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화순에서 작업을 하는 박명숙 도예가로부터 ‘부엉이 연적’을 선물로 받았다. 작품을 구입할 형편이 못되는 산골 농부인지라 도예전이 열리는 갤러리를 찾는 것으로 ‘면피’를 한 것뿐인데도 과분한 대접을 받았다. 박 도예가는 “부엉이는 지혜를 상징하는 새이니, 부엉이처럼 지혜롭게 살아가라는 의미가 있다.”는 귀한 설명을 선물과 함께 곁들였다.
물레 등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손으로 도자기를 빚는 박 도예가의 작품은 불교적 정서를 바탕에 깔고 자연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부엉이 연적’은 전시작품이 아닌 소품이지만 소중한 인연을 가진 사람에게 전하는 작가의 마음 표시였기에 더없이 귀한 선물이다. 오래전에 귀산(歸山)한 선배로서, 이제 막 귀촌해 농부로서, 또 작가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후배에게 ‘산골에 살수록 더 지혜로워져야 한다.’는 가르침을 ‘부엉이 연적’을 통해 전해주신 것이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
자연에서 채취한 흙이 장작 가마 속 1,350도의 고열을 견뎌내고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한 부엉이 연적! 게으른 나의 삶을 꿰뚫어 보고 있다.
진사(辰砂)의 색감이 제대로 구현된 부엉이 연적을 집필실 책상 앞 책꽂이의 잘 보이는 곳에 소중히 모셨다. 그런데 이 부엉이가 들여다볼수록 정감이 가는 묘한 매력을 분출하고 있다. 투박한 질감이지만 한껏 치켜 올린 눈매는 날카롭기 짝이 없다. 날카롭다는 것은 곧 지혜를 상징하는 것이니 부엉이 연적을 만든 작가의 의도가 엿보인다. 연봉(蓮峰) 모양으로 두 날개를 표현한 것은 작가의 신실한 불심이 은연 중 드러난 것이리라. 게다가 보살입상처럼 허리를 살짝 비튼 자태는 고요함(定) 가운데 지혜(慧)가 발현되는 진리를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실제로 불교에서는 부엉이를 어둠(無明)에 갇혀 있는 중생을 빛으로 인도하는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새로 여기고 있다.
부엉이의 생태에 비추어 수행자가 무지(無知)와 싸워야 하는 비유를 제시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새와 싸운 부엉이가 밤에 새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새를 죽이는 것처럼 수행자는 집요하게 무지와 싸워야 한다.’, ‘부엉이는 곧잘 혼자 앉아 조용히 생각하는 것처럼 수행자는 혼자 앉아 사유를 즐기고 혼자 앉아 사유하는 것을 즐겨야 한다.’ 등의 언급이 절집에서는 곧잘 활용되고 있다. 아마도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수행자들이여, 여기 홀로 앉아 사유를 즐기고 홀로 앉아 사유함을 기뻐하는 수행승이 있다. 이런 행동은 괴로움이며, 이것은 괴로움이 생기는 까닭이며, 이것은 괴로움이 그쳐 더 이상 없는 것이며, 이것은 괴로움을 더 이상 생기지 않는 데 이르는 길과 같은 것이니, 있는 그대로 깨닫는다.”고 설하신 것이 그 연원일 것이다.
불교에서 많이 사용하는 ‘觀(관)’자의 모양도 잘 살펴보면 부엉이와 무관하지 않다. 왼쪽에 있는 짐승(雚)이 오른쪽의 글자, 즉 본다(見)는 얘기인데, 불가(佛家)에서는 이 짐승을 황새가 아니라 날개를 접고 앉아 칠흑 같은 밤에도 꿰뚫어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부엉이로 풀이한다. 캄캄한 밤중에도 부엉이가 대상을 꿰뚫어보듯이 보이지 않는 마음을 꿰뚫어보라는 선적(禪的) 의미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세간에서도 부엉이는 길조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부엉이는 부와 명예, 복을 부르는 새로 여겨져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부엉이가 새끼 세 마리를 낳으면 대 풍년이 든다.’는 속담이 생겨났을 정도다. 또 집안에 부엉이 장식품을 놓아두면 ‘재물운’이 따른다는 말이나, 먹을 복이 많은 사람에게 ‘부엉이 집 같다’고 말하는 것은 사람들이 부엉이를 부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엉이는 어떻게 부를 상징하는 새가 되었을까? 그것은 항상 먹이를 많이 잡아 저장해 두는 부엉이의 속성 때문이다. ‘부엉이 집을 발견하면 횡재한다.’는 말도 ‘무조건 모아두고 저장해두는 부엉이의 특별한 속성에서 비롯됐다.
부엉이는 외국에서도 부와 지혜를 상징하는 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사를 하거나 결혼할 때 ‘가난하게 살지 말고 잘 살라’는 의미로 부엉이 소품을 선물한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지혜의 여신 아테네를 상징하는 동물인 부엉이를 선물하는 전통이 있다. 새를 보는 눈은 서로 다른 문명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들어 밤을 새워 공부하는 수험생에게 부엉이 인형 등을 선물하는 새로운 풍속이 생겨났다. 야간에 활동하는 부엉이의 특성에 주목한 것이다.
자연에서 채취한 흙이 장작 가마 속 1,350도의 고열을 견뎌내고 이렇게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한 부엉이 연적! 환골탈태(換骨奪胎), 혁범성성(革凡成聖)이 어찌 사람들의 전유물일 것인가?
귀촌 2년째, 모든 것이 달라지는 중이다. 그 많던 전화도, 이메일도 시나브로 뜸해졌다. 카톡이나 페이스북이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이지만, 이 역시 이전과는 달리 부쩍 한산해졌다. ‘이럴 때일수록 귀촌할 때의 목적, 즉 밭농사와 글 농사에 더 전념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라’는 인생 선배의 가르침을 부엉이 연적을 통해 들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많이 게을렀다. 계획했던 원고의 집필 속도도 많이 느려졌고, 이런저런 일로 출타가 잦다보니 리듬 또한 오락가락했다. 이제부터는 ‘부엉이 연적’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아야겠다.
엊그제 입동이 지나갔다. 이제 겨울철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도처에서 송년모임이 열리고 한 해를 잘 마무리하자는 인사가 숱하게 오갈 것이다. 내게도 아직은 끊어지지 않은 인연들에게서 송년모임 소식이 날아온다. 한 달여밖에 남아있지 않은 2018년, 예기치 않게 내게로 온 ‘부엉이 연적’을 보면서 틈틈이 자신을 점검하며 한 해를 잘 갈무리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