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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정착생활과 잉여의 발생
농경의 시작은 식량확보의 시기와 양에 대한 예측을 가능하게 하여주므로, 농경의 발생과 정착생화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진행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정착생활은 자원의 안정적 확보가 가능하다면 수렵채집생활집단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며, 반대로 농경이 이미 시작된 집단에서도 농경이 생계에 기여하는 바가 미미한 정도라면 정착생화은 불가능 할 것이다. 농경이란 일면으로는 생계자원이 안정적 예측을 가능하게 하지만, 농경과 집단 정착생활은 공중위생의 문제와 영양의 불균형에서 오는 질병이라는 새로운 문제를 인간에게 던져주었다. 또한 농경은 식량의 공급에 있어서도 과거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위기상황의 발생을 야기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농경의 전개와 더불어 정착생활이 본격화되면 이러한 상황에 대한 대비책의 모색은 필수적이다. 이러한 수단의 하나로서는 평소에 생산을 늘려 위기에 대처하는 것, 즉 잉여생산의 확보를 들 수 있다. 잉여생산, 보관, 정착생활, 생산활동의 다양화등은 농경의 발생이 가져온 중요한 새로운 사회적 변화였으며, 이러한 변화는 그 사회의 전반적 조직과 구조의 재편을 가져오게 하였고, 궁극적으로 사회 계층화, 권력 및 국가의 발생에 이르는 일련의 급격한 문화진화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복합사회의 등장은 전단계로서 농경과 정착생활의 전개과정을 중동한 중미의 두 예를 통해 살펴 보기로 하자.
2)농경과 정착생활:중동
중동지방에서의 농경의 시작은 기본적으로 인구압모델에 의하여 설명된다. 중동지방은 B.C 13,000년경에 온난한 기후조건이 형성되고, 인구가 급격히 증가함으로 인해 광범위한 종류의 자원들이 이용되기 시작한다. 그런데 야생종에 의존한 생활경제는 대상식물 자체의 생물학적 특징으로 인하여 많은 경우 안정상태의 유지가 어렵다. 이러한 문제는 야생종을 재배종화함으러써 해결할수 있는 일이다. 중동에서 단순재배농경에서 작물재배농경의 전환이 일어난 시점은 확실하지 않으나 B.C 5,500년무렵이면 작물화된 밀과 보리를 경작하는 건조농업과 양과 염소의 사육 및 본격적인 농경정쁪취락이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자리잡게 된다. 대규모 건조농경은 토지의 형질에도 영향을 주어 B.C 5,500년 이후 이지역의 생태계는 건조농경으로 극심하게 파괴되어, 늘어난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경작지에 인위적으로 물을 끌어 댈필요가 있게되어, 결국 관개농경이 시작되었다. 관개의 보급은 사람들의 주거양식에도 영향을 주어서 취락지는 운하를 따라 일려로 배치하게 되었고, 또 계급사회의 형성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그런데 관개 농경은 처음에는 수확량을 증대시켰지만, 토양잔류염분의 축적으로 토지생산성은 어느 한도 이상 제고될 수 없었으며, 시간이 경과하면서 많은 토지는 쓸모없는 땅이 되었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는 관개의 개시와 더불어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사이의 부의 축적정도의 차이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이러한 배경에서 진행된 사회계급의 발생은 기원전 3,000년기에 세계최초로 이 지역에 국가가 탄생할 수 있는 밑받침이 되었다.
3)농경과 정착생활: 중미
중동 다음으로 농경의 기원에 대한 지식이 축적된 지역은 멕시코 고원지대를 중심으로 한 중미 일원이다. 여기에서 농경은 중동보다 상당히 늦은 시기에 옥수수가 재배되며 비롯된다. 옥수수는 중동지방의 미로가 보리와는 매우 다른 생물적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이것이 재배되는 과정역시 밀과 보리와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농경전개과정의 세부사항은 아직 뚜렷이 밝혀지지 않는 상태이다. 하지만 이지역에서의 농경의 기원에 대한 설명에서는 인구보다 환경의 다양성과 그에 따른 생계전략적 대응이라는 변수가 보다 부각되는 경향이 있다. 증거로는 재배종 옥수수의 조상격인 테오신테(teosinte)라는 야생식물은 아마도 강우량의 사소한 증가나 감소에도 생계가 심각하게 위협받는 건조 고산지대의 생활에서 이곳에 자생하는 서속속(setaria)과 더불어 일종의 구황식물로서 시험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하였다고 추측된다. 중미에서의 농경은 중동에 비해 매우 늦게 시작되었지만, 농경의 등장이후 이 지역에서의 문화진화는 중동과 매우 유사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양 지역의 역사적 경험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농경의 발달은 이 지역에도 영구적이며 독립된 장방형가옥과 저정시설로 구성된 정주 취락을 발달시켰다.
