 범위와 탐구영역에 있어 일정한 제약을 받게 되었다.
20세기 들어서서 이러한 이원적 분리는 더욱더 심화되었다. 특히 현대의 대표적 철학사상으로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던 분석철학과 현상학은 철학을 경험과학, 특히 심리학적 접근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반심리학적 흐름을 선도하였다. 분석철학은 진리에 관한 법칙은 심리학과 전혀 무관한 형식논리의 문제라고 주장(예컨대, Frege, 1964)하였다. 한편, 순수현상학은 필연적 존재에 대한 성찰적 접근으로서 사실에 대한 과학이 아니라 선험적 의식분석을 강조(예컨대, Husserl, 1962)하였다. 논리적 분석과 현상학적 성찰에 대한 추구는 철학을 경험과학으로부터 훨씬 분리ㆍ고립시키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최근 과학철학에서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는 인지적 자연주의(cognitive naturalism)1)는 과학과 철학의 이원적 분리에 대하여 상이한 견해를 제시한다. 이 시각은 특권적인 비과학적 진리들의 존재 가능성을 부정하면서 선험적인 철학을 반박한다. 논리적으로 볼 때 철학은 다른 형태의 탐구에 우선하지 않으며, 하나의 앎의 유형으로서도 우월하지 않다는 것이다. 세계가 존재하고 있는 그 자체의 방식은 물론이고 인식론 자체는 지식이 획득되는 심리 과정을 연구하는 자연과학에 의하여 연구ㆍ해결되어야 한다고 본다. 즉, 철학은 선험적(a priori)인 시각이 아니라 자연과학의 다양한 이론적 망(예컨대, 심리학, 인지과학 및 신경과학) 내에서 경험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본 고는 인지적 자연주의의 인식론적 함의성과 교육적 의미를 탐색하여 보고자 한다. 인지적 자연주의의 이론적 내용으로서 자연주의적 인식론을 간단히 살펴보고, 지식의 유형과 성격을 구분하면서 인지과학의 최근 흐름으로 대두되고 있는 연결주의(connectionism)가 어떻게 포괄적인 지식획득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어서 전통적 지식관인 명제적 지식관과 연결주의적 시각을 비교하면서 그 교육적 의미를 탐색하고자 한다.
II. 자연주의: 계몽된 경험주의2)
인간은 세계가 존재하는 방식(the way the world is), 즉 진리에 보다 가까이 접근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이론이라는 논리 체제를 구안하여 이용한다. 개인의 선호나 기호가 유행에 따라 바뀌듯이 이론 또한 그 내용 체계가 학문적 관심과 시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주목을 받기도 하고 무시되기도 한다. 과학과 철학의 관계성 또한 이러한 시대적인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하였다.
사실과 가치, 과학과 철학에 대한 이원론적 분리는 20세기 초 비엔나 써클에 속했던 일단의 철학자들(M. Schlick, R. Carnap, O. Neurath, H. Feigl, H. Reichenbach)이 발달시킨 논리실증주의에서도 크게 영향을 받았다. 논리실증주의가 표방한 많은 주장들이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철학적 주장은 의미의 검증이론(the verification theory of meaning)이었다. 이 이론은 뜻하는 바는 인지적으로 오로지 수학이나 논리학처럼 분석적이거나 또는 관찰과 같은 감각경험에 의하여 검증되거나 허위화 될 때에 한해서 문장은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이에 기초하여 논리실증주의는 형이상학과 윤리학은 경험적 근거에 의하여 확증되거나 반증될 수 없다고 보고 학문의 대상에서 배척하였다.
논리실증주의의 이원론적 구분과 유사하게 최근 학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반 실증주의적인 철학적 사조(예컨대, 페미니즘, 비판철학, 주관주의, 구성주의 등)도 주관적 가치와 과학적 합리성은 상호 보완적이기보다는 상호 배타적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을 수용한다. 반 실증주의 철학사상은 한결같이 과학의 인식론적ㆍ가치론적 입장을 비난한다. 과학이 표방하는 가치중립성과 객관적 합리성은 지배계급과 남성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면서 한편으로는 사회적 약자를 더욱 소외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사회를 비인간화시킨다는 것이다. 즉, 객관적 사실을 다루는 학문으로서 예측ㆍ설명에 관심을 가지는 과학은 가치 갈등적이면서 주관적인 인간의 삶의 모습과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실증주의적 철학사상은 논리실증주의와 과학을 동일시함으로써 과학의 중요성을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실증주의는 과학에 대한 여러 가지 이론들 중 단지 하나의 견해에 불과할 뿐이나 과학의 가치중립성을 비판하는 철학사상은 마치 실증주의가 가지는 한계가 곧 과학의 한계인 것으로 착각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과학은 인간의 삶과 사회를 파괴하는 억압적 기제가 아니라 삶의 실제적 질을 향상시키는 유용한 이론적ㆍ경험적 기제이다. 최근 인류가 성취한 문명사는 과학의 설명적 기제가 왜 필요한지를 시사한다. 과학적 발견은 사회에 만연하였던 미신과 사회적 무지3)를 타파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류발전에 필요한 지적인 원천 또한 제공하고 있다.
자연주의는 철학이 과학의 설명력과 결합하여야 한다고 본다. 철학과 과학은 독립된 영역 속에서 상호 독립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적인 연속성을 가지고 상호 연계적으로 발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진리를 파악하기 위한 정당한 논리체제로서 좋은 이론을 선별하게 하여 주는 최선의 인식론적 준거는 그 시대에 이용 가능한 가장 최고의 과학(the best science)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자연주의를 주도적인 철학적 사상으로 주목받게 한 학자로서 Quine을 꼽는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한 세기를 풍미한 영향력 있는 자연주의자로서 Quine4)은 전통적 인식론의 선험성을 부정하면서 인식론의 자연과학적 접근을 주창하였다. Quine은 언어와 이론 간의 구분을 인정하지 않는다. 유아의 언어발달이 부모의 언사에 대한 관찰로부터 시작하듯이 이론 또한 사변적 추론이 아닌 관찰적 증거에 터해서 발전해야한다고 본다. 즉, 의미론적 이론과 과학적 이론은 동일한 감각증거에 기초한 관찰문장으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Quine, 1969: 88-89).
