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반전평화팀 후원 모금 호소합니다” | | | 국제통화료 등 상당한 지출 걱정 | | | 경남평화연대(준)는 희망연대를 비롯한 경남지역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결성되었다. 이번 이라크 반전평화팀으로 모두 3명을 파견했는데, 현재 이라크에 머물고 있는 배상현씨, 요르단에 머물면서 구호활동을 하고 있는 이해종씨와 이상용씨가 그들이다.
경남평화연대는 이들의 항공료와 현지 체류비 일체를 부담하고 있다. 최근 전쟁이 발발하면서 배상현씨가 한때 폭파예상지역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현지는 물론 국내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모든 언론이 경남평화연대가 있는 마산 희망연대 사무실로 집중되다시피 했다. 희망연대 김영만 의장은 19일부터 계속해서 이라크와 요르단에 국제통화를 걸어, 현지 사정을 파악하고 있다. 이런 속에 국제통화비용도 만만찮게 들어갔으며, 현재까지 수백만원이 들어간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경남평화연대는 이라크 현지 사정을 파악하기 위한 국제통화비용으로도 쓰고, 반전평화팀 지원금으로 쓰기 위한 모금 활동을 벌이고 있다.
△후원계좌 = 경남은행 666-22-0034999(예금주 백남해), 농협 821814-51-000450(예금주 이환태).
△문의전화 = 055-247-5532(희망연대)
△홈페이지 = http://hopenews.or.kr / 윤성효 기자 | | | | | 미국과 영국 연합군의 이라크 침공 이틀째인 21일 폭격으로 한 병원에서는 37명의 사상자가 났으며, 환자들은 ‘오히려 집이 더 안전하다’며 집으로 가기를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이라크 반전평화팀으로 가 있는 배상현(28. 마산)씨가 22일 밤 8시10분경(한국시각), 경남평화연대(준)로 현지 상황을 적어 보내온 전자우편을 통해서 확인되었다.
배씨는 3월 6일 출국, 요르단에 머물다가 13일 이라크에 입국했고, 한때 폭파예상지역인 북바그다드변전소에 갔다가 숙소로 무사귀환해 관심을 끌고 있는 반전평화활동가다. 그는 이라크에 들어간 뒤, 전쟁 발발 후 처음으로 현지 상황을 담아 보내온 것이다.
전자우편을 받은 경남평화연대(준) 김영만 위원장은 곧바로 현지로 22일 밤 11시경(한국시각) 국제통화를 시도, 반전평화팀 배씨와 한상진 유은하씨와 통화를 했으며, 모두 안전하게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배씨는 전자우편에서 “국경을 넘어 달리는 차안에서 바라보는 밤하늘의 별들이 무척이나 아름답게 보였다”는 말로, 다소 서정적으로 인사말을 했지만, 그 내용은 긴박감 그 자체다. “한없이 고요하기만한 이곳에 전쟁이 닥친다는건 생각도 할수 없었다. 멀리 동이 트고 자그마한 짓다만 건물들이 보이면서 드디어 그렇게 바라던 이라크로 들어왔구나 하고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운전하시는 조말(영문이름은 FRIDAY란다)은 잠도 없는가 보다. 고마운 사람이다.”
또 이라크인을 만난 소감도 적었다. 배씨는 “이라크에 들어와서 처음 느끼게 된 건 사람들이 무척 순수하다는 거다”면서, “근데 더 한건 팀원들 모두가 그렇게 느꼈다는 거다”라고 적고 있다. “아침에 도착해서 쉬고 싶었는데 일정은 빡빡했다. 2진으로 들어왔던 팀들과 합류해서 준비해온 작업들을 함께했다.”
