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0.19
오늘 아침 서쪽 1층 쪽 교실에서 학생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습니다.
탐문 수사를 벌인 결과 3학년 6반 뒷문으로 서생원이 나타나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는 정보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벌써 어제 이런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생생한 증거를 확보하고 있어서 별로 놀라지 않았습니다.
어제 1교시 때 1층 서쪽 화장실 앞 복도를 순회하다가 이미 문제의 그 서생원과 정면으로 마주쳤기 때문입니다.
몸은 늘씬하고 갈색 털은 윤기가 돌고 피부는 맑아서 딸 가진 부모는 누구나 탐낼 일등 신랑감이 분명했던 그 문제의 서생원(생원 벼슬을 하고 있으니까 숫놈이겠지요?)은 3학년 6반 뒷문 아래로 들어가려다 내 발자국 소리에 놀라 걸음을 멈추고 나를 보는 듯하더니 잽싸게 화장실로 도망갔습니다.
나도 급한 걸음으로 화장실 안으로 뒤쫓아 갔지만 서생원은 오리무중, 자취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대신 나는 한쪽 구석에 놓인 휴지통 위에 수북히 쌓여 있는 떡볶이 컵 6개와 , 컵라면 통 6개를 발견했습니다.
아, 서생원의 출현은 바로 이것이 원인이었구나, 확신이 섰습니다.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서생원이 다시 나타난 것은 '먹을꺼리'가 생겼기 때문이고,
그 먹을꺼리는 우리의 사랑하는 제자들이 무료 제공했다는 추리가 100% 정확합니다.
나는 마침 교실에 계시던 6반 담임 이호선생님을 모시고 와서 현장을 보여주고 서생원의 출현을 경고 삼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만에 다시 컵라면과 떡볶이컵이 풍기는 달콤한 냄새를 따라 나타난 서생원은 화장실에서 라면과 떡볶기로 배를 채운 후, 소화도 시킬 겸 감사도 드릴 겸 3학년 6반 교실까지 영역을 넓히다 그 소동을 벌이게 한 것입니다.
자업자득,인과응보, 모두가 내 탓, 누구를 탓하겠소,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한 마디 더할까요 ?
소동이 벌어지던 그 시간, 이덕구생활부장선생님은 교문 앞에 산다는 한 아주머니와 마주 앉아 있었습니다.
문제의 떡볶이를 파는 가게 옆에 있는 예림미장원 뒷 건물에 산다는 그 아주머니가 왜 찾아왔는지 알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요 ?
여학생들이 시도 때도 없이 그 건물 안에서 담배를 피워대고 국물이 질질 흐르는 떡볶이컵 아무데나 버려 징그러워 소름 끼쳐 못 살겠다는 진정이었습니다.
서생원이 나타나고, 아주머니가 찾아오고, 며칠 전에는 환경미화원도 찾아왔고,
얼씨구 좋다!!! 우리 학교는 분명 사람 사는 맛이 나는, 인정이 넘치는 학교임에 틀림이 없나 봅니다.
그만 쓰겠습니다. 참, 그런데 아까부터 내 글을 읽으며 고개를 갸웃갸웃하는 놈이 있었습니다.
드디어 그 학생이 내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서생원이 대체 누구예요 ? " ***