전통적으로 인식론은 세계에 관한 신념들의 정당화 조건을 확인하면서 정당화의 확실성을 탐색하였다. 전통적 인식론 중 기초주의(foundationalism)가 이에 해당한다.5) 기초주의의 인식론적 논리는 유추적으로 피라미드적 구조를 가진다. 피라미드 최상위 층의 삼각형 정점은 전체 구조를 받쳐 주고 있는 최하위 층 암석에 의존한다. 이 암석은 다른 모든 암석이 기댈 수 있는 궁극적인 기초적인 토대의 역할을 수행한다. 유사하게 기초주의자는 지식의 정당화에 있어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견고한 인식론적 출발점을 가정한다. 경험론(empiricism)과 합리론(rational-ism)이 기초주의 인식론에 근거하고 대표적 유형이다. 경험론(예컨대, Bacon, Locke)은 직접적인 감각자료(sense data)를 통하여 얻어진 경험적 증거(empirical evidence)를 정당화 기초로서 강조한다. 반면에 합리론(예컨대, Descartes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은 정당화의 기초를 의심의 여지가 없는 확실하고도 명백한 이성에 의하여 달성한다고 본다.
Quine은 전통 인식론이 주장하는 의심할 수 없는 인식론적 확실성을 부정한다.6) 지식탐구는 철저하게 감각적 자극에 기초하여 경험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이론적 논의 또한 자연과학 안에서 발생하고 해소되어야 한다고 본다(김영남, 1994: 56). 즉, 인식론은 “자연주의화(naturalized)”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Quine, 1969, 1975).
그런데 Quine의 자연주의적 인식론과 관련하여 그의 인식론적 입장을 명료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전통 철학의 인식론적 확실성에 대한 Quine의 비판적 논지는 그가 마치 기초주의를 철저하게 부정하면서 인식론에 대한 또 하나의 전통적 시각인 정합론(coherentism)을 지지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Quine의 이론 체계 중 중요한 철학적 주장은 Duhem-Quine thesis로 명명되기도 하는 전체주의(holism)이다. 전체론의 주장은 ‘개별론적인 이론문장(가설 또는 과학적 진술들)은 관찰경험에 의하여 검정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이론체계에 의해서만 검증받을 수 있다’(목영해, 1996: 39)로 요약된다.7) 인식론적 전체론의 입장에서 볼 때 이론의 발달을 포함하여 과학 자체는 전체적인 신념의 망 속에서 관련된 이론, 가설, 증거의 포괄적인 맥락을 반영하여 수정되고 강화되는 것이다.
주지하듯이 정합론은 인식정당성의 구조가 거미줄 또는 뗏목과 같다고 본다. 거미줄이나 뗏목은 각각의 구성요소들이 상호의존하면서 전체를 이루기 때문에 피라미드의 구조를 이루는 기초적 토대가 없어도 하나의 통합된 전체를 이룬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지식의 정당화는 정합적으로 잘 짜여진 하나의 전체적 체제 속에서 가능한 것이다. Quine의 전체적 인식론은 대부분의 학자들로 하여금 그를 반 기초주의자로 간주하게 하지만8), 혹자는 Quine의 이론 자체가 관찰문장을 이론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는 입장에서 기초주의에 근거하고 있다고 본다(예컨대, Corman, 1978). 이러한 의문점에 대하여 Quine은 다소 복잡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그는 전체주의적 인식론이 기초주의를 부정할 것이라는 일반적 통념과 다르게 기초주의와 정합론의 인식론적 결합 속에서 자연주의를 전개하고 있다(1990: 128).
나는 온건적인 개혁주의적 자연주의로 간주하는 Susan Haack의 분류에 행복하다. 신념에 대한 검사점이 감각 관찰이라는 사실에 대한 나의 인식이 기초주의에 해당한다... 반면에 나의 정합론은 온건하기는 하지만 전체주의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나는 정합론과 기초주의를 결합하고 있으며, 이는 학자가 당연히 따라야할 명백한 방향성이라고 생각한다.
Quine이 자연주의적 인식론을 전개함에 있어서 정합론과 기초주의를 결합9)시킨 것은 어찌 보면 인식론적으로 당연한지도 모른다. 정합론은 인식의 정당화에 있어서 경험의 역할을 전혀 인정하지 않기에 과학적 설명력을 결여하고 있다.10) Quine의 자연주의적 입장에서 신념을 검토할 수 있는 유일한 출발점은 감각경험이다. 따라서 어떠한 신념도 경험과 독립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반면에 기초주의는 기초적 근거에 대한 반박가능성을 배제한 확실명백성(indubitability)을 주장하여 정당화적 논리에 있어서 강제적인 성격을 가진다. Quine은 지식은 선험적인 철학적 방식이 아닌 자연주의적인 과학 자체 내에서 철저하게 검토되고 서술되어야 한다고 본다. 감각경험이 충분한 확실성을 담보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인식론은 그 자극으로부터 출발하여 실제로 지식이 어떻게 획득되어야 하는지를 연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경험적 증거에 근거하여 인식론적 논의를 전개할 때에 한해서 철학의 사변성과 선험성이 극복된다는 것이다.
