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말들이 사라져가고 있고 새로 생겨납니다. 말의 남과 짐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인데도 사라지는 쪽이 아름답고 정겨운 우리말(특히, 우리말의 특징인 2음절 동사들, 상징어들)이고 생겨나는 쪽이 언제나 외래어나 정체불명의 단어들라면 문제이지요.
생각해 보세요. '가다'란 말이 사라졌다면, '발로 걸어서 앞으로 또는 내게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진행하다.'라고 해야 하는 것이죠. 아니면 'go'나 '去(qu)를 쓰든지요. 우스워 보이지만 이런 예들이 많습니다. 우리 카페에서도 이야기 나왔었죠. '손곱'이란 단어. 잘 모르신다고요? 그럼, '발곱'. 그럼 '눈곱'. 그렇습니다. '손곱'은 '손톱 밑에 낀 때'를 말하지요. '손곱'이 사라지면 '손곱 봐라'가 '손톱에 때 봐라'로 길어지게 됩니다. 손톱이란 말도 사라지면? '네일 밑에 더스트'라고 해야 할지도 모를 날이 어쩌면 올지도. 영어 공부 열심히 해야겠어요. 역시 정부의 선견지명이란....켁.
가다, 오다, 먹다, 잊다, 품다, 섞다, 맞다, 넘다, 남다, 널다, 털다, 씻다, 감다, 적다, 쓰다, 끄다, 켜다, 받다, 싸다, 풀다, 팔다, 사다, 쌓다,.... 우리말에서 기본 동사들은 거의 2음절로 되어 있습니다. 정말 축복 받은 효율적인 언어사용이지요. 근데 2음절 동사들은 점점 줄어들고 4음절 '한자어/외래어어근+하다'류의 동사들이 늘어납니다. 이제 '밭다'와 '톺다'를 쓰는 사람을 찾기 힘들죠. '밭다'가 동사 2개와 형용사 3개를 가진 동음이의어인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당연히 '밭다'에서 파생한 부사 '바투(둘 사이가 썩 가깝게)'도 그 생명을 잃어가고 있고요. 그럼 이건, '바싹'과 '바짝'은 좀 익숙하죠? 동사 '밭다'와 연관 있는 '바싹', 형용사 '밭다'와 연관 있는 '바짝'이 아직 우리의 어휘 속에서 사라지기 전에 잘 쓴다면 '밭다'도 더 오래 살아남지 않을까요?
음성상징어, 의태상징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 보통 의태어, 의성어를 말합니다. 들락날락, 질퍽질퍽, 오순도순 등등. 그나마 상징어들은 아직도 언중들 사이에서 작가들 사이에서 새로 생겨나는 말들도 많답니다. 우리 카페에서도 하나 생겨났지요. 쓰담쓰담(사랑과 관심으로 쓰다듬으며 격려하는 모양). 이것도 널리 퍼지길...ㅋ
아, 지금까지 뭘 쓴 거죠? 돌아돌아 제길인 듯, 삼천폰 듯. 맞다. 수천 수만 사라져가는 단어들을 하나하나 어느 세월에 다 외울 순 없는 일입니다. 외워서 알게 된 단어가 우리의 어휘력을 풍부하게 하기에도 한계가 있고요. 적어도 연관성을 찾을 수 있는 말들, 이제 사라질락말락한 단어들, 이런 것들은 우리가 잡을 수 있어요. 여기서 우리란 '국어국문학도'를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말의 소비자이면서 유통자이고 생산자입니다. 잘 골라 잘 쓰고 잘 알려주기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결코 가르치는 방식이어선 안 됩니다. 우리도 언어환경의 일부이면서 환경미화원이기 때문입니다. 방금 쓰레기 버리고 침 뱉고 나서 이제부터 청소할 시간이니 '당신, 여기서 침 뱉었으니 벌금 내' 이럴 순 없는 거겠지요?
자, 그럼 '진동한동' 볼까요? 맞나요? 쓸데없이 길게 쓰다가 본문을 잊어버렸어요. '바쁘거나 급해서 몹시 서두르는 모양'이죠. 저도 잘 못 들어봤습니다. 그런데 들어본 적도 없는 이 말을 '몹시 서두르는 모양'으로 익혀서 쓰려면 머릿속에서 얼마나 힘들까요? 영어단어 외워서 쓰는 거랑 뭐가 다를까요? 물론 의도적으로 자신의 언어생활에 끼워 쓰는 것이 무조건 쓸모 없는 일은 아닙니다. 필요합니다. '( )동( )동' 식의 의태어들 많습니다. 뭐가 생각나시죠? 음, '오동포동', '죽을동살동' 이건 좀 그런가...;; 암튼 상징어들은 양성/음성모음 짝, 평음과 경음, 격음 짝이 대개 있지요. 반질반질/번질번질처럼요. 바로 '진동한동'은 '허둥지둥'과 같은 뿌리입니다. '허둥지둥'보다 작은 말이 '하둥지둥'('하'보다 '허'가 더 센 말)인데 이보다 작은 말이 '하동지동'. '하동지동'이 뒤바뀌고 'ㄴ'이 첨가가 일어난 '진동한동'. 물론 '진동한동'이 최초로 생겨난 말이라면 'ㄴ탈락'이어야 하지만 제 생각엔 '하동지동'이 처음 생긴 말 같습니다.