“학교방문해서 사진붙이고 아이들 만나고, 유엔 앞에서 한국어린이들이 보내준 사진들을 걸었다. 그리고 옛 바그다드에 가서 아이들도 만나고, 관제집회였지만 짧게나마 참가하고 병수형이 준비해온 걸개그림을 걸고, 장애 아동시설에 가서 아이들 만나고. 그러면서 이라크 민중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
17일 촛불시위도 벌여, 외국인 5명과 함께 인간방패 활동
| | | ▲ 배상현씨. | | ⓒ 오마이뉴스 윤성효 | 전쟁이 일어나기 전인 17일(이라크 시각) 이라크 현지에서도 촛불과 랜턴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고 배씨는 밝혀 놓았다. “(3월17일) 만월이 되는 오후 5~7시 쯤이 공습 예상시점이 되면서 그 시간에 모두들 촛불을 들고 많은 휴먼쉴드(인간방패)․IPT(이라크평화단체) 사람들이 모여서 집회를 가졌다"고 설명. ”집회가 끝나고 한상진 팀장과 유은하씨, 그리고 나를 제외한 팀원들은 암만으로 돌아가는 차를 탔다. 한편으론 끝까지 함께할 수 없어 섭섭한 마음도 들었지만 이내 돌아섰다. 앞으로 할일들이 많기 때문에….“
그리고 배씨는 인간방패로 가게 된 과정도 함께 설명해 놓았다. “함께 남은 두 사람은 IPT로 남고, 난 혼자 '휴먼쉴드'로 가야했다"면서, ”처음 내가 이곳에 오고자 한 목적자체가 전쟁을 막고자 왔고 그 이유가 그 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설명. ”휴먼쉴드로 가면 굶주리고 있는 민중들과 달리 호화스러운 식사와 숙소 바깥으로 잠기는 잠금 장치, ‘이라크 정부에 이용 될 것’ 등 온갖 애기들이 있었지만 실제 그 곳에서 느낀 점은 전혀 듣던 바와는 달랐다.“
폭파예상지역인 북바그다드변전소에 가서 느낀 목격담도 배씨는 소상히 적어 놓았다. 그러면서 실제로 듣던 것과 달리 “잠금장치는커녕 문고리 자체가 없었다”고 설명. 그곳에서 식사를 했는데, 아침은 삶은 계란 2개, 점심과 저녁은 햄버거로 때웠다고 설명해 놓았다. 잠자리도 기계조작판넬 사이에 침대하나를 두고 잤다는 것.
“화사스런 대접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 얘기들과는 다르다는 얘길 하는 것이다. 그곳 사람들도 모두 친절하게 대해주었다”고. 그와 17일 그 곳에서 함께 있었던 외국인으로는 일본인 2명(기무라 목사, 다나까 고시로)과 아르헨티나(세르지오), 폴란드(아르투르)에서 온 반전평화팀 회원 등 총 5명이었고, 스페인 사람 1명은 18일 저녁 그곳에서 나갔다는 것.
이라크 현지에 있으면서 전쟁시점이 점점 다가오면서 느낀 점도 적어 놓았다. “개전 시간이 다가오면서 애써 태연한척하는 듯하는 동료들을 보니 가슴이 저며왔다. 나 역시 그렇게 보였을테지. 다들 마지막 밤이 될지 모를 밤을 준비하고 있었다. 모두들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을게다. 부시에게 이 소중한 목숨들을 내주기에는 너무나 소중한 그들이다.”
“어쩌면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하고 떠나면 그뿐일진대. 여기있는 그 누구도 전혀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혹시 나도…. 만에 하나라도…. 전쟁이 일지않길바라는 희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진정 평화를 바라는 이들이 이렇게도 많이 있다는 걸 부시가 깨닫길 바라는 수밖에….”
그는 그곳에서 “마지막 밤이 될지 모를 이 밤의 고요함에 나를 맏기고 조용히 눈을 감아야겠다”면서 아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린 듯이 이름을 적어 놓았다. “오김숙이 누나, 기굼형, 재원이형, 혜란씨, 승노씨, 은국 은국 그녀, 해종 아저씨, 마산 의장님, 사무국장 형…. 아이고 너무많다. 친구들. 송이…. 나열하지못한 많은 인연들 모두. 이땅에 진정 참 평화와 평등 자유가 뿌리내리게 해주세요.”
북변전소 방공호에서 잠시 생활, 새벽 공습 때 분위기 전해와
배씨는 3월 20일 새벽 1시(이라크 현지시각) 잠에서 깨었다고 적어 놓았다. “예상대로라면 4시 쯤 공습이 있을 것이었는데, 4시가 지나자 간절히 바랬던 마음이 이뤄진 것일까해서 좋아했는데 5시30분 공습이 시작되었다”며, “그렇게도 바랬건만…”이라고 토를 달아 놓았다.
“변전소 옥상으로 올라갔다. 아침을 깨우는 포탄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멀리 화염에 휩싸인곳이 보인다. 이곳에 일하는 아흐마드에게 물어보니 남쪽 바그다드일 것이라고 한다. 약 40여대의 미 전투기가 미사일을 뿌려댄다. 이라크 쪽의 대공포 대응도 있다. 곧 이곳으로 닥칠거라며 이곳 관리인들이 방공호로 들어가며 부른다.”
배상현씨는 방공호에 대해서도 설명해 놓았다. “방공호는 1평 남짓되는 방이 2개가 있고, 그중 하나에는 지상으로 통하는 사다리 통로가 있다. 또 6개의 작은 공기 통로가 있었다. 폭격은 한 시간 가량 계속되었다.”
“다들 잠이 부족할텐데 굳이 자려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말도 걸지 않는다. 각자 마음을 정리하고 있는 듯하다. 새벽의 긴장감도 없는 듯하다. 이곳 철조망밖 작은 운동장에는 마을 아이들이 공을차며 뛰어 놀고있다. 잠시나마 평온함이 영원하길….”