Quine을 비롯한 자연주의자들은 철학과 과학의 이원론적 구분을 부정하면서 인식론은 자연과학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재세계(진리)의 존재방식은 최고의 인식론적 증거이론인 “계몽된 경험주의”에 의하여 접근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연주의자 간에 인식론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 “자연주의화”하여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다소 이견이 있다.
일반적으로 볼 때 자연주의적 인식론은 크게 세 가지 형태로 구분될 수 있다(Almeder, 1990: 263). 첫 번째 유형은 지식의 성격에 관한 정당한 질문들은 오로지 자연과학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입장에 속해 있는 학자들(예: Paul Churchland, Patricia Churchland)은 전통적 인식론이 자연과학에 의해 대치되거나 제거된다고 믿는다. 두 번째 형태의 자연주의적 인식론은 전통적 인식론과 심리학, 생물학 및 인지과학 등에서 얻은 통찰력을 결합시킴으로서 전통적 인식론을 변형ㆍ보완시키고자 한다(예: Goldman, 1986). 자연주의적 인식론의 세 번째 형태는 연구방법의 통일성(the unity of method)을 가정하면서 자연과학의 연구방법만이 우주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예: Giere, 1985). 상이한 철학적 입장에 따라 학자들의 주장도 다소 다르게 전개되고 있기는 하지만 자연주의자들은 인식론과 과학의 상호 결합성을 공통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이론적 통일성을 가진다 (Maffie, 1990: 281). 자연주의의 인식론적 함의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서는 지식의 유형과 성격을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II. 지식의 성격과 유형
전통적으로 지식은 절대 진리를 관조하는 이론적인 인식으로서 특권계층의 사람의 전유물이었으나 시대적인 변화의 흐름(예컨대, 지식기반사회와 평생교육사회)에 직면하여 점차로 역동적이고 실행적인 지식관이 대두되기 시작한다(조경원ㆍ양은주, 2001: 5).
지식에 대한 고전적 견해는 ‘정당화된 참된 신념(justified true belief)’이다.11) 이 중 정당화의 수단을 어떻게 모색하느냐에 따라서 기초주의와 정합론으로 구분되는데 기초주의적 인식론은 문장으로 표현된 검증 가능한 관찰적 보고를 강조한다. 반면에 정합론은 지식의 정당화의 준거를 신념의 망 속에서 상호 연결된 문장들의 네트워크로 표상한다고 본다. 따라서 전통적 인식론은 지식에 대한 표상을 전적으로 문장에 의존한다. 교육 역시 주된 기능 중 하나가 지식에 대한 학습으로 정의되면서 교육은 문장적 지식으로 표현된 명제적 지식(knowing that)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그리스 시대 이후의 Platon, Socrates로 대변되는 주지주의 전통12)은 이러한 전통을 확립하는데 기여하였다. 이들은 교육은 정신적(mental)인 것으로서 문장적 지식(knowing that)을 학습하며 마음과 정신을 단련한다고 보았다. 그 결과 육체적(manual)인 작업적 기능(skills)과 문제 해결력인 방법적 지식(knowing how)13)은 교육의 영역에서 상대적으로 경시되었다.
현대적 시각에서 볼 때 주지적 전통은 지식을 너무 협소하게 정의하여 교육의 내용과 교수방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반적으로 교육현장에서 강조되는 지식은 주로 명시지로서 교과로 대표되는 내용적 지식(know-what)과 문장적 지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생활과 작업수행에 필요한 전문성은 대부분 문장이나 명제로 표상 할 수 없는 방법론적 지식인 암묵지14)로 구성되어 있다.
이론적ㆍ문장적 지식의 획득이 실제적 지식의 습득이나 활용을 자동적으로 보장하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 수없이 발견되는 예들은 이러한 사실을 예증한다. 예컨대, 경찰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신임경찰은 “학습한 모든 것을 가능한 빨리 잊어버려라”는 고참경찰의 충고를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한다. 많은 현장 경험과 다양한 범죄사례를 다루면서 이론적 지식이 가지는 실천적 한계를 접하고, 범죄 상황에 따른 전략과 상황을 지각하는 방법을 총체적으로 학습한 이후에 신임경찰은 마침내 유능한 동료로서 인정받게 된다.
이는 운동경기에도 유사하게 적용된다. 신참축구 선수가 축구에 대한 풍부한 전술적 지식과 훌륭한 선천적 자질을 소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실전경기를 치루지 않는 한 미완의 대기로 남을 수밖에 없다. 실전경험 속에서 팀 동료들과의 협력방식을 학습하지 않는 한 경기 주도 능력과 득점능력은 향상되지 않을 것이다. 즉, 암묵지는 실제적인 작업환경 속에서 여러 사람과의 공유적 관계를 형성하면서 상황에 맞는 지식과 기능을 연마함에 의해서 획득될 수 있다. 따라서 개별 학습자는 최신의 교과적인 내용적 지식뿐만 아니라 직무수행에 필요한 실무 능력 향상을 위해서는 실제적인 현장 경험을 학습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식의 유형을 탐색하는 데 있어서 명시지와 암묵지의 구분과 더불어 주목해야할 또 다른 구분은 개인지와 집단지의 차이이다. 통상 지식은 개인의 머리 안에 소유된 것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지식은 집단과 조직에 의해서 명시적으로 공유되어 활성화되는 측면도 강하다.15)
집단적인 명시적 지식에 관한 유명한 예는 미국의 사무용 복사기 제조 회사로서 현재 종합 정보가공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제록스 회사의 복사기 기술도우미의 작업형태를 들 수 있다(Orr, 1996; Brown and Duguid, 1998). 일상적인 가전제품 애프터서비스와 마찬가지로 제록스의 기술도움센터에 근무하는 A/S 기술도우미는 대부분 혼자서 문제가 발생한 고객의 사무실에서 작업한다. 기술도우미의 숙련된 수선기술은 집단적 지식과는 전혀 상관없이 기술설명서에 근거한 철저한 개인학습에 의존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기술도우미들은 예상과 다르게 일상적인 근무 실제 속에서 명시적으로 경험을 공유함에 의해서 개인적 지식을 확장하면서 집합적으로 지식을 획득한다. 기술자들은 점심시간이나 휴식시간에 기존의 설명서가 다루지 못하는 기계의 기능불량에 대하여 서로 간에 대화를 통하여 개별적인 경험담을 공유한다. 그리고 이를 분석하여 문제해결을 위한 최선의 사례를 축적한다. 이러한 사례는 풍부한 명시적 지식을 소유한 개인이라 하더라도 조직 속에서 또 다른 집단적인 경험 공유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지식에 대한 공유적 이해는 궁극적으로 지식을 조직전체에 분산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즉, 집단적 지식은 개인의 머리 속으로 환원되는 것이 아니라 조직 전체로 확대되는 것이다.
