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은 나의 생활의 전부이며, 기쁨이다 ⑦
-타이틀을 눈앞에 둔 제주가 낳은 꿈나무 오정아 -
“바둑은 나에게 땔려야 땔 수 없는 생활의 전부이며 기쁨입니다”
제주가 낳은 꿈나무, 미녀(美女) 기사 오정아(93년생) 2단의 말이다. 오정아가 바둑을 ‘인생의 낙’으로서 바둑이 기쁨이고 즐거움일 때 그녀에게 큰 타이틀을 딸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프로골퍼 박세리가 미LPGA에서 한창 잘 나갈 때 국내 칼럼을 통해 “천재도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노력하는 사람도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특히 승부의 세계에서 즐거웁게 승부를 펼쳐나가야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있다는 말이다. 학문의 세계까지 이 논리가 통한다. 2000년 ‘천재들의 상’이라는 맥아더상을 받은 미국 고생물학자 크리스토퍼 비어드 박사도 한국에 와 언론인터뷰에서 “나는 결코 천재는 아니었고, 다만 좋아하는 공부를 열심히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2013. 11. 23. 조선일보)
오정아는 12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두뇌 올림픽이라는 ‘스포츠 어코드’ 한국 대표로 출전한다. 올해 제4회 궁륭산병성배, 실내&무도아시안게임, 삼성화재배 등 국제무대서 잇달아 한국 대표로 활약하는 것에 빗대 그녀가 ‘대표체질’이어서 그녀를 국내 언론이 ‘대세녀(大勢女)’라는 애칭을 붙여주기도 했다.
오정아가 11월 16일 고향 제주를 찾았다. 제주장애인바둑협회(회장 전남호)가 ‘2013 제주도지사배 장애인바둑대회’에 그녀를 초청해 왔다. 이튿날은 제주도바둑협회가 여는 ‘제주시장배 바둑대회’도 참석키 위해서였다. 탐라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그녀를 만났다. 2주 전에 라식 수술을 했다며 안경을 쓰지 않은 얼굴이었다. 과연 한국 바둑계의 샛별 미녀 바둑기사이다. 그녀를 키워낸 김기형 경림산업 대표도 함께했다. 김 사장을 큰삼촌이라 불렀다. “큰삼촌이 없었다면 오늘이 없었다”며 큰 삼촌과 은사인 장수영 사범의 기대를 보답하는 길은 타이틀을 따고 좋은 성적을 내는 것밖에 없다고 밝혔다.
오정아의 목표는 한국대표로 12월 스포츠 어코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일이고 내년 1~2월에 있을 여류명인전 승자결승이다. 숙명적인 라이벌 박지연 3단과 이 대국에서 한판만 이기면 도전자가 되어 여류명인 최정 3단과 타이틀전을 치룬다. 또 내년 초에 예정된 여류국수전 16강에서 신예 오유진 초단을 꺾는 일이다. 본선 32강에서 강적 김혜민 7단을 이겼기에 타이틀은 눈앞에 온듯하다.
이제 오늘의 오정아는 바둑에만 전념할 시기이다. 최근 제주에서 열리는 삼다수배 결승을 해설하러 왔던 장수영 9단은 최근 서울시가 ‘차 없는 날’ 행사에 이세돌과 함께 홍보대사로 참여한 것이 바람직하지 않았다고 보았다. 오정아의 인기를 확인하는 척도가 되는 것은 틀림없지만 인기를 따라가 시간을 헛되이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큰삼촌 김기형 사장도 같은 생각이다. 오정아가 타이틀을 딸 때까지는 제주에서의 어떤 행사에도 초청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한 눈을 팔 시간이 없다는 이유에서 이다.
오정아는 성산읍 신천리 출신, 부친은 오상도(60년생), 모친은 강경자(64년생). 넉넉지 못한 가정형편이나 아버지를 따라 풍천초등교 1년일 때 바둑을 배웠고 풍천교 3년 때 초등부를 제패했다. 그녀의 바둑 기재를 안 당시 백록기우회장이고 후일 제주도바둑협회장을 지낸 김기형 사장이 3년 2학기 때부터 그녀를 장수영 바둑도장에 보내면서 오늘의 오정아가 탄생했다.
오정아의 성장은 늦지도 빠르지도 않다. 도장에 보낼 당시 실력은 큰삼촌이 한 급수 센 백을 잡았다. 반년만에 오정아는 각조마다 12명으로 편성되는 여자 연구생4조에 들어갔다. 이어 초등교 5년 때부터 2조로 갔고 1~2조를 넘나들었다. 중학 때는 1조 12명 중 5, 6등을 유지했다. 2010년 전·후반기 1조 1위 결승 입단대회 때 연거푸 반집으로 져 입단이 좌절됐었고 마침내 2011년 3월, 6개월간의 리그전 총점수로 1조 1위를 차지해 입단했다. 오정아는 빨리 입단하겠다는 초조감으로 뱃장도, 승부욕도 떨어져 한때의 좌절, 슬럼프도 겪었으나 이겨 냈다. 남들과 비교하면 자신감을 잃었던 시련기는 짧았다고 밝힌다.
성서초등교의 시절, 1교시만 끝나면 바둑도장으로 직행이고 명지중·고교 때는 바둑부에서 중간·기말고사 시험만 치렀다. 아침 9시30분부터 밤 11시까지 오직 바둑공부만 했다. 장수영 도장의 학생은 50~60명, 입단 직전에는 남자 3명, 여자 2명 등 5명이 공동연구를 하고 장수영, 박병규, 이용찬 사범 등과 대국과 복기 등이나 하루 절반의 시간은 혼자 바둑공부를 했다.
오정아가 ‘대세녀’로 떠오른 것은 스포츠 어코드배 한국대표 선발전 준결승에서 최정 3단과의 대국이다. 초반 불리했던 바둑을 중반에서 따라잡아 후반에 대마를 잡아 역전승을 했다. 결승에서 박지연 3단과의 대국도 초반 불리를 중반부터 승세를 굳혀 승리를 따냈다.
오정아의 기풍은 두터운 전투형이다. 이세돌 사범을 존경한다. 이세돌 사범은 바둑에서 승부사로서의 기질을 마음껏 발휘하는 승부근성과 변화무쌍한 묘수의 행진 등 바둑판에서 ‘멋있다’고 요약한다. 또한 시합 전에 준비를 철저히 하는 등 자기관리도 훌륭하다는 것이다.
프로 3년째인 오정아의 올해 상승세는 무섭다. 국내 여성기사 51명 중 랭킹 6위, 다승 및 승률 각 3위에 불과하지만 지난 7~8월 전적은 10승 1패를 기록했다.
오정아는 서울에서 치과의원 간호사인 둘째 언니 오미혜와 함께 산다.(오정아는 1남4녀 중 셋째로, 5대 독자인 부친이 딸 넷을 낳고 막내로 아들을 보았다. 그 막내가 초등교 5년생이다.)
오정아는 매일 저녁 8시쯤에는 요가를 1시간 정도한다. 1년 전부터 스트레스를 풀고 집중력을 기르기 위한 운동이다. 요가를 몸과 마음을 동시에 건강하게 하는 운동으로 보기 때문이다.
바둑을 잘 두기위한 비법으로 오정아는 첫째로, 수 읽기 공부를 해야한다고 권한다. 둘째는, 천천히 두는 것. 빨리 두는 것은 ‘덜컥 수’를 두는 것이요, 수 읽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셋째로, 두고 난 뒤는 반드시 복기, 공부하는 습관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