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7:11-21
찬송가 539장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각자 시기와 때는 다를 수 있으나 고난이 찾아옵니다. 삶이 너무 고달프고, 어려움에 닥칠 때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해야 하겠습니까? 그래도 침묵하며 감내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향해 원망과 탄식을 해야 합니까?
욥은 7장 1-10절까지는 독백을 했다면 오늘 본문에서는 독백을 벗어나 욥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욥의 원망(11-16절)
(11) 그런즉 내가 내 입을 금하지 아니하고 내 영혼의 아픔 때문에 말하며 내 마음의 괴로움 때문에 불평하리이다
우리는 여러 고난으로 인해 불평을 하기도 하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지금의 형편이 나아질 상황이 보이지 않을 때입니다. 욥을 힘들게 하는 것은 육체적인 질병뿐만 아니라 자신의 마음의 괴로움이며, 자신의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절망하며 더욱 격앙되어 말을 내뱉습니다.
(12) 내가 바다니이까 바다 괴물이니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나를 지키시나이까
요즘 시대는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는 것을 즐기거나 관심을 받기 위해 노력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SNS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고, 또 나와 타인을 비교하며 좌절하기도 합니다. 또한 자신을 자랑하거나 자신의 직장, 자신의 재력, 혹은 자녀, 손자까지도 자랑하며 관심을 받기 원합니다. 그런데 욥이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바로 ‘하나님의 관심’입니다.
본문 12절의 ‘어찌하여 나를 지키시나이까’는 새번역 성경에는 ‘어찌하여 주께서는 나를 감시하십니까?’입니다. 고대 사람들에게 ‘바다’는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바다 괴물’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대표적인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욥은 자신이 누군가를 괴롭게하며 살아갔던 적이 없는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괴물을 보듯 감시하는 것에 대해 하소연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일반적인 생각으로 깊이 잠들면 모든 괴로움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것 같지만 욥에게는 이러한 휴식도 허락되지 않습니다.
(13-14) 혹시 내가 말하기를 내 잠자리가 나를 위로하고 내 침상이 내 수심을 풀리라 할 때에 주께서 꿈으로 나를 놀라게 하시고 환상으로 나를 두렵게 하시나이다
성경에서 잠자리와 침상은 자신을 되돌아 보는 곳이며(시 4:4), 병든 자가 회복되거나 치료되는 장소입니다. 그러나 욥에게 침상은 악몽에 시달리는 곳이며, 고통을 직면하는 슬픈 곳입니다. 깨어 있는 상태에서도 많은 것들이 욥을 괴롭게 하고, 눈을 감고 잠을 청할 때도 욥은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사람이 오랜 시간 잠을 제대로 못자면 이것 역시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큰 고통입니다. 고통 중에 있는 욥은 절규와도 같은 고백을 이어갑니다.
(15-16) 이러므로 내 마음이 뼈를 깎는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숨이 막히는 것과 죽는 것을 택하리이다 내가 생명을 싫어하고 영원히 살기를 원하지 아니하오니 나를 놓으소서 내 날은 헛 것이니이다
현재의 상황과 더불어 미래에 대한 소망이 없는 욥은 자신의 상황을 뼈를 깎는 고통에 비유하며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이유는 16절에 “나를 놓으소서” 라고 말하며 자신이 하나님을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강하게 붙들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반대로 표현하면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소망을 잃게 된다면 욥과 같이 반응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앞으로의 소망이 없기에 더 이상 살고자 하지 않고, 또 영원이라는 개념을 원치 않는 것입니다.
욥의 탄식은 더욱 깊어집니다.
욥의 절규(17-21절)
(17-18)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크게 만드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
욥의 고백은 감사의 고백이 아니라 더 이상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지 말아달라는 절규와 같습니다. 욥은 자신의 삶에 깊이 들어와 계시는 하나님의 관심을 거부합니다. 매일이 고통스럽기에 눈을 뜨고 감는 모든 순간이 괴롭고, 아침마다 자신을 권징하시고, 단련하시는 하나님을 원망스럽게 느낍니다. 욥의 고백을 보면 시편에 다윗의 고백이 떠오릅니다.