조직 속의 집단은 또한 스스로 암묵지도 생성하여 학습한다(Cook and Brown, 1999: 391). 집단의 암묵지는 집단의 구성원들이 경험하면서도 구체적인 언어로 정의하기 어려운 지식의 유형이다. 이는 일종의 문학적 양식(genre)과 유사한 개념으로써 집단에 소속된 구성원들의 의사소통과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예컨대, 소설가들은 소설만의 독특한 양식으로써 소설이라는 과업을 수행하고, 이 분야의 구성원들은 양식에 입각하여 상호 의사소통하면서 문맥을 이해한다. 이는 타 분야 구성원들(예컨대, 시 전공자)에게 다소 낯설 수 있다. 양식은 오로지 소속된 분야 집단구성원의 과업적 문맥 내에서만 이해되고 수정될 수 있다.
조직적 차원에서 본다면 조직목표와 설립취지를 표방하고 있는 창설취지문(mission statement)이 집단적 암묵지에 해당한다. 창설취지문은 일종의 양식으로서 조직 구성원 전체의 과업수행에 영향을 미친다. 즉, 구성원들은 창설취지문에 대한 문맥적인 자구 해석보다는 창설취지문에 담겨 있는 일종의 정신적 양식을 공유하면서 취지문에 부합하는 실제적 행위 속에서 과업을 수행한다.
요컨대, 지식은 명시지, 암묵지, 개인지, 집단지를 포함하는 다면적인 특성을 가진다. 그런데 이러한 특성과 더불어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지식의 실제성(practices)이다. 실천력이 없는 지식은 그 효용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추상적인 공리공론으로 귀착될 가능성이 크다. 구체적인 행위나 실제를 보장하지 않는 지식은 반성적인 실천력을 상실한 채 단지 개인의 머리에 위치한 추상적 사실들의 모음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지식은 보다 확대된 의미에서 실천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즉, 지식은 기존의 소유적 인식론(the epistemology of possession)에서 실제적 인식론(an epistemology of practice)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Brown and Duguid, 1991; Cook and Brown, 1999).
지식이 개인의 소유물로 인식되고 실천력을 동반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지식은 앎(knowing)으로 정의될 수 없다. 앎으로서의 지식은 구체적인 실제 생활 장면에서 지식의 4가지 차원을 포괄하면서 이에 기초하여 행위를 수반하다. 따라서 앎은 지식과 비교할 때 보다 행위적 차원의 이론(theory in action)이라는 점에서 역동적인 구조를 가진다. 지식에 대한 학습은 Dewey가 언급하였듯이 삶 속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반성적으로 행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앎으로서의 지식의 구조와 유형에 대한 구체적 구분은 [그림 1]처럼 예시될 수 있다(Brown, 2002; Cook and Brown, 1999: 393)
[그림 1] 지식의 유형과 실천적 앎의 구조
학습 자체는 기존의 행동주의적 설명과는 달리 지식의 다면적 특성16)을 반영하여 사회적이면서 집단적으로 발생한다. 교육은 학생 개인에게 명제적 지식을 단지 전달하는 행위로 그쳐서는 안된다. 현재의 시대적인 환경으로 자주 언급되는 지식기반사회는 산업시대에 적합하였던 고정된 절차와 일반적 규칙에 대한 맹목적 학습을 강조하지 않는다. 지식기반사회는 산업사회의 수요에 맞게 설계되어 있는 교육체제에 대하여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즉, 전통적인 교육은 학습방법과 교수형태에 있어서 기존과는 질적으로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
한편, 또 다른 시대적인 요청으로서 주목받는 평생교육 역시 전통적 교육에 대한 재구조화를 요구한다. 평생교육은 제도적인 공식교육을 넘어서서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구체적인 학습맥락으로 확장된 학습을 강조한다. 평생교육사회가 그리는 교육의 이상적인 모습은 사회구성원 모두가 학습에 공동으로 참여하여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는 사회이다. 지식정보화사회가 주로 “지식의 경제성과 활용성”을 강조한다면 평생교육사회는 “지식의 공유성과 공공성”을 강조한다. 이는 기존의 제도교육의 명제 중심의 교과중심교육과 규칙 기반적인 암기식 교육에서 탈피하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생활세계의 전체 맥락적 상황에서 “학습방법을 학습(learning to learn)”하는 것을 지향하여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의 교육을 재구조화하기 위해서는 지식이 문맥 속에서 어떻게 발생하는지, 지식이 개인적으로 어떻게 획득되며 전체 조직 속으로 분산되는지에 대한 미시적이고도 구체적인 접근법이 필요하다. 지식의 획득과정과 학습의 메카니즘을 연구하는 인지 과학적 접근, 특히 신경과학적 접근은 ‘학습방법의 학습(learning to learn)’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또한 어떻게 전문적 지식(이론)이 문제해결기능(실제)과 원활하게 통합되어 조직구성원 전체에게 협동적으로 공유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을 제공한다.
