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경』에서 읽는 서원문 / 종범 스님
부처님의 끝없는 원력: 『천수경』에서 읽는 서원문
부처님은 지혜이고 자비이다. 지혜의 부처님을 반야바라밀이라 하고,
자비의 부처님을 대자대비라 한다.
반야바라밀과 대자대비가 있기에 부처님이다.
반야와 자비를 떠나서 부처님을 생각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부처님은 ‘원력 (願力)’이다. 부처님의 원력은 끝이 없다.
끝없는 부처님의 원력을 ‘무진원력(無盡願力)’이라 한다.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더라도 부처님의 원력은 다함이 없다.
부처님을 배우는 것은 반야바라밀을 배우고, 대자대비를 배우고,
끝없는 원력을 배우는 것이다.
부처님의 경전에서는 부처님의 지혜 ? 자비 ? 원력을 가르친다.
『천수경』에서 가르치는 부처님의 원력을 살펴본다.
『천수경』은 한국불교에서 지송(持誦)하는 주요 경전중의 하나이다.
한국불교에서 현재 일상적으로 지송하는
『천수경』의 본래 명칭은
『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이다.
이 경은 16서원과「신묘장구대다라니」로 구성되었다.
①나는 일체법 알기를 원합니다.
②나는 지혜안 (智慧眼) 얻기를 원합니다.
③나는 일체중생 제도하기를 원합니다.
④나는 좋은 방편 얻기를 원합니다.
⑤나는 반야선에 승선하기를 원합니다.
⑥나는 고통바다 건너기를 원합니다.
⑦나는 계정도(戒定道) 얻기를 원합니다.
⑧나는 열반산에 오르기를 원합니다.
⑨나는 생사 없는 집에서 모이기를 원합니다.
⑩나는 법성신과 같게 되기를 원합니다.
⑪내가 도산(刀山)에 가면 도산이 없어지고
⑫내가 화탕(火湯)에 가면 화탕이 없어지고,
⑬내가 지옥에 가면 지옥이 없어지고
⑭내가 아귀에게 가면 아귀가 포만함을 얻고
⑮내가 아수라에게 가면 아수라들의 악심이 저절로 조복되고
⑯내가 축생에게 가면 축생들이 저절로 지혜를 얻게 되기를 원합니다.”
이상이 16서원이다.
『천수경』은 이와 같은
16서원과 「무애대비심대다라니신묘장구」가 중심을 이룬다.
그러나 현재 지송하는『천수경』은
「신묘장구대다라니」에 이어서 많은 경문이 있다.
이것은 한국불교에서 예송(禮誦)의식의 필요에 의해
첨부된 후편의 경문에 해당한다.
후편의 경문에는 「여래십대발원문」?「사홍서원」등이 있다.
“①나는 삼악도 여의기를 원합니다.
②나는 탐진치 끊기를 원합니다.
③나는 불법승 듣기를 원합니다.
④나는 계정혜 닦기를 원합니다.
⑤나는 부처님을 따라 배우기를 원합니다.
⑥나는 보리심에서 물러나지 않기를 원합니다.
⑦나는 극락세계에 나기를 원합니다.
⑧나는 아미타불 뵙기를 원합니다.
⑨나는 나의 몸을 온 세계에 보이기를 원합니다.
⑩나는 모든 중생을 다 제도하기를 원합니다.”
이「여래십대발원문」의 출전(出典)은
「왕생정토십원문(往生淨土十願文)」의 제목으로
『낙방문류(樂邦文類)』권2에 수록된 원문(願文)이다.
“①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②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③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④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이러한「사홍서원」은 대승불교의 교의(敎義)를
총체적으로 통합한 서원이다.
『천수경』에서는 「사홍서원」과 함께 ‘자성(自性)사홍서원’을 전한다.
①자성중생을 건지오리다.
②자성번뇌를 끊으오리다.
③자성법문을 배우오리다.
④자성불도를 이루오리다.”
이와 같은 자성사홍서원은『육조단경』의 법문이다.
『육조단경』,「전향참회(傳香懺悔)」제5에서
자성사홍서원의 수행을 가르쳤다.
“자성중생을 제도 하는 일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사견(邪見)과 번뇌의 어리석은 중생을 반야의 지혜를 써서
스스로 제도하는 것이다. 사견은 정견으로 제도하고,
미혹함은 깨달음으로 제도하고, 어리석음은 지혜로 제도하고,
악은 선으로 제도한다. 이렇게 제도하는 것이 참으로 제도 하는 것이다.
자성번뇌를 끊는 것은 자성의 반야로 허망한 생각을 제거하는 것이며,
자성법문을 배우는 것은 모름지기 자신의 마음을 살펴서 항상 정법을 실행하는 수행이다.
그리고 자성불도를 이루는 것은
반야를 써서 불성(佛性)을 보는 것이다.
불성을 보면 바로 불도를 이룬다.” 서원은 부처님의 원력이고,
부처님께서 중생에게 가르치는 해탈의 길이다.
서원은 여러 항목의 서원이 있지만
“일체중생 제도하기를 원합니다.” 하는 서원이 근본이다.
중생을 제도하는 일은 보리심의 실천이다.
보리심은 자성중생을 제도하는 일로부터 시작한다.
자성중생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중생이다.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무지를 지혜로 제도하고,
악업을 선업으로 제도하고, 고뇌를 기쁨으로 제도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를 제도하는 수행은 혼자만으로 되지 않는다.
다른 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가능하다.
그러므로 남을 돕는 일은 바로 자기를 돕는 일이다.
자기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에게 이익을 주어야 한다.
이것이 중생을 제도하는 서원의 수행 이다.
출처: 나누는 기쁨 실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