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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운여정(완)
솔베이지의 사랑
-사랑의 힘-
표 민 웅
2026년 2월 6일 아침, 창문 너머로 오랜만에 구름을 벗어 던지고 눈부신 햇살을 머금었다.
복사골의 기온은 영하 10도 안팎으로 떨어졌고, 거센 바람에 체감 추위는 더욱 매서웠다.
그러나 창밖 숲속 새들의 잠을 깨우는 활기찬 지저귐 사이로 그리그의 페르 귄트 제1모음(Op46) 제1곡 ‘아침의 기분(Morning Mood)’ 선율이 잔잔하게 흐른다. 이 맑고 투명한 선율을 듣고 있노라니, 긴 방황 끝에 고향으로 돌아온 페르 귄트를 맞이하던 솔베이지의 그 지고지순한 사랑의 빛이 내 노년의 가슴을 환하게 비춘다.
여행을 하다 보면 그 나라의 풍경보다 더 오래 마음에 남는 것이 있다.
바로 그 땅에 스며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시간을 견디고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사랑의 흔적들이다.
나는 여러 나라를 둘러보며 다른 여러 모습 속에서도 공통된 하나의 진실을 발견하곤 했다.
그것은 사랑의 힘이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깊고 크다는 사실이었다.
이탈리아 베로나를 찾았을 때, 줄리엣의 집 앞을 스치며 떠올린 것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시간과 운명을 넘어서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순수한 마음이었다.
세계 최고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은, 서로를 향한 진실한 사랑이 얼마나 강렬하면서도 연약한지를 보여준다. 두 사람의 사랑은 짧은 시간 안에 스러졌지만, 그 순결함과 절대성은 오히려 더욱 깊은 울림으로 남았다.
가문과 사회라는 벽은 그들의 삶을 갈라놓았지만, 그들의 사랑 자체를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 비극은 사랑의 본질을 더욱 또렷하게 드러내며, 인간이 간직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감정이 무엇인지를 되묻게 한다.
이사벨과 디에고 사랑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지중해 연안 발렌시아로 향하는 길목의 조용한 소도시 테루엘에는 세월을 넘어 마음을 적시는 사랑 이야기가 잠들어 있다.
이곳의 사랑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로미오와 줄리엣보다도 300여 년 앞선, 비극적 연인 ‘이사벨과 디에고’의 이야기다.
만약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이들의 사연을 알았다면, 또 하나의 비극적 걸작이 탄생했을지도 모른다.
13세기 초, ‘이사벨 데 세구라’와 ‘디에고 마르티네스’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며 자연스럽게 사랑을 키워갔다.
그러나 가난은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사벨의 아버지는 디에고의 청혼을 거절하며 조건을 내건다.
“5년 안에 부를 이루어 돌아온다면 결혼을 허락하겠다.”
디에고는 사랑을 이루기 위해 전쟁터로 향한다. 모로코를 비롯한 여러 전장에서 목숨을 건 싸움을 이어가며, 오직 돌아가야 할 한 사람을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
마침내 그는 부와 명성을 얻고 약속의 날, 정확히 그날에 맞추어 테루엘로 돌아온다.
그러나 운명은 단 한 걸음 앞에서 그를 비껴간다.
그가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소문 속에서, 이사벨은 이미 성주의 동생과 혼인하게 된다.
그리고 그날이, 바로 결혼식 날이었다.
디에고가 도착했을 때 모든 것은 이미 지나간 뒤였다.
절망에 빠진 그는 마지막 희망으로 이사벨을 찾아간다. 함께 떠나자고 간청하지만, 신앙과 도덕 속에서 살아온 그녀는 눈물로 그를 거절한다.
그 순간,
디에고는 더 이상 살아갈 이유를 잃는다. 그는 그녀 앞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한다.
다음 날, 산 페드로 성당에서 그의 장례 미사가 열리고, 그곳에 이사벨이 나타난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차가운 연인의 입술에 마지막 입맞춤을 남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쓰러진다.
두 사람은 그렇게 엇갈린 시간 끝에서야 함께 죽음을 맞는다. 결국 그들은 한 무덤에 묻힌다.