III. 인지적 자연주의와 신경망적 접근의 인식론적 함의성
인지적 자연주의는 지식의 성격과 한계를 다루는 인식론은 궁극적으로 지식의 발달과 획득과정이 탐구하는 신경과학적 연구와 분리될 수 없다고 본다. 전통적으로 정신적 특질들(mental states)은 물질적 특질들(physical states)과 동일시되거나 환원될 수 없다는 심신이원론이 철학계에 팽배하였다. 즉, 마음과 육체는 서로 독립적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심신 이원론적 관점은 앎을 추구하는 인식론적 과제는 순수 이성과 논리에 호소하여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로 간주한다. 다시 말해, 규범적 기업으로서 인식론의 목표는 무엇이 지식을 구성해야만 하는지를 구체화하는 것이지, 단순히 무엇이 지식으로 취해져야 하는지를 서술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전통철학이 주장하는 심신이원론에 대하여 인지적 자연주의는 매우 다른 관점을 갖는다. 심리학적 삶은 자연적 현상이기에 인간은 일종의 인식론적 기관(epistemic engines)으로, 인간의 정신적 특질과 과정은 단지 복잡한 물질적 체계(physical systems)의 구현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정신현상이 궁극적으로 두뇌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은 전통적 인식론의 기본적 질문들이 “뇌의 물리적 작동 메카니즘”에 대한 탐구로 재형성되어야 함을 시사한다(Paul Churchland, 1988, 1995; Patricia Churchland, 2002). 즉, 전통적 인식론은 인지기능에 관한 신경과학적 설명에 의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연구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두뇌의 신경(neuron)은 하나의 세포로서 전기활동을 축적하고 전달하는 일을 담당한다. 1,000억 개의 신경(neuron)17)과 이를 연결하는 100조의 시냅스 중 대부분은 동시에 활동하면서 다른 신경과 상호작용하여 정보를 처리 한다. 뉴런 간에 신경전달에 걸리는 시간은 약 10msec 정도 소요된다. 이 속도는 컴퓨터가 1초 동안 수행할 수 있는 수백만의 계산에 비하면 훨씬 느리다. 그러나 뇌는 컴퓨터의 직렬구조와 다르게 병렬적으로 정보처리를 수행하기에 수십억 가지의 연산 작용을 동시에 수행한다(Anderson, 이영애 역, 2000: 35-37).
이러한 사실은 불의의 사고나 뇌 혈관장애(예컨대, 뇌출혈) 등으로 두뇌의 기능을 일부분 상실한 사람들이 보통 사람과 별다른 차이 없이 정상적으로 사고과정을 수행하는 것을 설명하게 한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구분되는 컴퓨터는 바이러스의 감염 등으로 프로그램의 한 부분이 파손되었을 때 전체 기능이 마비된다. 그러나 인간의 뇌는 인지기능을 전체 신경망 속에서 분산적으로 처리한다. 거대한 신경망들의 상호 연계적ㆍ병렬적 구조를 가진 인간의 두뇌는 선천적인 내구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두뇌의 신경망은 컴퓨터와 다르게 전체 시스템 작동을 위한 중앙처리장치(CPU)를 가지고 있지 않다. 신경 단위 간의 연결은 국부적으로 상호 연결되기 때문에 시스템의 작업 상황을 한 순간에 파악하기 위한 중앙장치의 필요성은 대두되지 않는다. 이는 뇌의 특정 분야에서의 신경 활성화와 또 다른 부분에서의 신경활성화는 상호 독립적으로 일어남을 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경망은 직면하는 문제 상황에 대하여 범 시스템적으로 반응한다. 즉, 두뇌는 국부적 신경망의 병렬적 연결 속에서 전체 신경망의 역동적 활성화에 근거하고 있다.
인지적 자연주의는 인간의 실제 두뇌의 신경망체제를 모델링 하는 연결주의(connectionism)가 지식의 다면적 차원을 포괄할 수 있는 설명적 기제를 제공한다고 본다. 연결주의는 인간인지는 규칙과 명제에 의하여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두뇌에 존재하는 신경망들의 연결 가중치의 활성화에 의하여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신경구조에 근거한 비문장적 이론모델로서의 연결주의는 인지과학분야에서 “병렬분산처리(parallel distributed processing)” 접근으로 명명되기도 한다(Bechtel, 1994).
단순한 연결주의 모델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신경 과정 단위, 신경 과정 단위 간의 가중된 연결, 각 신경 단위의 특정시간에서의 활성화 값을 결정하는 등식과 학습규칙 이라는 구조적 특성을 가진다.18) 연결주의라는 이름이 함축하듯이 이 모델은 신경단위들 간의 연결의 상이한 가중치(weights)에 의해 특색 지워지며 상징적(symbolic)이기보다는 신경자극(firing state)처럼 수적인(numerical) 신호로 상호간에 정보를 전달한다.
이 모델은 3층으로 구성된 신경망 구조를 가정한다. 정보의 입력을 받는 투입층과 투입층의 신호를 받아서 산출층으로 전달하는 은닉층, 정보의 출력을 외부로 내보내는 산출층이 그것이다. 신경망체제는 3층 구조의 신경구조를 통하여 반복적인 입력을 받으며 신경체제의 단위들 사이의 연결비중을 수정ㆍ조정한다. 이러한 수정과 조정은 인접 신경단위에서 투입되는 활성화(또는 억제신호)와 그 연결강도에 의하여 수리적으로 계산되어 이루어진다. 즉, 신경망은 스스로 최적의 안정적이고 효과적인 수행에 도달할 때까지 활성화와 억제를 전체적 신경체제 속에서 계속 재분배한다고 할 수 있다(이정모, 2001: 336). 연결주의에 대한 기본적 아이디어는 〔그림 2〕19)에 나타나 있다(Evers and Lakomski, 2000: 29; Churchland, 1995: 100).
