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완도 앞바다의 작은 섬 장도에는 청해진 유적이 있습니다. 최근 완도에서 이곳을 새로 단장하여 아름다운 공원으로 조성했다고 합니다. 올 여름 휴가 때 한번쯤 들러볼 만한 곳일 것 같습니다. 오늘은 청해진의 영웅, 장보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뒤 태평성대를 이루었지만, 800년대에 들어오면서 국운이
기울기 시작합니다. 우연찮게도 같은 시기에 중국 당나라도 혼란에 빠집니다. 그러자 중국과 한반도의 바다에는 해적이 기승을 부리게 됩니다.
해적들은 바다의 길목을 차지하고 지나가는 배들에게 통행세를 받거나 약탈을 일삼았습니다. 특히 이들은 배를 습격해 타고 있던
사람들을 노예로 팔아버리기도 했습니다. 바다를 오가는 신라 사람들은 늘 불안에 떨었지요.
이런 시대상황 속에 완도에서 장보고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백성들이 해적들 때문에 고통 받는 것을 보며 자랐습니다. 그는 청년이 되자 가난한 신라를 벗어나 당나라로 갔습니다. 그곳
서주 지방을 다스리던 지방세력 아래에 군인으로 들어가, 많은 공을 세우며 출세했습니다. 그곳에서도 신라 백성들이 붙잡혀와 노예로 팔려나가는 것을
보며 남몰래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828년, 장보고는 당나라 생활을 정리하고 신라로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더 이상 남의
나라를 위해 살 것이 아니라 고통 받는 동포들과 함께 하기로 한 것이지요. 귀국한 그는 곧바로 흥덕왕에게 아뢰었습니다. “병사 1만 명만 주시면
해적들을 소탕하고 바닷길을 되살려 놓겠습니다”. 흥덕왕은 그에게 병사를 주어 청해진에 진을 세우게 하고 그에게 청해진대사라는 관직까지
내렸습니다.
장보고는 병사들을 잘 훈련시킨 뒤 서해에서 출몰하던 해적들을 무찔러 나갔습니다. 신라의 해적뿐만 아니라 당나라의
해적까지도 장보고군에게 말끔하게 소탕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당나라에서 신라를 거쳐 일본으로 이어지는 바닷길을 차지하고 해상교역을
주도했습니다.
사업이 날로 번창하자 장보고는 당나라의 산동반도에 법화원이라는 큰 절을 세웠습니다. 단순히 불교 사찰로서 지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나라를 오가는 신라 사람들이 이곳에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게 한 곳이었지요. 예전에 신라 사람들이 이곳에 노예로 팔려오는 것을
보았던 장보고였기에 더욱 신경을 써서 법화원을 만든 것이었습니다. 법화원이 큰 인기를 얻자 당나라의 항구도시마다 신라 사람들이 머물 숙소인
신라방을 지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호텔 체인을 운영한 것이었지요. 그렇게 점차 장보고의 세력은 커져만 갔습니다. 하지만 신라 왕실은
거듭되는 반란으로 휘청거리고 있었지요. 때마침 왕의 자리를 두고 다투다 패한 김우징이란 귀족이 청해진으로 피신해 왔습니다. 장보고는 그를
받아들여 보호해주면서 보답을 요구했습니다. 당신을 도와 왕이 되게 해 줄 터이니 성공하면 자기 딸을 왕비로 삼아 달고 말입니다. 두 사람의
계획은 착착 진행되어 마침내 839년, 김우징은 반란을 일으켜 성공하고 신무왕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신무왕은 장보고와의
약속을 지킬 사이도 없이 즉위 여섯 달 만에 죽고 말았습니다. 신무왕의 아들 문성왕이 즉위하자 장보고는 그에게 아버지의 약속을 이어받아 자기
딸을 왕비로 삼아달라고 요구했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배반당한 장보고는 숨을 씩씩 몰아쉬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겠지요.
왕실에서는 장보고가 틀림없이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미리 자객을 보내 암살해버렸습니다. 동아시아 바다를 주름잡던 해상왕
장보고의 최후는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