그곳에서 하루를 보낸 뒤의 상황도 적어 놓았다. “해가 저물고 있다. 전쟁이 시작된 이상 이곳을 지키고 있을 이유가 없어졌다고 얘기들 한다. 본래 목적인 전쟁방지였는데, 개전이 된 이상 의미가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휴먼쉴드가 실패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20일 첫 공습 후 분위기 달라, 이후 한상진 팀장과 합류
한국시각 20일 첫 공습 이후 그곳 관리인들의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배씨는 이야기 해놓았다. “식사도 안준다. 총을 매고 다니며 표정들이 심상치 않다. 이곳에서 죽을 순 없다. 어떻게든 나가서 한상진 팀장님과 합류해야 했다. 도로가 끊기기 전에 나가야했다. 다행히 한 팀장님을 만날 수 있었다.”
배씨는 20일 밤 바그다드 시내에 있는 알파나르호텔로 왔고, 그날 밤 9시경(현지시각) 또 다시 폭격이 있었다고 밝혀놓았다. “30분 가까이 폭격이 있은 후 멈추었다. 유리가 깨질 듯 흔들리고 사람들은 부산하게 움직였다. 언제일지모를 폭격에 잠을 청하는것조찬 쉬운일이 아니다. 사이트를 나와있는 지금 비록 몸은 편하지만 맘 한구석엔 함께나오지 못한 동료들이 생각나 편히 누울 수가 없다.”
반전평화팀 3명 한국대사관, 레바논대사관에도 찾아가
배씨는 침공 이틀째인 3월 21일 상황에 대해서도 적어 놓았다. “충격적인 소식이다. 나쁜X인걸 알지만…. 미국에서 중학교 여학생이 ‘전쟁이 싫다’는 문구가 새겨진 셔츠를 입고 학교에 갔다가 퇴학을 당했다고 한다”는 말까지 해놓았다.
그곳에서 “IPT 활동을 하는 '쉐인'이라는 미국사람 가족은 반전 데모를 하다가 가족 모두가 감옥으로 갔다”면서 그곳에서 들었던 말을 적어 놓았다. “그리고 여기서 활동하는 모든 미국인들은 모두 ‘국가 반역죄’로 미군이 바그다드를 함락하는 순간 체포되어 최소 10년형 이상 복역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런 그들은 여기에서 정말 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이 미안해하고 있고,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과연 이런 나라가, 이라크의 평화를 운운하며 전쟁의 구실을 만든는 나라가 자유와 민주를 말할수 있으며, 평화를 말할수 있겠는가. 통곡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반전평화팀 일원은 그 뒤 병원을 방문했다고 한다. 그 곳에서 “어제(19일)의 폭격으로 37명의 사상자가 났다는 소식을 들을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환자들 대부분이 집으로 가길 원하고, 집이 더 안전할 것이라는 판단으로 병원에서도 집으로 보낸 상황이었다”고 배씨는 알려왔다.
그리고 그들이 한국대사관에 찾아갔던 상황에 대해서도 언급해 놓았다. “들어갈 수가 없었다. 정아무개라는 사람이 ‘한국사람이건 누구건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라’는 지시를 내리고 안쪽 문들을 잠그고 가버렸다”는 것. 그러면서 배씨는 “한국의 파병문제와 더불어 수치스럽고 엄청나게 배신감까지 느껴졌다”면서 “국민을 버린 정부”라는 말까지 해놓았다.
배씨를 비롯한 반전평화팀 3명은 이어 레바논대사관도 방문했다고 한다. 그곳에서 영국 BBC방송을 듣고, 방송 내용을 함께 보내기도 했다.
전자우편 마지막 부분 “눈물이 흐른다”, “현장 생생히 알릴 것”
이라크 현지시각으로 21일 아침 8시30분경 3차 폭격이 있었다고 배씨는 알려 왔다. “서둘러 사진기를 들고 현장을 담기 위해 창가로 갔다. 티그리스강 건너편으로 화염에 휩싸인 도시가 보인다. 호텔 뒤 쪽으로도 폭격 소리가 들린다”고.
“서둘러 카메라를 동영상 모드로 돌리고, 현장을 담았다. 비록 멀리있지만, 엄청난 폭발들이 이어졌다. 어제의 잠깐이었던 폭격으로 37명의 사상자가 났는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새벽 2시20분) 간간히 들리는 폭격이니. 또 얼마나 많은 소중한 목숨들이 부시X에 의해 죽어갔는지…."
배씨는 전자우편 마지막 부분에서 “눈물이 흐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 내가 너무나 싫다. 지금으로선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 답답함 뿐이다. 더 이상 어떻게 나쁜X이라고 할수 없을 정도로 나쁜X이다.”
그가 전장에서 보낸 전자우편의 마지막 말은 다음과 같다. “날이 밝는 대로 현장에 가봐야겠다.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 알릴 것이다. 더러운 부시X”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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