〔그림 2〕연결주의에 대한 구조적 설명
인간은 다양한 문제 상황 속에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학습한다. 의도하였던 기대 행위를 달성하였을 때 이는 반복적으로 확대ㆍ재생한다. 반면에 바라는 결과를 도출하지 못하였을 때는 주위 환경에 대한 환류적인 정보와 경험에 근거하여 스스로의 행위를 수정ㆍ교정한다. 이러한 학습은 신경망의 병렬 구조적 활성화에 의해서 가능하다. 〔그림 2〕에서 모델링 되듯이 신경망 체제는 임의적인 자극을 전위공급통로를 따라 투입층, 은닉층, 산출층의 연결을 통하여 처리한다. 그러나 여러 상황 속에서 경험이 반복됨에 다양한 입력 자극이 축적됨에 따라서 역으로 정기적 순환통로를 따라서 신경 단위들 간의 연결비중 값을 환류적으로 수정ㆍ조정한다.20)
전통적으로 지식은 문장으로 혹은 명제(propositions)로 표현되었다. 학교교육은 이론적 지식으로서의 명제적 지식(knowing that)에 대한 학습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실제적 지식(knowing how)은 관련 문헌이 제공하는 이론적 지식만을 가지고는 학습할 수 없다. 이론에 대한 표현양식이 오직 문장으로만 진술된다고 할 때 이론은 실제를 안내하는 지침으로서 언제나 부적절하다. 이는 결국 문장적 지식을 강조하는 교육의 문제점으로 귀착된다.
교육은 이론과 실제의 통합성 안에서 이루어지는 실천행위이다. 의도적으로 설계된 교육활동 그 자체는 이론에 근거할 수밖에 없으며, 역으로 교수학습이라는 실제적 행위와도 분리될 수 없다. 따라서 교육은 실제적 경험과 이론적 지식을 통합함에 의해서 그 성공이 보장될 수 있다. 즉, 교육이론은 실제적 관심을 반영할 필요가 있으며, 교육실제는 이론의 발달에 의하여 향상되는 것이다.21)
연결주의는 교육과 실제의 통합성과 지식의 다차원을 포괄할 수 있는 설명적 기제를 제공한다. 인간 두뇌의 기능을 모사하는 신경망 모델에 근거하여 볼 때 전통적 인식론은 지식과 학습에 관한 기존의 명제적ㆍ규칙 기반적 시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두뇌는 명제적 지식과 실제적 지식을 별도의 지식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연결주의적 관점에서 본다면 학습은 신경망 내의 연결부분인 시냅스의 결합을 형성하는 신경패턴을 두뇌가 어떻게 총체적으로 인식하느냐의 문제로 귀착된다. 즉, 지식은 신경 단위 간의 총체적 연결구조와 연결 가중치 강도로 구현된 패턴재인(pattern recognitions)인 것이다.
인간은 뇌의 병렬분산처리 방식에 근거하여 과업을 분산적으로 동시에 수행한다. 컴퓨터는 언어학습의 과정을 모사하기 위하여 직렬식 연산방식으로 규칙에 근거하여 개개의 문장에 관한 정보를 기억 장치 속에 저장한다.22) 반면에 인간의 뇌는 거대 신경망의 병렬(분산)식 연산 시스템에 근거하여 문장을 접하는 순간 자극을 수용하여 뇌로 하여금 즉각적인 정보를 만들어 내어 대응하게 한다. 뇌의 신경망 연결가중치는 다양한 문제 상황에 직면하는 순간 상황 대응적으로 정보를 생성함과 동시에 문제해결방법을 탐색하면서 주위 환경적 요인(예컨대, 인공대상물, 조직구성원)으로부터 투입자극을 지속적으로 수용한다.23) 특정 모임에서 주위 사람과 대화를 하다가 친구를 만나는 순간 즉각적으로 얼굴을 인지(패턴재인)하며 필요한 정보를 인출하여 대화를 계속 진행하는 것은 두뇌 신경망의 유연적 분산 구조를 예시하는 사례이다. 이는 인간의 인지행위가 단지 한 개인의 머리 안에서만 독점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 환경과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하여 분산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인지체계는 개인의 수준에서 뿐만 아니라 집단과 조직이라는 환경적 조건 속에서 철저하게 분산된다는 것이다.
신경망의 작동기제를 탐구하는 연결주의적 관점은 명시적인 지식만을 강조하던 전통적 교육형태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개인의 인지는 신경의 네트워크의 상호작용 속에서 발생하면서 집단과 조직 속에서 상황적 조건과 인공물 등에 의해서 사회 전체로 분산된다. 형식적인 명시지만을 강조하던 전통 교육은 명시지 뿐만 아니라 암묵지의 획득과정과 집단지로 확장ㆍ분산되는 지식 획득과정을 교육방법과 학습설계에 반영하여야 한다. 즉, 교육은 지식의 다차원적 모습을 반영하여 그 실천력을 배가시키는 접근을 취해야 한다. 일찍이 Dewey가 주창하였던 실행학습(learning by doing)은 두뇌의 작동원리를 구명하려는 연결주의에 의하여 구체적 실현 가능성이 촉진될 수 있다.
