匡章曰:「陳仲子豈不誠廉士哉?
居於陵,三日不食,耳無聞,目無見也。
井上有李,螬食實者過半矣,匍匐往將食之,三咽,然後耳有聞,目有見。」
광장왈 진중자기불성렴사재
거오릉 삼일불식 이무문 목무견야
정상유리 조식실자과반의 포복왕장식지 삼연 연후이유문 목유견
廉(청렴할 렴) : 청렴하다, 검소하다, 날카롭다, 곧다
螬(굼벵이 조) : 굼벵이
匍(길 포) : 기다, 힘을 다하다, 기어가다
匐(길 복) : 기다, 엎드리다
將(장차 장) : 장차, 장수, 막~하려하다, 어찌, 만일, 얻다, 가지다, 거느리다
咽(목구멍 인/삼킬 연/목멜 열) : 인/목구멍, 목, 연/삼키다, 열/목메다, 막히다,
제나라 사람 광장이 말했다. 진중자는 진실로 청렴한 선비입니다. 오릉에 거주하며 삼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물위에 자두가 있었는데 굼벵이가 절반이나 파먹은 것인데 기어가서 그것을 주워 먹었습니다. 세 번 삼키고서야 귀가 들리고 눈이 보였다고 합니다.
<해설>
광장과 진중자는 모두 제나라 사람이다. 광장은 제나라의 장군이다. 진중자는 본명이 진정(陳定)으로 전국시대 사상가이다. 학식이 깊어 제나라 왕이 직하학궁에서 강학해주기를 요청했던 사람이며 그의 제자들을 오릉학파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의 저서로는 오릉자(於陵子) 1권이 남아 있는데 위서 시비가 있다.
오릉(於陵)은 산동성(山東省) 추평현(鄒平)으로 지금의 치박시(淄博市) 부근이다.
오릉이라 부르는 이유는 於陵이라 적어놓고 중국인들이 오릉(於(wū)陵)이라고 읽기 때문이며 주자의 맹자집주에서도 於音烏라고 '오'로 읽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글자마다 음이 다르는 이 현상에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분개할 수 있겠지만 어쩔 수 없다. 소리글자가 아닌 뜻글자 한자시스템의 타고난 결함인 듯하다.
孟子曰 於齊國之士 吾必以仲子爲巨擘焉 雖然 仲子惡能廉
充仲子之操 則蚓而後可者也 夫蚓 上食槁壤 下飲黃泉
仲子所居之室 伯夷之所築與 抑亦盜跖之所築與
所食之粟 伯夷之所樹與 抑亦盜跖之所樹與 是未可知也
맹자왈 어제국지사 오필이중자위거벽언 수연 중자오능렴
충중자지조 즉인이후가자야 부인 상식고양 하음황천
중자소거지실 백이지소축여 억역도척지소축여
소식지속 백이지소수여 억역도척지소수여 시미가지야
於(어조사 어) : ~에서, ~에, ~에 대해, ~에 대해 말하면, ~에 의거해서
擘(엄지손가락 벽) : 엄지손가락, 쪼개다
巨擘(거벽) : 엄지손가락, 거장, 권위자
操(잡을 조) : 잡다, 쥐다, 운동, 절개, 절조
蚓(지렁이 인) : 지렁이
槁(마를 고) : 마르다, 여위다, 짚, 말라죽다
抑亦(억역) : 그렇지 않다면, 아니면, 그렇기는해도
맹자 말했다. 제나라의 선비 중에 나는 반드시 진중자를 최고로 여깁니다. 그러나 진중자를 어떻게 청렴하다 말할 수 있겠소?
진중자의 지조를 채우려면 지렁이라야 가능할 것입니다. 대개 지렁이는 땅위에서는 마른 흙을 먹고 땅 속에서는 누런 황토 물을 마십니다.
진중자가 사는 집은 백이가 지은 것인가요? 그렇지 않다면 도둑인 도척이 지은 것인가요?
그가 먹는 조는 백이가 심은 것인가요? 아니면 도척이 심은 것인가요? 그것을 모르겠군요.
曰 是何傷哉 彼身織屨 妻辟纑 以易之也
曰 仲子 齊之世家也 兄戴 蓋祿萬鍾
以兄之祿爲不義之祿而不食也 以兄之室爲不義之室而不居也
辟兄離母 處於於陵
왈 시하상재 피신직구 처벽로 이역지야
왈 중자 제지세가야 형대 갑록만종
이형지록위불의지록이불식야 이형지실위불의지실이불거야
피형리모 처어오릉
傷(다칠 상) : 다치다, 해치다, 근심하다, 상하다
屨(신 구) : 신, 짚신, 신다
辟(피할 피/임금 벽) : 피/피하다, 회피하다, 물러나다, 벽/임금, 길쌈하다, 편벽되다, 열다
纑(실 로) : 실, 무명실, 실을 누이다(잿물에 삶아 희게하다)
蓋(덮을 개/어찌 아니할 합/땅이름 갑) : 개/덮다, 어찌, 아마, 합/어찌 아니할까, 갑/땅이름
광장이 말하기를 그런 것에 왜 신경 쓰십니까? 그는 몸소 신을 만들고 그의 처는 길쌈해 필요한 것을 바꿀 뿐입니다.