다음으로, '미리감치'는 '미리+감치'이고 '감치'는 일찌감치', '멀찌감치'의 '감치'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찍+암치', '멀찍+암치'로 분석되어서 결국 접사는 '암치'인데 '미리'가 모음으로 끝나서 마치 접사가 '감치'인 것으로 잘못 분석되어 결합한 말입니다. '잘못 분석됐다'는 말은 단어형성에서 흔히 있는 현상이고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ㅎㅎ
다음은 뭐더라... 보고 와야지. 아, '에멜무지로'. 이건 '에멜무지+로'인데 '에멜무지'가 '대충 묶은 모양'이죠. 소리나는 대로 적었음을 고려하여, '애+매+ㄹ+무지'로 분석해 봅니다. '애'는 '처음, 한번'이란 뜻입니다. '애벌 빨래', '애벌레', '애당초'에서 확인되지요. '매-'는 '매다'의 어간. 그러니까 '한번만 맬 무엇'이란 뜻이겠지요. '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마지막, '부시다' '씻다, 감다, 헹구다, 부시다', '부시다'는 아직 많이 쓰는 단어(교과서에 나왔듯이)이니 딱히 토를 달지 않겠습니다.
아, 또 하나, '설거지'. 이 단어가 '설걷이'가 아니고 '설거지'인 이유는 맞표에서 배우셨죠? '설걷다'라는 동사가 살아 있지 않아서 어원을 밝히지 않고 소리나는 대로 쓴 것입니다. 그럼 '설걷다'는? '설다'와 '걷다'가 합쳐진 말이지요. 예전엔 '설다' 하나로도 지금의 '설거지하다'란 뜻이었으니... 이건 살려쓰잔 말 아니고 그냥 곁말(여담)입니다.
결론입니다. 이 글을 읽거나, 이정미 학우님 글을 읽으면서 자신의 어휘력이나 우리말에 대한 무관심 탓하거나 뭔가 느꼈거나 공감하거나... 암튼 마음의 움직임이 있다면 그리고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하나, 뭔가 할 일이 없을까 생각까지 한다면 당장 해야 할 일은, 여기 나온 단어들을 사전에서 최소한 '열 번' 이상 찾아봐야 합니다. 우리말을 바로 쓰고 살려 쓰고 잘 쓰는 일은 가끔 휴지줍기처럼 하는 캠페인도 아니고 일년에 한번 애도를 표하는 국경일도 아닙니다. 항상 궁금해하고 찾아보고 몸에 배게 하는 것이 실천입니다.
이 글을 읽어내려가면서 이미 사전을 찾아보셨다면 당신은 멋쟁이. 쓰담쓰담~
첫댓글 은주 언니가 멋쟁이~~ㅎㅎ 지금 열심히 사전찾으며 공부하시는 중...ㅋㅋㅋ
사전이 따로 없어요. 멋쟁이 우진님.
사전을 갖고 계시지 않다면 우선 인터넷에서 국립국어원 홈(http://korean.go.kr/08_new/index.jsp)에 들어가 표준국어대사전을 자주 찾아 보세요.
ㅎㅎ 사전이 진짜로 없단 말씀이 아니라 '효자가 따로 없다', '박사가 따로 없다' 이런 관용표현을 쓰신 것 같아요. 저는 그렇게 이해했어요. 국연4년차신데 사전 없다고 투정하실 분이 아니죠...ㅎㅎ 암튼 두 분 다 멋지세요.^^
전 . 전영복 학우님이 킹.왕.짱으로 좋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
...*^^*
요새 정신이 어디 외출 나가서 안 들어오네요. 그만 곧이 곧대로 '서은'이라는 이름이 낯선 데다가 '사전이 없다'는 이야기만 읽었지, 뒤에 '멋쟁이 우진님'은 놓치고 말았군요. 덕분에 우리 국연 식구들 실컷 웃겼네.ㅎㅎㅎ.
국문학도여~~~ 멋쟁이가 됩시다~~ ㅋㅋㅋ
'쓰담쓰담'이라... 즐겨쓰겠습니다.
'진동한동' '에멜무지로' '쓰담쓰담'... 앞으로 생각날 때마다 적절한 상황에서.. 쓰도록 노력해야겠네요. ^^
그 사이 잊어버려서 복습하고 갑니다. 볼수록 우리말 참 예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