IV. 인지적 자연주의의 교육적 의미
인지적 자연주의가 주창하는 연결주의는 지식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개인과 집단, 사회 속으로 보다 확대할 수 있는 이론적 시각과 설명적인 기제를 제공하여 주고 있다. 교육적 맥락에서 인지적 자연주의의 신경망 체제는 이론과 실제의 통합성에 대한 가능성뿐만 아니라 다방면에 적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24) 본 고는 다양한 적용 가능성 중 교원의 전문성 훈련과 윤리성 제고에 국한하여 교육적 시사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전통적 교육은 주로 명제적 지식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생활세계의 작업환경과 분리된 처방적 절차에 근거하여 학습 환경을 설계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는 교원의 전문성 훈련에도 유사하게 적용된다. 통상 전문성(expertise)은 엄청나게 많은 명시지를 축적함에 의하여 가능하다는 통념이 있으나 전문성은 실제 환경 속에서 장기간에 걸친 철저한 “학습적 경험”의 축적에 의하여 획득된다.25)
인지 과학적 시각에서 볼 때 전문성은 외부 환경적 자극에 대하여 수많은 뇌 신경세포들이 역동적으로 활성화되면서 신경망을 구축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 전문성은 실제 환경을 뇌가 어떻게 지각하는가에 대한 학습인 것이다(Sternberg and Horvath, 1995). 전문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처럼 생각하기를 가르칠 것이 아니라 전문가처럼 학습하는 방법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전문성 훈련은 전문가의 정보해석ㆍ처리능력, 문제 상황 파악 및 해결책 탐색을 다루는 인지적 과정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그 동안 교원의 전문성을 함양하기 위한 연구는 거시적인 접근으로서 주로 교원 인사제도개선에만 국한되어 진행되었다. 그 결과 전문성 신장을 위한 구체적인 교육내용과 교육방법을 다루는 미시적 연구는 상대적으로 미흡하였다. 전문가가 어떻게 사고하고 기억하며 학습하는지를 뇌기능 작동 기제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인지 자연주의는 추상적 수준에서 머물던 전문성 제고에 대한 논의를 구체적인 전문성 교수ㆍ학습방법론과 문제해결기법 등으로 대치할 수 있다. 즉, 연결주의와 같은 신경과학적 접근이 교원의 전문성이 “어떻게” 발달 될 수 있으며, 전문성을 겸비한 교원이 되기 위하여 신임교원을 “어떻게” 학습시키고 훈련해야 하는 지에 대한 실천론적 아이디어를 제시할 것이다
어떻게 두뇌가 작동을 하고 정보를 처리하는 지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인 신경망모델은 도덕교육에도 시사점을 제공한다. 전통철학과 다르게 자연주의는 가치와 사실 간의 괴리가 있다고 가정하지 않는다. 인지적 자연주의는 도덕적 사실들은 정신이나 마음의 산물이 아니라 뇌기능 결과의 일부로 간주한다. 따라서 도덕적 판단들은 여타 사물들의 존재방식에 대한 자연과학적 설명과 동일한 방식으로 연구된다. 도덕적 선은 쾌락이나 행복과 같은 자연론적 속성들과 동일시 될 수 없다는 G.E. Moore의 ‘자연론적 오류(the Naturalistic Fallacy)’에 대하여 자연주의는 가치적 속성들을 자연적 속성들로 간주한다. 즉, 도덕적 지식 또한 사실적 지식이며 다른 여타 지식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아동들은 언어습득과 동일하게 사회적 규범과 가치판단을 학습한다. 무수히 많은 다양한 사회적 상황을 경험하고 관찰하면서 그러한 상황에 상응하는 원형(prototype)에 관한 정보를 각자 뇌의 상호 연결된 거대한 신경단위들에 저장함에 자신의 가치기준을 획득한다. 즉, 현실세계의 사회적ㆍ행정적 실제와 관습을 직접 경험하고, 부모의 기대감 충족, 신체적인 즐거움, 정신적 기쁨과 고통을 겪으면서 도덕적 지식을 학습한다. 따라서 도덕적 지식은 인간의 의식적 산물 또는 신에 의하여 부여된 정신적인 특별성을 가지지 않는다. 도덕성은 사실적 지식과 동일하게 객관적인 실재들에 대한 개개인의 뇌 기능적 인식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 철학은 윤리학적 문제들에 대하여 충분한 설명적 체계를 제공하지 못한다. 철학은 왜 인간이 특정한 도덕적 가치나 욕망을 가지게 되는지, 서로 간에 갈등하면서도 협력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 윤리적 문제(예컨대, 안락사, 낙태, 동성애 등)에 대하여 인간 개개인이 가지는 상이한 가치 체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선험적ㆍ사변적 연구보다는 보다 기술적이고 실증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우리 신체에서 이론적ㆍ실제적ㆍ도덕적 학습을 담당하는 유일무이한 기관은 신경망의 거대 조직체인 두뇌이다. 인지적 자연주의는 신경과학이 인간의 학습행위 뿐만 아니라 도덕적 발달에 관한 의문점을 가까운 미래에 명료하게 해결해 줄 것을 믿는다. 다시 말해 도덕적 지식 또한 다른 여타 종류의 경험적 지식과 동일한 정도의 객관성을 가진 자연과학적 탐구영역이라는 것이다.
V. 나가는 말
인간의 두뇌는 명제적 지식이나 규칙에 근거하여 작동하지 않는다. 명제적 지식과 방법적 지식은 단지 감각적 자극으로서 하나의 정보로 간주되어 상호 연결된 천억 개의 신경 활동을 통하여 인지된다. 그 결과는 우리의 운동 신경세포 반응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교육의 관심대상과 초점은 지식의 명제적 정의에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지식 유형으로 확장될 필요성이 있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두뇌가 지식을 어떻게 구현하고 학습하는가를 설명하는 연결주의와 같은 자연과학적 모델의 이용을 통하여 가능할 것이다.