1555년, 성당 보수 공사 중 그들의 유해와 기록이 발견되면서 오랫동안 전설로 전해지던 ‘테루엘의 연인들’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로 확인된다.
오늘날 산 페드로 성당에는 대리석 위에 나란히 누워 있는 두 연인의 조각상이 있다.(사진#1)
손은 닿을 듯 말 듯 멈춰 있다.
그 아래, 유리관 속에는 실제 그들의 유해가 고요히 잠들어 있다.
닿지 못한 손. 그러나 끝내 놓이지 않은 마음.
세월이 흐른 지금, 이 이야기는 슬픔을 넘어 조용한 울림으로 남아 묻는다.
(사진#1)미이라가 된 디에고와 이사벨 조각
사랑은 무엇인가.
그리고
시간과 운명을 넘어 끝내 이어지는 것은 무엇인가.
테루엘의 고요한 공기 속에서, 두 연인은 지금도 서로를 향해 손을 내밀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은 그 어떤 장애물을 만나도 모든 것을 뛰어넘고 죽음까지도 이겨낼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이사벨과 디에고 사랑은 비극적으로 끝났다. 먼저 간 로미오와 디에고를 따라 두 여인이 같이 따라가는 사랑의 힘은 위대하였다.
헨리크 입센을 찾아
북쪽의 땅, 노르웨이에서 만난 또 다른 이야기는 조금 다른 빛깔을 띠고 있었다.
노르웨이의 차가운 숲에서 시작된 또 하나의 사랑과 인간의 이야기, 그 중심에는 극작가 헨리크 입센이 있다.
헨리크 요한 입센(1828년 3월 20일 ~ 1906년 5월 23일)은 노르웨이의 극작가이자 연극 연출가이다. 입센은 오슬로 옆 항구도시 시엔 시의 상인 엘리트 집안에서 태어났다. 입센의 대부분의 연극은 노르웨이를 배경으로 하며, 종종 시엔을 연상시키는 부르주아적 환경과 장소를 배경으로 하고, 가족들에게서 자주 영감을 얻었다.
입센은 19세기 세계 최고의 극작가로 평가받으며 흔히 "현대극의 아버지"로 불린다. 사실주의 연극을 개척했으나 서정적인 서사 작품도 썼다. 주요 작품으로는 ’브란’, ’인형의 집‘, ’유령‘, ’민중의 적‘, ’들오리‘, ’헤다 가블레르’, ’우리 죽어 깨어날 때’ 와 ‘페르 귄트’ 등 25개 희곡 작품이 있다.
1867년 쓴 시적이고 영화적인 희곡 ’페르 귄트‘는 강한 초현실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페르 귄트‘ 이후 입센은 운문을 포기하고 사실적인 산문으로 희곡을 썼다. 후기의 여러 드라마는 유럽 연극이 가정생활과 예의범절 및 엄격한 도덕을 본보기로 삼아야 했던 당시에 많은 이들에게 스캔들로 여겨졌다. 대표적인 작품은 1879년에 쓴 ’인형의 집‘이다. 입센의 후기 작품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삶의 조건과 도덕성의 문제를 자유롭게 탐구했다. 이들은 인간 본성과 사회적 억압, 개인과 집단의 충돌을 심도 있게 다루었다. 입센의 작품들은 사회적 위선, 인간의 도덕적 갈등, 개인의 자유와 정체성 탐구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현대 연극뿐만 아니라 문학, 철학, 심리학에까지 깊은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의 입센 박물관에서 그의 숨결이 남아 있는 공간을 찾아갔다. 북유럽 특유의 절제된 공기 속에서 그가 자라 온 삶의 흔적을 마주하는 순간, 단순한 문학가가 아니라 한 시대의 정신을 짊어진 인간과 대면하는 느낌이 들었다.
입센은 단순한 이야기꾼이 아니었다. 그는 인간 내면의 위선과 진실, 사회의 억압과 개인의 자유를 집요하게 파고든 사상가였다. 그의 작품들이 지금까지도 셰익스피어 희곡 다음으로 세계 곳곳에서 공연되는 이유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시대를 넘어 비슷한 고뇌를 반복하기 때문일 것이다. 입센의 ’인형의 집‘은 2006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된 희곡이었다.