맹자 말하기를 진중자는 제나라의 세력있는 가문 출신입니다. 그 형 진대가 갑에서 거두는 녹봉만 만종입니다. 형의 녹봉을 의롭지 않다 여기고 먹지 않았고 형의 집을 의롭지 않다 여겨 거주하지 않았습니다.
형을 피하고 어머니를 떠나 오릉에 살았습니다.
<해설>
‘蓋’는 '갑'으로 읽는 것이 옳다. 비록 주자의 맹자집주는 합으로 읽어라고 하지만... (아래는 너무 복잡하므로 읽기만 하고 잊어버리기 바람)
‘蓋’는 공자가 목욕하러 가고자 하던 기수(沂水) 부근의 지명이다. 음은 맹자집주는 蓋音閤(합), 맹자음의는 音盍(합)이라고 한다. 그런데 맹자음의는 공손추하 장에서 蓋大夫 王驩이 등장하는 구절에서 蓋를 古盍切(갑)으로 읽어라고 했다(이 블로그 맹자직역 49 참고). 蓋(갑)은 강희자전에 '古沓切。地名 齊下邑也'(ㄱ+ㅏㅂ 갑, 지명, 제나라 하읍이다)라고 갑으로 읽도록 되어있다. 공자의 고향 곡부와 칭따오 중간의 지명이다. 현대 중국의 자전 역시 지명(古地名,在今中國山東省沂水縣西北)이나 성(姓)일 때는 합(hé) 이나 개(gài)로 읽지 않고 갑(gě)으로 읽는다고 적고 있다.
‘갑’으로 읽어야 할 것인가 ‘합’으로 읽어야 할 것인가? 이는 뜻에 따라 달라진다. ‘蓋祿萬鍾’을 ‘어찌 녹봉이 만종이 아니리오’라는 뜻이라면 ‘합’으로 읽어야 하고, ‘갑현의 녹봉이 만종이다’라면 ‘갑’으로 읽어야 한다. 주자집주는 해설에서 ‘食采於蓋’라고 ‘蓋’이 지명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위의 음은 개나 합이 아닌 ‘갑’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他日歸 則有饋其兄生鵝者 己頻顣曰 惡用是鶃鶃者爲哉
他日 其母殺是鵝也 與之食之 其兄自外至 曰 是鶃鶃之肉也 出而哇之
以母則不食 以妻則食之 以兄之室則弗居 以於陵則居之
是尚爲能充其類也乎
若仲子者 蚓而後充其操者也
타일귀 즉유궤기형생아자 기빈축왈 오용시역역자위재
타일 기모살시아야 여지식지 기형자외지 왈 시역역지육야 출이와지
이모즉불식 이처즉식지 이형지실즉불거 이오릉즉거지
시상위능충기류야호
약중자자 인이후충기조자야
饋(보낼 궤) : 음식을 보내다, 먹이다, 선물
鵝(거위 아) : 거위
顣(찡그릴 축) : 찡그리다, 찌푸리다
鶃(거위 역) : 거위, 거위 소리
哇(토할 와) : 토하다, 토하는 소리, 아이 소리, 왝, 와
也乎(야호) : 입니까? 일 뿐인가? 이지요, 也는 단정(~일 뿐)의 뜻
다른 날 집에 돌아가니 그 형에게 어떤 사람이 거위를 보냈습니다. 진중자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습니다. 어찌 이 꽥꽥거리는 것을 먹으리오.
다른 날 그 어머니가 이 거위를 죽여 요리해 진중자와 함께 그 거위를 먹었습니다. 그 형이 밖에서 돌아와 말했습니다. 이것이 꽥꽥거리던 그 고기다. 그러자 그는 나가서 그것을 토했습니다.
어머니로써 해준 음식은 먹지 않고 처로써 해준 음식은 먹었습니다. 형의 집은 거주하지 않았고 오릉에서는 거주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오히려 그런 이상한 종류의 지조를 채운다는 말인가요?
그렇다면 진중자와 같은 사람은 지렁이가 된 이후라야 비로소 그 지조라는 것을 채울 수 있을 뿐이오.
<해설>
인간의 기본 의리를 지키지 않으면서 지조를 지켜 청렴하게 사는 것의 모순에 대한 설파이다. 진중자는 청렴함에 대한 기준을 잘못 잡아 인륜을 해치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고 그런 잘못된 기준에 맞추려면 흙을 먹고 사는 지렁이가 되어야 비로소 가능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아무리 선한 목표라 해도 그것이 인간의 기준을 벗어나면 중용을 지키지 못한 것이 된다.
그 이유는 의(義)가 인(仁)을 해쳐서는 안 되기 때문일 것이다. 진보가 늘 범하는 실수가 이런 종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