따라서 각자의 농경지를 확보하며 독자적안 토지를 소유하여 농사를 짓는 독립된 확대가족을 사회기본단위로 하여 구성된 사회조직에서는 가족단위 차원에서의 독자적이고 전문적인 활동과 노동의 분화가 가능하였을 것이며, 가족과 가족 사이의 협력관계의 유지는 매우 중요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생활에서의 생산증대를 위하여 요구되는 노동의 동원과 집중은 한편으로 사회적 중재역활 혹은 권위의 등장을 필요로 하였을 것인데, 부의 축적정도의 차이 발생과 더불어 권위는 사회계층화를 유도하는 강력한 영력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4)기타지역의 사정
중국,안데스고원지역(페루) 및 태국을 중심으로 한 동남아시아는 농경이 농경이 독자적으로 발생하였다고 생각되는 지역이다. 안데스지역과 동남아시아에서 농경은 중동보다도 일찍이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나, 이들 지역에서 농경이 발생한 시기와 과정에 대한 정보는 매우 단편적이다. 따라서 고고학 자료로서 밝히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점에 연구에 어려움이 있다. 우리나라와의 관계에서 농경이 중국에서 언제, 어떻게 기원하였는가 하는 것은 매우 흥미있고 중요한 문제이나 아직 우리나라에 있어서 농경의 기원에 대한 연구는 아직 변변히 시작되지도 못한 입장이다.
3. 복합사회의 등장 - 권력과 국가
1)국가의 개념
세계각지에서 농경이 등장한 시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생계경제양식으로서의 농경의 확립은 도시의 등장이라는 사건을 유발하였다.
도시는 수렵채집경제집단의 주거양식과는 물론이려니와 발달된 농경집단의 영구적인 정착취락과 비교할때도 거주인구의 사회문화적 성격에서 큰 차이가 있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주거 양식이다. 도시의 정의는 인구규모에 따라서도 가능한 것이어서 혹자는 5,000명 이상의 거주가 가능한 영구취락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고 한다.
도시는 무엇보다도 많은 수의 구성원이 직접적 생계생산활동에 종사하지 않는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농경의 도입과 더불어 가능한 잉여의 축척과 노동의 분화 및 경제적 예속관계의 발생은 사회성원 일부에 의한 일차생산활동만으로도 전체인구의 생계를 충분히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다.
영구정착취락에서 국가의 등장에 이르는 과정은 많은 곳에서 일정한 발전양식을 보여주는데 도시국가의 단계를 거쳐 고대국가로 발달한다.
국가는 어떠한 의미에서는 미우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현대 고고학에서 국가란 흔히 신진화론에서 정의된 state 의 개념을 차용하여 정의된다. 신진화론자들은 문화진화의 과정에서 등장하는 여러 유형의 사회는 band, trible, chiefdom, state혹은egalitanan society, ranked society, stratified society, state로 구분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대략 서로 대응적인 개념으로 band 혹은 egalitanan society란 소유와 사유재산의 축적이 개개인의 생계와 직결되는 최소한의 것에만 머무르는 사회형태로서 극히 적은 수의 성원으로 구성된 수렵체집경제생활단계의 사회를 가리키고 tribe 혹은 ranked society는 인구규모의 증가와 생산력의 일정한 축척으로 사회성원 사이에 권위가 발생한 사회단계를 말한다. chiefdom 혹은 stratified society 란 계급이 발생하여 복격적인 지배-피지배의 관계가 등장한 사회를 의미한다.
이러한 주장에서 제시된 개념은 사회성격의 일반적 특징에 대한 이해를 좁기 위한 도구로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고 한 사회의 특징 시점의 특정 면모를 규정함에 있어서 이들 개념을 그대로 적용할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특징을 정확한 관찰과 기술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는 작업이 보다 중요할 것이다.
따라서 국가기원의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국가라는 실체의 확인과 정의의 문제이기보다는 사회의 여러 부문이 조직화되는 과정의 연구일것이며, 장기간에 걸친 사회의 계층화와 다양화, 사회적 복합도의 증진의 진행과정을 규명하여야 할 것이다.
2)국가형성의 주요동인과 연구의 방향
국가의 등장 혹은 복합사회의 등장이란 노경과 마찬가지로 어떠한 시점에 갑자기 일어난 사건은 아니다. 장기간에 걸친 문화진화의 과정에서 그러한 사회의 정치적 행위를 일정한 양식으로 조직화함으로써 형성된 실체이다. 국가는 매우 복잡한 문화환경 아래에서 형성되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매우 다양한 양상을 보여 주는데, 국가 기원의 주요동인으로 상정된 변수들은 이들이 사회내적으로 유발된 것인가 혹은 사회 외적요소인가 나누어 생각할수 있다. 국가형성의 주요동인으로 흔히 상정되는 주요한 변수들의 기본적 의미와 그들이 지닌는 약점은 다음과 같다.