그의 작품 가운데서도 『페르 귄트』는 다소 이질적인 빛을 띤다. 현실 비판의 날카로움 대신, 환상과 상징, 그리고 방황하는 인간의 영혼이 중심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페르 귄트는 끊임없이 자신을 속이며 살아간다. 욕망을 좇고, 현실을 외면하며, 스스로를 꾸며내는 삶 속에서 그는 결국 마지막에 이르러 묻는다. “나는 과연 누구였는가.”
이 질문은 단지 한 인물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다. 입센은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쉽게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존재인지, 그리고 진정한 ‘자기’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끝에서 등장하는 솔베이지는 기다림과 헌신, 조건 없는 사랑을 상징하며, 흔들리는 인간 존재를 조용히 감싸 안는다.
차가운 북유럽의 공기 속에서 만난 입센의 세계는, 결국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어진다. 그것은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남는 울림처럼, 우리의 마음 한편에 조용히 스며든다
베르겐의 에드바르 그리그
‘페르 귄트‘ 작품에 음악을 더해 생명을 불어넣은 사람이 바로 작곡가 ‘에드바르 그리그’다. 입센의 요청으로 탄생한 이 극음악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 작품의 감정을 완성시키는 또 하나의 주인공이 되었다.
‘아침의 기분’은 그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이다. 노르웨이의 맑은 공기, 서서히 밝아오는 빛, 그리고 새들의 지저귐이 그대로 음으로 옮겨진 듯하다. 내가 그 음악을 들으며 창밖을 바라보던 그날 아침처럼, 이 곡은 언제나 삶의 새로운 시작을 조용히 일깨운다.
몇 해 전 노르웨이의 제2의 도시 그리그의 고향 베르겐시를 찾은 적이 있다. 노르웨이 서쪽, 북위 60도 이상에 위치함에도 멕시코 난류로 겨울철에도 바다가 얼지 않고 영상을 유지하는 온화한 날씨이나 구름이 많이 끼고 있어 유럽에서 비가 가장 많이 내리는 곳이다. 이 도시는 아름다운 피오르드와 바다가 어우러진, 그 자체로 하나의 음악 같은 곳이다. 알록달록한 목조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마치 그리그의 선율처럼 부드럽고 깊었기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에드바르 그리그(Edvard Grieg, 1843년 6월 15일~1907년 9월 4일)는 노르웨이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작곡가이자 피아노 연주자이다. 핀란드의 ‘장 시벨리우스’, 보헤미아의 ‘베드르지흐 스메타나’처럼 노르웨이 민속음악을 활용한 작품들을 작곡하여 국민악파로도 여겨진다.
그는 피아노 협주곡과 ‘페르 귄트’ 모음곡 등 수많은 작품을 남기며, 노르웨이의 자연과 정서를 음악으로 빚어낸 작곡가였다.
베르겐 출신인 이곳에는 그의 유산을 기리는 여러 기념물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그리그홀, 그리그 아카데미, 에드바르 그리그 합창단이 있다. 또한, 그의 생가였던 트롤하우겐(Troldhaugen)은 현재 에드바르 그리그 박물관으로 운영 중이다.
그리그의 생가는 도시 외곽 트롤하우겐에 자리하고 있었다. 숲과 호수에 둘러싸인 그곳은 세상과 적당한 거리를 둔 채 고요하게 숨 쉬고 있었다. 작은 집과 작업실, 그리고 그가 실제로 음악을 만들던 공간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생각했다.
이 고요함 속에서 어떻게 그렇게 투명하고 맑은 선율이 태어났을까.
그의 음악은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린다. 자연을 닮았기 때문이다. 바람처럼 스며들고, 물처럼 흐르며, 햇살처럼 따듯하게 번진다.
그의 묘는 생가 트롤하우겐에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벽 바위 속에 아내 니나와 함께 합장되어 있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던 이 자연 속에 영원히 머물고 있다.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이어 지지만 그곳은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사진#2)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귀 기울였다.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 멀리서 들리는 물결의 잔향, 그리고 마음속에서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아침의 기분’. 그 순간 깨달았다.
(사진#2. 그리그와 그의 아내 니나의 무덤)
입센이 인간의 내면을 파고든 작가라면, 그리그는 인간의 감정을 어루만진 음악가였다는 것을.