현재 인간 두뇌의 지식 표상 과정을 연구하는 수많은 작업이 인지과학, 특히 신경 과학 분야에서 진행 중에 있다. 인지적 자연주의는 두뇌의 신경활동 작동기제에 근거하여 가까운 미래에 실제적 지식(knowing how)과 명제적 지식(knowing that)의 통합은 물론이고 도덕적 지식의 획득과정 또한 경험적으로 구명이 가능하리라 본다.
그러나 모든 철학적 사상이 논리적 근거와 실천력에 있어서 취약점과 한계점을 가지고 있듯이 인지적 자연주의 역시 동일한 난점을 가진다. 자연주의의 철학적 입장에 대한 논쟁은 계속 진행 중에 있다(예컨대, Craig and Moreland, 2000). 특히, 자연주의가 철학의 선험적 개념화를 부정하지만 이미 자연주의 자체는 이미 이론적인 개념적 틀로서 또 다른 선험성을 내포한다고 볼 수 있다.26) 이러한 난점에 대하여 Neurath의 항해 은유에서 보듯이, 자연주의는 바다를 항해하면서 비바람과 파도 속에서 파손 상태를 계속 수선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한 척의 배로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감각경험에 근거하여 자연주의의 여정은 시작되며 자연과학적 증거는 나침반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면서 경험주의라는 바다를 성공적으로 항해하게 돕는다. 자연주의적 항해에 대한 동반적 참여를 유도하는 이유는 과학은 이제까지 인류의 문명을 선도한 최고의 설명적 기제로서 동시대에 이용 가능한 최선의 증거를 제공한다는 데 있다.
인지적 자연주의 특히, 신경과학적 접근과 관련하여 제기될 수 있는 의문점은 정신적 현상의 존재성과 관련된다. 정신현상이 두뇌 속에서 벌어지는 물질적 현상이라는 주장은 정신 현상을 철저하게 존재론적으로 부정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모든 규범적인 것(예컨대, 문화, 예술, 도덕 등)의 물질적 환원 가능성이 일상생활의 존재영역에서 규범성을 제거 또는 사멸시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예컨대, 온도는 물리적 운동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평균분자운동에너지(mean molecular kinetic energy)로 환원된다. 그러나 온도라는 거시적 현상이 평균분자운동 에너지라는 미시적인 현상으로 환원되었다고 해서 온도라는 거시적 현상 자체가 사라지지 않는다. 온도에 대한 미시적인 물질적ㆍ인과적 설명과는 상관없이 가정주부나 요리사는 통상적으로 훌륭한 요리를 위한 적정 온도에 대하여 주위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다. 단지 이들은 요리에 필요한 정확한 평균분자운동에너지를 계산하지 않을 뿐이다. 거시이론과 미시이론은 일상생활 속에서 공동으로 진화하며 단지 각 이론의 용어적 의미는 발견된 과학적 사실에 부합하여 변한다. 이는 철학의 규범성과 과학의 서술성이 현실세계에서 공동으로 이용될 수 있음을 뜻한다.
인지적 자연주의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제기될 수 있는 의문은 과학 기술력의 한계이다. 정신현상이 두뇌현상이라는 것을 수용한다 하더라도 신경체제 작동기제에 대한 궁극적 설명은 아직까지 미해결의 문제로 남아있다. 개인 신경망과 전체 신경망의 역동성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인간 두뇌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궁극적으로 가능한가라는 회의론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적인 시점에서 우리가 인간두뇌에 대한 작동기제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로부터 인간두뇌의 작동기제는 결코 설명될 수 없다는 결론은 도출되지 않는다. Patricia Churchland(1996: 4)는 이를 “무지”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잘못된 논증으로 간주한다. 이 논증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우리는 P라는 현상에 대하여 정말로 많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과학은 P의 본성에 대하여 대체로 무지하다). 따라서 우리는 P가 결코 설명될 수 없다(또는 과학은 P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심원하게 할 발견을 제시하지 못한다. 또는 P는 과학의 속성적 용어로 결코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이러한 논증은 단지 미래적 설명에 대하여 무지로 인한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심리적인 측면만을 강조하는 것일 뿐 정확한 실체가 없는 논증이다. 현재까지 개발된 과학의 기술력은 뇌 기능을 완전하게 설명하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뇌 기능 연구와 관련된 기술적 진보(예컨대, 두뇌의 활동을 조사하는 자기공명영상 기법인 MRI, 뇌의 혈류변화와 생화학적 변화를 파악하는 양전자방출단층 촬영기법인 PET 등)는 하루가 다르게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다. 또한 무어의 법칙(약 18개월마다 컴퓨터 가격은 변하지 않고 성능만 두 배씩 증가한다는 법칙)은 뇌기능과 관련된 복잡한 자료를 보다 빠르게 분석할 수 있는 강력한 성능을 갖춘 컴퓨터가 가속적으로 개발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론은 시대적 환경에 따라서 진화ㆍ발전한다. 그러나 수많은 이론이 나타나고 사라진다 하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세계(진리)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이론의 수정 가능성은 관찰되는 세계와 연구되는 문제의 성격과 본질 그 자체가 변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론의 성장과 발달에 따라 변하는 것은 세계 또는 문제의 본성에 대한 우리의 이해이기 때문이다. 인지적 자연주의는 지식의 정당화 문제와 획득과정, 인간마음의 작동기제에 대하여 신경과학적 접근이 보다 개선된 이해를 제공하여 준다고 믿는다. 신경과학에 의하여 뇌의 기능이 밝혀진다면 이는 교육의 총체적인 변화를 유도하게 할 것이다. 인지 자연주의는 이러한 희망을 구현하기 위한 과학적인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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