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정의시민연합 시론]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종
로마는 어떻게 천 년이 넘도록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여러 요인 중에서 ‘타 민족에 대한 개방성’과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를 먼저 꼽는다. ‘고귀하게 태어난 사람은 고귀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뜻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귀족들의 불문율이다. 즉 ‘귀족의 대우를 받고 싶으면, 귀족답게 행동하라’는 뜻이다. 로마의 귀족들은 사회적 의무를 실천하는 것에 무한한 자부심을 갖는다. 로마는 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 17년 동안 집정관 25명 중 13명이 전사한다.
영국이 몇 백 년간 전쟁에서 패하지 않았던 이유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꼽는다. 세계대전을 포함한 이튼 스쿨 출신 전사자 5,000명은 한 학년 250명 정원의 20년 졸업생에 해당된다.
6•25전쟁 때에는 미군 장성의 아들이 142명이나 참전해 35명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는다. 그 중에는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 아들과 8군 사령관 조지 워커 장군의 아들, 유엔군 총사령관 클라크 대장의 아들이 포함되어 있어 미국 상류층의 솔선수범을 실감할 수 있다.
1905년 1월 러일전쟁 당시, 일본 육군의 제3군 사령관 노기 마레스께 (乃木希典) 대장은 6만 명에 가까운 전사자의 희생을 치르고 여순의 203고지를 함락한다. 전쟁이 끝난 후 전사장병의 가족들이 노기 장군에 대한 원망의 마음을 품고 그의 귀국을 기다린다.
하지만 여순 전투에서 전사한 자신의 두 아들의 관을 앞세우고 고개를 숙인 채 배에서 내린 노기에게 전사자 가족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다같이 통곡을 한다.
황산벌전투에서 김유신은 손자 관창(김유신의 양자인 김품일의 아들)과 조카 반굴을 잃는다. 어린 관창의 죽음에 신라군은 분노하며 백제군에 총공격을 퍼부었고 결과는 신라군의 승리였다.
삼국을 통일한 후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하고 돌아온 아들 원술을 김유신이 앞장서서 사형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화랑도의 정신인 임전무퇴를 어겼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도층의 솔선수범이고, 이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천년왕국의 원동력이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노블레스 오블리주’ 사례는 경주에서 12대에 걸쳐 300년 간 '깨끗한 富'를 쌓아온 최 부잣집 이야기다. '재산을 만석 이상 모으지 마라. 흉년에는 남의 논밭을 매입하지 마라.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최씨 가문 며느리들은 시집와서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 진사 이상 벼슬은 하지 마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최 부잣집의 6가지 원칙이다.
김용환은 임진왜란 때 진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학봉 김성일의 13대손이고, 을미사변 당시 의병활동을 했던 김흥락의 손자다. 김용환은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파락호 행세를 하며 종중전답을 도박으로 날린 척한다. 천 석 재산도 모자라 외동딸의 신행 때 농 사오라고 시가에서 맡긴 돈마저 독립군 자금으로 빼돌린다. 딸은 할 수 없이 헌 농을 갖고 간다. 가슴이 먹먹하다.
우리의 선조들은 역사의 고비에서 나라를 위해 이렇게 처연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고, 대를 이어 사회적 의무를 다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은 어땠을까? 부동산 정책의 실패와 '편가르기'로 일관한 국민적 피로감도 있지만, 자신들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깨끗한 정권인 것처럼 큰 소리 치고, 실제로는 남의 탓하기를 일상화했다. 한 마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종이다.
뉴욕 타임즈는 지난 4•7 재보선에서 더불당 참패 소식을 전하며 ‘내로남불’을 그 이유로 꼽았다.
강남좌파로 변신한 더불당 정치인들의 일상은 ‘내로남불’ 그 자체다. ‘민주화 운동’의 훈장을 자랑하는 이들에게 자기반성은 터럭만큼도 없었다. 문재인 정부에 등을 돌리게 한 요인은 셀 수 없이 많다. 조국 전 장관을 둘러싼 사태, 안희정•박원순 등의 성폭력 문제, 임대차법 강행 와중에 전세보증금 올린 청와대 정책실장 김상조, 정신대 할머니들의 피눈물 나는 돈까지 훔친 돈미향~
이재명의 대선패배도 대장동개발 의혹 등 ‘비리와 부패’에서 찾을 수 있다. 이재명은 검찰이 성남FC 후원금 의혹과 관련해 자신에게 소환조사를 통보한 데 대해 “가장 불공정하고 몰상식한 정권”이라며 반발했다. 거대 야당으로 변신한 민주당은 서민을 더 힘들게 만든 문 정부의 실패에 대한 사죄와 반성은커녕 윤석열 정부의 발목 잡기에 주력했다. 한 마디로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요즘 우리사회의 상층부 대부분은 ‘송 복’ 교수의 지적대로 ‘천민 상층’의 모습을 보임으로써 많은 아쉬움을 주고 있다. 고위층의 자녀 중 병역 면제자가 일반인의 5배라니 ‘금 수저, 흙 수저’ 얘기가 이상할 것이 없다. 당신들처럼 하면 안 된다는 반면교사의 전형을 보여준 문재인과 이재명에게 감사한다. 존경 받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습을 어디서 볼 수 있을까?
개혁을 성공시키려면 정교하게 로드맵을 만들고 국민들을 설득하면서 불굴의 뚝심으로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국민의 공감을 유도하고 야당의 반대를 완화하려면 대통령과 여권의 핵심인사들부터 도덕적 우위로 무장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확실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가 받은 선물이 엄청날수록 사회를 위해 값지게 써야 할 책임을 느낀다."-빌 게이츠
2023년 1월 9일
자유정의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