한 사람은 질문을 던졌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질문을 음악으로 감싸 안았다.
그리고 그 둘이 만나 탄생한 ‘페르 귄트’는 결국 한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솔베이지의 사랑
노르웨이의 국민 극작가 헨리크 입센의 작품 『페르 귄트(Peer Gynt)』 이야기다.
입센은 1864년 중북부 빈스트라(Vinstra)의 구드브란스탈 계곡을 여행하던 중, 페데르 로리센과 페데르 올센(1732~1785)에 관한 민간 설화와 영웅담을 듣고 깊은 영감을 얻었다. 그리하여 방황하는 인간의 전형을 담은 세계적인 극시 ‘페르 귄트’라는 인물을 창조해냈다.
바이킹의 후예인 게으른 몽상가 페르 귄트는 약혼녀 ’솔베이지’를 버리고 여자들을 농락하고 돈과 권력을 찾아 세계여행을 떠났다. 미국과 아프리카에서는 노예상을 하여 큰돈을 벌고 추장의 딸을 농락하며 거드름을 피우다 여자에게 팽 당하고 정신이상자로 몰려 입원을 강요당하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고향이 그리워 배를 타고 귀국길에 오르지만 배가 난파하여 그동안 축적한 재물을 다 잃고 무일푼으로 고향 땅을 밟는다. 집을 떠난 지 50여 년이 지나 백발이 다 된 노인 귄트는 지금도 남아 있던 오막살이를 찾았을 때 방안에는 페르 귄트를 기다리던 노파가 있었다.(사진#3)
(사진3)솔베이지가 50여년간 연인을 기다리던 초막집
그토록 오래 기다린 귄트를 맞이한 솔베이지는 죄를 뉘우친 그를 용서하고 그녀의 무릅에 누워 행복하게 죽는 것으로 서사시 ‘페르 귄트’는 끝난다. 학창 시절 배웠던 귀에 익은 그리그의 페르 귄트 제2 모음(Op.55)의 제4곡 ‘솔베이지의 노래’를 조용히 불러 본다. 이 작품 속에서 울려 퍼지는 에드바르 그리그의 음악, 「솔베이지의 노래」는 이러한 사랑의 본질을 더욱 깊고 서정적으로 전해준다. 잔잔하면서도 애절한 선율은, 기다림과 용서, 그리고 변치 않는 사랑의 힘을 고요히 증언한다.
솔베이지의 노래
'그 겨울이 지나고 봄은 가고 또 봄은 가고
그 여름날이 가면 더 세월이 간다 세월이 간다
아 그러나 그대는 내 님일세 그대는 내 님일세
내 정성을 다하여 늘 고대하노라 늘 고대하노라
그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고 가을이 오고
그 겨울날이 가면 더 세월이 간다 세월이 간다
쓸쓸하게 홀로 고대함이 그 몇해인가
아 나는 그리워 널 찾아가노라 널 찾아가노라'
세상의 끝까지 떠돌다 돌아온 늙은 연인을 그녀는 아무 조건 없이 받아들인다. 지친 페르는 그녀의 무릎에 머리를 눕히고 조용히 생을 마감한다. 그 장면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가 바로 ‘솔베이지의 노래’다.
로미오와 줄리엣, 디에고와 이사벨의 사랑이 한순간 타오르는 찬란한 섬광이었다면, 내게 다가오는 솔베이지의 사랑은 전혀 다른 빛을 띠고 있다.
그것은 긴 겨울을 견디고 마침내 떠오르는 아침 햇살과도 같은 사랑이다.
노르웨이 북쪽 구드브란스탈의 차가운 겨울을 뚫고 스며드는 한 줄기 빛처럼,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영혼을 밝히는 사랑이다.
평생을 ‘정신적 탕자’로 살아온 한 인간을, 아무런 조건 없이 품어주는 그 넉넉한 사랑. 평생을 방황하던 한 인간을 끝까지 기다리고 용서하는 사랑.
나는 그 사랑 안에서 성경 속 하나님 말씀을 떠올린다. 집을 떠나 방탕하게 살던 아들을 끝내 품어 준 탕자의 아버지 사랑이다.
그것은 단순한 연인의 사랑을 넘어, 인간 존재를 구원으로 이끄는 궁극적인 힘이다.
