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을 기념합니다. 그리고, 오늘로부터 일주일 동안을,
‘가정 성화 주간’으로 지냅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성가정’은 무엇입니까? ‘성가정’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오늘 축일에 나오는 것처럼, 예수님과 성모님, 그리고 요셉 성인께서 함께 사시니, 그 자체로 얼마나 행복한 가정일까? 라는 생각을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성가정 성화, 성가정을 주제로 하는 그림 등을 보더라도, 그렇게 평화로울 수 없을 정도로, 성가정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가정이 있을까요? 이 세상에는 그러한 아름다운, 평화로운, 아무 문제 없는 가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과 성모님, 요셉성인께서 함께 하셨던 성가정은 어떠했을까요?
이러한 질문은, '예수님께서 참 인간이 아니었다면, 어떠했을까?' 와 같은 질문입니다.
과연,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참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와 같이 유혹도 받으시고, 고통도 받으셨습니다. 심지어,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상상할 수도 없는 가난한 모습으로, 외양간 에서 태어나셨고, 아버지는 하루 일해서 하루 먹고 사는 목수 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 두 제자를 포함하여 많은 제자를 두셨지만, 너무나도 수치스럽게도 제자 중 하나에게 배신을 당해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수많은 기적들을 일으키셨지만, 예수님께 십자가형이 선고되었고, 기적을 직접 체험하고, 목격했던 대다수 사람들조차 이에 찬동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던 순간에는, 어머니와 몇몇 여인들,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 외에는, 그 누구도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믿는 분,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분께서, 이처럼 참된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을, 어떤 면에서, 우리가 겪는 고통보다 더한 고통까지 겪으셨기 때문에, 우리의 어려움을 너무나도 잘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또, 참된 인간으로 오셨기 때문에, 참 인간이신 예수님의 부활이, 참 인간인 우리에게도 희망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예수님, 성모님 그리고 요셉 성인의 성가정 역시 그렇습니다.
만일, 그 가정이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면, 그 가정은, 우리 가정과는 아무런 상관 없는, 그저 동화에나 등장하는 아름다운 가정,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그러한 가정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나도 다행히도(?), 예수님, 성모님 그리고 요셉 성인의 성가정은, 우리 가정과 별단 다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보다 더 한 어려움을 겪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약혼한 상황에서, 아이의 잉태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성모님의 심정(남편에게 어떻게 이야기할까? 또는 남편은 내 말을 믿어줄까? 믿어준다고 한들, 내가 율법에서 말하는 처벌 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과, 그 사실이 요셉 성인에게 알려졌을 때 요셉 성인이 겪어야 했을 고통,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으나, 하느님의 뜻 앞에서 자신의 뜻을 포기해야만 했을 때의 요셉 성인의 심정,
가장으로서, 아기를 낳을 방조차 구해줄 수 없었을 때의 그 비참함,
어린 아기를 안고 언제 끝날지도 모를 피난길에 올라야만 했던 혼란스러움 등
이 정도만 언급해도 예수님, 성모님, 요셉 성인의 성가정은 우리가 겪는 어려움들을 이미 충분히 안고 살아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가정은, 오히려 그러한 어려움 중에서도, 제 1독서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서로를 배려하고,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서로를 사랑하는 가정이며, 제 2독서의 말씀처럼, 서로 인내하고 용서하고 서로를 인격체로서 대해주는 가정입니다. 더 나아가 복음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그 모든 어려운 상황 안에서도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하며, 하느님을 중심으로 그 어려움들을 겪어내는 가정입니다. 결국은, 성모님의 모습에서 처럼, '모든 어려움, 고통 중에 있는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메시지'를 이해하고, 간직하는 가정입니다.
성가정은, 하늘 나라에 있는 그러한 가정이 아닙니다.
성가정의 씨앗은 이미 우리 안에 뿌려졌고,
우리가 하느님을 중심으로 살아갈 때, 가족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기쁜 일이나 어려운 일 중에 늘 하느님과 함께 할 때,
하느님께서 나에게 하시듯, 나도 서로 서로에게 그렇게 할 때,
조금씩 조금씩 완성되어 갈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가정의 모든 것이 되실 그 때, 우리 가정은 성가정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