<관계와 노력동원> 역사학자 뷔트포겔은 건조지대에서 농업생산력의 증대를 위하여 필요한 관계시설의 건설과 수자원의 관리를 위한 집중적 노력동원과 관리체계의 등장은 그러한 지역에서 궁극적으로 국가를 등장시키게 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 주장은 국가의 기원에 대한 고전적 이론의 하나로서 고고학 연구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이 이론은 관개가 별로 중요한 역할을 발휘하지 못한 마야에서도 국가가 성립되었으며, 건조지대인 멕시코나 메소포타미아 혹은 중국의 황토지대에서 관개는 국가의 성립이후에 본격화된다는 점에서 일반론으로 적용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전쟁> 집단과 집단 사이의 갈등의 궁극적 형태인 무력충돌은 각 집단의 성원에 대한 최대한의 효율적 조직화를 요구하므로, 전쟁이 국가발생의 주요한 원인이라는 생각은 18세기 이후 널리 통용되었다. 현대 고고학에서도 학자들은 전쟁만이 국가의 형성을 가져 온 유일한 요소라고는 할 수 없을 지라도 그러나 매우 중요한 요소인 것만은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아울러 설령 전쟁이 국가의 형성을 가져 온 직접적 동인이라고 하더라도 전쟁과 국가의 등장과의 상관관계를 고고학적으로 증명한다는 것은 매우 어여운 일이라는 문제가 있다.
<인구증가와 인구압> 인구는 농경의 경우와 마친가지로 국가기원의 연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생각되어 왔다. 그러나 인구의 증가가 뚜렷하지 않은 경우에도 국가는 등장하였으며 인구증가는 국가 등장 이후의 산물인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인구증가는 국가의 등장을 가져온 직접적 요인이기 보다는 국가형성과 밀접하게 연계된 현상으로 생각하는 것이 보다 합당하다고 여겨진다.
<환경적 포위> 한 집단이 자연조건이나 혹은 사회문화적 요인으로 주변의 집단으로부터 고립되어 있을 때, 그 집단은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사회조직과 집단의 성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조직하게 되는데, 국가는 이러한 넓은 의미에서의 환경적 포위상황 하에서 형성된다는 주장이 1970년대 초반 이후에 제시되었다. 특히 이때 그 집단의 인구가 계속 증가하고 있거나 혹은 주변집단과 심각한 갈등상태에 있을 때 국가의 등장이 가속화된다는 주장은 많은 지지를 받으며 널리 통용되었다. 그러나 모든 국가가 반드시 그러한 환경조건 아래에서 등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환경적 포위가 모든 국가형성의 주요동인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교역과 경제적 공생> 사람의생활에 필수적인 자원이 불균등하게 분포하고 있는 지역에서는 집단과 집단 사이의 교역 및 이에 기초한 경제적 공생관계의 유지는 집단성원의 생존을 위하여 필수적인데, 국가는 이러한 목적을 보다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하여 등장한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그렇지만 필수자원의 공간적 분포상이 그러하지 않은 경우에도 국가가 등장한 예는 많으며, 또한 대규모적인 교역경제의 등장은 국가성립 이후의 현상이라는 점에서 이것만으로 국가형성을 설명하는 것 역시 무리이다.
<협동과 경쟁> 한 사회내에서 사회성원들이 특정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서로 협력관계를 유지하거나 혹은 그들 사이에 경쟁관계가 발생하였을 때, 그 사회의 효과적인 유지를 위하여서는 협력의 증진이나 마찰의 방지를 위한 조절기능이 필요하게 되는데, 국가는 결국 이러한 사회내적 조절기능의 필요에서 발생하였다고 보는 입장이 있다. 그러나 협동과 경쟁이란 모든 사회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일반적 현상이기 때문에, 역시 이것만으로 국가의 기원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국가기원의 연구는 상정된 여러 변수들이 실제로 어떠한 상호관계를 맺으며 사회의 변화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가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즉 국가기원의 연구는 단선적인관계에 의한 설명보다는 다원적 요인의 상관관계와 그들 사이의 피드백 과정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과제이다. 국가의 기원에 대한 설명에 있어서도, 물질적 변수들의 상관관계의 변화로 인한 사회구조의 변화가 고고학적으로 비가시적인 이러한 변수들과 어떻게 서로 연관되며 일어나는 것인가를 밝힐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게 되었다. 이와 관계되어 국가기원은 정보(information)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하였다. 이 입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하면 국가의 형성 혹은 사회의 분화와 진화가 어떠한 시공적, 문화적 배경에서 진행된 것이건, 이것은 그 사회체계를 이루는 제반 하부체계의 기능적 다양화, 분화와 동시에 그러한 하부체계들이 보다 효율적으로 집중화,체계화되는 과정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국가의 기원을 바라볼 때, 정보의 발생, 전달 및 처리과정의 변화의 연구는 사회계층화와 복잡화의 과정을 측정하는 지표가 될 수 있다. 그러한 구조적 특징에 대한 분설을 통하여 적어도 국가형성이 어떠한 과정을 겪어 이루어진 것인가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하여 준다. 특히 사회의 조직과 형태의 복잡화는 주거유적의 조직과 구성에 반영되기 마련이므로 국가형성의 연구에는 주거유적의 성격에 대한 분석이 중요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