인간의 부와 권력 추구에서 오는 정신의 황폐, 과대한 야망이 덧없음을 일깨워 준다. 자기를 버리고 간 방탕한 연인이 백발이 될 때까지 가슴속에 간직하고 용서한 솔베이지의 사랑은 인간의 죄를 용서해 주는 하나님의 사랑이 아닐까!
방황 끝에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곳에서 기다리는 사랑이 있다는 것.
차가운 북유럽의 숲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는 결국 따뜻한 인간의 이야기였다. 사랑은 때로 비극으로 끝나기도 하고, 때로는 긴 기다림 끝에 조용히 빛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 형태가 어떠하든, 사랑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힘이라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
그날 복사골 공원의 겨울 하늘은 유난히 잔잔했다. 나는 천천히 걸으며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페르 귄트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딘가에는, 우리를 끝까지 기억하고 기다려 줄 솔베이지 같은 사랑이 있을지도 모른다.
페르와 솔베이지의 관계는 현실적 연인이라기보다 상징에 가깝다.
페르는 인간의 방황과 욕망을, 솔베이지는 그것을 품고 치유하는 사랑과 구원을 상징한다.
인간은 끝없이 밖으로 향하며 방황하지만, 결국 돌아와야 할 곳은 하나다.
그곳에는 기다림이 있고, 용서가 있으며, 아무 조건 없는 사랑이 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단순한 문학이 아니다.
인간 존재 전체를 향한 하나의 질문이며, 동시에 하나의 대답이다.
에필로그
노년의 고요 속에 앉아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면, 나의 삶은 결코 단정端正한 길만은 아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나는 한때 성공과 체면이라는 이름 아래, 나 자신을 끊임없이 부풀리며 살아왔다.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조급함에 사로잡혀, 마음의 여유를 잃었고, 때로는 타인의 수고와 아픔을 헤아리지 못한 채 내 욕심을 앞세우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말 한마디로 누군가의 마음을 상하게 한 적도 있었고,
지켜야 할 관계를 소홀히 하여 스스로 멀어지게 만든 일도 있었다.
정직보다는 편의를 택하고, 진실보다는 순간의 이익을 좇았던 부끄러운 기억들도, 이제는 고요한 밤마다 하나씩 떠오른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온 또 하나의 페르 귄트였는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무언가를 이루어 가는 듯 보였지만, 정작 내 안의 중심은 비어 있었고, 어디에도 온전히 머물지 못한 채 떠돌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야 깨닫는다.
인생의 참된 가치는 쌓아 올린 것들에 있지 않고, 끝내 돌아갈 수 있는 자리, 그리고 그 자리를 지켜 주는 사랑에 있다는 것을....
솔베이지가 보여 준 기다림과 용서는, 더 이상 한 편의 문학이 아니라, 나의 삶을 향한 물음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문득 생각한다.
그 사랑보다 더 크고 깊은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탕자를 끝내 품어 주는 하나님의 사랑일 것이라고.
성경 속 탕자가 모든 것을 잃고 돌아왔을 때, 아무 조건 없이 그를 받아 주던 아버지처럼,
나 또한 그렇게 돌아갈 수 있기를, 그리고 받아들여질 수 있기를 조심스레 소망해 본다.
비록 늦은 시간에 이르렀으나,
이제 나는 더 이상 밖으로만 향하던 걸음을 멈추고, 안으로 돌아가는 길 위에 서고자 한다.
내가 저질렀던 허물과 부족함을 외면하지 않고, 하나하나 끌어안으며,
그 모든 것 위에 덮이는 자비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어쩌면 내 생의 마지막 여정은, 무언가를 더 얻기 위한 길이 아니라,
과거의 허물과 후회를 내려놓고, 오직 용서와 평안이 있는 그 품 안에 머물고 싶다. 긴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한 사람처럼,
조용히, 그리고 겸손하게. 그리고 언젠가 마지막 순간이 다가올 때,
나 또한 페르 귄트처럼 그 따뜻한 품에 머리를 기대고 평안히 눈을 감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이 글은 그렇게, 한 사람의 긴 방황을 마치고 나의 여정을 조용히 갈무리하려는 기록이다.(표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