(시편 144:3)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알아 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기에 그를 생각하시나이까
욥과 다윗의 고백은 매우 흡사하지만 그것을 뜻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다윗은 한 없이 연약한 존재에게 관심을 가져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을 고백하지만 욥은 반대로 사람은 하나님의 관심조차 받을 존재가 되지 못함을 고백합니다. 이처럼 비슷한 고백에도 전혀 다른 의미가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하루를 살아갈 때 같은 상황을 마주해도 사람마다 다르게 반응합니다. 누군가는 고난을 당했을 때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고, 누군가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깊게 묵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지금 자신에게 일어난 고난이든지 축복이든지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묵상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즉 ‘일희일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깊은 뜻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욥에게는 더 이상 잠잠히 묵상할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에 그는 하나님께 강하게 호소합니다. 더 나아가 욥은 앞으로 하나님께서 더 이상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냉소적인 반응은 더욱 확장되어 그 화살이 욥 자신에게로 돌아갑니다.
(20-21) 사람을 감찰하시는 이여 내가 범죄하였던들 주께 무슨 해가 되오리이까 어찌하여 나를 당신의 과녁으로 삼으셔서 내게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나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내 허물을 사하여 주지 아니하시며 내 죄악을 제거하여 버리지 아니하시나이까 내가 이제 흙에 누우리니 주께서 나를 애써 찾으실지라도 내가 남아 있지 아니하리이다
욥은 자신이 죄를 지었더라도 하나님께는 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자신이 미천한 존재임을 강조합니다. 또한 자신이 이제 흙에 눕게 된다면 즉 죽더라도 자신이 전혀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며 자신의 존재를 한 없이 낮춥니다. 오늘 본문의 욥을 보면 자존감이 한 없이 낮은 사람의 모습이 보입니다.
사람이 비참해 지는 순간은 자신이 이 사회의 구성원 중에 쓸모가 전혀 없는 사람이라고 느낄 때입니다. 욥의 모습이 이와 같습니다. 자신이 죄를 짓더라도 하나님에게 해가 되지도 않을 것이고, 자신이 죽더라도 아무도 자신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그의 마음이 얼마나 깊은 구덩이에 빠져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욥과 같이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어려운 상황들에 직면할 때가 있습니다. 기도는 커녕 신음도 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하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단순히 기도하고 말씀을 보면 된다는 말을 넘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대로 우리를 영광스럽게 만들어 가실 하나님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그 하나님을 향해 우리의 창문을 늘 열어 두어야 합니다. 우리 안의 창문을 열어 놓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없게 됩니다.
지금 견디기 힘든 고통의 순간을 건너고 계십니까? 욥과 같이 하나님의 관심이 싫고, 그냥 모든 것을 끝내고 싶은 순간에 직면해 있다면 이 순간에도 우리의 손을 놓고 계시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과 그분의 숨결에 귀 기울이시길 바랍니다. 비록 사람의 생각으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에게 끊임 없는 관심을 기울이고 계십니다. 내가 좌절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혹 이 세상에서 내가 계획한 대로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닙니까? 혹은 남들과 비교하여 내가 더 아래에 있다고 느끼기 때문은 아닙니까? 말씀 앞에서 우리는 솔직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솔직하기 위해서는 욥과 같이 진실된 마음을 하나님께 쏟아야 합니다. 포장된 나의 모습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어려움 속에 있다면 세상이 아닌 하나님께 불평을 쏟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신음소리도 들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마음을 열어 기도할 때 비로소 일하시기 시작하실 것입니다.
기 도
하나님,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항상 감사해야 하는 것도 이론적으로는 알지만 실제 생활을 바라보면 한숨만 나올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삶을 감찰하시고, 신묘망측한 방식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비록 현재의 상황은 무너지기 쉬운 상황이나 상황을 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게 하시옵소서. 또한 나에게 있는 불평도 주님 앞에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게 하시옵소서. 우리 삶 가운데 함께 깊이 임하여 주시고, 인도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욥이 자신이 불평하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는지 묵상해 봅시다(11절).
2. 욥은 하나님의 관심을 거절합니다. 나는 누구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지 생각해 봅시다.
3. 욥은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우울감에 빠졌습니다. 나에게도 이러한 모습이 있었는지 묵상해 봅시다.
4. 고난 중에서도 우리가 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지 적어봅시다. 그리고 오늘 하루 주님을 더욱 의지하겠다는 다짐의 기도를 합시다.
(작성: 김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